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02화 (202/225)

< 202. 7% >

“임종철이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떠드는 걸 가만 냅뒀어?! 다들 제정신이야?”

콰앙!

조강연 부회장이 손에 쥐고 있던 신문을 책상 위에 내던졌다.

큰소리와 함께 주륵 밀려나간 신문지는 사방으로 퍼졌고, 조강연 부회장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던 인물들은 부회장이 읽고 있던 기사들의 제목을 확인하며 서로를 어색하게 마주보았다.

신문엔 며칠 전부터 오늘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스웨덴과의 졸전 이후 펼친 멕시코와의 경기.

독일과 비긴 멕시코를 상대로 우리나라 대표팀이 어려운 경기를 펼칠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2대1이라는 멋진 역전승을 일궈낸 축구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해야 할 협회라면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내용이거늘.

사람들은 그 기쁨을 틀어막고 있는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확인하곤 침을 꿀꺽 삼켰다.

극적이었던 경기 내용처럼, 기사들은 항상 마지막 문장을 극적인 내용으로 끝맺어 놓았던 것이다.

바로 임종철 감독의 ‘협회 저격’이란 문장으로 말이다.

부회장의 눈치를 살피는 인물들 중 한 남성이 애써 쓴웃음을 흘리며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그게, 인터뷰 중 갑자기 떠든 내용이라···.”

“분명 어떤 식으로 질문을 던지라고 기자들한텐 메뉴얼을 넘겼을 텐데?”

“메뉴얼은 분명 전달 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그런 식으로 대화가 어긋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후우···.”

얼굴을 감싸쥐고 한숨을 토해낸 조강연 부회장.

한동안 회의실엔 의자 등받이가 끼익거리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조강연 부회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래서, 여론은 어때?”

“제법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대응팀이 계속해서 작업 중이니, 분명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겁니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지겠지. 하지만 과연 시간이 지날 때까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느냐가 문제인데···.”

끼이익.

“음?”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들린 문소리에 모두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한창 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누가 여길 들어온단 말인가?

혹시 비서인가 싶어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조강연 부회장은···.

“헙···?!”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헛숨을 삼키며 두눈을 부릅떴다.

그런 조강연 부회장의 환대에 노인, 고명준 명예회장이 허허 웃으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왜 그렇게 놀라나? 귀신이라도 봤어? 내가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니니 갑자기 나타났다고 해서 귀신 취급은 말게나.”

“그, 그게 아니라···.”

“이 회의실도 참 간만이군. 이곳에 올 때면 내가 항상 지금 조강연 부회장이 앉아 있는 자리에 앉곤 했는데 말야.”

“지금 비켜드리겠습니다!”

“아니. 됐네. 다 늙어서 남의 자리를 탐하면 쓰나. 나는 이런 의자 정도면 충분해.”

“···.”

그렇게 대화를 끝내며 회의실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은 고명준 명예회장.

그런 고명준을 곁눈질로 살피던 조강연 부회장은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한 입술을 매만졌다.

저 노인네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던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왜 오늘 회의실에 모습을 나타냈단 말인가.

조강연 부회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라버린 입술을 침으로 적셨고, 그런 부회장을 가만히 지켜보던 고명준이 널부러져 있는 신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대화의 운을 뗐다.

“이번에 우리 대표팀이 아주 멋진 경기를 했다지? 포상은 따로 준비해두었나?”

“그게, 월드컵이 다 끝난 게 아닌 지라 포상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하긴. 이제 우승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인데, 벌써 포상을 정하긴 좀 아쉽지. 그럼, 그럼.”

“···.”

“그런데 말야. 어째 이곳 분위기는 월드컵 상황과 다르게 냉랭한듯 한데, 내 착각일까?”

자리에 앉자 비서가 내준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넘기면서 고명준이 말했고, 이에 조강연은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숙이고서 침묵했다.

상대는 고명준 명예회장이었다.

저 능구렁이같은 노인네가 가벼운 기분으로 회의실을 방문하고,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리 없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상황을 분석하던 조강연 부회장은 후우, 심호흡을 몇 차례 고른 후 간신히 마음을 정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임종철 감독이 ‘금기’를 깼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썩 좋지 못 합니다. 아니, 오히려 좋을 수가 없지요. 지금 이 회의는 임종철 감독에게 내릴 징계 수위에 관한 회의거든요.”

“금기라. 이 기사에 적혀 있는 문장인가보군.”

“예. 바로 그 문장입니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협회의 권위와 위신을 깎아내렸어요. 현재 이끌고 있는 대표팀이 순항 중이긴 하나, 이건 확실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겁니다.”

“흠, 징계라. 어디까지 생각해 두었나?”

“일단은 감봉을 기준으로 두고 있습니다.”

“정석적인 기준이군.”

“사실 계약 해지까지 고려하고 있었으나, 월드컵의 성적을 참작해 감봉 정도로 결과를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런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조강연 부회장과의 대화에서 연신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이던 고명준 명예회장.

그런 고명준의 행동을 살피면서 조강연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다행히도 고명준 명예회장과의 대화가 크게 틀어지지 않고 끝맺어지려 한 것에 안도한 것이다.

조강연은 이후 좀 더 자세한 일정에 대해 설명했고, 고명준은 그런 조강연의 설명을 조용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런데 말이네.”

“말씀하십시오.”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 임종철 감독과의 계약 기간은 이번 월드컵이 끝인 걸로 아는데, 그렇다면 굳이 감봉으로 처리할 게 아니라 그냥 해직으로 가닥을 잡는 게 낫지 않겠나?”

“···!”

그런 고명준 명예회장의 말에 조강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고명준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조강연과 시선을 마주치며 계속 말했다.

“감히 한 나라를 대표하는 협회를 상대로 저런 말을 했다면 확실히 본보기를 보여야지. 그래야 다음에 계약하게 될 감독들이 다른 생각을 못하지 않겠어?”

“마, 맞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기왕 본보기로 처리하려면 확실히 묻어야 해. 다시는 싹을 못 틔우도록 말야.”

“예! 그럼 바로 임종철 감독 해임과 함께 뒷일을 준비하겠습니다. 직언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하하. 뭘 그렇게까지 고마워하나. 내가 저지른 일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일 뿐인데 말이네.”

“···예?”

조강연 부회장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쫑긋인 두 귀를 의심했던 조강연 부회장은 당황한 듯, 굳은 얼굴로 고명준 명예회장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줄 것을 부탁했고, 이에 고명준은 허허 웃으면서 턱을 쓸었다.

“임종철 감독을 자리에 앉히도록 임원진들을 종용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오늘 정리를 하러 온 것일세. 정말 오길 잘했어. 하마터면 ‘겨우’ 감봉 정도로 벌을 치를 뻔 했으니. 백 번, 천 번 오길 잘했지.”

“···.”

“오늘 있었던 일들은 다른 임원들에게 내 쪽에서 전달하도록 하지. 조강연 부회장이 괜히 일을 두 번하게 만들면 내가 또 난처하니 말야. 그럼 편히 쉬게나. 아참참···.”

그렇게 바짝 얼어 붙은 사람들을 뒤에 두고서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던 고명준 명예회장.

그는 자리를 떠나기 전 간신히 떠올렸다는 듯, 손뼉을 마주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만약···, 임감독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그건 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려나?”

“···!”

“뭐, 그거야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겠지. 흘흘흘, 나이를 먹었더니 자꾸 헛걱정이 들어서 문제야. 그럼 다들 수고하게나.”

철커덕, 쿵.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고명준 명예회장이 떠났고, 회의실에 남게 된 사람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그 사이에서 조강연 부회장은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잔뜩 충혈된 눈으로 고명준이 떠난 문을 노려보다가···.

“이, 임종철 이 새끼! 처음부터 이럴 수작이었구나!”

꽈앙! 꽈아앙!

“부, 부회장님! 진정하십시오!”

“닥쳐! 나 말리지마,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콰앙, 쾅!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대로 폭주해버렸다.

그렇게 회의실 내부 물건들이 사방팔방을 날며 박살이 나고 있을 때.

“자, 이러면 다음 경기가 더 기대되겠지? 흘흘흘.”

건물을 빠져나온 고명준 명예회장은 차 뒷자리에 앉으면서 유리창 너머로 협회 건물을 살핀 후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독일과의 경기 날이 차근차근 다가왔다.

***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워워워!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독일 잡고 16강으로 가즈아!”

“태극기 무료로 나눠드립니다! 경기장 들어가실 때 하나씩 가지고 가세요! Korean flags for free! 한국 화이팅!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침내 찾아온 경기 당일.

경기가 진행될 카잔 아레나 앞에는 아직 경기가 시작되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뜨거운 열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양손에 태극기를 쥐고서 응원가를 쉴 새 없이 불렀고, 독일 팬들도 그에 질세라 잔뜩 목청을 키워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양 팀 팬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곳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한국과 독일이 정말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군요. 이기는 팀이 16강으로 직행합니다. 이 경기는 양팀 모두 절대로 물러설 수 없죠.”

“그리고 그런 만큼 한국은 정말 힘든 경기를 하게 될 겁니다. 독일은 오늘 경기에 모든 걸 쏟아 낼테니 말이죠.”

“그렇습니다. 비록 멕시코와 비기면서 어려운 출발을 했지만, 스웨덴을 꺾으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어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독일을 과연 한국이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 크군요.”

미국의 폭스 스포츠 채널.

중계가 시작되기 전, 양팀의 전력을 분석하고 있는 해설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늘어 놓으면서 목소리에 힘을 주었고, 사전에 진행된 설문을 보여주면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은 독일의 압도적인 승리를 점치고 있던 것이다.

사실 누가 보아도 당연한 결과였다.

상대가 다름 아닌 유럽의 강호이자 2014년 대회 챔피언인 독일이었으니까.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 중 78%가 독일의 승리를 찍은 건 분명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15%의 확률로 무승부를 예상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승리를 찍은 7%.

“글쎄요. 공은 둥글지 않습니까?”

오늘 자리한 해설자들 중 유일하게 7%에 속하는 선택을 내린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는 7%에 속한 사람들을 대변해 말했다.

“확실한 경기 결과는 90분이 모두 지나기 전까진 절대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 202. 7%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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