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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8화 (8/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8)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로라스인가?

아니면 반로환동인가? 아니면 우화등선을 한 줄 알았더니 이상한 세계로 떨어진 천황성주 유역후인가.

근래 가장 고민하고 혼란스러웠던 문제에서 나는 오늘 결정을 내렸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삶…… 유역후라는 사내가 꿈꿔 왔던 그것과도 유사하지 않은가?

에듀 베스타인 남작과 그의 부인 메어리 베스타인.

나는 그의 아들인 로라스 베스타인의 삶을 살 것이다.

고민과 혼란을 버리니 삶의 목적이 정해졌고, 자연스레 강해진다는 목표는 그 목적의 수단이 되었다.

삶의 목적.

정해졌으니 행한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리는 일만 남았다.

* * *

까아아앙! 까아아아앙!

영지의 아침은 닭 울음소리보다 커다란 철음이 먼저 들린다. 대장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작 백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마을에 대장간의 존재는 의외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지의 주 수입이 농사보다는 몬스터를 사냥하여 나오는 마정석이라는 걸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지에서 나오는 일거리, 또 매년 때마다 찾아오는 모험가며 용병들이 마을을 방문하기에 일거리는 충분했다.

망치를 두들기는 모루에 옅은 그림자가 들어서자,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공자님, 이 시간에……. 아니,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고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그림자의 주인은 로라스였기 때문이다.

대장장이는 매일 로라스를 본다. 매일 같은 시간 대장간 앞을 오가는 그를 본 지도 수 년.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그것도 자신을 찾아오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율터, 필요한 게 있는데 제작이 가능할까?”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로라스를 보며 율터는 다시 한 번 놀라 입을 열었다.

“어떤…….”

로라스는 자신의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만한 길이에.”

그리고 양손의 검지와 엄지를 겹치며 말을 이었다.

“이만한 굵기의 철봉 두 개가 필요한데. 가능한가?”

“검이 아니라 철봉입니까?”

“그래.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두 개의 철봉을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율터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봉을 제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개를 결합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선형으로 돌려서 조립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저희 대장간에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건 철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깎아 내야 하는데, 저희는 그만한 도구도 없습니다.”

“도구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뜻인가?”

율터는 다시 고민하다 말했다.

“확신은 없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습니다. 기술을 계속 연마하면 어느 정도 자신은 있고요.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로라스가 짐작하여 물었다.

“그 도구가 비싼 건가?”

“제 대장간을 팔아도 어림없습니다. 그 정도로 정교하게 깎아 내려면, 마정석을 사용하는 마법 도구여야 할 테니까요.”

율터의 말에 로라스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에 익숙하다 할지라도 몸에 적응시켜야 하는데. 기왕이면 제대로 된 걸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억지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

‘일단은 봉으로 연습해야겠다. 돈은…… 나중에 마련할 기회가 있겠지.’

로라스는 그리 생각하며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시세를 잘 몰라서. 이 정도면 될까?”

율터가 주머니를 열어 보고는 잠시 안색이 굳었다. 주머니 안에 든 몇 개의 은화와 동화로는 재료가 되는 철 값만으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무리인가?”

로라스의 물음에 율터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충분치는 않지만 무리는 없을 겁니다. 열흘 정도만 기다려 주십시오.”

“더 기다려도 좋으니 균형만 잘 맞춰 주면 돼.”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 기술은 자신 있습니다.”

“믿고 가지. 그리고 모자란 돈은 나중에라도 주도록 하지.”

로라스의 어른스러운 말투에 율터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나이는 어리나 영주의 아들이고, 다짜고짜 만들어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것보다 백배 낫지 않은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결합 부분은 제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해.”

로라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택 정원 안에 있는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은 작았다.

부친인 에듀 남작이나 기사들은 이곳보다는 더 넓은 공터를 선호했기에, 잘 쓰이지 않는 곳이었다.

‘시작은 이 정도가 좋겠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무공은 개천지보 말고도 많았다.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건 검이 아닌 오늘 제작을 부탁한 봉이었다. 그리고 그게 손에 익숙해지면 창으로 변형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 무공의 토대가 될 개천지보는 무기에 영향을 받지는 않으니.’

다만 아쉬울 뿐이다.

모든 무기는 장단점을 동시에 가진다. 그래서 봉을 나누고 결합시킬 수 있다면, 장병기와 단병기의 장점을 모두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굳이 형을 익힐 필요는 없다.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그에 필요한 근력을 발달시키는 것.’

머릿속에는 앞으로 몇 년간, 정확히는 개천지보에서 오보인 촉천(觸天)을 이룰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계산이 다 선 상황이다.

촉천. 하늘에 손을 댄다는 뜻으로, 개천지보의 진정한 위력이 발휘되는 시작점이다.

‘그 전까지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막대한 내공도 그것을 사용할 육체가 받쳐 줘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내공만 수련하다가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져 죽은 고수가 몇이나 되던가.

개천지보의 기본적인 행공이 완성된 이상, 공력은 스스로 쌓일 터. 하지만 육체는 반드시 고단한 수련을 동반해야 발달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렇다고 몸을 혹사하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다.

‘스스로를 믿어라.’

전생―로라스는 유역후를 전생의 기억이라 믿기로 결정했다―의 자신은 이런 기초적인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뜻대로 행하면 된다.

로라스는 적절한 육체 단련과 행공. 그리고 남은 시간은 계속 이 세상에 대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열흘 후.

마침내 로라스의 첫 무기인 철봉이 완성되었다.

―분리, 결합시킬 방법은 찾았는데 그 연습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대장장이 율터의 말에 로라스는 그의 공을 치하하고, 그 대가는 반드시 주기로 다짐했다.

“후우우!”

손끝에서 전해지는 봉의 차가운 느낌.

전혀 낯설지 않은 그 느낌은 로라스를 살짝 흥분하게 만들었다.

부우웅. 부우웅.

연무장 위에서 로라스는 철봉을 팔자로 천천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일정한 속도에 파공음은 하나로 이어졌고, 로라스는 그걸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적응 과정.

처음 휘둘렀다고는 믿기지 않는 봉의 움직임이었지만, 로라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전생에서야 자신이 무신이라 불렸다지만, 지금은 봉을 처음 잡은 어린아이일 뿐.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그 움직임이 익숙해지자 그것을 변형하여 머리 위로, 그리고 허리 주변으로, 등 뒤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 휘두르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수천수만 번 휘두른 몸이겠지.’

다시 한 번 천황성주는 전생이 아닌 지금 이 몸의 실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로라스는 그걸 확고하게 외면했다.

‘뭐가 어찌 됐든 상관없다. 난 로라스니까.’

적응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딱 사흘.

그의 키보다 크고 20킬로그램에 가까운 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균형이 맞아서 가능하지.’

로라스의 몸으로 그만한 철봉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데에는 봉의 좌우 균형이 굉장히 잘 맞는 것도 한몫했다.

균형이 맞으니 힘을 밀어내고 당김이 일관적이었기에, 어린아이의 몸으로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의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도 흔치 않을 텐데. 전략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어.’

앞으로 여러모로 부탁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당장은 보상을 해 줄 수 없는 상황.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예상 이상으로 빠른 시간에 적응했기에, 로라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 * *

“대련을 요청합니다.”

“검술을 배우고 싶단 말씀이십니까?”

로라스의 말에 시그탑은 그리 반문했으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마치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짐작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로라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검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대련을 요청하는 겁니다, 시그탑 경.”

시그탑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고, 로라스는 그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았다.

‘내가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요놈 봐라! 했겠지.’

“공자, 기사에게 대련이라는 건 실력이 비슷할 때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의욕은 장하나 그건 제게 큰 실례를 저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시그탑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무례한 부탁일 것이나, 그 전에 흥미가 동한 것이 틀림없었다.

“시그탑 경, 맞는 말이고, 나도 경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요?”

“제가 지금 이 체구로 경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로라스의 대답에, 어느 순간 시그탑의 미소가 사라졌다.

‘이거 정말 해보겠다는 뜻인가?’

이 어린 주군의 아들이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페널티를 갖고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같은 조건으로 싸우자는 것을 페널티라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 아닙니까?”

로라스의 반문에 시그탑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좋아. 주눅 드는 성격보다야 무서운 거 모르는 이런 성격이 발전은 더 빠르지!’

게다가 이 어린아이는 기이할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 로라스를 독특한 아이라고 봤을지 모르지만, 시그탑의 눈에는 그것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그건 아홉 살의 아이가 가질 만한 의지가 아니다.

시그탑은 로라스의 손에 들린 봉을 보며 물었다.

“좋습니다. 한번 해 보지요. 지금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네. 경께서는 일단 받아만 주시면 훌륭한 대련이 될 듯합니다.”

일단 받아만 달라는 말에 시그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것도 좋지. 일단 자존심은 세웠지만 무모한 대련은 안 하겠다는 뜻 아닌가!’

시그탑이 연무대 한편에 마련된 목검을 향해 가는 순간 로라스가 말했다.

“경, 진검을 사용하면 좋겠습니다만.”

“진검을 말입니까?”

로라스는 시그탑을 직시하며 대답했다.

“그래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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