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6)
사람에게 먹는 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내게는 중요함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먹는 것마저도 하나의 수련이 되는 느낌이었다.
씹고 또 씹었다.
내 눈앞에, 입 안에 있는 그것들의 모든 영양을 모조리 흡수하겠다는 그런 수련.
‘조급해하지 말자.’
몸의 통제를 빨리 이루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는 건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런 몸으로 무리를 하면 성장이 더디게 된다.
아이는 많이 먹고, 많이 자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뼈가 굳고, 근육이 생기려면 최소한의 바탕이 있어야 하는 법.
여전히 대체 자신이 왜 이런 걸 아는지 이해할 수 없으나, 그게 맞다면 따라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나는 먹는 것만큼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안다.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나처럼 양껏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열심히 먹었다.
힘을 가져야 했고, 가지려면 몸을 만들어야 했으며, 만들려면 전투적으로 먹어야 한다!
달그락. 달그락.
두 손과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로라스를 보며 메어리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저렇게 먹는 거라도 없었으면 걱정에 잠도 못 잤을 것이다.
흐뭇한 건 에듀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될 아이다!’
부인인 메어리는 걱정을 하지만 에듀는 솔직히 조금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로라스에게는 남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메어리는 말이 없다 걱정했으나, 로라스는 이미 두 살 때 자신의 의지를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아이답지 않은 진중함을 걱정했으나, 아들은 세 살 때 가문의 의식에서 자신의 욕망을 확실하게 보여 줬었다.
‘그 몸으로는 절대 쉽지 않았을 텐데, 기어코 해내고 말았지.’
에듀 남작은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로라스! 오늘은 이 아비와 같이 산책할까?”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음식물을 삼킨 로라스가 대답했다.
“네, 아버지.”
* * *
‘아버지는 이리 큰데 말이지.’
로라스는 나란히 걷는 에듀 남작을 보며 생각했다.
그의 생각에 아버지 에듀 진 베스타인은 산 같은 남자였다.
몸집도 그렇고 성품 또한 그렇다.
땅이 기름지다 하지만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잘사는 편이기는 하나 그건 목숨을 담보로 한 대가였고, 영주인 에듀 남작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지만…….’
아직 어려서 여리여리한 몸이지만, 피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니 자신의 몸도 커질 거라 생각했다.
그때 에듀 남작이 마을 사람의 눈인사를 익숙하게 받으며 로라스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일 걷는 이유라도 있는 게냐?”
“이 정도 훈련이 제게 최대치니까요.”
“이 정도 훈련이라……. 걷는 게 훈련이었더냐?”
에듀가 재미있어하며 묻는 말에 로라스가 답했다.
“좀 과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달리기도 합니다.”
“우리 아들이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훈련을 하는 걸까?”
“강해져야 하니까요.”
일곱 살 어린 아들의 대답에 에듀 남작은 더욱더 호기심이 생겼다.
“강해지려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아버지, 이유는 강해지고 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에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강해지고 난 후에 생각하겠다라……. 좋은 말이다. 하지만 네 어머니가 걱정이 너무 많구나.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만 알면 한시름 덜겠다고 하더구나.”
“제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완벽한 대답에 에듀는 더 이상 아들에게 물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라도 아비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거라. 이 아비도 꽤나 강한 인간에 속하니 말이다.”
“그것 역시 필요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짧지만 명확한 의사 표현에 에듀는 ‘역시’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 * *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던 건가?’
뜬금없이 산책하자는 에듀 남작의 말에 짐작은 하고 있었다. 또 근래 들어 어머니의 잔소리가 늘고 있었다.
‘뭐가 그리 걱정이신 건지…….’
솔직히 말해 귀찮았다. 그럼에도 별말 없이 따르는 건 그 이유 또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린 결론은 그냥 자신의 천성이 그래서라는 거였다.
여하간 부친과 함께 걷는 산책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옆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난 아직 아버지나 다른 기사들에게 도움을 받을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역시 자신이 조금 더 커야 했다.
꿈에서 배웠던 입문무공을 완성시키기 전까지는 지금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최선이다.
‘개천지보라…….’
하늘을 여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말.
그 단어를 자신이 어찌 아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첫걸음을 지금 내딛고 있다는 것이다.
―세 걸음부터 나를 확인할 수 있고, 다섯 걸음부터는 자신을 관조하며, 일곱 걸음부터는 정말 하늘을 밟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란 건 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할 필요성은 분명 있었다.
‘2년 정도 걸릴라나?’
지금 나의 수준은 걸음마도 아닌 기어 다니는 수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다. 조급해하지 말자.’
이번에도 같은 결론을 내리며 부친과 함께 계속 걸었다.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들.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 * *
여덟 살이 되었다.
살집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몸에 붙었고, 내부 장기가 어느 정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말이다.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있으나, 이 작고 연약한 몸이 버틸 수 없었다.
무엇을 할까?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놀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 게 바로 책이었다. 그건 내가 보고 듣지 못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익히게 해 줄 수 있으리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문제가 생겼다.
집에 있는 책은 고작 백여 권밖에 되지 않았다. 마을에 있는 책을 모두 모아도 오십여 권.
영지민들에게 책이란 사치, 아니 그 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오십여 권이나 나온 게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어머니께 부탁했다.
어머니는 이런 내 독서에 대환영이었다.
“우리 아들 티타임 할까?”
“아들, 이거 같이 읽을까?”
책을 읽을 때는 혼자이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는 굳이 혼자를 고집하지 않았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께서 행복하다 하시니, 나중을 위해 지금은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알았다.
책이란 게 매우 비싼 물건이라는 걸.
계속된 구입에 아버지는 곤란해하셨고,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셨다.
나는 바보가 아니고,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다.
난 읽는 것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탁한 건 역사서였다.
모든 책은 도움이 되지만, 그 모든 내용을 집약시킨 것이 바로 역사서이니까.
이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이 왕국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이 가문과 그 외 수많은 가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읽는 것을 수십여 번 반복하니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그 이후로 또 계속 읽으니 역사에 기록된 내용들로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실, 그 이유를 유추하는 힘.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내게 크나큰 재산이 될 터였다.
모든 책을 외우고 나니 시간이 남기 시작했다.
영지에 대해 공부했다. 특별히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기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고,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을 뿐이다.
효과는 분명했다.
마을 밖을 나가 보지 않았음에도 주변 지리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고, 또한 주변 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게 중요하냐고?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부모님에게 자식은 나 하나밖에 없다. 그 말은 이 영지의 후계자가 나라는 거다.
‘이건 의무지!’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따른다.
내 아버지가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 주지 않으시는가?
그렇게 한순간의 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사이 꿈은 계속되었다.
꿈에서 나는…….
정말 지독한 사람이었다.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하지만 그것에 완전히 사로잡혀 이후에는 그 목적까지 상실한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면 얼굴에 눈물의 흔적이 있는 것이, 내가 너무 몰입한 듯했다. 그만큼 꿈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어느 순간 꿈은 끝에 다다랐다.
뭔가 깨달았고 나는, 아니 그는 모든 것을 다시 고치고자 했으나 하나의 커다란 깨달음이 그 희망을 꺾었다.
‘아기가 되었었는데…….’
수많은 풍랑을 겪은 인생치고는 끝이 너무나 허무한 것을 보며 또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한 번 끝난 꿈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반복될 때마다 내 지식은 더욱더 풍부해졌고, 그로 인해 어찌 강해질지 확실한 계획이 서기 시작했다.
* * *
아홉 살이 되었다.
‘이건…….’
나는 마침내 개천지보라는 무공에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개천지보 제일보, 의식도료(意識到了).
의식도료의 뜻은 ‘깨달았다!’
개천지보의 첫걸음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건 없다.
분명 난 알 수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난 힘의 근원.
그러니까 기사들이 말하는 포스, 마법사들이 말하는 마나라는 것의 본질을 알았다.
‘이런 거였나?’
그 순간 배 아래쪽에서, 무겁게 쌓이기만 했던 기운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따뜻한 햇살이 몸속을 비추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전신에 퍼지는 기분이랄까?
그 기운이 몸속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조종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원래 이런 거라는 듯 자연스럽게 그리 돌았다. 내가 해야 할 건 단순하게 그 기운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마침내 기운이 체내를 돌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런 거였구나!’
의식도료. 말 그대로 깨달았다.
‘어…….’
그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시야가 크게 확장되었고, 정수리에 구멍이 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보이고, 그것들이 구멍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쏟아져 들어온 것들은 내가 처리하지 못할 만큼 막대한…… 생각들.
이게 뭔지 설명하기는 힘들다. 마치 누군가 내 머릿속을 통째로 가지려는 이걸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야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구멍이 닫히기 시작했다.
‘난 로라스인가? 아니면 천황성의 성주인가?’
그리고 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한 달 이상을 고민했음에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을 찾지 못하자 의심이 들었다.
‘미친 건가?’
내가 알고 있는 특별함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원래 미친놈과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분명 로라스인데 의식은 천황성의 성주라면 미친 건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나 의문은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거라는 불길함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