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04화 (204/225)

< 204. 신뢰받는 선수 >

“사네. 새로 들어온 선수에 대해 알아? 이름이 최재혁이라던데.”

“최재혁? 그런 이름 처음 듣는데. 어디서 왔대?”

“한국인인데 호주에서 왔다던가.”

“한국인이면서 호주에서 왔다고? 그거 엄청···.”

특이하네.

재혁에 대한 내 첫 느낌은 딱 그거였다.

한국식 이름 때문도 아니었고, 2천만 파운드라는 이적료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이 친구는 특이할 거라고, 그런 느낌을 처음 재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것이다.

그리고 재혁에 대한 감정은 첫 만남 이후 더 강렬해졌다.

‘이게 정말 19살이라고?!’

1군 훈련에 합류한 재혁과 처음 발을 맞췄을 때 최재혁이 보여준 실력.

눈으로 직접 보고, 또 경험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그 실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특이해질 거라고, 아니. 특별해질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U-21 멤버들만으로 리그 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1군에 합류해 리그와 FA컵을, 그리고 마지막엔 챔피언스 리그까지 우승했다.

모두 재혁이 팀에 있었기에 따낼 수 있었던 타이틀들이었다.

그런 재혁과 함께 뛰면서 즐거웠던 동시에 두려웠다.

만약 미래에···.

‘재혁이와 다른 팀으로 뛰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본인도 모르게 내면에 자리한 것이다.

그 두려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땐 진심으로 무서웠다.

재혁이가 팀에서 사라진다면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정도로 재혁이 보여준 능력과 기술들이 대단했던 것이다.

공을 원하면 재혁이 찔러준 패스가 이미 그의 발밑에 도착해 있었고, 도움이 필요할 땐 누구보다 먼저 재혁이 다가와 그의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그랬던 동료가 팀을 떠난다면, 혹은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나는 누구와 함께 발을 맞춰야 하는가?

그런 걱정들은 실제로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고, 국가대표로 팀에 합류했을 때 나를 부진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이곳엔 최재혁이 없었으니까.

그런 내 고민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건 같은 클럽 팀 소속이면서 함께 독일 대표로 팀에 합류한 귄도안이었다.

단체 훈련이 끝나고 혼자 킥을 연습하고 있을 때 다가온 귄도안은 방황하고 있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재혁이가 없어서 힘들지?”

“아뇨. 괜찮아요. 제가 모자라서 그런 거잖아요.”

“그런 것치곤 오늘 훈련할 때 불만이 제밥 많아 보이던데? ‘재혁이가 있었다면···’ 이라고 생각하는게 내 눈엔 다 보였어.”

“···.”

“틀린 말은 아니야. 만약 최재혁이 이곳에 있었다면 네가 ‘원하는’ 패스를 언제든 찔러 줬겠지. 완벽하고, 실수없이, 너를 ‘100%’ 사용할 수 있는 패스들을 말야. 하지만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제가 원하는 거요?”

“그래. 네가 원하는 거. ‘최재혁’의 사네로 남고 싶은 게 네가 원하는 거냐고?”

“···!”

“내가 재혁이라면 오히려 그런 건 바라지 않을 거야. 경기장 위에서 뛰는 ‘사네’이기 때문에 패스를 줄 가치가 있는 거니까. 이건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

귄도안과의 짧은 대화 이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짧았던 대화와 달리 고민은 날이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갔고, 복잡해졌다.

이대로 영엉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에 쉬이 잠에 들지 못하던 어느 날 밤.

나는 마침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 모습을 통해서.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네 플레이를 지켜내고 빛을 발하는 네 모습을 통해서 나도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나는 그 답을 증명해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길 거다!”

상념을 접으면서 앞으로 뛰어간 사네는 재혁의 어깨를 두드린 뒤 손을 뻗으며 소리쳤고, 재혁은 갑자기 등장한 사네를 발견하고 눈동자가 커졌다.

소속 팀에선 항상 같은 팀으로 뛰었지만, 오늘은 적으로 만나게 된 사네.

서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꺾어야 할 상대였지만···.

‘역시 이 얼굴을 보면 다른 거보다 웃음이 먼저 나온다니까.’

큭큭, 사네를 발견하고 곧장 웃음부터 터트린 재혁은 이내 사네가 뻗은 손을 맞잡으면서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요. 서로 최선을 다해요. 하지만 우리가 이길 걸요.”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야. 두고 보라고.”

“그럼···, 경기가 다 끝나면 그때 다시 봐요.”

“그래! 경기가 끝나고 나서 다시 보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간 사네.

그런 사네의 뒷모습을 슬쩍 확인한 재혁은 호흡을 다졌다.

그러면서 잠시간 눈을 감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한동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재혁이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고···.

“하지만 역시 이기는 건 우리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발을 움직였다.

마침내 모두의 운명이 정해질 경기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

와아아아···, 와아아아···.

시간이 흐를수록 경기장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이기는 팀은 올라가고, 지는 팀은 떨어지게 되었으니.

16강으로 올라가는 운명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서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고, 관중들도 그런 선수들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자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처럼, 독일 대표팀을 지도하는 뢰브 감독도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선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항상 중앙에서부터 시작해, 중앙에서부터! 쥘레, 조금 더 올라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잖아? 뒤로 밀리지 말고 앞에서 싸우라고!”

경기가 진행된지 벌써 25분째 였다.

전반전이 반 이상 흘렀다는 소리였으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점수판은 아직도 득점이 없어 0대0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점이 독일의 모두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한국과 비교 했을 때 어느 부분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는 독일이었지만, 오직 한 가지, 시간에서 만큼은 우위를 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팀이 약팀을 상대할 때 갖게 되는 유일한 약점, 시간.

뢰브 감독은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아직까진 괜찮아. 시간은 분명 우리 편이 아니지만,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페이스를 쭉 유지하면 돼. 지금처럼만, 계속 지금처럼만 공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뻐엉!

“아!”

박스 왼쪽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시도한 로이스의 슈팅이 골대 바깥으로 빠졌고, 독일인들의 입에선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도 잠깐이었을 뿐, 좋은 시도였다며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고, 뢰브 감독도 고개를 들라며 로이스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자신들에게 부족한 건 골대를 노리는 기세였으니까.

이대로 상대를 계속 압박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뢰브 감독은 잠시 벤치에 앉았고.

‘···이대로 가면 안 돼.’

필드 위에서 가빠진 숨을 고르던 사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공이 그의 발밑에 있든, 없든 한 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던 탓에 숨소리가 격해졌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까.

사네는 무릎에 양손을 올리면서 굽히고 있던 상체를 폈고, 필드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최재혁을 확인한 뒤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좋은 슛코스를 재혁이가 모두 차지하고 막고 있었어. 지금 로이스의 슈팅 때도 그랬고, 베르너의 슈팅 때도, 그리고 외질의 슈팅 때도 마찬가지로 말야.’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사네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최재혁이란 존재가 지금 경기장 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말이다.

플레이가 슈팅까지 이어졌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요소였으나, 그 슈팅이 위협적인 슈팅이었느냐고 물으면 사네는 바로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실제로 골문으로 향한 슈팅이 없기도 했지만, 만약 골대로 향했다 하더라도 십중팔구는 골키퍼의 장갑에 걸렸을 게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슈팅 당시 재혁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가 말해주고 있었다.

‘골문 바깥쪽 코너로 향할 각도를 재혁이가 완벽하게 틀어막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각은 골대 중앙과 가까운 코너뿐이었지. 둘 다 골키퍼가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각도들이야.’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위협적인 곳을 목표로 차다보니 동료들이 때린 슈팅들이 모두 골대 바깥으로 빠진 것이다.

위협적인 슈팅이 골로 연결되고, 아니고는 정말로 한 끗차이였으니까.

후우, 생각을 정리하면서 긴 숨을 토했던 사네는 한국의 골키퍼가 공을 차는 것을 확인하면서 멈추었던 발을 움직였다.

슈팅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다시 공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플레이를 이어가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떨어지는 공을 놓고 양팀 선수들이 경합을 벌였고,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한국 선수가 공을 머리로 떨어뜨리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네는 계속 달렸다.

떨어진 공을 먼저 잡은 사람은 한국의 주장 김수용이었고, 수용은 공을 받기 무섭게 곧장 앞쪽으로 찔러 넣었다.

빠른 속도로 구르기 시작한 공은···.

투웅.

중앙선을 넘어 독일 진영을 향해 달리고 있던 재혁의 발 아래서 멈췄다.

단순히 공을 잡았을 뿐이거늘.

그 대상이 재혁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주변 공기가 바뀌었다.

독일 선수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재혁과 그의 발밑에 놓여 있는 공을 노려보았고, 한국 선수들은 전과 달리 움직임에 생기가 깃들었다.

‘재혁이라면 분명 무언가 해줄 거다!’

마치 신을 향한 종교인의 맹목적인 믿음처럼, 재혁이라면 무언가 해줄 것이라는 일방적인 신뢰.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 선수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그리고 사네 또한 죽을 힘을 짜내 수비 진영에 합류했다.

공격이란 수비가 바탕이 되어야 진행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일단은 한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게다가 그 상대가 재혁이라면 망설일 시간따윈 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재혁은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이동하다가 가볍게 밀어 찼다.

독일의 왼쪽 측면을 허물고 파고 드는 예기훈을 포착하고 패스를 찔러준 것이다.

코너 플래그가 위치해 있는 구석에서 재혁의 패스를 이어 받은 예기훈은 공을 터치함과 동시에 방향을 틀었고, 해당 측면을 방어하고 있던 독일의 헥토르는 자세를 낮추면서 눈동자를 빛냈다.

드리블을 치면서 접근해오는 상대가 어느 방향으로 돌파를 하려는 것인지 읽으려 한 것이다.

개인기에 자신이 있는 선수라면 터치 라인을 최대한 활용해 바깥 쪽을 공략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한국이라면···.

‘최재혁이 있는 경기장 안쪽을 사용하고 싶겠지!’

‘이, 읽혔다!’

콰가각!

코너 구석에서 패널티 아크 방향으로 공을 몰고 이동하려던 예기훈은 공을 움직이기 무섭게 길목을 막아서는 헥토르의 발에 당황해 그만 발을 멈추고 말았다.

목적과 목표를 상대에게 완벽하게 읽힌 것이다.

그 틈에 헥토르는 또 한 번 강하게 상대를 압박했고, 완벽히 방향을 잃고 만 예기훈은 공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대로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어떻게 찾아온 공격 기회란 말인가.

예기훈은 공을 가지고 뒤로 움직이다가 용기를 내 발꿈치로 공을 밀어낸 후 재빨리 공을 쫓아 달렸다.

힐 앤 러쉬.

공의 이동 방향을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뒤꿈치로 틀어 상대가 당황하는 틈을 노려 허점을 파고드는 돌파법이었다.

상대하는 수비수가 자신이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더욱 허점을 노출하기 쉬운 돌파였기에 예기훈은 나름 용기를 냈던 것이었으나.

‘안 속아!’

헥토르는 이번에도 예기훈의 움직임을 읽고 그를 쫓았다.

오늘 경기에서 진다면 말 그대로 탈락 확정이었으니, 헥토르는 매순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수비에 나선 것이다.

전혀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막으려 하는 헥토르와 몸싸움을 벌이게 된 예기훈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이대로 가면 뺏긴다.

그런 생각이 그의 뇌리를 파고 들자.

‘그건 절대 안 돼!’

“흐아아!”

예기훈은 이를 악물고 괴성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죽을 힘을 짜내 다시 한 번 달렸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헥토르보다 먼저 공에 다가가고, 그 공을 어떻게 해서든 박스 안으로 보내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예기훈의 옆을 따라 달리던 헥토르는 당황했다.

둘의 달리기 속도는 언뜻 비슷했으나, 현재 상황을 놓고 비교하면 공격자인 예기훈이 어태커 어드벤테이지 때문에 그보다 한 발 빨랐던 것이다.

‘크로스는 못 막아!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 헥토르는 예기훈이 공에 발을 대는 순간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고, 발등에 한 번 걸렸던 공은 박스 안으로 향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굴절됐다.

그렇게 소유권이 사라진 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던 선수들은···.

“최재혁이다!”

떨어지는 공을 향해 가슴을 내밀고 있는 재혁을 발견하곤 소리쳤다.

마치 처음부터 공이 이곳에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는 듯이 가슴으로 공을 받아낸 재혁은 떨어지는 공이 잔디에 닿기 전에 오른발을 휘둘러 슈팅으로 연결시켰고, 곧 뻐엉,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소리 만큼이나 매서운 속도로 골문을 노리고 깎여 들어가는 슈팅 궤적에 전세계가 숨을 죽였다.

저 속도와 궤적이라면 분명 범상치 않은 슈팅이었으니, 과연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지 기대하며 다들 소리 없이 침만 삼킨 것이다.

다만 기대에 찬 사람들과 다르게 슈팅을 때린 재혁은 공이 남기는 꼬리를 확인하면서 아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아, 이거 안 들어갔네.”

< 204. 신뢰받는 선수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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