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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2화 (12/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2)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얼굴이 창백한 것이 건드리면 쓰러질 듯한 아란의 물음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그냥 애들이 하는 거 지켜봐.”

아란에게 한 말이나, 방을 함께 쓰는 네 명의 아이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아아아!”

“아아아아아!”

그사이 함성과 안타까운 소리가 울렸다. 비슷한 소리이나 느껴지는 감정은 전혀 다른 소리들.

열이 나서 통과한 애들은 셋이 안 됐다. 이렇게 되면 첫 시험에서 백 명도 남지 않을 터.

“우아아아아!”

그때 다시 한 번 환호성이 울렸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아까 통과한 아이가 볼트를 던지고 있었다.

“형, 대단해.”

형제가 참가한 모양인데, 형이 동생의 볼트를 대신 던져서 합격한 것이다.

그 모습에 한 아이가 소리쳤다.

“레빙스턴 님! 왜 저 애는 두 번 던집니까?”

항의에도 레빙스턴은 입을 열지 않고 아이들이 볼트를 던지는 것만 바라볼 뿐이었다.

“레빙스턴 님!”

그때 교관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규칙만 지키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 저건…….”

교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년의 말을 막았다.

“규칙이 뭐지?”

“이름이 적힌 볼트 일곱 개를 원형판의 푸른색 부분에 적중시킨다. 하나의 원형판에 한 번만 던질 수 있다.”

소년의 말에 교관이 거 보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그 규칙 중에 다른 사람이 던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나?”

“그건…….”

소년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깨달은 것이다.

규칙만 지키면 된다는 그 말의 뜻을 말이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먼저 움직였다. 그들이 찾은 건 이 시험을 이미 통과한 삼십여 명의 아이들.

“내 것 좀 던져 주지 않을래?”

“부탁한다. 첫 시험에서 떨어질 수는 없잖아!”

그중에서 몇 명은 아주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통과한 아이들 대부분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이 아닌 실력으로 초반 일곱 개의 볼트를 정확하게 파란색에 적중시킨 아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남은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저 녀석은…….”

아란이 그 광경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건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바로 직계라 으스대고, 여기까지 올 때도 대장 노릇을 하려던 그놈이었다.

‘포플러라 했었나? 싸가지 없는 놈이 실력도 괜찮고, 운도 좋네.’

지켜보긴 했다.

봤을 때 적중시킨 여섯 개는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 해도 좋았다.

‘실력이 싸가지에 비례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 아이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도……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 일단 시험은 통과해야 하잖아. 그래도 같이 왔는데 도와주지 않을까?”

아이들은 그리 말하며 모두가 은근슬쩍 나를 봤다. 확실히 순진한 녀석들이었다.

“그리 볼 필요도 없다.”

규칙이란 말을 잘 파악한 그 꼬맹이 녀석 덕분에 좋은 걸 알았다.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다시 한 번 웃어 줬다.

* * *

“너희 안 던질 거냐?”

교관의 말에 남은 아이들이 눈치를 봤다.

남은 사람들은 우리 방, 그리고 끝까지 눈치를 보던 스무 명의 아이들이었다.

‘여든 명 정도 합격했나?’

첫날에 3분지 2 이상을 탈락시키는 시험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나마 잘 던지는 애들이 도와준 덕분에 이 정도 남았으리라.

교관이 경고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남은 이들은 모두 실격 처리한다!”

지켜볼 만큼 지켜봤으니 나서야 할 때.

“잘 봐.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맡기려면 맡겨.”

같은 방을 쓰는 애들에게 그리 말해 주며 나섰다.

‘암기라……. 이런 잡스러운 건 소싯적 이후로 해 보지 않았는데.’

천황성의 유역후는 절대자.

그도 암기술을 배웠다.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잠깐 손을 대 본 수준이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다만 손가락이 작은 건 좀 아쉽다.

‘손만 컸으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뭐 상관없다.

오른손에 세 개, 왼손에 세 개의 볼트를 쥐었다.

“쟤 뭐 하는 거지?”

“설마 저걸 한꺼번에 던지려는 건가?”

눈치 빠른 녀석이 금세 내가 하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게 말이 돼? 제대로 날아가기나 하면 다행이지.”

“맞아. 명중률도 형편없다고. 거기에 왼손도 같이라니. 저건 아무리 봐도 무리인 것 같은데.”

나름 추측들을 하는 게 귀엽다. 그리고 어이가 없었다.

‘무인이 양손을 수련하는 건 당연한 건데, 이런 기본적인 것도 가문에서 알려 주지 않았나?’

무림이란 곳에서도 오른손이 잘려 나락으로 떨어진 무인도 많고, 좌수검이라는 호칭까지 따로 있었다.

그런 걸 안다면 양손을 수련하는 건 당연한 법.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기본적인 공부를 가르쳐 주지는 않은 듯하다.

‘신체 어디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 그게 무인의 기본인데. 으음! 그러고 보니…….’

집으로 돌아가서 할 일이 생겼다.

영지의 사내들이 양손을 다 쓸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워낙 기초적인 거라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여하간 난 푸른색이 훨씬 더 많은 큼직한 원형판 앞에 섰다.

“저거 반칙 아니야?”

“규칙에는 어긋나지 않아. 한 번에 던지는 건 맞잖아.”

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와 상관없이 그대로 볼트를 던졌다.

당연히 여섯 개의 볼트는 푸른색에 꽂혔고, 다른 원형판에도 나머지 네 개의 볼트를 적중시켰다.

열 개를 모조리 명중시킨 후 애들에게 말했다.

“가져와.”

더 할 말이 있을까?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 볼트를 내밀었다.

생각 없이 그대로 던졌고, 모조리 푸른색에 명중시켰다.

“우아! 모두 명중이야!”

“고마워, 로라스.”

감탄을 내지르고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봐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 치기를 기쁘게 즐기고 있을 때, 나머지 애들이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내 것도 던져 주면 안 될까?”

“해 주면 내가 돈 줄게.”

조건을 거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됐고, 그냥 가져와.”

내가 한 명을 대신 던져 주든, 모두 던져 주든 시험에는 문제가 될 게 없다. 어차피 운을 시험하는 것 아니었나.

“너희는 오늘 운수 대통했다.”

그리고 오늘 이 꼬맹이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것도 많이 말이다.

* * *

“으으음! 음음!”

사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즐기고 있었다.

일과가 모두 끝나고 즐기는 이 티타임은 그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였다.

사내의 이름은 페컴.

파라일 베스타인 공작가의 큰살림을 맡고 있는 세 명의 집사들 중 하나였다.

페컴은 근래 매우 바빴다.

가문의 제일 큰 행사 중 하나인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온전히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끝이지.’

베스타인가에 들어온 지도 삼십여 년.

열 번 이상의 시험을 봐 왔고, 그중 세 번은 지금처럼 자신이 모두 총괄하여 준비했기 때문에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첫 번째 시험이 제일 쉬우면서도 두 번째로 높은 탈락 비율을 가진 시험이라는 것을.

‘얼마나 남을까?’

그나마 올해 입성한 아이들이 많으니 적으면 쉰, 많아 봤자 여든 명이 한계라고 생각했다.

삼백여 명을 돌보는 것과 백 명을 돌보는 것은 천지 차이.

페컴은 이 저녁이 지나면 내일부터는 한결 여유가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네? 몇 명요?”

시험을 주관하는 레빙스턴에게 결과를 전해 들은 페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백세 명이 남았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남았군요.”

“제법 머리를 쓰더군요.”

“그래도 그리 던지는 게 쉬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페컴도 첫 시험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험이 웬만한 기사도 통과하기 힘들다는 사실도 안다.

어차피 그 시험은 운을 확인하기 위한 종류였으니까.

“아란데일 백작이 말했던 그 방법을 쓰더군요.”

“아! 그러면 가능성은 있지요.”

의문을 가지던 페컴은 순식간에 납득하는 얼굴이 되었다.

아란데일 수 요르하.

베스타인 공작의 군사 중 하나이며 이 시험을 설계한 당사자이니 말이다.

레빙스턴이 입을 열었다.

“그런 관계로 페컴 님께서 더 고생을 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

“아이고, 고생은 경께서 더 하시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행에 아무런 문제 없이 최대한 보좌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레빙스턴이 나가고 페컴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어느 집 자식일지 궁금하네.’

페컴은 식은 차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내일부터 시험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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