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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11화 (11/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11)

이동 중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

몇 번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으나, 강한 놈들이 없는 데다 숫자도 적어 기사들이 나설 필요도 없는 규모였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에렌에 도착했고.

“우아아아!”

“얼마나 높은 거야!”

“우리 성보다 네 배는 더 큰 것 같아.”

에렌성의 규모를 보며 다른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제법 크긴 하네.’

하지만 천황성을 누볐던 내겐, 꿈속의 내겐 제법 큰 정도였다.

다만 특이한 건축 방식이 조금 흥미를 끌었을 뿐이다.

성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이리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가 제국의 수도보다 더 번화했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군.’

거리를 지나며 제법 볼 게 많았기에 모처럼 구경이라는 것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내성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서 마차가 멈춰 섰다.

“모두 내리거라.”

프리아 남작의 외침이 들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내려서 보니 공터는 정말 컸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작은 집들이 수십여 채 보였고, 서쪽으로는 커다란 숲이 있었다.

‘무슨 훈련장인가 본데.’

공터는 크기만으로 기병 훈련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집들과 큰 크기의 숲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모두 줄을 서라.”

프리아 남작이 애들 앞에 서서 크게 소리쳤고, 애들은 마차에 탄 사람들끼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숙소를 배정하겠다. 너희는 시험생들일 뿐. 여기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무인이면서 베스타인 가문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언행을 조심해라.”

그러고 보니 공터에 보이는 건 대부분 성인 남성들이고, 모두가 잘 정돈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매우 커서, 침대가 여섯 개가 있어도 전혀 좁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모인 거지?’

대략 봐도 삼백에 가까운 숫자다.

베스타인 가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였다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험이라 해도 너무 많은 수였다.

‘시험을 어찌 치를 생각인 거지?’

그보다 순간 궁금한 게 있었다.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보통 아버지라면 열심히 해서 통과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정상 아닌가?’

이상한 의문이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아이들에게 이 시험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들었다.

현 파라일 린 베스타인 공작의 수족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고 했던가?

그렇기에 아이들은 이 시험에 대해 결의에 가까운 의지를 보였다.

여하간 아이들이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짐을 풀려 했고, 나도 얼마 안 되는 옷가지를 정리하려 할 때였다.

“짐을 풀 필요는 없다.”

그때 숙소를 관리하는 기사의 외침에, 방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년―분명 자기소개는 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먼저 온 아이들은 짐을 다 풀었던데요.”

“너희가 마지막이니까. 그리고 시험은 내일부터 시작되니 내일 풀어도 된다.”

그 말을 끝으로 기사가 휙 나가 버렸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시험하고 짐 푸는 게 무슨 상관인 거지?”

아이들이 저마다 의문과 추측을 던졌다. 유일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건 아란뿐이었다.

‘눈치챈 건가?’

기사의 말을 듣는 순간 알았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대량의 탈락자가 나올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짐을 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해석되지 않는다.

‘가문의 시험이란 게 좀, 아니 많이 매정한걸.’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나는 한 달이 걸려 이곳에 도착했지만, 함께 온 아이들 중에는 더 길게, 두 달 가까이 마차 안에서 보낸 아이도 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건 매우 독한 시험이다.

모인 아이들이 삼백여 명이다.

저마다 한 가지씩은 특출한 재능이 있을 터인데, 그것을 확인하지 않겠다는 건 완벽한 아이들만 뽑겠다는 뜻이다.

‘이 많은 아이들을 하루 만에 대거 탈락시킬 수 있는 시험이라…….’

물론 그 시험이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열심히 하라는 말씀 대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거기에 무슨 시험이든 내게는 그다지 득이 되지 않을 터.

‘시간만 아까울 뿐이지.’

하지만 걱정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란의 굳은 표정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긴 했다.

‘그새 정이라도 든 건가.’

다른 마차, 특히 마을에서 내게 시비를 걸려 했던 직계 아이들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날 따돌리려 하고, 나름 머리를 써서 괴롭히려 했었다.

애들이니까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처했으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마차 안에 있던 아이들은 좀 달랐다. 녀석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흐뭇할 정도로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었다.

‘아버지가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시작하자마자 탈락은 보기 좋은 건 아니니.’

그리고 기왕 그리 생각한 거.

‘돌아갈 때까지는 녀석들을 여기 붙여 놔도 되겠지.’

결정했고 입을 열었다.

“내일 무슨 시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건 매우 간단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보면 알게 될 거야!”

* * *

삼백여 명의 아이들이 공터에 모였다.

“각 동별로 정렬!”

분명 연병장일 것이다.

삼백여 명의 아이들과 이십여 명의 사내들이 도열했음에도 별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모두 주목.”

그리고 마흔쯤 돼 보이는 중년 사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본 교관은 레빙스턴이라고 한다. 베스타인 가문의 시험은 본 교관이 진행한다.”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레빙스턴이라면…….’

들은 적이 있다.

대륙에서 백대기사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명성이 높은 기사다. 그리고 베스타인 성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베스타인가의 4대 기둥 중 하나로 불리는 자다.

이만한 기사가 자신들의 시험을 진행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으음, 흥미로운 기운이네.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강하기도 하고. 그 마스터라고 하는 건가?’

여기서는 초절정급 고수를 마스터라 부른다고 했다.

‘확실히 아버지와 시그탑 경보다 기운이 짙어 보이긴 하군. 좋은 걸 봤어. 저 정도가 이 세계의 백대고수라는 거지?’

물론 이 세계에는 기사 이외에 창, 둔기, 채찍 등을 다루는 수많은 마스터들이 존재한다. 거기에 마법, 신성이라는 기이한 힘들을 가진 사람들도 있기에 절대적 평가는 무리다.

‘게다가 초야에 묻혀 사는 기인이사들도 있겠지만…….’

일단 공식적인 수준이 저 정도인 걸 알았다는 건 괜찮은 소득이다.

“모두 조용!”

레빙스턴의 한마디에 웅성이던 소리가 사라졌다.

그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며 다시 말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먼 길을 온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가문의 시험은 매우 가혹하다. 이 점 미리 인지하고 있기를 바란다. 모두 출발.”

레빙스턴이 움직이고, 교관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아이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무슨 시험일까?”

“몬스터를 때려잡는 시험은 아닐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웅성이는 가운데 몇몇 아이들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모두 다른 아이들보다는 좀 더 나이가 있었다.

‘시험은 가문의 열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른다. 입을 열지 않는 놈들은 여기 있는 녀석들 중 예전에 한 번 왔던 놈들인가?’

이 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치르니 여기 아이들 반수 이상은 시험을 치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입을 열지 않은 건 알려 줘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일 터.

“형은 예전에 한 번 치르지 않았어? 무슨 시험을 치르는 거야?”

그때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속삭이듯 던진 질문이 귀에 들렸다.

“시험은 매번 바뀌어. 그리고 사실 너무 황당한 시험들이 많아서, 아니 대체 우리가 뭘 했는지도 모르는데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나왔어.”

그의 대답이 시원치 않음에, 주변 아이들이 아쉬워하거나 실망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황당한 시험이라. 뭐, 가 보면 알겠지.’

호기심이 조금 들었으나 크게 의미는 없다.

잠시 후 레빙스턴이 멈춘 곳은 커다란 원형판이 있는 장소였다.

“저게 뭐지?”

아이들이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다.

원형판들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떤 판은 빨간색이 크고, 어떤 판은 파란색이 컸다.

그뿐이 아니었다.

두 색을 번갈아 섞어 알록달록한 판도 있었는데, 두 색의 면적이 각기 달랐다.

‘설마…….’

저걸 보니 불현듯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둘째가 이런 걸 좋아했는데.’

무식한 놈이 잡기, 특히 도박을 좋아해서 매일 돈을 퍼 주느라 큰 놈이 화를 내는 일도 있었다.

‘저 원형판은 꼭 야바위놀음에 단골로 등장하는 그거 같은데.’

그리 재미있는 생각을 할 때 레빙스턴이 말했다.

“시험에서 너희가 지켜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규칙! 모든 시험에는 규칙이 있고, 너희는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것만 지키면 문제될 것은 조금도 없다.”

레빙스턴은 주변의 사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준비해라.”

사내들이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를 아이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이거 사실이냐?’

사내에게 받은 건 열 개의 작은 볼트. 여기서는 다트에 던질 때 사용되는 물건이었다.

‘정말 이게 시험이라고?’

그리 생각했을 때 옆에 있던 아란이 말했다.

“그냥 평범한 볼트가 아닌데…….”

그 말에 다시 보니 볼트의 무게중심을 잡는 부위 쪽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때 레빙스턴이 외쳤다.

“이번 시험의 규칙을 알려 주겠다. 이십 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볼트를 던진다. 하나의 원형판에 한 번만 던질 수 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파란색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볼트가 일곱 개 이상 적중되면 통과한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열 개의 원형판.

아까 말한 것처럼 원형판은 붉은색과 파란색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몇몇 교관들이 그 원형판을 회전시키기 시작하니 붉은색과 파란색의 원형판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겁나는 얼굴로 그 원형판을 쳐다볼 뿐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건 운을 시험하여 통과시키겠다는 뜻 같은데?’

파란색의 면적이 큰 원형판도 있으나, 일곱 개 이상은 붉은색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중 세 개는 80% 이상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나머지를 잘 맞히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으나 그건 한계가 있다.

여기 모인 교관이란 자들도 저 세 개의 원형판에서 푸른색을 맞히는 건 쉽지 않다.

저걸 겨냥하여 맞히려면 눈이 좋아야 하고, 자신이 던지는 힘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젠장! 저번에는 제비뽑기를 하더니…….”

그때 몇몇 소년이 화를 냈고, 다른 아이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문의 중요한 시험에 운이라니. 그들의 상식에서 이건 말이 안 되는 시험이었으리라.

‘하지만 운만큼 중요한 능력도 없지. 그걸 운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실전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하수에게 죽은 고수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걸 감당하기 위해 죽도록 수련하는 거지. 운도 한계라는 게 있어, 절대적인 차이를 뒤집지는 못하니까.’

볼트를 들고 무게와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마지막 쪽에 버티고 있는 세 개의 원형판은 지금으로서는 운에 맡겨야 하나, 앞에 일곱 발을 맞히는 건 어렵지 않을 듯싶었다.

‘할 만은 한데…….’

문제는 다른 녀석들이다.

화를 내고 있는 녀석, 멍하니 원형판을 보고 있는 녀석, 몇몇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아마 집에서 엄청 부담을 줬을 터.

‘그래도 시험이 이러면 안 되지. 이건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천황성에서도 어린 인재를 뽑으려 시험을 보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 재능을 파악하고,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능력을 키웠다.

하지만 베스타인 가문은 완벽한 재목을 원하는 듯했다. 아예 운을 시험해서 사람을 고를 정도로 말이다.

‘비효율적이야. 가혹할 정도의 환경이라고도 생각되고. 하지만…….’

이렇게 뽑은 인재는 완성되어 갈수록 무섭게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지배 방법의 차이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지.’

여하간 나는 문제없으나 같은 방에 있는 녀석들은 문제가 있을 터.

“긴장 풀어.”

하지만 난 이 귀여운 애들이 우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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