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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3화 (1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3)

두 번째 날.

교관들은 새벽부터 아이들을 깨웠다.

나가 보니 동도 트지 않은 새벽.

‘오늘은 시간이 필요한 시험인가 보군.’

그렇지 않다면 이 새벽부터 깨울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레빙스턴이 나오고 간단한 인원 점검을 시작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바로 어제 이백여 명의 아이들이 돌아갔으니까.

잠시 후 레빙스턴을 필두로 이동을 시작했다.

레빙스턴이 아이들을 안내한 곳은 연병장 근처에 있는 숲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나무가 무식하게 크네.’

중원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계속 숲 속으로 들어갔고, 헷갈릴 정도로 복잡한 길이 이어졌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숲이긴 하나 여태 봐 왔던 것들과는 다른 숲이 보였다.

‘숲 안의 숲이라…….’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 숲은 인위적이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해야 할까?

‘고생을 꽤나 많이 했겠는데?’

만만한 공사는 아니었을 터다.

거대한 면적도 그랬고, 앞에 뻗어 있는 여러 갈래의 길만 봐도 그렇다.

길 테두리에 돌 따위로 장식한 것이 마치 이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분위기마저 풍기지 않는가?

레빙스턴이 말했다.

“오늘 여기서 너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입구 하나를 선택해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출구로 나와 연병장에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

“시간은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오는 사람은 합격이고, 못 오는 사람은 불합격이다.”

“레빙스턴 님, 출구는 몇 개나 있습니까?”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며 묻자, 그는 던지듯이 대답했다.

“몇 개이든 너희에게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순간 정적이 흐르며 아이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이미 첫 시험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건가.’

이번에도 간단한 시험이다. 들어가서 어딘가에 있을 출구로만 나오면 된다. 그리고 출구가 몇 개인지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이들이 눈치를 볼 뿐 아무도 움직이지를 않자, 나는 아란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이미 규칙은 충분히 이해했는데.”

“우리가 먼저?”

“이번에는 시간 끌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레빙스턴의 말에서 단서라고 할 건 없었다. 걸리는 건 하나뿐이다.

‘어딘가에 있는 출구가 아닌, 어딘가에 있을 출구라고 했다. 이건 뭐, 말장난으로 시험 보는 것도 아니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는 짓이 협잡꾼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하간 입구 중 하나를 선택해 앞장서니 한방을 쓰는 애들이 우르르 쫓아왔다.

입구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길목의 폭은 매우 넓었다.

“들어가지 않으면 모두 실격 처리하겠다.”

“빨리 안 들어가고 뭐하는 것이냐?”

“시간 끌면 너희만 손해야!”

뒤에서 교관들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아이들이 계속 눈치 보면서 들어가지 않는 탓이리라.

“로라스, 어떡하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붉은빛 머리카락. 거기에 커다란 눈이 잘 어울리는 여자아이.

‘베르체라고 했었나?’

“이번에도 통과할 수 있을까?”

“더 들어가 봐야지.”

사실 가볍게 나올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험은 너무 쉬워진다.

이게 첫 시험이라면 모를까, 이미 규칙을 지키는 선에서 뭘 해도 된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럼 우리가 직접 출구를 뚫어도 되는 게 아닐까?”

아란의 말에 애들도 곧바로 동의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당장 시험해 봐도 문제는 아니나, 벽처럼 둘러진 숲은 맨손으로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몸통 굵은 나무들이 쇠창살처럼 늘어서 있고, 이름 모를 가시나무들이 몸통을 둘러싸고 있다.

마치 그 방법은 아니란 듯이 말이다.

“무리인가…….”

말을 꺼낸 아란도 아닌 듯한 생각이 들었는지, 말끝을 흐렸다.

“들어가 보면 되지. 시간은 충분하니 그때 가서 뚫거나 뭘 해 보면 되겠지.”

사실이다. 그때면 튼튼한 나무든, 가시덤불이든 뚫어 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로라스, 포플러 패거리도 이쪽 입구로 들어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이십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오고 있었다.

싸가지. 그러니까 포플러는 첫 시험에서 꽤나 많은 아이들을 도와줬고, 그 덕에 따르는 애들이 예전보다 늘어났다.

내가 신경 쓸 건 없지만, 녀석들은 우리를 신경 쓰고 있었다.

“모두 모여 봐! 내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포플러가 소리친 ‘모두’에 우리 팀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너희들! 날 잘 따르기만 하면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마. 무사히 말이지.”

“통과할 방법은 있는 거야?”

우리 그룹 중 한 아이가 소리쳐 묻자, 싸가지는 우쭐하며 말했다.

“물론이지. 이 숲을 통과할 방법이 있지.”

“뭔데?”

“원래 그냥 아무 대가 없이 알려 줘서는 안 되지만 공식적으로 날 대장으로 모시면 알려 주지.”

“하핫!”

난 참지 못하고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애는 애구나! 대장이라니.’

녀석에 대해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싸가지는 없으나 제일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첫 시험에서도 도와준 대가로 자기를 형님이라 부르라고 했었지?’

내가 웃어서 그런가? 녀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또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했을 터.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냥 날 대장으로만 모시면 돼. 그럼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 줄게.”

애들이 슬쩍 내 눈치를 보자,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돌려 녀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녀석도 정확히 날 보며 이야기했다.

“어떠냐? 대장으로만 인정하면 너도 데려갈 것이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귀여워해 줘야 할 것 같다.

‘어째 하는 짓이 저리 귀엽냐? 정말 둘째를 보는 것 같잖아.’

둘째도 딱 저랬다.

원하는 건 무조건 손에 넣어야 했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무식하고 단순하나 마음은 여려 사람을 크게 상하게 하는 짓은 못 했다.

‘제 딴에는 신경 써 준 것일 텐데 말이지.’

꼬맹이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그렇다고 녀석에게 뭘 어찌할 생각도 없다.

‘그래, 대장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얼굴에서 웃음을 지워 주고는 물었다.

“그래, 대장. 무슨 방법인데?”

녀석이 환하게 웃는다.

“믿어! 그러면 돼!”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 저런 것도 승부욕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간 이제는 지켜볼 뿐이다. 녀석이 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말이다.

포플러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미로를 나가는 어렵지 않아. 내가 앞장설 테니 너희는 내 뒤를 따라만 오면 돼.”

모든 아이들이 따라갔고 아란이 옆에서 속삭이듯 물었다.

“괜찮을까?”

“뭐가?”

“저 녀석 잘난 건 알지만 이러다가 잘못되면…….”

“보면 알겠지.”

생각지 않았을 때는 싸가지 없는 걸로만 보였지만, 둘째 생각을 하니 둘째로만 보인다.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녀석을 따라갈 수 있었다.

‘보고 싶네.’

유역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꿈에서는 계속 볼 수 있으니 다행인가.’

예전처럼 매일 꿈을 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꿀 때마다 녀석들은 꼭 나온다.

생생하게. 마치 이게 현실이고, 지금이 꿈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줄 잘 서서 따라와!”

포플러는 한쪽 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미리 이야기해 줄게. 어떤 미로든 왼쪽 벽을 쭉 타고 가면 결국에는 출구로 나가거든. 혹시라도 낙오하는 녀석이 있다면 잊지 말도록 해.”

의기양양한 녀석을 보며 웃기기도 하지만, 낙오자를 걱정해 줄 정도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했다.

‘녀석의 말이 옳은 방법이기는 한데…….’

미로에 특별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한, 저 방식으로 가면 출구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숲이 너무 커 보인단 말이지. 그런 정석적인 방법을 따르면…… 해가 지기 전까지 탈출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문제는 또 있다.

‘그리고 만의 하나 안쪽에서 복층 구조로 미로가 형성되면 말짱 꽝이 된다.’

단순하게 녀석이 말한 방법으로 탈출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리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점들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한창 의기양양해하는 포플러가 더 즐길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래도 정오까지는 네가 대장 해라.’

* * *

예상대로 이 시험은 간단한 미로 탈출 시험이 아닌 듯했다.

길은 정말 끊임없이 나왔고, 지나쳐 온 갈림길만 수십여 개였다.

또 생각해 봐야 할 건 중간중간 공터에 음식과 물이 있고, 몇 가지 도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애들이니 음식과 물은 제공해야겠지. 다 가문의 핏줄이니 탈진이나 건강상의 문제라도 생기면 큰일일 테니.’

남은 건 도구다.

도끼, 칼, 심지어는 톱까지.

이건 마치 출구를 만들어서 나가라고 권유하는 듯했다.

당연히 아이들 사이에서 도구를 이용해 빠져나가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저걸 잘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포플러는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는 것을 원했다.

포플러의 의견이 타당하긴 했다.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봐야 하나?’

대놓고 출구를 만들라고 도구를 주었다. 그러려면 우선 이 공간의 가장 외곽이 어디인지 알아야 했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고민을 했지만.

‘이건 애들 시험이 아닌데…….’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하지만 긴가민가한 건 이건 아이들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

‘성인도 통과하기 힘든 시험이다.’

의문이 들었으니 확인이 필요할 터.

무엇보다 이 시험은.

‘재미있네.’

내 흥미를 끌었다.

* * *

숲 속에 설치된 마법구. 또 시야에 보이지 않는 전망대.

교관들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아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헤매는군요.”

제2집사 페컴의 중얼거림에 레빙스턴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원래 최종 시험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첫 번째 시험 후에 배치했으니 당연하다 봅니다.”

“이런 걸 보면 아란데일 경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별거 아닌 시험 아닙니까?”

“심리를 꿰뚫어 보는 거지요. 그래도…… 눈앞에 해결책이 있는데 시도조차 해 보지 않는 건 실망스럽군요. 보통 한 그룹은 도구를 보자마자 바로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아직 그런 그룹이 없군요.”

“첫 시험에 그리 변칙을 보여 줬으니 아이들이 더 함정에 빠질 만하지요.”

페컴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누구입니까? 볼트를 한 번에 던졌다는 아이 말입니다.”

“첫 번째 그룹에 있는 아이입니다.”

레빙스턴이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페컴은 얼굴을 당겨 확인하고는 말했다.

“으음. 왠지 낯이 익군요.”

“그럴 겁니다. 로라스. 그 에듀의 아들이니까요.”

페컴은 순간 흠칫했다.

에듀 진 베스타인. 최연소 실버 스워드의 우승자였고.

‘베스타인 가문 시험의 최종 합격자 중 하나였지.’

하지만 에듀는 앞에 놓인 대로를 버리고 험난한 잔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지금쯤 공작의 옆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터인데.’

페컴은 뚫어지게 로라스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에게 아이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저도 명단을 보고 알았습니다. 근방에 친한 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레빙스턴은 그리 대답하다 페컴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시험을 두 번이나 치르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아란데일 경 말로는 그래도 최종 합격자가 한 명은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많이 나와도 문제지만 아예 안 나와도 문제이니까요.”

“하긴 난이도 조절도 그의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 시험……. 기회를 두 번 준다고 합격할 사람이 있을까요?”

페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지요. 아란데일 경이 이번 결과를 보고 아이들에게라도 팁이라도 줄지 말입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을 때였다.

“어?”

페컴이 수정구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를 냈다.

“혼자 움직이고 있습니다.”

레빙스턴도 다시 수정구로 시선을 돌렸다. 한 아이가 달리며 수정구의 시야를 벗어나려 했다.

“뭘 하려는지 확인해!”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레빙스턴이 교관들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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