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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미드필더-220화 (220/225)
  • < 220. 사람 최재혁 >

    “하, 그정도야 당연히 예상하고 막았···, 컥!”

    “이 바보 오빠야. 적당히 좀 다쳐라, 적당히 좀!”

    베개를 끌어올려 케이트가 던진 신분증을 막았던 재혁은 옆에 앉아 있던 재희가 말아쥐고 있던 잡지는 피하지 못했다.

    통,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잡지가 머리 위를 튕겼고, 베개를 쥐고 있던 손을 올려 머리를 문지른 재혁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나도 다치고 싶어서 다치는 게 아닌데 어쩌겠어. 그래도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김박사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금방 나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금방이 언젠데?”

    “재활까지 다 하면 한두 달?”

    “···한두 달이 금방이야?”

    “반 년을 재활하는 것보단 엄연히 빠른 거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후로 더 이상 크게 다치는 일은 없을 거니까, 그 입술도 그만 좀 집어넣고.”

    “이익! 오빤 멍충이야!”

    삐죽 튀어나온 재희의 입술을 재혁이 손바닥으로 한 차례 찰싹였고, 남의 기분도 모르고 장난을 친다며 재희는 또 한 번 잡지를 휘둘렀다.

    그런 동생의 잡지질을 막겠다며 베개를 든 재혁은 입술을 앙 다물고서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재희의 눈빛을 바로 읽곤 속으로 쓰게 웃었다.

    아마 동생은 자신이 한 말이 그저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 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앞으로 다치는 일이 없을 거란 재혁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제 신체가 10대를 벗어난 만큼, 피지컬 훈련의 강도를 전보다 높일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는 부상에서 회복되면 훈련을 통해 3년 이내에 최적의 몸을 완성할 계획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피지컬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깨달았으니, 당분간 그 쪽에 확실히 집중할 생각을 한 것이다.

    부상을 당해도 금방 회복할 정도로 철인의 몸···, 까진 힘들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 다치지 않을 정도로 몸을 단련할 생각을 하며 재혁은 마음을 다졌다.

    다만 그런 오빠의 생각을 알 수 없었던 재희는 계속해서 투정을 부리며 잡지를 던졌고, 티격태격하고 있는 남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케이트는 가느다란 한숨을 토해낸 뒤 재희를 타일렀다.

    “재희야, 그래봐야 너만 피곤해. 바보는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그치만···.”

    “밖에서 할머니도 기다리시잖아? 늦기 전에 밥은 먹어야지.”

    케이트의 중재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재희는 빙글 뒤를 돌더니 재혁을 향해 혀를 한 번 쭉 빼민 후 할머니가 앉아 계시는 복도로 향했고, 케이트 덕에 재희가 떠나자 간신히 진땀을 식힌 재혁은 배시시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덕분에 살았네. 나보다 어린 녀석이 한 번 잔소리를 시작하면 끝도 없단 말이지.”

    “어머, 무슨 소릴. 밥먹고 다시 올거야. 그때까지 뭘 잘못했나 반성하고 있어.”

    “···.”

    끝이 아니라 잠시 휴식이다.

    그런 케이트의 말에 재혁은 삐질 식은 땀을 흘렸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가방을 챙겨드는 케이트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어떻게 사람이 몸을 다칠 정도로 계속 뛰니? 그걸 한 번도 아니고 대체 몇 번이나···. 에휴, 이러다가 정말 크게 다칠까 걱정이다, 걱정이야.”

    흘려보내는 듯한 어조로 말했으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은 확실히 전해졌기에 재혁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케이트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재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가 던진 신분증을 다시 쥐려던 것이다.

    이불 위에 놓여 있던 신분증을 검지와 엄지로 쥔 케이트는 천천히 상체를 올리려다가.

    툭.

    “미안해.”

    “!”

    재혁이 떠나려는 자신의 손을 붙잡으며 말한 탓에 몸이 멈췄다.

    케이트는 고개를 들어 재혁과 눈을 마주쳤고, 뺨을 붉혔다.

    따뜻한 숨결이 코끝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재혁이 자신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재혁은 그녀와 달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변화가 없는 얼굴과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계속 다치는 것도, 걱정시키는 것도, 전부 다 미안해. 그래서 너한텐 항상 고마운 마음 뿐이야.”

    “···.”

    “그러니까 약속할게. 앞으론 절대로 네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겠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

    “···바보야. 축구 선수가 안 다치는게 그렇게 말처럼 쉽니?”

    “쉽진 않겠지만, 네가 우는 걸 지켜보는 것보단 어렵지 않을 거야. 네 눈물은 보석이니까, 앞으로 쉽게 흘리게 두지 않을게.”

    “···.”

    “그러니까···.”

    “최재혁! 안에 있냐?!”

    순간 벌컥 병실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선두에 신형민, 뒤에선 그런 형민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젓고 있는 김수용이 있었다.

    두 사람의 갑작스런 등장에 케이트의 뺨은 붉은 걸 넘어 터질 정도로 달아올랐고, 재빨리 신분증을 손에 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런 케이트의 뒷모습을 따라 멍하니 시선을 옮기던 신형민이 고개를 툭 기울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형민아. 눈치 좀 있어라.”

    “그러게요. 이따 저녁 먹고 온다고 했었는데. 아마 안 오겠죠? 형민이 형이 왜 연애를 못 하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야, 동생이란 녀석이 훈련 끝나고 바로 병문을 와준 형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고작 그거냐?”

    “형의 핑크빛 미래를 기원하는 동생의 충심을 이렇게 몰라주시네요.”

    “큭큭큭! 저 꼬마는 입심도 나이에 안 맞게 대단하다니까.”

    “둘이서 나 왕따시켜요? 하, 억울해서 나도 여자친구를 하나 얼른 만들던가 해야지.”

    장난이 떠돌던 병실은 이내 웃음이 꽃폈다.

    재혁이 갑작스레 부상을 당한 탓에 무거운 분위기를 상상하며 왔던 것인데, 예상 외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에 다들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남아있는 무거운 걱정은 바로 떨칠 수 없었던 탓에 형민이 입술을 툴툴거렸다.

    “힘들면 쉬게 해달라고 벤치에 사인을 보내던가. 고집을 부려서 마지막에 부상을 당하냐? 이래서야 이겨도 이긴 거 같지가 않잖아.”

    “그래도 이긴 게 사실이잖아요?”

    “뭐, 그거야 그렇긴 한데···. 설마 최재혁 너! 네가 아니면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랬던 거야?”

    “설마요.”

    형민의 말에 재혁은 고개를 얼른 가로 저으며 답했다.

    “어디까지나 최고의 순간이 올 것 같아서 경기장 위에 남아 있던 거였어요. 제가 설마 다른 형들을 못 믿을까 봐요?”

    “하긴. 네가 그럴 녀석이 아니긴 하지.”

    “그러니까 제 걱정은 이제 그만하시고, 다음 경기 준비나 제대로 하세요.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허무하게 지면 억울하잖아요?”

    “다음 경기라···.”

    재혁이 한 말을 읊조리며 생각에 잠기게 된 두 사람.

    그런 둘은 갑자기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길게 토했다.

    “진짜 어떡하지? 다음 상대가 벨기에라니. 재혁이 너도 없는데···.”

    “쉽지 않을 거야. 아니, 그 어떤 때보다 어려운 경기가 되겠지.”

    “하지만 벨기에도 우리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걸요. 아니, 오히려 무서워하지 않겠어요? 그 브라질을 꺾고 올라온 팀이 바로 우리니까.”

    “!”

    걱정이 진하게 묻어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둘을 향해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을 한 재혁.

    그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계속 말했다.

    “비록 저는 부상으로 빠지겠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저를 대신해서 힘을 내주세요. 최재혁 원맨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여주라고요.”

    “큭큭, 그래. 그래야지. 겨우 한 명이 빠졌는데, 팀이 흔들려서야 되겠어?”

    “맞아요, 수용이형. 그리고 이 건방진 놈 얼굴 좀 보세요. 뭐? 최재혁 원맨 팀? 벨기에랑 우리가 하는 경기 꼭 봐라. 네가 우리 덕에 활약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줄 테니까.”

    “흐흐. 꼭 그래주세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래. 기대해라. 너 없이 결승까지 올라가주마!”

    부상을 위로해주기 재혁을 찾아왔던 두 사람은 오히려 재혁의 말 한 마디에 힘을 얻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렇게 마침내 병실에 혼자 남게 된 재혁은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명상에 빠졌다.

    지난 경기에서 자신이 범한 실수나 부족한 점들을 통해 스스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나아질 방향을 고민하기 위해 생각에 잠긴 것이다.

    직접 몸을 움직이는 건 직관적인 이해를 도와주었지만, 이처럼 스스로에게 자문을 던지면서 고민해보는 것도 제법 효과가 좋았기에 잠들기 전에 자주 하는 습관이었다.

    그렇게 시침이 10시를 가리킬 때 즈음, 누군가 병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직 찾아올 사람이 남았던가?

    물음표가 떠오른 얼굴을 기울였던 재혁은 문을 향해 들어오라고 말했고, 곧 손잡이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온 남성은 재혁의 얼굴을 보니 반가워하며 웃었다.

    “간만이군, 최재혁. 너무 늦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깨어 있었어.”

    “어, 과르디올라 감독님.”

    “혹시 잠들려던 참이었나? 내일 다시 오는 게 좋을까?”

    “아뇨. 괜찮아요. 마실 거 드릴까요?”

    “환자를 어떻게 부려먹겠나. 내가 직접 따라 마시지.”

    갑작스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방문에 재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과르디올라는 빈 컵에 물을 한 잔 따른 뒤 재혁의 옆에 앉았다.

    몸은 어떠냐, 검사 결과는 어떠냐, 같은 부상에 관한 질문을 던지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내 피식 미소를 흘렸다.

    그의 머릿속으로 재혁이 브라질을 상대로 때린 마지막 슈팅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정말 무식하면서도 아름다운 골이었어. 다른 선수는 시도도 못 할, 그런 슛이었지.”

    “그거 칭찬이죠?”

    “물론. 그게 안 들어갔다면 모를까. 득점을 성공 시킨 순간부턴 앞으로 월드컵하면 평생 회자될 골들 중 하나가 됐으니, 당연 칭찬이지.”

    “다행이네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역사에 남는 게 아니라서.”

    농담이 섞인 재혁의 말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웃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 누구보다 걱정이 컸던 과르디올라였으나, 막상 재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크게 상심한 것 같지 않아 안도한 것이다.

    꿈의 무대를 부상 때문에 오를 수 없다는 건 사실 누구라도 크게 상심했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재혁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건···.

    ‘미래를 지향하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가능과 불가능을 냉정하게 가늠하고, 자신의 현재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을 바라보며 끝없이 감탄했다.

    과연 이 어린 선수가 지금으로부터 5년 뒤···, 아니. 3년 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오늘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재혁에게 설명했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야.”

    방금까지 남아있던 가벼운 기운을 거두고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연 과르디올라 감독.

    그는 재혁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최재혁, 너와 재계약을 맺고 싶어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온 거다.”

    “재계약이요? 저 지금 부상당했는데요?”

    재혁이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자신의 오른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되물었고, 이에 과르디올라는 빙긋 미소를 그린 얼굴로 말했다.

    “그게 중요한가? 나는 자네가 평생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더라도 재계약을 맺었을 거야. 내게 중요한 건 선수 최재혁이 아닌, 사람 최재혁 그 자체니까.”

    < 220. 사람 최재혁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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