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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2화 (22/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2)

식사 시간은 늘 즐겁다.

공작의 에렌성에서 먹었던 훌륭한 음식에 비하면 영지의 음식은 소여물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같이 먹는 사람이 특별하다.

“로라스, 이것도.”

“…….”

“이게 아주 신선하구나.”

쉴 새 없이 접시에 음식을 올려 주시는 어머니의 관심은, 음식의 질 따위를 비교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도 좋다.

‘이런 게 사람 사는 거지.’

모든 게 만족스럽다. 그래서 이제 슬슬 다음 일을 시작해야 했다.

“아버지, 근래 수련을 하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바쁘시겠지만 잠시 시간을 내 주시겠습니까?”

“대련? 나랑 말이냐?”

“네. 이제 가문의 포스 서클레이션도 배우고 싶습니다.”

‘좀 더 빨리 말씀드릴 걸 그랬나.’

순간 그리 생각했을 정도로 아버지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하하하. 언제쯤 네가 그 이야기를 꺼내나 싶었다.”

“무기가 손에 익숙해진 후에 부탁드리려 했습니다. 장난하듯이 배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지나친 생각이지. 노는 걸로 시작해서 나쁠 건 또 뭐가 있겠느냐?”

“…….”

“그것도 아비 된 기쁨 중 하나인걸.”

아버지가 웃음기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네 재능이 특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에렌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들었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또 운만으로는 통과할 수 있는 시험도 아니지.”

“…….”

“아비가 궁금한 건 네가 그런 이야기를 왜 내게 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되었다.

‘어지간히 섭섭하셨던 모양이네.’

때를 기다린 내 실수다.

“아버지는 영주시니까요. 아들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저도 아버지의 신하이지 않습니까? 의미 없이 아버지의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허! 이 녀석, 군신보다 부자가 우선이다.”

“그래서 미진함이 있음을 알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더 늦으면 곤란해질 것 같아서요.”

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를 보며 말씀하셨다.

“여보, 아무래도 우리는 아들 키우는 재미는 포기해야 할 것 같소. 부자지간보다 군신의 관계를 먼저 따지니 말이오.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너무 애어른 같다고 할지 헷갈리지만 말이오.”

황당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하다.

‘암. 제자를 키울 때도 재능이 있으면 그리 기뻤는데, 자식이 그러면 더더욱 그렇지.’

나 정도면 훌륭한 아들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다시 날 보며 말씀하셨다.

“뭐가 됐든 좋다. 하지만 네가 먼저 말한 것만큼 제대로 할 것이다. 나중에 우는소리 하기 없는 거다.”

대견스럽고 기쁘기만 할 뿐이지, 날 파악하지는 못하신 듯하다.

‘그나저나 어쩌나? 적당히 할 생각이었는데, 저러시면 제대로 해 드려야 하나?’

나와 수련을 한다는 것. 그게 어떤 것인지 시그탑이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내가 일단은 우리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우리 부자는 그대로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곧바로 봉을 잡았고, 아버지는 검을 잡았다.

먹은 거 소화될 시간?

그런 건 움직이면 다 되는 것이고.

붕붕붕.

봉을 돌리기 시작하니 아버지의 눈이 빛났다.

“손에 익은 수준이라 하기에는 매서운 소리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말 타고났구나, 타고났어. 내 나이 때 이 아비는 그런 소리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말이다.”

지극히 만족스러움을 표하며 말을 이었다.

“정말 이 아비에게 빨리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이 아비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네 근골도 훌륭하고 벌써부터 봉을 그리 다루는 걸 보니 금방 이 아비를 뛰어넘겠구나.”

“과찬이십니다.”

“칭찬해야 할 건 칭찬해야지. 자만은 단속해야겠지만, 벌써 그런 경지면 자만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아버지는 표정을 단속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포스 서클레이션을 배운 이후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육체 수련으로 인해 입은 피해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포스를 수련하면서 입은 피해는 그 휴우증이 상당하다. 심각하면 아예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

주화입마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오히려 잘됐다.’

주화입마가 있다면 이곳의 포스 서클레이션은 무림의 내공심법과 일맥상통한다는 증거니까.

“그럼 가볍게 액티브 포스 서클레이션부터 시작하자.”

검을 곧게 세운 아버지가 제대로 호흡을 잡는 순간, 기운이 퍼져 나왔다.

‘행공인가?’

행공은 움직이면서 내력을 운기하여 돌리는 방법을 말한다.

원래 내공은 역천이라 불린다.

그만큼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데, 움직이면서 운기를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뛰어난 내공심법일수록 그 방법은 많아진다. 아예 행공이 존재하지 않는 심법도 있을 정도다.

그런 면에서 개천지보는 무림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심법.

걷거나 뛰는 것. 일상적인 모든 움직임에 따라 행공의 방법이 달라진다. 심지어는 똥을 살 때도 법칙이 존재할 정도다.

물론 나야 유역후였을 때 단련이 되어, 그런 법칙을 무시해도 자연스레 운기가 되지만 말이다.

‘저 정도의 기운이라면 가문의 심법도 훌륭한 편이겠지.’

짐작건대 가문의 심법, 즉 포스 서클레이션도 뛰어난 편일 것이다.

‘하긴 공작의 경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이 세계의 포스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후우욱!”

그사이 아버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켜봤을까?

뛰어난 무인.

난 그리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라 평가를 후하게 내린 게 아니다.

실전으로 이뤄진 단단한 근육, 그리고 거기에서 뿜어지는 포스의 기운.

어디 한 군데 치우치지 않고 완벽한 균형을 이뤘다. 내근이 단단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경지다.

‘단련시키는 게 절대 쉽지 않았을 텐데.’

타고난 근골에 노력까지 한 게 분명하니 뛰어난 무인. 그 평가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떠냐? 멋있지 않느냐?”

“멋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답변을 한 걸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하하하하. 이거 가볍게 한 말에 그리 정색을 하니 민망하구나.”

“진심입니다. 멋있고 훌륭하십니다.”

조금의 거짓도 섞지 않은 말이다.

아버지는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눈높이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열심히 했다고는 못 하나 게으르지도 않았다. 한 번을 하더라도 정성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다. 이게 아비가 네게 알려 주고 싶은 가장 첫 번째구나.”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왜 잊고 있었을까?

“며칠 열심히 하고, 며칠 열심히 놀고, 다시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성심을 기울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일이든 말이다.”

유역후가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삶의 목적을 잃어 혼돈 속에서 살았던 그 시기. 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계속 말했다.

“그게 끈기이다. 그런 끈기는 무인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

유역후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걸 알고도 깨닫지 못했으며, 실생활에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매사가 모두가 이와 같다. 이 아비가 모자란 재주로 이 영지를 보살피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이 같은 마음을 잊지 않아, 영주로서는 부끄럼이 덜하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천둥벼락이 쳤다.

‘그다음은 한쪽을 지극히 다함이니, 한쪽을 지극히 하면 능히 성실할 수 있다. 성실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더욱 드러나고, 더욱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화(化)할 수 있으니, 오직 천하(天下)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화(化)할 수 있다.’

그게 뭐였더라…….

서생과 학사들이 물고 빨았던 책.

“이해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의 질문에 그대로 말문이 터져 나왔다.

“작고 사소한 부분에도 정성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그리 정성을 다하면 나타나고, 더 하면 좀 더 나타난다. 그리 조금 더 나타나면 밝아지고, 분명해진다. 밝아지고 분명해지면 남을 감동시킬 수 있고, 남을 감동시키면 따라 변하고, 따라 변하면 바뀔 수 있으니, 오직 천하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어야 능히 변화시킬 수 있다.”

생각났다.

유역후 시절 ‘사서삼경’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그걸 찾아 읽었을 때 보았던 내용.

중용 편이었으리라.

그 아득한 깨달음에 얼마나 정신을 놓았던 것일까?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계셨다.

“좋은 말이네요.”

별수 있나? 아버지의 말이라고 우길 수밖에.

“내가 한 말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뿐이었는데.”

“그러니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지요. 전 그것을 길게 풀어서 이야기한 것뿐이고요.”

하지만 아버지의 놀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저 나의 양팔을 붙잡고 몸을 떠셨을 뿐이다.

“좋은 말이구나, 좋은 말이야. 내 막연히 생각했던 것을, 네 말을 들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구나.”

“저 역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정신이 확 듭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깨닫는 이가 있다더니. 우리 아들이 그런 천재였구나. 천재였어! 아니, 열이 뭐야! 백이고, 천이지!”

미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아버지는 급기야 대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핫! 로라스! 로라스! 내가 너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가르치는구나!”

그리고 벌떡 일어서며 검을 휘두르는 아버지.

저리 흥분하신 거 보니, 아버지도 뭔가 깨달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는데…… 모자랐던 거지. 이 가벼운 찌르기 한 번에도 정선을 다하지 않았던 거야.”

검을 곧게 지르는 아버지의 포스가 심상치 않았다.

“이리 단순하게 내지르는 검에도 정성을 들이니!”

부르르르릉.

검음과 함께 검이 비산하기 시작했다.

‘일검만로(一劍萬路)!’

아버지의 검은 만 개의 검으로 화해 공간을 장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절로 뜨거워졌다.

개천지보의 공력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생성되어 갔고, 이내 하나의 폭풍이 되어 체내에 휘몰아쳤다.

그리고 이내 전신을 장악한 폭풍은 그대로 터져 나갔다.

“하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못 버틸 것 같아 그대로 소리를 질렀고.

“후우우! 후우우!”

간신히 그 기운을 갈무리했을 때 시간은 한참 지난 듯했다.

어느새 연무장에는 아버지와 나 외에도 사람들이 잔뜩 몰려나와 있었다.

제각기 다른 표정의 사람들.

이유는 짐작이 됐다.

유역후 시절에도 용오름 같은 내력의 발출. 거기에 따른 덕문에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고성에 많은 이들이 놀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을 모든 사람들의 귀에도 들리는 소리였으리라.

‘어라?’

하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이 내 소리에만 놀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산산조각 난 허수아비들. 게다가 바닥은 또 왜 이리 엉망인지.

내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고, 거기에는 어리둥절해하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주군!”

드리프가 놀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이게 무슨…….”

브렌드 역시 난장판이 된 연무장을 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아! 별거 아니야.”

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급히 입을 여셨다.

“조금 과하게 움직였나 보네. 놀랄 일은 아니야.”

하지만 의문 어린 표정이 풀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데리고 연무장에서 이 정도로 엉망이 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주군, 그 외침은…….”

브렌드가 입을 열었고, 시그탑이 말을 받았다.

“그런 외침은 전장에서나……. 포스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 그랬나? 그게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열기가 일어서. 그 때문인가 보군.”

공교로운 일이다. 내 외침에 놀란 줄 알았는데 마침 아버지도 같은 현상을 겪은 모양이다.

‘다행이네. 내가 그랬다면 잔뜩 귀찮아졌을 텐데.’

여하간 한여름 밤의 소란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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