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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7화 (7/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7)

끝나지 않는 고민이 계속되면서 오랫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 탓에 개천지보 첫걸음을 떼었음에도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창살에 가득 찬 햇살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리 방에 틀어박혔을지도 모른다.

“좋구나.”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인지, 아니면 의식도료라는 첫걸음을 떼어서인지, 대기가 유독 특별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바깥까지 나온 건 말이다.

‘확실히 하늘 산맥은 뭔가 달라. 의식하지 않아도 기운이 몸속을 도는 것을 보면.’

산에 가까워질수록 미약하지만 기운이 움직이는 속도가 분명 빨라졌다.

‘들어가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저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무리란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시작은 해 봐도 될 터! 들어가는 건 그 이후다!’

이제 아홉 살.

작년에 비해 신체적으로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슬슬 무공의 형태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쉽지만 산을 뒤로하고 마을로 방향을 잡았다.

“……!”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뭔가 있다!’

보이는 건 마을로 내려가는 길뿐. 하지만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다.

감이 아니다. 몸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기운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이리 숨어 있을 필요도 없을 터.’

주변을 살피며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행히 내게는 단검이 하나 있다.

강해지겠다고 이야기한 내게 아버지가 선물로 준 단검.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그 사용법은 안다. 배우지 않아도 쓸 수가 있다.

뭐라 설명해야 할까?

여하간 손잡이를 잡는 순간 싸늘함이 전해져 왔다.

품속에 있어 차가울 리는 없으니 그만큼 긴장했다는 뜻일까?

하지만 실제로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수우우웅! 수우우웅!

처음 사용하는 단검이지만 그 파공음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게다가 육체는 연약하나 몸속의 기운을 언제든 폭발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이지는 않았다.

놈은 내 위치를 알지만, 난 놈의 위치를 모르니까.

불리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다.

여기는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 마을 근처까지 오는 몬스터는 극히 드물다.

몬스터 사냥이 영지의 주 수입인 만큼, 정기적으로 토벌을 해 온 데다 특히 마을에 들어오는 길 주변에는 각종 트랩들이 깔려 있다.

운이 좋다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뭔가는 트랩에 당할 수도 있다.

“후우! 후우!”

절로 행해지는 깊은 호흡.

본능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

그 소리에 더더욱 집중상태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크크르르르릉.

또 다른 소리에 아주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레지온인가?’

늑대와 별다를 게 없는 생김새의 몬스터.

다행이다.

헌터들이 가장 손쉽게 생각하는 놈이 바로 저 레지온이다.

몬스터로 분류되나 늑대와 비슷한 생김새와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놈이라, 오히려 늑대보다 약한 취급을 받는다.

‘게다가 덫까지!’

거기에 뒷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트랩을 밟고 간신히 벗어난 것이 분명한 놈이었다.

‘그러니 숨어서 기회만 보고 있었겠지!’

뭐 어찌 됐든 지금의 난 놈에게 제법 만만한 사냥감일 터.

‘누가 사냥감이 될지 봐야겠지.’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몸을 낮추고 있던 놈이 몸을 일으켰다.

예상보다 컸다.

놈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완벽하게 평행을 이룰 정도로 말이다.

‘그래 봤자 큰 개일 뿐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단검을 들어 올렸다.

치명타를 입힐 자신은 있으나, 지금의 몸으로는 놈의 발길질 한 번에 또는 한 번 물리는 걸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게 사실이니까.

으르르르.

놈이 소리 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나 역시 천천히 움직여, 등을 길가에 있는 나무에 갖다 대었다. 혹시라도 난전이 벌어진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낙양(落陽)? 아니다. 지금 몸으로는 힘을 제대로 주지 못해!’

선공을 취하기에는 부담이 컸으니, 무조건 한 번 피한 후 바로 역습을 하는 게 최선.

검술의 형태가 아닌 단순한 찌르기. 머릿속에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그렸다.

크르르르르!

놈은 소리를 내며 한 발자국씩 다가왔고, 어느 순간 껑충 뛰어 내게 달려들었다.

몸을 뒤틀었다.

생각한 것만큼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안력은 따라와 준다. 옆으로 넘어짐과 동시에 놈의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깨애애애앵!

하지만 제대로 찌르지 못했고, 놈이 고통 어린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그 탓에 놈과 부딪쳤고, 또 그 탓에 나도 바닥을 뒹굴었다.

어떻게 부딪쳤는지 골반뼈가 시큰거리고, 팔뚝에 화끈한 통증이 있었으나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아프다고 꾸물거리는 순간 놈의 식삿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끄으으응! 끄으응!

놈은 소리를 내면서도 나를 향해 살기를 보이며,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끝내야 해!’

회피하고 찌르는 건 이미 물 건너갔다. 골반 쪽의 시큰거림이 다리를 마비시키고 있었으니까.

결국 놈을 쓰러트리기 위해, 벌어진 입에 목검을 찔러 넣든가, 목 부근 약한 근육 부분에 찔러 넣어야 한다. 그럼 붙어야 한다는 거고, 붙어서 실패하면 죽는다.

‘하아! 내가 저런 거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건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상황에서 이런 여유는 뭐지?

지금의 나와 꿈속의 나는 분명 다르다. 혼동해서 좋을 게 없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전신은 흥분에 가득 찼다.

놈은 죽을 것이고, 나는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놈도 이런 내 의지를 읽은 듯하다. 으르렁거리며 날 노려볼 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짜릿한 쾌감에 내가 선공을 펼치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참았다. 놈이 달려오는 힘까지 이용해야,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내게 유리해져 갔다.

승리의 확신. 여유가 흘러넘치는 나와 달리 놈의 눈빛은 점점 죽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 대치 상태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로라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순간 놈을 향한 나의 집중력이 깨졌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차!’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은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는 걸 말이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기세를 제외하면, 당장의 나는 놈보다 나은 게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기세가 사라지면 놈이 어찌 나오겠는가?

크허어어엉!

다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보이는 놈의 누런 이빨.

‘피하기에는 늦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다간 치명상을 입을 확률만 높다.

‘그럴 바에는!’

그대로 놈의 이빨을 향해 단검을 뻗었다. 크게 상할 확률은 높았지만 놈을 죽일 기회도 얻고, 내 목숨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었다.

크아아아앙!

살기를 읽은 걸까?

놈은 고개를 홱 돌렸고, 단검이 제대로 입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놈의 얼굴 일부분을 찢긴 했으나, 치명타는 아닌 것이다.

바닥을 뒹굴었다.

낙법을 할 만한 육체가 아니었기에 등바닥에서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덕분에 놈의 이빨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의 발광하는 얼굴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놈의 몸통을 향해 마구 단검을 찔렀지만 누운 자세로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사이 누런 이빨이 나를 덮치려 했지만 필사적으로 버텼다.

‘한 번만! 한 번만 놈의 턱 아랫부분을 찌를 수 있다면!’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왼팔을 놈에게 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잘리지만 마라!’

그런 생각으로 팔을 들어 올려 놈의 얼굴 앞에 들이밀고,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단 한 번!

놈이 내 팔을 물려고 하는 순간 나의 손도 움직였다.

“로라스!”

하지만 내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그대로 내게 몸을 날린 것이다.

“안 돼!”

난 기겁하며 소리쳤지만 어머니는 이미 나를 감싸 안았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려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아악!”

놈이 그녀의 어깻죽지를 물었고,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다.

난 어떻게든 해 보려 했지만, 날 꽉 안은 그녀의 품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마구 소리를 지르며 단검을 찔러 대는 것뿐.

“엄마! 놔요! 놓으라고!”

“…….”

“이 미친 개새끼야!”

날 꽉 안고 놓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그런 그녀의 어깨를 물고 늘어지는 놈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손은 쉬지 않고 놈을 찌르고 또 찔렀다.

깨애애애앵!

마침내 어머니에게서 이빨을 떼어 낸 놈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내 단검이 깊이 박혀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출혈을 만드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손쉬운 사냥감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 목숨이 경각에 달하니 물러날 생각일 터.

“어머니!”

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밀어내었으나…… 날 안은 그 품은 벗어날 수 없었다. 쇼크에 정신을 잃으면서도 날 안은 그 팔은 여전히 강철같이 굳건했다.

“마님!”

사람들이 달려오기 시작했고, 놈은 사람들을 보며 비틀거리면서 도망치려 했다.

쌔애애애앵!

그때 엄청난 파공음이 들리며 볼트(Bolt―석궁용 화살) 하나가 놈의 목을 꿰뚫었다.

“빨리 와! 빨리 오라고!”

사람들이 달려오는 시간이 억겁과 같이 길게 느껴졌다.

그들이 어머니를 일으키는 순간, 나의 몸도 같이 일으켜졌다. 그만큼 꽉 안고 있었다는 뜻.

“치료사! 치료사를 데리고 와!”

한스 할아범이 그리 소리치며, 어머니에게서 나를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녀의 팔은 풀리지 않았다.

“마님, 공자님 숨 막힙니다. 손을 푸세요.”

어머니가 품에서 날 놓은 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 * *

“이빨이 조금만 더 박혔어도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 거기까진 파고든 것 같지 않습니다.”

“하아!”

마을의 유일한 치료사의 말에 에듀 남작은 한숨과 동시에 사나운 눈길로 한스 할아범을 비롯한 시종, 시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건가!”

“남작님, 모든 게 소인의 불찰입니다.”

한스가 대표로 나서서 말했지만 에듀 남작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체 왜? 안사람이 호위병도 없이 로라스와 함께 그 장소에 있었느냔 말이야!”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하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메어리가 입을 열며 그의 손을 잡았다.

“바깥바람이 좋아서 아무 말 없이 나섰다가……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니 화내지 마세요.”

“어떻게…… 당신과 로라스가 크게 다칠 뻔했소. 단단히 주의를 주지 않으면.”

“제 잘못이에요, 여보.”

메어리가 힘을 주며 말하자, 에듀 남작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시오. 마을 밖은 혼자 다니기엔 좋지 않소.”

“그럴게요.”

메어리는 그리 대답하며 모인 시종과 시녀들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 신호를 받은 그들이 눈치 빠르게 방에서 나가고,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로라스는 어디 있나요?”

메어리가 묻는 말에 에듀 남작이 말했다.

“방 안에서 나오질 않는구려. 어지간히 큰 충격을 받았나 보오.”

“상처는요?”

“크게 걱정할 것 없소. 몇 군데 생채기가 난 것뿐이니까.”

“오늘 로라스가 저에게 엄마라고 불렀어요.”

“…….”

“제게도 매번 격식을 차리던 아이가 분명 저를 그리 불렀어요.”

메어리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렸다.

남들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했지만, 그간 마음고생이 심한 그녀였다.

세상에서 가장 거리가 없어야 할 관계가 바로 어미와 자식 아닌가. 하지만 로라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거리를 두려 했다.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듯하여 아무리 애써 봐도 그 거리는 좁아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들이 엄마를 엄마라 불렀는데 왜 우시오? 당연한 일인 것을.”

“당신은 정말 몰라서 그래요.”

에듀 남작이 메어리를 안으며 다독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로라스입니다.”

그 목소리에 메어리는 에듀 남작을 살짝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들어와.”

방 안으로 로라스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메어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많이 아프세요?”

“엄마는 하나도 안 아파. 이리 오렴.”

메어리는 다가온 로라스를 안았다.

“오히려 네가 많이 놀랐겠구나!”

그리고 그의 등을 쓸어 주며 하는 말에, 로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긴 채로 그녀의 어깨만을 볼 뿐이었다.

‘내 탓이다.’

로라스는 가슴에서 뭔가 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어머니.”

“응?”

메어리가 그를 살짝 떼어 놓으며 의아해하는 순간, 로라스가 조심히 그녀의 어깨에 손가락을 대며 물었다.

“이거, 아물까요?”

에듀 남작이 옆에서 말했다.

“크게 걱정하지 말거라. 신전에 사람을 보냈다. 치료받으면 흉터는 조금 남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로라스는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그녀의 상처를 만져 보고는 말했다.

“이게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한눈팔지 않고 아들 노릇 잘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라니. 흉터가 있으나, 없으나 넌 내 아들이야.”

메어리가 놀라면서 로라스를 다시 안으려고 했지만, 로라스는 그런 그녀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리고…….”

로라스는 말을 끝내지 못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로라스!”

메어리가 깜짝 놀라며 그를 잡으려 했지만, 그 전에 에듀 남작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보!”

에듀 남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다리는 게 좋을 거라는 건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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