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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49화 (49/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49)

내 말에 황당해하는 건 카발뿐이 아니었다. 에르자일도 그렇고 산적 놈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길 여시고. 돈은 받았으니 보내 줘야 할 사람은 보내 줘야지.”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던 덩치들이 어리둥절해한다. 그리고 놈들의 두목에게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보내 줘라. 꼬맹이 말대로 돈도 받았고, 우리는 이 숙녀분을 접대해야 하니.”

산적들이 길을 열고 난 그들 사이로 지나쳤다.

“공자!”

어쩔 줄 몰라 하는 카발을 보며 말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쟤 마법사입니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그러니 알아서 올 겁니다.”

“로라스!”

내 행동을 예상치 못한 듯 에르자일이 크게 날 불렀다.

에르자일을 보며 한마디 해 줬다.

“세상일에는 장난이 없다, 에르자일.”

“너…… 정말!”

“첫 번째 가르침이다, 에르자일.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은 하지 말 것.”

“…….”

“무사히 돌아오라고.”

점점 당황하는 에르자일. 하지만 이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산적들을 보며 지팡이를 들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궁금하기도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조언도 떠올랐다.

예를 들면 다수를 상대로 했을 때는 숫자부터 줄여야 한다든지, 또 손을 쓰려면 확실하게 조져…… 박살 내야 한다든지,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 들 수 있는 방향을 줄여야 한다든지 말이다.

물론 이것도 상황이 끝났을 때 알려 줄 생각이다.

잔뜩 긴장하고, 다급해지고, 기왕이면 엄청난 위기감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그럴수록 앞으로 살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카발을 끌고 움직였다.

에르자일의 시야에 나나 카발이 있다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느슨해지면 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체력 훈련은 제법 해 왔고, 비무도 충분히 해 오긴 했으니.’

솔직히 그녀가 제대로만 하면 저 산적 패거리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하려면 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강하게 키울 생각이다.

에르자일의 미모를 생각하면 이건 꼭 필요한 수련이다. 앞으로 저런 놈들이 어디 한둘일까.

일단 그녀의 시야 밖으로 나갔다.

“공자! 지금 무슨 생각이십니까?”

끌려 내려오면서 다급히 말하는 카발에게 말했다.

“필요한 겁니다. 에르자일도 탈피를 해야 한 사람 몫을 다할 테니까요.”

“그럼 이렇게…….”

“잠시만 이렇게 있다가 가 봐야죠.”

“그 전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에르자일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모르십니까?”

“하지만 에르자일 님은 거의 평생을 마탑에서만…….”

카발도 아는 것이다.

실력은 있지만 경험이 없어 실전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그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마법사의 승부욕을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실드만 치고 있어도 상당 시간 버틸 수 있을 것이고.

‘물론 그것도 실드를 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때나 해당되겠지만.’

내가 에르자일의 보호자가 된 만큼,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도 알아야 한다. 그녀의 본성을 파악할 기회니까.

가끔 있지 않은가.

강호 초출이 노련한 무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건.

물론 에르자일은 이미 그쪽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퍼어어엉! 퍼어어엉!

왔던 길 쪽에서 폭음이 들린다.

싸움이 시작된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네. 폭음을 들으니 공격형 마법을 쓰고 있다는 건.’

아마 에르자일이 처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싸움일 터.

‘어리바리하다가 내가 다치는 것보다는 낫지.’

적을 어찌하지 못해 내가 죽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건 사람 좋은 게 아니라 미련한 거다.

다행히 에르자일은 그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다.

‘언제 올라가 봐야 하나?’

과감하게 내려왔으나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강하게 키우는 거지, 죽이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싸우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그렇게 결정했다.

* * *

로카.

그는 헤르메스의 장제자로, 6클래스 마법사였다.

헤르메스의 마탑의 실제 명성을 그가 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카 용병단의 대장으로 수많은 의뢰를 100% 해결하는 유능한 용병이 그였으니 말이다.

“락요?”

그가 오랜만에 에렌으로 온 이유는 바로 에르자일을 데리고 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에르자일이 락으로 출발했다는 소리에 살짝 당황했다.

“그래. 마지막 제자하고 같이 갔지.”

“조금 늦었군요. 스승님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는 걸 보고 어떤 아이인지 궁금했는데.”

“마법을 타고났지. 그 아이 덕분에 나도 어쩌면 저 위층으로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위층요? 아!”

로카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경하드립니다, 스승님. 오십여 년 전 무지개의 마법사 테이아가 죽고 난 이후로 아무도 오르지 못한 경지가 아닙니까?”

“설레발칠 것까지는 없고. 다만 길을 확실히 보았으니 무작정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걸을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정말 경하드립니다. 녀석이 무슨 방법으로 한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론을 정립하고 있지. 완성이 되면 네게도 보여 줄게.”

헤르메스는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이제 슬슬 돌아올 때가 되었잖아. 와서 연구해야지.”

“그래야지요. 하지만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쉽지만은 않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정리까지. 말 잘 듣는 사람 하나 앉혀 두면 나중에도 쓰임새가 있을 것을.”

“쉽지가 않습니다. 말을 잘 들으면 능력이 없고, 능력이 있으면 독립해 나갈 생각을 하니까요.”

“하긴 사람 쓰는 게 가장 힘들긴 하지.”

로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에르자일이 그리로 간 것은 정말 의외입니다. 사실 그 아이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내 실수다. 결정이 아주 뒤늦게 난 거거든.”

“괜찮겠습니까?”

로카의 물음에 헤르메스는 반문했다.

“뭐가?”

“에르자일 말입니다. 바깥 경험이 하나도 없을 텐데…… 로라스도 어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걱정이 됩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네?”

“로라스는 네가 모른다 치더라도 에르자일을 너무 모르는구나.”

로카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에르자일이 바깥 경험이 없긴 해. 하지만 그 아이는……. 너 에르자일이 내게 처음 가르쳐 달란 마법이 뭔 줄 아니?”

“무슨 마법입니까?”

“그건!”

* * *

‘뭐냐, 이건.’

위에서 싸우는 소리가 멈추자마자 올라갔다.

올라가면서도 무엇이 잘못되고 틀렸는지 알려 줄 말을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개굴개굴.

산적들은 온데간데없고, 에르자일이 막대기를 든 채로, 쪼그리고 앉아 개구리를 때리고 있었다.

“에르자일, 뭐 하는 거냐?”

“벌주는 중.”

에르자일은 개구리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놈들은?”

“여기.”

“그러니까 여기 어…….”

설마?

에르자일의 옆에 앉아 물었다.

“이게 그놈들이야?”

“응, 맞아.”

“개구리로 변신시켰어? 그게 가능해?”

에르자일이 그제야 날 보며 대답한다.

“오래는 안 되고 아주 짧게. 변신 마법은 룬 일곱 개는 다룰 수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거라.”

“그런데 어떻게?”

“스승님이 속성으로 짤막하게 알려 주셨어. 그래서 오래 이리 만들지는 못하고, 조건도 까다로워.”

“아까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진작 만들지 그랬어?”

“조건이 까다롭다고 했잖아. 마나를 모르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항마력이라는 게 있어서, 내 수준으로는 변신시킬 수가 없어.”

“그래서 싸운 거야?”

“일단 아무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공포에 질리게 해야 하니까. 그러면 항마력이 떨어지고 그때!”

에르자일이 기묘한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만드는 거야, 이렇게.”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 공격 마법을 썼다?”

“응. 어렵지 않았어. 파이어 볼 세 개 터지니 움찔하고, 역중력을 걸어 버리니 꼼짝도 못하던걸.”

톡. 톡.

헤르메스는 개구리 한 마리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얘가 그 두목이야. 그러니 더 혼나야 하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강하게 키울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개구리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거북이 걷는 것처럼 움직이는 놈이 있었는데 그뿐. 놈이 움직일 때마다 에르자일이 머리를 때렸다.

“이거…… 정말 개구리가 된 건가?”

“몰라. 개구리가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스승님 말로는 개구리가 된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하니…… 생각은 있지 않을까?”

자신이 이렇게 만들어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에르자일.

이쯤 되면 개구리, 아니 산적 놈들이 좀 불쌍했다. 그렇다고 뭐 용서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인간이었을 때 죽여 주는 게 인간적(?)이란 동정 수준.

여하간 의외다.

에르자일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만 가자.”

“이거 그대로 두고?”

“곧 풀릴 거야. 지속 시간이 아주 짧아서. 그리고 트라우마 때문에 다음에는 강도짓 함부로 하지 못할 거야.”

에르자일에 대해 생각을 좀 달리해야 할 것 같다.

일주일 후.

“로라스.”

예상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꽉 껴안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키가…… 정말 많이 컸구나.”

“많이 자랐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조금 야위어 보이십니다.”

“많이 먹는데도 살이 잘 붙질 않는구나. 네가 가르쳐준 손체조를 한번 하면 매우 힘든데, 뭔가 힘이 생기는 것 같아. 열심히 해서 그런가?”

에렌으로 떠나기 전 건강도인체조를 고안하여 어머니에게 가르쳐드렸다.

억지로 근육을 키우는 게 아니라, 쓰지 않는 근육을 더 쓰는 형식으로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는 방법이다.

분명 예전보다 살이 빠진 것 같으나, 얼굴에 생기가 도니 무척 잘한 것 같다.

어머니가 에르자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르자일 님도 잘 왔어요.”

“다시 뵙습니다, 에듀 남작 부인. 말씀 편히 하세요.”

“그럴까? 솔직히 볼 때마다 감탄했어요. 에르자일 같은 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리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방을 꾸며 봤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어머니는 에르자일에게 매우 친근하게 굴며, 자신이 직접 그녀의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아버지에게 제대로 인사할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정말 많이 컸구나. 그리고 고생했다.”

더 이상 말은 없었다. 그저 날 꽉 한 번 안아 주시는 걸로 다른 모든 말을 대신했을 뿐이다.

에렌으로 돌아온 것이 실감났다.

* * *

카발이 떠났다.

잡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돌아봐야 할 지역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하늘 산맥과 메타린 평야에 도전할 수 있을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영지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로라스, 다른 차 마실까?”

어머니 곁에서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고, 차를 마시고 쿠키를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이었다.

그 하루 종일 계속되는 티타임을 난 기꺼이 받아들였다.

효도가 별 건가.

이리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아하시는데, 차 따위는 몇 주전자가 아니라 솥단지로 수십 개를 마실 수도 있다.

가끔 아버지와 다른 기사들도 참석했다.

그럴 때마다 난 에렌에서 있었던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은근슬쩍 내비쳤다.

드리블은 흥분하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신 겁니다. 제 가슴이 다 뛰었습니다.”

이미 헤르메스가 보낸 마탑 건설자가 다녀갔다고 했다. 그리고 건설 일정을 조율했다 했다.

드리블이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다.

영지 재정을 담당하는 만큼 마탑 건설로 인해 영지의 수입이 어느 정도 증대될 것인지 가장 빨리 계산했기 때문이다.

“드리블 경, 재정 업무 보시랴 다른 업무도 보시랴 힘드시지 않습니까?”

“아직까진 버겁지는 않습니다. 영지 재정 업무라 해 봤자 많지는 않으니까요.”

드리블은 그리 대답하며 아버지를 보고 말을 건넸다.

“하지만 마탑이 건설되기 시작하고 사람이 몰리면 전문 회계사를 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군.”

“알아봐야지. 하지만 우리 영지에 전문 회계사가 올지는 모르겠군. 잘 찾아봐야지.”

이 세계에서 숫자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적다.

백의 구십오 명 이상이 글을 모르는데, 하물며 숫자야. 대부분 덧셈, 뺄셈만 하는 수준이다.

사실 락의 규모가 작아서 드리블이 감당했지, 두 배 수준으로만 커져도 버거울 터다.

뿌려 둔 것을 수확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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