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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4화 (14/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4)

‘순수한 재능의 확인이라…….’

어쩌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인하는 시험일지도 몰랐다.

위기가 닥칠수록 보이는 반응은 다 다를 것이고, 지켜보는 이들은 바로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하고는 상관없겠지만.’

상관은 없지만 재미는 있었다.

이걸 만든 이가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 의도로 만들었다면. 그리고 시험의 주제가 그거라면.

‘제법 똑똑한 놈 아닌가. 재능을 어찌 파악하는지 알고 있어.’

그래서 달렸다.

도착지는 이 미로의 출구다.

아! 물론 출구는 없을 것이다. 이 시험은 미로를 탈출하는 시험이 아니니까.

주변의 시야를 확장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유역후의 젊은 시절. 그는 정말 많은 전장을 겪었다.

전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

맞다. 난 지금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하게 전쟁을 치렀던 그 시절에는 인지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졌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신경이라는 걸 써야 한다.

이제 내가 할 일이라곤 달리는 것뿐이었다.

* * *

날이 금세 어두워지면서 시야가 좁아졌다.

그나마 큰 보름달이 약간의 시야를 확보해 줄 수 있었을 뿐.

화아아악!

곳곳에서 소리가 남과 동시에 작은 빛의 구슬이 사방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웅!

그리고 긴 나팔 소리가 들리며 교관들이 숲 안으로 투입되었다.

아이들은 사방에 퍼져 있었다.

원래 5그룹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그룹 내에서 의견이 분열되어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숲 밖으로 나가기 위해 헤맸기 때문이다.

그 탓에 교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고가 났다.

숲으로 들어간 1차 합격자들의 숫자는 103명.

하지만 모인 아이들은 101명.

“누구냐? 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

한 명은 얼마 안 가 연병장에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됐다. 하지만 한 명은 끝까지 찾지 못했다.

교관들은 한 명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아이들 사이를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한 명의 아이가 누군지 알아냈다.

그 아이는 로라스.

“레빙스턴 님은 어디 계시지?”

교관들은 그다음으로 책임자인 레빙스턴을 찾았다. 한데 그 역시 보이지 않았다.

“다시 확인해!”

책임자가 없다는 사실에 교관들은 더더욱 애가 타기 시작했다.

교관들이 그렇게 레빙스턴을 찾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숲 안을 탐색 중이었다.

‘로라스…….’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그는 이미 숲 안에 있었다.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레빙스턴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곳곳에 뿌려진 마법 수정구와 망루에 있던 교관들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로라스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미로에 뿌려 둔 수정구나 망루의 시야 범위는 한계가 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시험이다. 그래서 수정구나 망루도 거기에 맞춰 설치했을 뿐이다.

‘아니, 그 전에 성인, 그것도 잘 훈련된 기사들도 그 시야를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시야 범위를 벗어났다면 그를 찾는 건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숲의 외곽으로 갔다면…….’

그때는 정말 큰 문제가 생긴다.

이 숲은 성 밖까지 이어졌고, 그 이후로는 란데스 산맥이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베스타인 가문의 시험이 힘들다 하더라도 단 한 번도 인명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시험을 총괄하고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는 에듀의 아들이 아닌가.

“로라스!”

레빙스턴은 포스를 담아 계속 소리치며 외곽 숲으로 벗어나는 경계를 탐색했다.

“역시 출구 따위는 없군요.”

레빙스턴은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로라스가 나무둥치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이다.

“너…….”

“되돌아가려 했는데 한참 걸릴 것 같아서. 교관 님께서는 지름길을 알고 계실 테니, 기다리는 게 더 빠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레빙스턴은 할 말을 잃었다.

뭔가, 저 눈빛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저 눈빛은 말이다.

“아닙니까?”

로라스의 물음에 레빙스턴은 대답했다.

“너는 질문을 할 권한이 없다. 단지 시험에 참여하면 그뿐.”

“궁색한 변명이라 생각되지만. 어차피 선택권이 없으니까. 가지요.”

레빙스턴은 입을 꾹 다물었고, 로라스는 웃었다.

* * *

“로라스!”

돌아가니 우리 그룹의 아이들이 반겼다. 하나같이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베르체는 아예 울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이 빨리 드니까.’

그래도 나를 이리 걱정해 준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너도 걱정하고 있었던 거냐?’

다가오지도 못하고,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포플러를 보며 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숙소로 돌아간다.”

그사이 레빙스턴과 뭐라 상의하던 교관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소리쳤다.

“오늘 시험 결과는 어찌 된 겁니까?”

아이 중 하나의 물음에 교관이 외쳤다.

“그건 내일 발표하겠다.”

많은 아이들이 궁금해했고, 나도 궁금했다.

내일 그들은 뭐라 발표할 것인가?

* * *

“통과한 사람이 있다고?”

교관들의 보고에 레빙스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네. 돌아와 보니 이미 아이가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레빙스턴의 물음에 교관은 할 말을 잃었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나오는 건 당연한 법인데, 어떻게 나왔냐고 하니 대답하기 곤란해한 것이다.

“봤을 거 아닌가? 어떻게 나왔는지?”

“그게…….”

교관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통과한 아이가 어찌 숲에서 돌아왔는지 아는 교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험이 끝날 때쯤 모든 교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숲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참…….’

합격자가 나오지 말아야 할 시험에 합격한 아이가 나오고, 또 다른 아이는 합격할 수 없는 시험이라는 걸 알았다.

“합격자 이름이 뭐지?”

“린델이라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란데일 백작님의 막내아들입니다.”

“알려지면 말이 좀 나오겠군. 아란데일 백작이 미리 알려 줬다고 할 테니.”

“어떡하지요?”

잠시 고민하던 레빙스턴이 말했다.

“린델을 불러와라.”

잠시 후 교관이 체구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왔다.

“린델입니다.”

“그래, 미로를 나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언제 나왔는가? 교관들 중에 너를 본 자가 없다. 통과하지 못한 걸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이의 있나?”

“조건에 오류가 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라는 조건이 미로 안에서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밖을 가리키는 건지 말입니다.”

“…….”

“분명 미로를 나올 때는 해가 지긴 했지만, 밖에 나왔을 때는 해가 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나온 곳도 출구라고 할 수 없었고 말입니다.”

틀린 말이 없다.

미로 안은 나무들 때문에 빛이 빨리 차단되니까.

그 바람에 레빙스턴은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부친인 아란데일 경이 만든 시험이고 조건이다. 아란데일 경하고 상의해야 할까?”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미로 안쪽에서 해가 질 때까지가 맞을 테니까요. 불합격 처리하셔도 됩니다.”

레빙스턴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이 미로는 원래부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거기서 빠져나온 녀석이 모를 리가 없겠지. 통과자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아니까, 쉽게 불합격을 입에 올리는 것일 테고.’

레빙스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돌아가라.”

“네, 알겠습니다.”

레빙스턴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번 시험은 정말 머리가 아팠다.

* * *

다음 날 아침.

침상에서 일어난 아이들 중 제대로 잠을 잔 아이는 많지 않아 보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긴장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오늘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그제 1차 탈락자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표정이 자신의 표정이 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인지, 아침부터 짜증 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걱정들 하지 마. 최소한 오늘은 아닐 테니까.”

방 안의 애들을 안심시켰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집합!”

교관의 외침에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터에 모였다. 기다리고 있던 레빙스턴이 결과를 발표했다.

“어제 시험에서 통과자는 없다.”

예상대로였다.

미로를 통과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묘한 안도감을 보였다.

전원 탈락인 이상 이대로 모두 돌려보내지는 않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맞아. 시험이 너무 어려웠어.”

“예상하고 있었잖아. 누가 저런 시험을 통과하겠어?”

아이들의 수군거림에 교관 중 하나가 주의를 주었다.

“너무 좋아들 하지 마라. 미로를 빠져나온 사람은 있었으니까.”

다른 교관도 거들었다.

“너희는 운이 좋았다. 한 명이라도 통과했다면 너희는 모두 탈락했고, 집으로 갔어야 했을 것이다.”

이건 확실히 나로서도 의외다. 분명 출구가 없음을 확인했는데 말이다.

‘교관들이 들어왔던 길을 이용한 것인가?’

그렇다면 무지하게 머리가 좋은 놈일 테고, 그래서 궁금했다. 누군지.

“쟤래. 혼자 그 미로에서 나온 애가.”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아란이 그 주인공을 알려 줬다.

“린델이라고 하는 애인데, 아버지가 아란데일 경이래.”

“아란데일 경이 누군데?”

“로라스, 아란데일 경을 몰라?”

“누군데? 그게?”

“베스타인가의 두뇌라고 불리는…… 아니, 어떻게 아란데일 경을 몰라?”

“그런 쪽에 관심이 없다.”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아란이 또 뭔가를 이야기하려 할 때 레빙스턴이 다시 소리쳤다.

“시험의 결과는 모두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안도하지 말고 어제의 시험을 곰곰이 생각하고 또 고민해라.”

‘이건 또 뭔 소리지?’

여태 단 한 번도 의미 없는 소리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어제의 시험을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라는 건…….

‘하긴 좀 이상하긴 했어. 아무 이유 없이 거기다 집어넣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아무래도 머릿속에 있던 그림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려 봐야 할 것 같았다.

레빙스턴은 계속 말했다.

“오늘의 시험은 아주 간단하다.”

그의 시선이 어디론가 향했고, 자연스레 아이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저건 뭐지?”

눈앞에 보이는 것들.

그건 수많은 징검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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