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6)
영롱한 빛의 자체 발광을 잠시 지켜봤다.
‘빛깔은 칠채보주 같네. 그런데 이 비싼 걸 어디서 났지?’
마물 토벌을 하면서 얻은 마정석들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마정석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마나석의 반만 한 크기만 되어도 아버지는 물론이고 기사들이 엄청 좋아했던 것도 안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하게 비싼 물건이라는 건데.’
잠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사들이 갑옷을 매번 수리해야 하니, 병사들의 무구는 말할 것도 없이 엉망.
굶주리지는 않는다 하나, 그렇다고 잘 먹는 것도 아닌 영지민들.
사람이 이런데, 십여 필의 말들은 말해 뭐할까?
‘이거 하나면 한 방에 해결 가능한 거 아닌가?’
그래도 호기심은 들었다.
이걸 쥐고 룬어를 읽으면 어찌 되는지, 운기조식을 하면 어찌 되는지 말이다.
‘궁금하면 해 보면 되지.’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곧바로 손에 쥐고 룬어를 읽기 시작했다.
‘이런 건가?’
마나의 기운들이 확연히 느껴졌다.
각 속성의 기운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이걸 몸에 저장하는 방법은 없는 건가?’
마법사들은 단전이 없다.
룬어를 읽고 쓰면서 기운을 모으고, 그것을 조합해서 사용한다.
마법사가 괜히 체력이 약한 게 아닐뿐더러 강력한 위력을 가진 마법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으음. 일단 걷지도 못하는데 날 생각은 접어 두고.’
아직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른다. 지금은 기존의 것을 확실하게 익혀야 할 때.
‘확실히 엄청 도움이 된다. 일단은 기본이 확립될 때까지만 쓰도록 할까?’
마나는 확인했으니, 그다음은 심법 차례.
가부좌를 틀고 그대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똑똑똑.
노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눈이 번쩍 뜨였다.
“공자님, 식사 시간입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다. 곧 나간다.”
그리 대답하며 방금 전 일어난 현상에 대해 생각했다.
‘뭔 일이 일어난 거지?’
집중을 통해 무아지경에 들어가는 건 내게 어렵지 않은 일.
하지만 이번은 뭔가 좀 달랐다.
곧바로 다시 운기조식을 하였다. 그리고.
‘이것 봐라.’
내공이 증가되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현상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몇 시간의 운기조식으로 체감이 될 만큼 내공량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난 마나석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여기 세상의 영약 같은 존재인가?’
무림에도 천년설삼이니, 공청석유니 하는 그런 영약이 있고, 분명 효과도 있다.
저잣거리 이야기처럼 한 뿌리 먹으면 수십 년 내공이 증가하고, 한 방울 마시면 몇 년씩 내공이 증가되는 건 아니지만, 분명 그 속도 증가는 무시 못 한다.
지금 이 마나석이 그런 영약의 역할을 한 듯했다.
‘줄어들었지?’
일반인들의 눈에는 차이가 없겠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영롱한 빛깔은 여전하지만, 크기가 눈곱만큼 줄어들었다.
‘이렇게 소모된다면 얼마나 버틸까?’
써 본 물건이 아니니 알 수가 없다.
‘제대로 하면 순식간에 소모시킬 수도 있을 터.’
마나석을 두고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언제까지, 얼마나 써야 할지를 말이다.
꼬르르륵.
좋은 곳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고민은 먹고 난 후로 미뤄야겠다.
* * *
“요새는 티타임도 자주 빼먹고, 잠도 늦게 자는 것 같던데. 그러다 큰일 나요. 잘 먹고, 잘 자야지.”
“네, 어머니. 조심하겠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날 아이 취급하지 않으나, 어머니만큼은 다르다.
그녀에게 여전히 난 꼭 보살펴 줘야 하는 아이.
누군가에게는 잔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노래처럼 듣기 좋다.
내가 뭐라 할까 두려워,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씀을 못하게 하는 아들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아이고!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차가 다 식어 버렸네. 데워야겠다.”
“어머니, 제가 재미있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호기심 어린 어머니를 보며,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찻주전자를 왼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룬어를 쓰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왼손으로 모였고, 나는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쪼르르르르.
그리고 됐다 싶을 때 찻잔에 따르니 약한 김이 올라왔다.
“마법이구나!”
“네, 어머니. 식기 전에 드세요.”
어머니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찻잔을 보셨다.
“따뜻하구나. 아빠에게 들었는데 이것 때문에 한동안 나오지 않은 거구나.”
“룬어를 익히고, 이제 막 써 보기 시작한 수준입니다. 아직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이 어머니를 너무 바보처럼 보는구나.”
“그럴 리가요. 정말 아직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삼매진화라면 대단한 게 맞지만, 마법으로는 아니다.
“더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때, 꼭 다시 보여 드릴게요.”
타악.
어머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내 손을 잡으셨다. 그리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뭐가 됐든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근래 늦게 자고 새벽에 일어난다는 걸 모르는 줄 아니?”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실 일은 없을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몇 가지 당부에 군말 없이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당신의 마음만 편하실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못 할까.
‘당분간은 꼭 같이 있어 드려야지. 작은 걸 얻고자 큰 걸 놓칠 수야 있나.’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는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근래는 룬어 쓰는 연습을 하느라 방보다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시 눈으로 익히는 게 제일 빨라. 직접 쓸 수 있는 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무림에서도 읽을 줄은 아는데 모든 글자를 제대로 쓰는 사람은 없는 이유가 이거다. 눈으로는 아는데, 손은 익숙지 않은 것이다.
‘연습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거겠지. 특히 개념 파악이 제일 중요하고.’
날로 먹을 생각은 없다.
유역후 시절 강함에 집착한 나머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을 짚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그 사달이 났었다.
두 번의 실수는 없어야 한다.
허공에 손을 들었다.
‘읽으면서 쓰는 건 어렵지 않은데 유지가 문제란 말이지.’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
문제는 이게 촉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육감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이 느껴지는 기운도 새로운 감각의 하나다. 그리고 그 감각을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물론 까다롭다는 거지, 뭐 엄청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뜨거운 기운을 모으고, 차가운 기운을 내보냈으며, 땅의 기운을 위로 끌어 올리고, 대기의 기운을 골고루 퍼트렸다.
여기에 무슨 의미는 없다.
그냥 가장 크게 느껴지는 기운들을 확실하게 쓰고, 몸이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지만, 내 기준에서는 이 기운들이 마나의 기초 중의 기초이니 말이다.
물론 이것을 완전하게 각인시킬 생각은 없었다.
마법이라는 까다로운 학문을 독학 중이다.
‘괜히 이상한 습관 같은 게 생기면 곤란하니까.’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능력 되는 마법사에게 지금 하고 있는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을 검증받는다.
이게 현재 내 계획이다.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지금 하는 건 취미 수준이니까.’
마법은 개천지보를 수련하다가 지루할 때마다 잠깐씩 손대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그런데 말이다.
‘이거 재미있어 미칠 것 같단 말이지.’
바둑을 배웠을 때랑 비슷하다.
‘그때도 침상에 누우면 천장에 흰 돌, 검은 돌만 보였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기운들이 천장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마법이라는 놀이에 중독된 것 같다.
* * *
영광 찬란한 마법사의 탑.
분명 탑의 이름은 유치했고, 많은 이들도 실제로 그리 느꼈다.
하지만 누구도 그 탑의 이름을 두고 유치하다는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그 이름은 탑의 탑주가 직접 지었고, 그 누구도 탑주 앞에서 그것이 유치하다 말할 담량을 가진 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탑주는 일을 끝내고 돌아온 제자를 붙잡고 물었다.
“어땠니?”
“어떤 면에서 말입니까?”
에르자일의 반문에 헤르메스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 짧은 사이에 여러 면을 본 거니?”
“그 아이는 분명 저보다 훨씬 어린데도…….”
에르자일은 로라스를 수식할 말을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감이 굉장히 세 보이다가도, 어떤 면에서는 집착이 심해 아이와도 같았습니다. 또 언어 구사가 나이 든 이와 같았습니다. 가끔 저도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이야기했고요.”
에르자일은 계속 로라스에 대해 말했고, 헤르메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들었다.
“그래도 확실히 마법에 관심을 심어 주는 데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에르자일이 로라스에 대한 총평을 그렇게 마무리하자, 헤르메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 제자로 손색이 없다. 정말 여러 면으로 잘 살폈구나. 마법사란 사소한 것이라도 그렇게 여러 가지 방면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잘했다.”
에르자일이 활짝 웃자, 헤르메스는 물었다.
“그런데 룬어를 하루 만에 익혔다고?”
“말씀드렸다시피 조금씩 익혀 왔다고 했습니다. 발음이 확실히 어눌하긴 했으니까요.”
“그랬구나. 어찌 됐든 정말 잘했다. 갔다 오느라 피곤하겠구나. 이만 쉬거라.”
“네, 스승님.”
에르자일이 기쁜 표정으로 물러가자, 헤르메스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하루 만에 익힌 거야!’
에르자일의 말을 들으며 헤르메스는 그리 확신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룬어 정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룬어와 체계가 다르다.
에르자일은 자신의 제자라 그 사실을 모르지만, 체계를 만든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시중에 알려진 것과 최소 30%는 다르다.
아까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에르자일이 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로라스 그 아이도 그리 에르자일을 배려했단 말이지. 깜찍하게도.’
어리지만 사람 보는 눈을 가진 게 틀림없다.
‘나이 든 이와 같다라……. 에르자일도 로라스를 정확히 봤고.’
헤르메스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 재미있는 아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 마법적 재능에 그 정도 관찰력이면…….’
헤르메스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내 제자들이 라이벌이 되어 내 마법적 재능을 끌어낼지도!’
세간에 자신을 비롯해 몇 명을 같이 묶어 십대마법사니, 오대마법사니 부른다는 걸 안다.
하지만 헤르메스 본인은 그것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롯하게 자신이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 생각했다.
‘절대자의 고독. 멋지지. 결국 나를 이은 제자들이 내 라이벌이 되는 구도. 이것 또한 멋지고.’
그녀는 흔한 망상병 환자처럼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상해 나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정말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 애초에 에르자일도 그 목적으로 키우고 있었다.
‘으음. 그 재능이면 에르자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도는 어찌 뺀담?’
헤르메스는 로라스가 자신의 제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률 따위는 조금도 계산하지 않았다.
‘그 마나석을 쥐고 마법을 공부하는데 재미가 없으면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거지. 환각제보다 더한 쾌락을 느낄 텐데.’
자신도 경험한 쾌락과도 같은 재미.
그녀는 로라스도 반드시 그러할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에듀는 그 가치를 잘 알 테니 최소한 뭔가 하려고 할 테고.’
자신에게도 무리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특급 마나석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낸 것이다.
“으으음. 벌써부터 내게 이런 즐거운 고민을 안겨 주다니. 기특한 아이야. 어서 오렴.”
헤르메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