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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21화 (2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21)

“하아아!”

폐를 팽창시킬 수 있을 만큼 팽창시켜 공기를 가득 담았다.

‘역시 우리 영지는 이거 하나만큼은 끝내준단 말이지.’

석 달 만에 돌아온 영지는 최고였다.

솔직히 공기가 얼마나 차이가 날까만.

‘내 집이란 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내가 돌아와야 할 곳.

그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난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였다.

나만 느끼는 건지 모르지만 영지 주변의 이 독특한 냄새. 그게 너무 좋아 흥분될 정도였다.

“로라스!”

예상대로 가장 먼저 날 부르고 뛰어온 이는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 다녀…….”

인사를 끝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실오라기 한 올 들어갈 틈도 없이 날 꽉 안아 주셨으니까.

숨이 막힐 정도라 밀어낼까 하다가 이내 손에 힘을 풀었다. 오히려 힘을 주어 어머니를 안았다.

이게 효자의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그사이 아버지가 인솔자인 프리아 남작을 반기고 있었다.

“바쁘신데 또 이리 직접 오셨습니까?”

“나는 자주 봤으면 하는데 자네는 아닌가 보군.”

프리아 남작이 농담조로 하는 이야기에 에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야 형님께서 오시면 언제든 좋지요. 다만 형님도 바쁘시니.”

“하나도 안 바빠. 그리고 이런 일은 하나도 안 바빠.”

프리아가 슬쩍 로라스 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들 하나 제대로 키웠어. 우리 동북부의 자랑이야.”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예물 좀 들어오지 않았나?”

“예물요?”

에듀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프리아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예물 하나 보내오지 않았단 말인가? 자네 아들 때문에 몇 명이나 올라갔는데!”

에듀는 그제야 프리아의 말을 알아들었다.

“아! 서신은 왔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한번 방문하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거절? 왜?”

“괜히 번거로워질까 봐요. 그리고 애가 도우면 얼마나 도왔겠습니까? 그럴 만한 자질이 있으니 올라간 거겠지요.”

프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무슨 소리야! 자네도 시험을 치러 보지 않았나? 가문의 시험이 어디 보통인가! 난 지금도 내가 왜 4차 시험에서 떨어졌는지 깨닫지 못했는데.”

“…….”

“내 에렌에서 아는 사람에게 들으니, 로라스가 멱살 잡고 다른 아이들을 끌고 올라갔다던데. 그래서 이번에 상급 합격자들이 그리 많은 거고.”

에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프리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덕분에 내가 통솔했던 아이들은 대부분 상급 합격자가 됐어. 특히 최종 십대 합격자 중 여섯이 내가 데리고 갔던 애들이란 말이지.”

“…….”

“에듀! 이건 정말 엄청난 거야! 이 시험이 단순하게 애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 않나.”

“압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오신다 하여 잔뜩 준비했습니다.”

에듀가 다시 화제를 돌리며 하는 말에, 프리아는 웃으며 말했다.

“날 위한 게 아니라 로라스 때문이겠지.”

“하하하하! 이유가 무슨 상관입니까? 오늘 좋은 술과 음식을 형님과 함께한다는 게 중요하지요.”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 에렌에서도 물건이 도착할 거야.”

“물건요?”

“로라스가 일 등이니 그만한 상품이 있어야지. 뭐를 보낼지 모르겠지만…….”

프리아는 슬쩍 에듀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영지에 도움은 될 거야.”

동북부에서 에듀의 영지가 제일 가난했다.

관할 지역은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는 규모이나, 쓸 수 없는 땅이 너무 많았다.

프리아 입장에서는 에듀가 에렌으로 어떻게 세금을 보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혹여나 받지 않겠다는 억지는 부리지 말게. 그건 큰 무례야.”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네니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에듀, 이건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더 이상 눈 밖에 나지 말게.”

에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 와중에 에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음을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더 이상 눈 밖에 나지 말라고?’

프리아 남작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으나 내 귀를 속일 수는 없다. 그는 분명 그리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 말은 곧 아버지가 공작의 눈 밖에 한 번 났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있다.

공작은 소인이 아니다.

그만한 권력을 가진 자는 절대 소인일 수 없다. 탐욕이 넘칠지 모르나 선은 확실히 긋고, 웬만한 일도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선을 넘으면, 한마디로 눈 밖에 나면 그야말로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눈 밖에 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쩡하지 않는가?’

게다가 아버지 에듀는 뛰어난 무인이다. 공작이 수많은 실력자들을 거느렸다 하지만 아버지만 한 능력자는 많지 않다.

고작 열 살인 자신에게도 그리 탐욕을 부리지 않았던가?

‘그림의 떡인가?’

사정을 알아봐야겠으나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

그림의 떡. 하지만 그 그림이 자신의 소유이니 여지를 남겨 두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없겠군.’

결론은 크게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했다.

늙은 권력자의 애증의 본질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살이 쏙 빠졌구나. 가자. 엄마가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 놨다.”

이제야 날 품에서 놓은 어머니를 보며 빙그레 웃어 주었다.

‘일단 먹고 나서.’

뭐든 먹고 나서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 * *

원래 내 일상은 매우 평화로웠다.

칼 같은 규칙이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고, 목적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분명 그리 바라던 생활로 돌아왔는데.

‘지루하네.’

하루 종일 조잘대던 꼬맹이들이 곁에 없는 것이 이리 허전한 일일 줄은 몰랐다.

애들하고 같이 있어도 뭘 하지는 않았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름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봉을 잡았다.

재미는 삼보를 걸을 수 있을 때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규칙적인 파공음으로 박자를 만들고.

씨이이잉.

그 박자 사이에 다른 파공음으로 새로운 박자를 만든다.

하나의 박자, 두 개의 박자.

터어엉!

세 개의 박자를 만들기 위해 사람 크기의 기둥을 쳤을 때.

‘손맛이 덜해.’

둔탁한 느낌에 흥이 깨졌다.

공작의 개인 연무장에서 그 허수아비를 내리쳤을 때의 손맛이 그립다.

‘그거 얼마나 하지?’

비쌀 것이 분명한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공자.”

시그탑이 찾아왔다.

“쉬지도 않고 바로 시작하시는 겁니까?”

“너무 오래 놀다 왔는데 부지런히 다시 해야지요.”

“시험이지, 노는 건 아니었지 않습니까?”

“제겐 노는 거였어요.”

시그탑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치 질린다는 표정이다.

“새삼스레. 그렇지 않아도 박자감이 없어서 곤란했는데 잘 오셨어요. 상대 좀 해 주시겠습니까? 감각부터 찾아야겠어요.”

“주군께서도 저를 그런 연습 상대로는 생각하지 않으시는데 말입니다.”

시그탑이 웃으며 투덜거리지만 이미 그의 손은 검병을 쥐고 있었다.

“저와 비무하는 게 도움 안 돼요?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런 건 그냥 넘어가 주는 겁니다. 지금이 꼭두새벽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지요.”

난 피식 웃으며 봉을 내밀었다.

차아앙.

시그탑이 봉에 검을 맞대는 순간 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르르르릉.

미약한 철음에 귀가 즐겁다. 그리고 봉을 마주하는 검의 궤적에 눈도 즐겁다.

‘놀랄 만큼 늘었네.’

못 본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시그탑의 움직임은 천지 차이. 내근이 자리 잡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쉬지 않으셨군요.”

“혼자 아무리 해도 되질 않아 주군께 도움을 받았습니다.”

창을 멈췄다.

“아버지와 이걸 하셨다고요?”

시그탑은 아쉬운 표정으로 검을 거두며 대답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수련은 아닌 듯하여. 무슨 문제가 됩니까?”

“아니요, 그럴 것은 없지만.”

아버지에게 굳이 능력을 숨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알릴 필요도, 또 그럴 수도 없다.

‘으음!’

그러고 보면 아버지라 제대로 보질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단지 뛰어난 무인이라는 것만 인지했을 뿐.

‘이제 슬슬 그분도 신경 써 드릴 때가 됐지.’

시그탑과 훈련으로 증명이 됐다. 내 훈련 방법은 이곳에서 무척이나 유용하다는 것은.

‘아! 그러고 보니.’

난 시그탑에게 물었다.

“경! 왼손도 쓰십니까?”

“네. 가끔 따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영지 최고 기사다운 답변이다. 그래도 정확히 지적은 해야겠다.

“가끔! 따로 연습 수준이 아니라 오른손과 똑같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좌우가 균형이 잡혀야 더 높은 경지로 나갈 수 있습니다.”

“…….”

“아닌 것 같습니까?”

“아니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어찌 그런 걸 아시는지 궁금해서요.”

곤란한 질문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답을 배웠다. 그리고 그 답을 말했다.

“하늘이 내린 재능. 그냥 압니다. 지금 경과 이리 수련을 할 정도로 말입니다.”

당황해 입을 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만족스러웠다.

* * *

“흐음. 흠흠.”

여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어른 주먹만 한 원형의 돌덩어리를 쓰다듬었다.

“이거면 내가 얼마나 제게 관심이 있는지 알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이내 의심스러운 눈을 하는 여인.

“설마 가치를 몰라보지는 않겠지?”

하지만 여인은 다시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에듀의 식견이면 이게 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거야.”

그녀는 자신의 뺨에 붙어 간지럽히는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러고는 옆에서 시립해 있는 열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소녀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

“네. 스승님.”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소녀의 금발이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어떤 분인데 이런 예물을 보내는 건가요?”

“왜? 아까워?”

소녀는 바로 ‘네.’라고 대답할 뻔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언제나 먼저 생각하고 입을 열라는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녀는 일단 생각했다.

지금 스승이 만지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가.

바로 마나석이다.

그것도 최상급을 넘어선 특급에 가까운 마나석이다.

마나석이란 마정석을 가공하여 순수한 마나를 모은 돌.

모르긴 몰라도 수만 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아니,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그런 보물급에 가깝다.

게다가 스승은 누구에게 예물을 받는 사람이지,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과 몇몇 이에게는 한없이 이타적이고 관대하지만, 타인에게 이기적이었고 냉혹했다.

소녀는 충분히 생각한 후 대답했다.

“아깝습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런 예물을 보낼 정도면 대단한 분일 것이고, 그래서 어떤 분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대단하지, 그 사람은. 사실 이건 그 사람에게 보내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아들에게 보내는 거지.”

“…….”

“네가 가지고 갈 것이니 그리 알려무나.”

“제가요?”

소녀의 물음에 여인은 대답 대신 그런 그녀를 훑어보며 뜬금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쉽단 말이지. 그 아이가 네 또래만 됐어도 그냥 낚아 올 수 있었을 텐데.”

소녀는 스승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그래도 꼬맹이지만 사내이니 낚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있지. 게다가 마나의 맛까지 알게 되면…… 빠앙! 확실한 거지.”

하지만 그런 제자의 의문은 무시한 채 제 할 말만 하는 여인.

그녀는 대륙에서 딱 여섯 명만 가능하다는 여덟 개의 룬을 동시에 다루는 대마법사, 헤르메스 주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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