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단 한 명 >
한국과 브라질, 양 팀의 전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두 팀을 비교하는 질문을 어느 누구에게 던져보아도, 하물며 그 질문을 한국인들에게 물어보아도 모두가 똑같은 답을 할 것이다.
한국은 브라질에 비해 많은 부분들이 모자라다고.
수비, 공격, 기술.
어느 부분을 놓고 비교를 해보아도 한국이 브라질을 압도할 구석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종철 감독은 오늘, 지금까지 펼쳤던 4백을 포기하고 3백을 준비했다.
자신들이 브라질에 비해 상대적 약팀임을 인정하고, 보완할 구석은 확실히 지키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런 임종철 감독의 기습적인 3백 전술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으나, 단 한 명, 한국의 3백을 정확히 예상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브라질의 티테 감독.
그는 팔짱을 끼고 있는 자세에서 슬쩍 고개를 돌려 건너편 벤치에 서있는 임종철 감독을 살핀 후 웃었다.
‘확실히 능력 있는 감독이야.’
많은 팀들이 브라질의 최전방 톱3 공격수들을 상대하기 어려워했다.
그들의 능력 때문에? 아니면 지니고 있는 기술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네이마르를 위시로 한 현재의 톱3 공격수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티테 감독이 구사하는 톱3 공격수들은 ‘펄스 원톱’을 기본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뜻 보기엔 원톱을 지키는 공격수 한 명과 양 날개에 측면 공격수들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톱3와 같은 형태였으나, 그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공격 상황시 원톱의 뒤로 측면 선수들 중 한 명이 세컨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고 다른 하나가 그 뒤를 받치는 역삼각형 구조의 공격진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원톱의 톱3인 것 같으나 그 진상은 투톱의 톱3.
기술을 넘어 그런 유기적인 전술 변화가 현재 브라질 톱3를 구성하는 강력한 창이었고, 이 창끝의 날카로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팀들은 모두 꿰뚫려 쓰러지고 무너졌다.
하지만 오늘 이 톱3를 상대로 한국은 확실한 방패를 준비해왔다.
그게 바로 지금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3백의 수비 진영이었다.
티테 감독은 때마침 시작된 자국 브라질 대표팀의 공격 상황을 지켜보며 코끝을 매만졌다.
최전방에서 공을 잡은 제수스가 안으로 파고 드는 사이, 양옆에 위치한 날개 공격수들이 틈을 노려 중앙으로 침범을 시도했다.
이번에 세컨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은 것은 윌리안이었고, 네이마르는 그런 윌리안의 백업을 맡았다.
그 삼각 편대가 제자리를 찾았을 때.
투웅!
마침내 제수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영훈을 상대로 공격적인 드리블을 선보이던 제수스가 갖고 있던 공을 윌리안에 넘겨 주었고, 삼각 편대의 중심에 선 윌리안은 눈앞에 수비수들이 위치해 있는 자리를 재빨리 파악한 뒤 재치를 발휘해 네이마르를 향해 패스를 찔러 주었다.
단어 그대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타이밍을 재고 있던 네이마르는 짧은 드리블을 두어 번 친 다음 방향을 잡기 무섭게 그대로 슈팅을 시도했다.
전광석화 같았던 과정 속에서 효율적인 결과를 노리는 매서운 슈팅!
하지만 그 슈팅은 힘을 받고 나아가기 전에 누군가의 발에 걸려 각도를 잃고 말았다.
최재혁.
티테 감독은 예상대로 등장해 네이마르의 슈팅을 막아낸 최재혁을 눈에 담으면서 혀를 찼다.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오는 태클이란 말이지.’
적이지만 칭찬이 절로 나오는 깔끔한 태클이었다.
근 수 년간 자신이 누군가의 태클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던가.
티테 감독은 머릿속에 떠올린 자문에 대해 고개를 저어 답하면서 계속해서 재혁을 지긋이 지켜보았다.
공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대부분이었지만, 수비를 위한 기술을 갈고 닦는 건 노력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았으니, 최재혁이라는 저 꼬마가 선보인 태클들은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축구에 쏟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던 대목인 것이다.
저런 ‘예술품’을 보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해도 질리지 않겠지만···.
‘오늘 우리가 이기려면 저 꼬마를 어쩔 수 없이 부숴야겠지.’
자신이 이곳에 관람객이 아닌 한 팀의 감독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티테 감독이 코끝을 훑었고, 그는 파울리뉴를 불렀다.
슈팅이 길을 잃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공격권이 상대에게 넘어갔으니, 그에 걸맞는 수비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파울리뉴는 그런 티테 감독의 지시가 전달 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한 선수를 목표로 움직였고, 그 선수에게 아직 공이 오지도 않았지만 바짝 다가가 쉬지 않고 압박했다.
그의 목표는 바로 최재혁.
상대 수비의 핵이면서 동시에 공격의 핵이기도 한 그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파울리뉴가 직접 움직인 것이다.
그런 파울리뉴의 압박이 불편했는지 재혁은 연신 몸을 휘저으며 자리를 빠져나가려 했으나, 파울리뉴는 재혁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티테 감독은 공이 없는 곳에서 펼치는 두 선수들의 암투를 지켜보며 쓰게 웃었다.
누군가 본다면 브라질이나 되는 팀이 한국을 상대로 전담 마크를 배치하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는 광경이었으나, 만약 그런 질문을 누군가 던진다면 티테 감독은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축구를 보는 눈이 정말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한국이 멕시코를 꺾고, 독일을 상대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꼬마야. 물론 전술도 좋았고, 조직력도 흠잡을 구석이 없긴 했지만,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저 꼬마라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지.’
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은 그 한 명이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있었다. 수비며, 공격이며, 패스며, 슈팅이며, 말 그대로 전부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티테 감독은 그 구심점을 옭아매기 위해 파울리뉴를 개인 마크로 전담시켜 재혁에게 붙인 것이다.
브라질에선 파울리뉴가 사라져도 남은 10명이 팀을 구성할 수 있지만, 한국에선···.
‘저 한 명이 사라지면 팀이란 존재 자체가 위험해질 테니까. 이런 교환을 이쪽에서 먼저 거절할 이유가 절대 없지.’
게다가 중원에서 직접 경기를 풀기보다 상대와 터프하게 싸우면서 공간을 점거하는 스타일인 파울리뉴에게 최재혁이란 존재는 더 없이 달콤한 보상을 품고 있는 먹잇감으로 보일 것이리라.
오늘 경기의 승패가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공격을 지켜보면서 티테 감독은 놀란 얼굴로 감탄을 흘렸다.
저만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재혁은 어떻게든 패스를 받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고, 마침내 최태성에게서 패스를 건네 받았을 때 논스톱 스루 패스를 전방으로 찔러넣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센스 자체로만 본다면 어느 누구랑 견주어도 꿇리지 않을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그런 재혁이라 할 지라도 가눌 수 있는 몸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결과적으로 전방으로 찔러 들어갔던 패스도 결국은 수비수에게 걸려 한국은 공격권을 잃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상대를 공략할 시간이 찾아온 것에 티테 감독은 미소를 떠올리며 한국 진영을 지켜보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달리고 있지만···.
‘앞으로 15분. 그때가 아마 고비겠지.’
전반전이 끝나기 정확히 5분 전, 전력을 다해 달린 선수들이 슬슬 탄력을 잃기 시작할 바로 그때가 경기의 승부처임을 알고 있었기에 티테 감독은 나름 여유를 갖고서 계속 경기를 지켜보았다.
***
“아아···, 브라질이 엄청난 기세로 몰아치고 있습니다! 한국, 또 한 번 찾아온 위기가 위태로운데···. 최재혁 선수! 이번에도 최재혁 선수가 수비에 성공합니다!”
“엄청난 태클이었어요! 그 전에 몸싸움을 통해 자신이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포지션을 확실히 잡았거든요. 저런 수비라면 역시 세계 최고의 팀들 중 하나인 브라질이라 할지라도 뚫어내기가 힘들죠!”
“실점 위기를 코너킥으로 모면하는 대한민국! 전반전이 끝나기까지 앞으로 8분여가 남았지만 여전히 브라질과 점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선수들 부디 마지막까지 힘내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아···!
중계진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국인들의 함성 소리가 크게 터졌다.
점유율 상황이 73대27로 크게 밀리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실점하지 않고 균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 때문임을 다들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지쳐가고 있는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목청껏 응원의 함성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 되는 상황에 위치해 있는 브라질 관중들은 화가난 듯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아직까지 득점이 없다니! 대체 뭘하고 있는 거야?!”
“정신 차리라고! 골을 넣어야 이길 거 아냐? 한국 정도면 가볍게 이겨줘야지!”
“우우! 내가 뛰었어도 진즉 한 골은 넣었겠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운이 나빴던 거야, 운이! 힘내라, 브라질! 얼른 한 골 넣어줘!”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야.”
그런 야유가 뒤섞인 고함을 들으며 코너킥을 준비하기 위해 구석으로 향하는 네이마르는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들을 손등으로 훔치며 입술을 달싹였다.
벌써 시간이 전반 4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승부의 추가 팽팽한 것은 결코 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 경기를 뛰고 있는 네이마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코너 끝 쪽에 공을 걸쳐둔 후 뒤로 몇 발자국을 걸었고, 박스 안에서 수비에 나서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는 최재혁을 노려보며 콧가를 찡그렸다.
오늘 경기를 지금 이 상태까지 끌고 온 장본인이자, 자신을 가만두지 않은 상대를 노려보면서 네이마르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비록 지금까진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겠지만···.
‘이제 슬슬 너도 한계겠지.’
전반 초반과 비교했을 때 거칠어진 호흡이며, 뚝뚝 떨어지는 땀들이며.
게다가 경기 시간의 대부분을 수비에만 할애했으니, 체력적인 소모도 분명 자신보다 컸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네이마르가 숨을 골랐다.
앞으로 찾아올 단 한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잡았던 네이마르가 천천히 공을 향해 달렸고, 빠르고 낮게 떨어지는 코너킥을 차올렸다.
뻐엉!
멈췄던 공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선수들의 움직임이 격해졌다.
공을 골대에 넣기 위해, 혹은 막기 위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수들은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공을 향해 뛰었고, 그런 목적에 가장 가까웠던 것은 타이밍에 맞춰 높게 뛰어오른 수비수인 미란다였다.
오늘까지 수십, 수백 번을 연습했던 만큼, 그 누구보다 코너킥에 대해선 자신이 있었던 자신의 이마로 떨어지는 공을 정확히 맞춰 골대 구석을 노리는 헤딩슛으로 연결시켰다.
곧 파앙, 짧고 강한 소리와 함께 공이 뚝 떨어졌고.
“흐압!”
기합을 토해내면서 공을 향해 몸을 날린 정형우 골키퍼가 손끝으로 미란다의 헤딩슛을 걷어냈다.
조금만 늦었어도 골대 안에 박혔을 헤딩슛을 지켜보며 한국 관중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아직 모든 게 끝난 게 아니었다.
손끝으로 걷어낸 탓에 멀리 가지 못 한 공.
그 공을···.
“네이마르!”
오늘 경기에서 가장 위협적인 선수가 리바운드로 받아냈다.
관중들 사이에서 희비가 또 한 번 엇갈렸다.
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며 기뻐했던 한국 관중들은 불안함에 양손을 모았고, 좋은 기회가 날아간 것에 아쉬워하던 브라질 관중들은 주먹을 움켜 쥐고 엉덩이를 들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기대가 잔뜩 쏠린 공을 오른발로 한 차례 컨트롤 했던 네이마르는···.
“이건 절대 안 놓쳐.”
“!”
바로 슈팅을 때리지 않고 공을 발바닥으로 밟은 후 그의 오른편으로 굴렸다.
그 가벼운 굴리기에 다리 사이를 허용하고 만 김수용은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몸을 틀었으나, 이미 네이마르는 굴려놓은 공을 다시 취하고 있었고···.
뻐엉!
체중이 실린 강한 슈팅이 폭발하듯 쏘아졌다.
선방을 위해 중심을 잃었던 정형우가 무너진 자세로 몸을 던져보았으나,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기에 헛손질에 가까운 몸부림이었고, 그렇게 골대 중앙에 꽂힌 슈팅이 득점으로 인정되면서 마침내 브라질이 한 점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득점을 기뻐하며 검지를 펼친 채로 양손을 하늘로 뻗어 올린 네이마르.
그는 세레머니를 펼치기 위해 관중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달리려다가 자신의 바로 뒤에 서있는 선수와 충돌하면서 몸의 중심을 잃었다.
네이마르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충돌한 선수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 헛숨을 삼켰다.
‘최재혁?! 대체 언제 여기에 와있던 거야?’
분명 슈팅을 때리던 상황에서 자신은 프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저곳에 최재혁이 서있다는 건···.
‘조금만 늦었어도 또 커트 당할뻔 했다고?’
하, 설마.
분명 좀 더 나중에 온 것이겠지.
말도 안된다며 혀를 차고 몸을 일으킨 네이마르는 예정했던 대로 브라질 관중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달려가 소리를 내지르며 세레머니를 진행했고, 그런 브라질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김수용은 머리를 감싸쥐고 자책했다.
“좀 더 침착했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슈팅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었어!”
“주장.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아.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이건 도저히 다른 사람들을 볼 면목이···.”
“주장.”
그렇게 또 한 번 자신을 책망하며 고개를 숙이려는 김수용을 재혁이 불러 멈춰세웠다.
재혁은 수용이 고개를 들자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다니까요. 한 점 정도는 빼앗길 거 충분히 예상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요. 상대가 다른 팀도 아니고 브라질인데, 실수 없이 막는 게 오히려 욕심이지 않겠어요?”
“재혁아.”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요. 실수로 한 점 정도는 넘겨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니까요. 오늘 이기는 게 목표라면 말이죠.”
“오늘···, 이겨?”
“설마 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죠?”
반 쯤 농담, 반 쯤은 진담을 섞어 말한 뒤 진한 미소를 보인 최재혁.
그는 이어지는 한 마디엔 농담 없이, 오직 진지함만을 담아 말했다.
“오늘 경기가 끝났을 때, 8강행 티켓을 손에 쥐고 있는 건 브라질이 아니라 우리가 될 거라고요.”
< 214. 단 한 명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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