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05화 (205/225)
  • < 205. 현대에서 미래로 >

    “최재혁 선수의 감각적인 슈팅! 가슴 트래핑 후 시도한 논스톱 하프 발리 슈팅이 빠르게 뻗어 나갑니다!”

    “잘 감겼어요! 각도도 좋은데요! 아! 하지만 슈팅은 골대를 때리고 바깥으로 벗어나고 맙니다!”

    “기대가 컸던 사람들의 아쉬움이 가득 담긴 탄식 소리가 사방에서 터지네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경기장이 무너지는 소린줄 알았습니다.”

    “그럴만도 하죠. 다른 팀도 아니고 독일을 상대로 이런 결정적인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분명 나쁘지 않은 시도였습니다. 만약···.”

    재혁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서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사네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만약 사네가 아니었으면 들어갔을 걸요.”

    “···내 입장에선 정말 다행이지.”

    “느낌 되게 좋았는데, 진짜 아쉽네요. 차는 순간 ‘이건 골이다!’라는 느낌이 자주 오지 않잖아요?”

    “···.”

    골라인 밖을 넘은 공이 잔디 위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중얼거린 재혁의 한 마디에 사네는 침을 삼켰다.

    자유를 주면 원하는 곳 어디든 슈팅을 꽂아 넣을 능력이 있는 재혁이 흘린 한 마디였기에, 사네는 그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라며 진땀을 흘린 것이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 슈팅은···.

    ‘재혁이가 말했던 것처럼 100%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며 공이 스치고 지나간 자신의 축구화를 내려본 사네.

    정말 위험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재혁의 슈팅 장면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다가 고개를 세차게 털어내며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라. 아직 코너킥이야. 이것까지 막아야 해. 그리고 막았다고 하더라도 남은 시간 동안 절대 안심하면 안 돼!’

    마음을 놓는 순간 틀림없이 날아올 재혁의 비수는 분명 치명적일 것이니.

    사네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으며 코너킥을 준비 중인 재혁을 노려보았다.

    네가 어떤 킥을 차던, 반드시 걷어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말이다.

    삐이익!

    그렇게 주심의 휘슬에 멈췄던 다리를 움직인 재혁은 길게 뻗은 디딤발 이후 오른 발로 공을 강하게 차올렸고, 박스 안을 목표로 뱀처럼 휘감겨 떨어지는 공을 지켜보며 킥 이후 자세를 고쳤다.

    패널티 마크 주변에 모여 있는 동료들의 머리를 노리고 올린 공.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재혁이 원하는 지점을 목표로 공은 낙하하고 있었으나.

    파앙!

    공이 동료들의 머리에 닿기 전, 그보다 먼저 길목을 읽고 몸을 날린 독일 골키퍼 노이어의 펀칭이 코너킥의 줄기를 잘랐다.

    그렇게 위로 높게 굴절된 공을 쫓아 모두의 시선이 이동했고···.

    퉁!

    박스 밖에 떨어진 공을 사네가 잡았을 때, 선수들 사이의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역습 찬스다! 달려!”

    “막아! 공격 템포를 죽여야 돼!”

    “공이 중앙 선을 넘기 전에 잘라!”

    다시 되찾아온 공격권을 가지고 한국을 압박하려는 독일 선수들은 수비를 위해 뭉쳤던 진영을 재빨리 풀며 공격 진영으로 태세를 변환했고, 세트 피스에 참여 하기 위해 올라왔다가 역습을 당하게 생긴 한국 선수들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면서 크게 소리쳤다.

    승리라는 기적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맞이하기 위해서 점수는 반드시 균형을 지켜야 했는데, 만약 이번 독일의 역습에서 실점을 허용한다면 지켜오던 모든 게 무너질게 뻔히 보였던 것이다.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이 상대하게 될 건 단순히 실점 한 점이 아닌 경기장 위로 쏟아질 좌절이었으니.

    균형을 잃는 순간 가능성은 부정당할 것이고, 갖고 있는 것도 잃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세계 최강’에게 1점을 내준다는 의미이자 ‘약체’가 품고 가는 약점이었다.

    어떻게든 그 약점을 노출하지 않으려면 이번 독일의 역습을 어떻게든 실점 없이 틀어 막아야 했기에 한국 선수들의 다급한 얼굴로 큰목소리를 내지르며 달렸지만,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방향을 전환하며 드리블을 치고 달리는 사네의 앞을 가로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속도를 무리하게 따라가려다가 사네에게 돌파를 허용할 뻔 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끊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시도는 단 한 가지.

    ‘파울로 끊는다!’

    독일의 역습이 진행 중인 만큼 위험한 반칙을 시도할 시 카드를 받게 될 위험이 컸으나, 실점을 카드 한 장과 맞바꾸는 거라면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교환이었다.

    아까부터 사네를 붙잡아보려 노력하던 이최민은 마음을 정한 듯 사네의 곁에 바짝 다가갔고, 다리를 길게 뻗으면서 깊숙한 태클을 시도했다.

    이대로 공과 함께 사네를 넘어뜨리리라.

    공만 빼내면 베스트, 공과 함께 사네를 넘어뜨려도 이득, 사네만 다리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면 최악이겠지만, 이로 인해 적어도 공은 확실히 멈추게 될 거라는 한 가지 결과는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니.

    ‘적어도 손해는 없어!’

    촤아악!

    이최민은 발끝을 시작으로 허벅지로 잔디를 훑으며 슬라이딩 태클을 집어 넣었고···.

    토옹!

    “헉?!”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진 것에 놀라 참고 있던 숨을 뱉었다.

    분명 놈은 자신과 라인을 맞추고 달리고 있었을 것인데.

    멀어봐야 한두 걸음 차이였을 것인데.

    사네는 자신이 태클을 시도하는 순간 가속력을 폭발시켜 태클 범위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이다.

    저런 말도 안되는 운동 능력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태클 안 했다고!’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 속에서 목표를 잃은 이최민의 태클은 허공을 헛치면서 잔디 위를 거칠게 뒹굴었고···.

    ‘아직 끝이 아니야! 더 갈 수 있다!’

    이최민의 압박에서 벗어나자 자신감을 얻은 사네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제 막 중앙선을 넘었고, 상대 골대까진 아직 50여 미터를 더 가야 했지만 문제 없었다.

    오히려 달릴수록 더 힘이 났다.

    지금 그의 앞을 가로 막을 선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최종 수비수가 계속해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긴 했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달려들었다가 혹시라도 돌파를 허용한다면 그땐 정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니, 최후의 안전 장치로서 계속 저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쪽에서 파고들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투웅, 투웅, 투웅!

    마음을 정한듯, 드리블에 힘을 실은 사네의 움직임이 전과 달라졌다.

    바깥 라인을 따라 이동하면서 일단은 전진에 목표를 두고 있던 것과 달리, 보다 뚜렷한 목표를 지니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중앙 파괴.

    상대의 마지막 방어선을 직접 파괴하고 골문에 공을 집어 넣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네는 공을 가지고 서서히 중앙을 파고들어온 것이다

    그런 사네의 드리블에 최종 수비수 고영훈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이걸···, 막아야 하나? 아니면 계속 거리를 유지해야 하나?’

    고영훈은 쉽사리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그가 뚫리면 사네는 그대로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가 아는 사네라면 그런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공격수가 아니었다.

    정답이 없는 선택지들을 앞에 두고서 고명훈은 입술을 씹었다.

    ‘망할···! 조금이라도 사네의 드리블 속도를 줄일 수 있다면 정수형이 따라와 커버해줄 수 있을 텐데! 아니면 적어도 용구가 달라붙을 수 있게···, 헙!’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가장 ‘안전한’ 수비법을 강구하던 고영훈의 두눈이 커졌다.

    끊임없이 이동하며 거리를 좁혀오던 사네가 드리블을 길게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저게 무슨 의미인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기에 고영훈은 더 이상 선택을 고민하고 있을 수 없었다.

    녀석은 지금 자신을 뚫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도 선택을 내릴 때였다.

    어중간한 마음가짐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할 터이니···.

    ‘내가 막는다!’

    콰칵!

    뒷걸음질을 치던 고영훈이 무게 중심이 쏠려 있는 뒷발에 힘을 주어 잔디를 밟았다.

    곧 그가 신고 있는 축구화의 스터드들이 잔디 사이사이로 깊숙히 파고 들었고, 뒤로 빠지던 그의 몸이 멈췄다.

    고영훈은 달려드는 사네에게 정면 승부를 걸었다.

    그가 달려드는 코스를 몸으로 막아선 뒤 이동하는 방향을 노려 잘라내겠다는, 보이는 상황 그대로 일대일 승부를 건 것이다.

    그런 영훈의 선택에 사네의 입꼬리가 살며시 말려 올라갔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사네를 노려보면서 영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왼쪽이냐? 아니면 오른쪽이냐?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사네가 어떤 방향을 고를지 기다리던 영훈은···.

    “‼”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사네가 고른 선택지는 양쪽 모두 아니었으니까.

    정중앙.

    사네는 영훈의 다리 사이로 공을 굴려 넣은 후 재빨리 통과하면서 그의 수비를 뚫어낸 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멈춘듯 멈추지 않고 영훈을 돌파해낸 사네는 계속해서 공을 몰고 이동했고···.

    “정형우 골키퍼, 나와야 합니다! 앞을 막아줄 방패들이 사라졌으니 혼자 막아야 합니다!”

    “사네 선수는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이동하고 있고요! 정형우 골키퍼가 튀어 나오는 타이밍을 노려서···, 옆으로 꺾었습니다! 아, 골키퍼 마저 돌파하는데 성공한 레로이 사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비어 있는 골대에 공을 집어 넣습니다!”

    “마침내 승부의 추가 기울었습니다. 먼저 득점을 성공시킨 팀은 독일입니다. 선취골을 터트린 사네 선수,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네요.”

    “이걸로 한국은 이제 남은 60분 이상의 시간을 가시밭길 위에서 걷게 되었습니다. 과연 임종철 감독은 이 위기를 어떤 수로 극복할지···.”

    ***

    “큭큭큭, 하하하! 그럼 그렇지, 저 좌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라고! 꼴좋군, 임종철!”

    독일이 득점을 성공시키는 상황을 TV를 통해 확인한 조강연 부회장이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혹시나 싶었던 걱정은 역시 혹시나에서 그치면서 모두의 예상처럼 독일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선수들의 노쇠화라던가, 선수들간의 조합의 문제를 꺼내며 독일이 예전 같지 않다고 사람들은 떠들었지만, 그런 독일이라도 한국 대표팀 정도는 가볍게 찍어 누를 힘이 있었다, 라고 조강연 부회장은 믿고 있었고, 그 믿음대로 경기는 독일의 우세 속에서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사네에게 실점한 이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며 얼굴을 쓸어내린 임종철 감독.

    그런 임종철 감독을 노려보면서 조강연 부회장은 계속 소리쳤다.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게 조용히 주는 거나 받아 먹을 것이지, 주제를 모르고 그 위를 넘 봐? 크흐흐, 그대로 팀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라!”

    “하, 하지만 부회장님. 대표팀 성적이 좋지 못하면 분명 우리들도···.”

    “뭐 그런 걸 걱정하나. 저기 저렇게 자르기 좋은 제물들이 있는데. 큭큭큭, 임종철이랑 강철우, 그 놈들 목을 쳐내면서 적당히 둘러대면 돼, 적당히. 그러면 자연스럽게···.”

    실실 웃으면서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던 조강연 부회장의 눈썹이 꼬였다.

    그들이 지켜보는 있는 TV 화면으로 무언가 묘한 것이 한 차례 떠올랐다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말을 멈춘 조강연은 신중한 얼굴로 재개된 경기장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뭐야, 저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잔뜩 찌푸린 표정을 펴질 못 했다.

    분명 전까진 재혁의 위치는 2선이었던 것 같은데, 그의 위치가 전과 다르게 굉장히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3선을 커버하는 자리엔 분명 김수용이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거늘.

    ‘왜 최재혁이 김수용이 있는 3선까지 내려온 거지?’

    한 골을 얻어 맞더니 추가 실점이 두려워 최재혁을 내린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인 미스로 인한 진영 유지의 실수인가?

    모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때, 한 남자, 브라질 국가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치치 감독은 변화한 한국 진영을 확인하면서 크게 웃었다.

    “그래. 그렇지. 지금의 독일을 부수려면 저 18번은 아래로 내려가야 맞지. 클클, 누가 내린 선택인 지는 몰라도 경기를 읽는 눈이 정확한데? 역시 이 경기를 지켜보길 잘했군. 점점 재밌어지고 있어.”

    “눈이 정확하다고요? 하지만 전 이해가 되질 않는데요.”

    다만 그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코치는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다.

    “이미 실점을 하고 말았는데 뒤늦게 중심을 뒤로 낮추는 건가요? 수비적인 플레이를 원했다면 처음부터 18번을 뒤에 놓고 시작했으면 되는 거였잖아요? 왜 굳이 이제 와서···.”

    “그야 ‘지금’ 실점을 했으니까.”

    “예?”

    지금 실점을 해서 18번을 뒤에 놓는다니.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치치 감독의 대답에 코치는 미간을 모았고, 그런 코치를 향해 치치 감독이 간단히 한 마디를 더했다.

    “지금부터 펼쳐질 플레이를 잘 지켜 봐.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 오늘 경기는 21세기 축구 전술사에 새로이 기록 될 한 페이지가 될 테니까. ‘현대’ 축구를 깨는 ‘미래’ 축구의 방향성···, 저 18번 꼬마 최재혁을 중심으로 말야.”

    < 205. 현대에서 미래로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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