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4)
“후우우우!”
긴 호흡과 함께 운기를 끝냈다.
‘이거 이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겠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기로 했는데, 그 모자란 부분이 너무나도 컸다.
‘뭐, 지금이라도 알면 됐지.’
천만다행이라면 그걸 지금이라도 채워 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광인이 되거나, 벽에 똥칠해서 세진이 녀석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끼룩끼룩.
짠 바닷바람에 갈매기 소리가 섞여 오자 괜히 울적해졌다.
“역시 한 녀석은 데리고 왔어야 했나.”
후회가 됐다.
녀석들이 혼인을 해서 손자가 생기면 이렇게 궁상맞을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생각 없이 일단 저지르면 이런 후회를 하는 거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돌아가면 쪽팔리겠지?’
일단 채우고 봐야겠다. 그래야 녀석들의 미진한 부분을 채워 넣어 주려 돌아왔다는 변명거리도 생기니 말이다.
시간이 흘렀다.
굳이 날짜를 세지는 않았지만 대충 5년 이상은 흐른 것 같다.
이런 촌구석도 제법 먹고살 만한 걸 보니, 천하일통한다고 난리치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잘 다스리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난 모자란 부분을 다 채워 넣었다.
그게 실수였다.
개천지보. 열린 하늘을 걷는다는 심법인데…… 걷다가 하늘로 올라갈 것 같았다.
‘채워 주고 가야 하는데 여차 길을 잘못 들어서 주화입마라도 당하면 어쩌누.’
녀석들 걱정이 됐다.
이런 건 줄 알았다면 조금 늦게 채워 넣는 건데.
채워 넣고 나니 깨달았다. 채워 넣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빌어먹을. 우화등선은 속세에 미련이 없을 때나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부하려 해도 이놈의 의식이 자꾸 몸을 떠나려 한다.
맞다.
나 우화등선하려고 한다.
돌아가기엔 늦고, 그냥 가기에는 후회가 된다.
필사적으로 육신을 잡으며 내가 깨달은 것들을 글로 적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루면 우화등선하니 조심하라는 경고글까지 적은 순간,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아! 이거 전해 줘야 하는데.’
그 약간의 시간조차 하늘은 허락지 않았다.
‘뭐, 이런 심득 없이도 알아서 잘할 아이들이니.’
난 숨이 멎어 버린 내 육신을 살폈다.
표정이 참 좋다.
‘나한테 이런 표정도 있었던가? 하루 종일 불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고만 있었는데.’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빌어먹을. 바뀌면 뭘 하나? 다 끝났는데.’
모자란 것을 채움으로써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돼서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채움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어라?’
순간 내 육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티 날리는 것처럼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아니, 저거 없으면 애들이 날 계속 찾을 텐데. 화장을 하든, 땅에 묻히든 뭔가는 좀 남겨 줘야 할 거 아니오.’
다행히 가루가 된 내 육신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반로환동인 건가?’
몸이 축소되면서 어려지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야, 어디까지 작아지려는 건데?’
노년에서 중년으로, 중년에서 청년으로 딱 여기까지가 좋았는데 소년이 되고 아이가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아! 이건 아니잖아!’
육신이 급기야 갓난아기가 되는 걸 보며 난 그리 소리쳤다.
다행히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내 몸인데 왜 내가 이리 볼 수 있는 거지?’
나를 제3자의 눈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 혼란스럽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반로환동이든, 우화등선이든 뭐가 되어야 되는데 난 그냥 그렇게 볼 수만 있었다.
‘반로환동한 거면 이리 보면 안 되는 거고, 죽은 거라면 저승사자가 올 테고, 우화등선이라면 산신이라도 보내서 인도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닫힌 문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그냥 쑥 통과한다.
‘죽은 거야, 산 거야?’
그것조차 모른 채 밖으로 나오니 나쁘지 않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바다 짠내와 시원한 바람은 여전히 잘 느껴진다.
‘이제 하늘로 가야 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법을 전개해 하늘을 밟고 올라갔다.
‘어라? 이것 보소.’
정말 하늘을 걷는다.
보통 한 호흡의 진기로 십 장까지 허공으로 솟아오를 수 있었는데, 특별히 호흡하지 않았는데도 진기가 무한대로 공급이 된다.
이거 의외로 재미있다.
바다를 향해 마구 달렸다.
가끔 궁금했다. 이 바다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말이다.
이 기회에 뭐가 있는지 볼 생각이었다.
‘달리다 보면 그 끝이 보이겠지.’
신법의 속도도 육체를 가지고 있었을 때보다 열 배는 빠른 것 같으니 충분히 해 볼 만했다.
그렇게 이레를 달렸는데…… 후회했다.
넓은 바다, 깊은 바다. 푸른 바다, 초록 바다. 물고기 있는 바다, 커다란 물고기가 있는 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뭐가 됐든 바다는 그냥 바다였다.
다시 돌아가는 게 나을지, 아니면 계속 가야 할지 심각히 고민할 때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용오름.
이야기만 들었던 바닷물이 하늘로 솟구치는 현상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용오름의 기세는 무척 컸다.
바닷물도 이 기세면 며칠이면 다 말라 버리지 않을까 할 정도로, 용오름의 물기둥은 무지막지하게 컸다.
‘가지 말고 올라가 봐?’
궁금한 건 해 봐야 했다.
물기둥 속으로 몸을 날렸다.
사방이 바닷물인 사이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신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압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압력은 마치 공간을 찢어발기듯이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라?’
그리고 그 압력에 내 몸이 휘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 신선이라고!’
좋지 않은 예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이놈의 압력이 신선이 된 날 놔주지 않는다.
―개천지보 제십이보!
심법을 십이성 끌어올리며 압력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칼날이 되어 몰아치는 압력을 받아치고, 압력이 공간을 그러하듯 나 역시 압력을 찢어발겼지만 더 이상 빨려들어 가지 않는 게 고작이었다.
대체 얼마나 그리 버티고 버텼을까?
거의 1년은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버티다가 문제가 생겼다. 무한대로 공급되던 진기가 잘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무한대라 생각되던 진기도 한계가 있었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진기의 양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죽은 몸. 또 죽기야 하겠어! 차라리 가 보자!’
아예 빨아들이는 압력 속으로 내 힘을 더해 몸을 날렸다.
그 엄청난 속도는 신선인 나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빨랐다.
주변이 완벽하게 일그러지며, 내 몸이 그냥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축이 됐다.
주변의 풍경은 묘했다.
가지각색의 색깔들이 소용돌이치며 저 멀리 보이는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하나의 빛무리가 순식간에 따라왔다.
뭔가 싶어 보니 작아진 내 육체다. 그리고 구멍에 들어가는 순간 빛무리가 날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