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5)
‘이게 시험인가?’
딱 한 뼘의 폭. 다리라고 부르기에도 뭐가 조잡해 보이는 수많은 나무다리들.
다만 그게 얽히고설켜 제법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균형감? 담력?’
시험 내용은 아마도 저 다리 위를 이동하라는 것일 테고,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일 터.
‘딱히 어려울 건 없는데.’
저런 건 평범한 아이들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중간 어떤 다리들은 폭이 좁아지고 또는 끊겨서 건너뛰어야 하는 부분도 있으나.
‘적당한 긴장감을 주니 오히려 이득이지.’
선천적으로 균형감이 없는 아이들은 있겠으나, 그걸 감안해도 저 시험은 너무 쉽다.
“저기로 움직이라는 건가.”
아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때 레빙스턴이 말했다.
“이번 시험은 간단하다. 보이는 다리 위로 올라가 움직인다. 위에서 많이 이동하면 점수가 올라가고, 떨어지면 감점이다. 모두 이동하라.”
역시나다.
‘그런데 통과 조건은? 점수를 총합해서 순위대로 자르는 건가?’
의문이 들었으나 레빙스턴의 입에서 더 이상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우르르 다리로 몰려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몰려들었으나, 출발점이 되는 지점이 여러 개라 아이들은 빠르게 시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래. 한 번쯤은 이런 시험이 있어야지. 얼마나 편하고 확실해?”
“편해?”
“집중력만 유지하면 어렵지 않은 시험이잖아.”
“그럼 말 붙이지 말고 집중해. 괜히 떨어지지 말고.”
움직이면서도 계속 의문이었다.
‘갑자기 이런 시험을 치를 리가 없는데…….’
심계라 표현하고 협잡이라 느낄 정도의 시험들.
‘뭐, 아쉬운 쪽이 뭔가 하겠지.’
굳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무슨 점수를 어떻게 매기는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조건이 많이 움직이라는 거라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시험이다. 이미 이 구조에 대해 머릿속에 박혀 들었고, 내 보폭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적당히. 적당히.’
많이 버렸다 했는데 불쑥불쑥 승부욕이 발동된다.
‘말년에 분명 다 부질 없다 생각한 것 같은데.’
로라스로서는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나쁠 건 없지. 그래도 기본적인 건…….’
절로 미소가 나왔다.
천성인가 보다. 약한 게 싫은 건. 마음마저도 이래저래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계속 움직였다.
“아!”
그때 아이 중 하나가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다리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런 시험이 원래 스스로 무너지는 법이지.’
설마 떨어지겠어? 이 아래가 절벽이면 이렇게 편하게 갈 수 있었을까? 등등.
쉬운 시험이라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을 터.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시험은 집중력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계속 움직이다 보면 가끔 자신의 감각에 의문을 가진다.
‘그럼에도 쉬운 거지.’
애들은 애들이고 나야 애들처럼 그럴 수가 있나.
한참을 움직였다.
‘뭐지, 아까부터?’
이 꺼림칙한 기분만 아니면 아무 상관이 없을 텐데 말이다.
“왜 안 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아란이 물었다.
“못 느끼겠냐?”
“뭐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녀석.
‘이런 건가?’
이 시험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다.
‘어쩐지 통과 조건을 이야기 안 하더만, 집중력을 유도하고 이런 식으로 시험한다는 거지?’
아마도 아이들의 감각을 시험해 보는 것 같았다.
무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좋은 방법 같지는 않았다.
개천지보의 수련이 낮아 기감이 활성화되지 않았다지만 나마저도 긴가민가한 기운인데, 아이들이 눈치챌 리 없다.
‘특히 살기가 아닌 그 묘한 느낌은 더더욱 그렇지.’
그 묘한 느낌은 분명 무인의 포스가 아니었다.
‘혹시 마나라는 건가?’
별생각 없이 왔는데, 제법 내게도 도움이 되는 시험이다.
‘마나라……. 그게 뭔지는 알아야겠지.’
영지로 돌아가서 뭘 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영지에는 마법사가 없다는 것뿐.
여하간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기운이 강해졌다.
‘꽤 여러 가지 기운을 보내네.’
느껴지는 기운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포스. 또 하나는 마나로 추측되는 꺼림칙한 기운. 그리고 마지막은.
‘저급하군.’
끈적끈적한 살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눈치챈 건 아직 나뿐인 듯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아란이 날 불렀다.
“로라스!”
“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아?”
아란도 이제야 기운을 느끼는 듯했다.
녀석에게 말해 줬다.
“그럴 때마다 그런 기운을 팍팍 풍겨 줘.”
“응?”
“이상한 기분이 들 때마다,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라고.”
“무슨 소리야, 그게?”
“애들한테도 그냥 그렇게 말해.”
“응.”
궁금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수긍하는 아란.
‘그런데 이거 언제까지 할 건가.’
무시하려면 무시하겠지만 기분 나쁜 게 사실이다.
누가 기운을 쏘아 내고 있는지 모르나, 그들은 내가 충분이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얼굴에 드러났나?
어느 순간 기운이 싹 사라진다. 그리고…….
‘이것 봐라?’
머리끝이 쭈뼛해지고, 전신의 솜털이 일어난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런 게 뭔지는 안다.
‘이건 아니지!’
그래서 화가 났고, 몸을 날려 다리에서 내려왔다.
“로라스?”
아이들이 뒤에서 날 부르기 시작하고.
“로라스! 뭐 하는 건가!”
곳곳에 서 있던 교관들 역시 나를 부른다.
상관없다.
‘아무리 시험이라고 해도 선이란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후우웁!
크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개천지보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 * *
헤르메스 주란지.
여덟 개의 룬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마법사인 그녀는 매우 따분했다.
‘주군의 핏줄은 포스지, 마나가 아닌데.’
주군의 가문인 베스타인가의 시험.
그녀가 맡은 건 마나를 단계별로 뿌려 시험자의 마나 감응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보통 시험의 최상위 합격자들은 그녀의 마탑에 소속되어 마법사에게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매번 시험에서 두 명 이상의 합격자를 데리고 온 적이 없다.
그건 그녀의 기준이 높은 이유도 있으나, 베스타인 가문은 대부분 포스를 타고나지, 마나를 타고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건 그녀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
시험이 가문의 중요한 행사이고 시험에 참여하는 건 자신의 책무이기 때문에 나서긴 하지만, 그녀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 매우 따분하기도 했다.
‘하려면 실내 시험 좀 하라니까. 흙먼지가 얼마나 피부에 안 좋은데.’
헤르메스가 투덜거리며 가볍게 손짓하자 그녀의 주변에 안개비처럼 물의 기운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막을 형성하는 듯 헤르메스를 감쌌다.
‘응?’
우연이었을 것이다. 한 소년이 이쪽을 쳐다본 것은 말이다.
‘설마?’
아직 시험을 위한 마나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방금 쓴 샤워 마법은 마나 소모도 적은 마법.
‘아니겠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뿐일 거야.’
여기에서 저기까지 거리가 얼마인가?
헤르메스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이란 의혹이 들면 확인을 해 보고 싶은 법.
그녀는 다시 한 번 손짓을 했다.
정확하게 자신을 바라봤던 소년을 향해서 말이다.
‘방금 움찔한 거 맞지?’
이쪽을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다리 위를 걷고 있는 움직임에 살짝 경련이 있었다.
‘에이, 아니야.’
확인은 두 번이 되었고, 이내 세 번, 네 번이 되었다.
‘진짜다!’
헤르메스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훔치며 두 눈을 빛냈다.
다른 아이들도 시험해야 했기에, 시간 차를 두고 확인했으나 그때마다 소년은 반응하고 있었다.
‘저건 진짜야!’
시험에선 총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마나의 농도를 단계적으로 올렸으나 소년은 1단계, 아니 0단계에서부터 반응하고 있었다.
3단계에서 새로운 아이가 반응을 보였다.
예전에는 5단계에서야 반응을 보이는 것이 평균. 3단계면 무척이나 뛰어난 감응력을 지녔으나, 이미 그녀의 관심은 한 소년에게만 쏠려 있었다.
‘내 거다. 내 거야. 쟤는 내 거야!’
헤르메스는 그렇게 다짐하며 즐거운,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시험에 응했다.
‘그런데 설마 포스에도 이리 반응한 건 아니지?’
지금 여기는 자신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무식한 놈과 음흉한 놈. 그 두 놈도 여기에 있다.
권신 에르페유와 공작의 그림자 쉐도우.
포스와 살기로 아이들의 반응을 시험하는 그 두 사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만의 하나라도.
‘그 두 놈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말도 잘 안 섞는 두 사람과 경쟁은 끔찍하다.
‘아주 조금만…….’
그래서였다. 마나를 단순하게 테스트하지 않고,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말이다.
‘보험 같은 거지, 보험.’
헤르메스는 보험이라 했지만, 실제로 그녀가 사용한 마법은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될 마법.
그녀가 주문을 영창하는 순간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정신 조종에 관련된 마법이 발동되었다.
주입한 명령은 ‘마법이 배우고 싶다’.
마인드 컨트롤은 피대상자의 선천적인 정신력과 후천적인 항마력에 따라 그 발동 확률과 정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
여덟 개의 룬어를 동시에 발동시키는 대마법사다. 반면에 상대는 아직 어린 소년.
‘이제 넌 내 거지.’
헤르메스는 그리 자신했다. 분명 그랬는데 말이다.
‘뭐야?’
소년이 엉뚱한 행동을 했다. 잠시 멈칫하더니 다리에서 내려와 버린 것이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
헤르메스가 혹시라도 자신이 실수했나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
헤르메스는 허공에 크게 손짓을 하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뭐지, 이건?’
순간 머리가 오그라드는 느낌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한 쌍의 눈.
‘눈치챘어?’
불가능한 일이다. 최소한 그녀의 상식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기운은 뭐지?
‘내게 경고하는 거야?’
순간 공황 상태에 빠진 헤르메스.
하지만 그것도 찰나.
대마법사 헤르메스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법사였어? 그런 거야?’
몇 가지 의문이 있으나,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저 나이에?’
저 소년의 나이는 모르나 최소 열다섯이 되지 않음을 안다.
마나 감응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아이이니, 자신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느낀 그 기운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대마법사인 만큼 그녀의 항마력은 이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드래곤 하트라도 먹지 않았다면…… 아니지.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지.’
의혹이 들었으나 그녀의 입가의 미소는 더더욱 짙어졌다.
생각할수록 탐이 나는 아이였다.
‘넌 반드시 내가 가진다.’
헤르메스는 누가 알면 오해할 만한 생각을 마구 하며, 다시 한 번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두 눈에 탐욕의 감정이 강렬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