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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3화 (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3)

왕삼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왕삼이는 왕씨 집 셋째 아들이다.

본디 없는 집이라 가족들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왕씨 부부는 뼈 빠지게 일하여, 자식들 배곯게 하지는 않았다.

그게 왕씨 부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고, 자식들도 바르게 자라 모두 제 밥벌이는 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제법 살 만하다고 느껴질 때 왕씨가 죽었다.

특별한 것 없이, 그냥 나이가 되어 편안하게 간 복받은 죽음이었지만, 왕씨의 아들들은 그의 아비를 존경했기에 매우 슬퍼했다.

그날 왕삼이는 두 번째로 돌아오는 부친의 기일을 맞아 기분이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풍화객잔 제일 점소이답지 않게 손님이 와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손님이 하나 들어왔다.

무거웠던 왕삼의 엉덩이가 그제야 들렸다.

들어오는 손님은 무척 초췌해 보였고, 옷도 얼마나 빨지 않았는지 먼지가 덕지덕지 앉아 시커멓게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왕삼이 움직인 건, 왠지 그 노인이 자신이 돌아가신 부친을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조금도 같은 구석이 없는 노인이었지만, 느낌이 그런데 어쩌겠는가?

왕삼이는 원래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어제 꿈에 부친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도 매우 굶주린 표정과 먼지 덕지덕지 묻은 저런 옷을 입고 말이다.

객잔에서 노인은 많은 음식을 시켰다. 그리고 다 먹고 난 후에야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왕삼이는 직감했다.

‘어제 아부지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건 다 뜻이 있으셨던 게야.’

왕삼이는 제사상을 차린다는 생각으로!

비록 그게 자신의 한 달 월봉을 다 털어 넣어야 할 정도로 매우 비싸긴 했지만, 노인의 음식값을 지불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의 왕삼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건 효도를 못 한 불효자식의 한의 발로라 해도 좋았다.

그렇게 음식을 대접하니 노인이 반지를 줬다.

안 받으려 했다.

어쩌면 그 반지는, 노인의 자식들이 큰마음 먹고 하나 맞춰 드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기어코 반지를 주고 도망치듯 떠나가는 노인을 잡으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귀신에 홀렸나 싶을 정도로 노인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왕삼이는 그렇게 자신의 월봉으로 노인의 음식값을 치르고, 그 탓에 마누라에게 엄청 심한 바가지를 긁혔다.

하지만 왕삼은 그날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날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왕삼은 종종 노인이 주고 간 반지를 유심히 봤다.

금에 질 낮은 쇠를 엄청 섞었는지, 반지는 거무튀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긴 이 크기면 금으로 족히 한 냥은 될 텐데. 철을 엄청 섞었나 보다.’

그래도 금속 주제에 반질반질한 것이 손때가 묻은 듯하여, 반지를 바로 처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노인이 다시 찾아와 반지를 달라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도 찾으러 오지 않았고, 반지를 팔아 은자 한 냥이라도 구해 와 보라는 마누라의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황전장을 찾았다.

그 입구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천황전장은 대륙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전장으로, 여기서 발행된 은표는 은자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꼭 천황성과 관련된 곳으로 가져가야 한다.

노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곳은 아무래도 이런 철 반지 따위를 살 곳이 아니었다. 괜히 문전박대나 당하지 않을까 싶어, 왕삼이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지만 그 순간 천황전장에서 일하는 문사 하나가 그리 인사하는 바람에, 왕삼이는 엉거주춤 전장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이걸 팔려고 하는데요.”

척 봐도 ‘나 가짜 금반지요’ 하는 반지를 내미는 왕삼이의 손이 부끄러워 떨렸다.

“천황재림! 만세! 만세! 만만세!”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문사 하나가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큰절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사람들도 덩달아 큰절을 하며 같은 말을 외쳤다.

엄청난 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걸 팔려고 한 정황이 알려지고 난 후, 왕삼이는 그대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실에 갇혀야 했다.

“이게 어디서 났느냐?”

“어느 노인이 밥값 대신으로 주고 가신 겁니다.”

“밥값 대신?”

왕삼은 순간 엄청난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실대로 불 때까지 족쳐!”

“손가락 몇 개 자르면 금방 불 것도 같은데요.”

“목을 날리고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어마무시한 소리가 왕삼을 움츠러들게 했다.

다행인 건 그들이 겁만 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왕삼은 그렇게 밀실에 갇혀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대체 얼마 동안이나 갇혔는지 날짜 개념이 흐려지고 있을 때, 다시 밀실의 문이 열렸다.

문밖에서 흘러 들어온 빛에 왕삼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 찌푸려졌던 그의 눈살이 대번에 펴졌다.

바로 앞에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서 있었으니까.

“누가 감히!”

앙칼진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왕삼은 전신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살려 주십시오. 전 아무 죄도 없습니다. 그저 돈이 없는 노인에게 밥 한 끼 사 드린 것뿐입니다.”

왕삼은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여인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은인. 정말 죄송합니다.”

조심스레 눈을 떠 보니, 눈 돌아갈 만큼 예쁜 여인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지 않은가.

스악!

그리고 손을 휙 저으니, 자신의 손목과 발목에 채워져 있던 굵은 쇠사슬을 잘라져 있었다.

왕삼은 자신이 무슨 상황인지도 잊고, 콧속을 찌르는 향기와 그 보드라운 손의 감촉에 잠시 정신이 나갔다.

“나가시죠, 은인.”

왕삼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밀실을 나가 밀실을 나온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통쾌함을 느꼈다.

사실을 말하라고 매일, 매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사내들이 대가리를 바닥에 박고 엎어져 있었다.

그때 여인이 왕삼이에게 말했다.

“눈 없는 것들이 감히 은인에게 죄를 지었으니…… 아무것도 몰랐다고 생각해 저리는 뒀지만, 은인이 벌을 주시길 원하면 지금 바로 목을 날려 버리겠습니다.”

살벌한 소리에 왕삼이 황급히 두 손을 저을 때, 전장의 문이 부서지면서 두 사내가 들어왔다.

“누구야? 누가 사부의 제황계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두 사내 중 덩치가 산만 한 사람이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쿵쿵 달려왔다.

“대사형, 여기예요! 이사형, 은인이 놀랍니다. 목소리 높이지 마세요!”

왕삼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 아니, 그 전에 살고 싶었다.

왕삼은 자신을 구해 준 여인을 보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저, 전 정말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냥 가엾어 보이는 노인에게 밥을 사 준 것밖에는…… 정말 죄를 짓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왕삼이 족히 수백 번은 말했던 그날의 일을 이야기해 주자, 두 사내가 각자 입을 열었다.

“아! 여기까지 오신 게 확실하군.”

“그 양반이 우릴 고생시키려고 작정한겨!”

여인이 이 모든 사태를 유발시킨 반지를 왕삼에게 보이며 물었다.

“그러니까 이걸 팔라고 하셨단 말이죠?”

“반드시 천황성과 관련된 곳에 가져가서 팔라고…… 그러면 제법 가격을 받을 거라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 선물이라고…….”

정신없이 주절거리고 있을 때, 여인이 갑자기 자신에게 큰절을 올리는 걸 보며 왕삼은 기겁했다.

“왜 그러십니까? 대체!”

대답 대신 여인의 옆에 선 두 사내도 덩달아 큰절을 하니, 왕삼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 여인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이 반지는 은인께서 식사를 대접했다는 분의 제자들. 그러니까 저희가 처음으로 사부에게 드린 선물이에요. 그리고 은인께선 저희에게 이걸 돌려주셨고요.”

“전 그냥 식사 한 끼 대접한 것밖에는…….”

“유상촌 왕삼 님. 풍화객잔의 점소이로 일하고 계시죠? 그리고 저희 사부를 대접하기 위해 은자 넉 냥을 쓰셨죠. 한 달하고 열흘을 일해야 하는 돈을 쓰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거야 그 노인께서 워낙 초췌하신 모습이셔서…… 그리고 전날 꿈에…….”

부친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이남 일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초췌하셨단다. 그것도 워낙 초췌……. 전장에서도 먼지 한 톨이라도 묻은 옷은 입지 않았던 우리 사부가 말이다.”

“이 양반이 대체 얼마나 굶으신 거야. 자존심 때문에 어디서 일도 못 하셨을 텐데. 그렇다고 도둑질을 하셨을 리도 없고…….”

“이게 다 사형들 때문이에요. 진작 사부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그게 왜 우리 때문이야! 사매도 싫다고 했잖아!”

“그나저나 막내에게 다 떠넘기고 도망 왔는데, 이 녀석 사부 못 찾은 걸 알면 우릴 쥐 잡듯 잡을지도 몰라.”

세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왕삼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저는 집에 돌아갈 수가…….”

티격태격하던 세 사람의 동작이 일순 멈췄다.

“물론입니다, 은인.”

“일이 이렇게 돼서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뭐가 됐든 일단 집으로 가고 싶은 왕삼이었다.

바가지 긁는 마누라라도 지금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세 사람의 보호 아닌 보호를 받으며 왕삼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왕삼이는 자신이 밥을 샀던 노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왜 그날 부친이 그런 모습으로 꿈에 나타났는지, 또 반지를 받은 날, 부친이 다시 나타나 덩실덩실 춤을 추셨는지 알게 되었다.

‘꿈 중에 조상이 나타난 꿈이 최고라고 하더니…….’

현 내 제일 부자가 된 왕삼은 시녀들이 따라 주는 차를 여유 있게 마셨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어르신, 그 반지 참 비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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