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00화 (200/225)

< 200. 마음 편하게 >

사악.

떨어지는 공이 부드럽게 최주성의 발 아래서 멈췄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공에 발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공은 마치 자석에 붙는 쇳조각처럼 자연스레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재혁의 패스가 그만큼 받는 사람을 배려한 패스였다는 의미이리라.

공이 잔디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한 차례 공을 밀며 앞으로 이동한 최주성의 눈으로 주변 상황들이 들어왔다.

신형민과 공중볼 경합을 벌였던 모레노는 아직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그와 함께 최후방 라인을 구축하고 있던 반대쪽 센터백 살시도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온 이경훈을 마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명을 커버해야 할 엑토르 에레라는 최재혁에 의해 자리를 이탈한 과르다도의 백업을 위해 한 발 빼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자유’.

무엇을 해도 가능할 것 같은 자유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에 최주성의 머릿속은 오히려 하얗게 변했다.

너무도 갑작스레 찾아온 기회가 그의 사고 회로를 정지시킨 것이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키던 최주성.

허나 머지 않아 그의 두눈은 빛을 되찾고 깨어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 알려준 것이다.

재혁이 보내준 패스가 말이다.

투웅!

최주성은 본능에 이끌리듯 공을 한 번 더 밀었고, 사각의 패널티 박스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주변 함성 소리가 커졌다.

멕시코 선수들의 당황한 목소리들도 덩달아 커졌다.

그들은 다급한듯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무어라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멕시코의 골키퍼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기까지가 주성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촤아아악!

투웅, 쿠웅, 쿠웅!

오초아 골키퍼의 슬라이딩에 휩쓸린 주성의 몸이 한 차례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고, 오초아 골키퍼 또한 주성과의 충돌로 인해 잔디 위를 굴렀다.

해당 장면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파울인가?

아니면 골키퍼 차징인가?

그것도 아니면···.

“···!”

복잡한 심정으로 최주성과 오초아 골키퍼가 뒤엉켜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둘 사이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축구공.

주성이 몰고가던 공은 두 사람의 충돌에서 빠져나와 느린 속도로 데굴데굴 굴러 골라인을 넘고 있던 것이다.

뒤늦게 멕시코 선수들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이미 그 사이 공은 완벽히 골라인을 넘은 상황.

삐이이익!

“우와아아, 골이다아!”

“골이야, 동점골이야!”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한국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마침내 터진 동점골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다.

그리고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사람들도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서로를 부등켜 안으며 떠들었다.

“대단한 집중력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최주성 선수,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동점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마침내 이번 월드컵 첫 골이 터졌습니다! 한국과 멕시코, 드디어 1대1!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월드컵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선수들이 심판에게 골키퍼 차징이 아니었냐고 항의하지만,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분명 최주성 선수의 슈팅이 더 빨랐지요? 공이 없는 선수를 향한 슬라이딩은 오히려 골키퍼의 파울이죠! 예상대로 득점으로 인정 됩니다!”

“기뻐하는 최주성 선수와 그를 축하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역시 이 득점은···.”

“최재혁 선수의 투입으로 시작된 득점이죠.”

다시 한 번 화면에 나오고 있는 한국의 득점 과정을 지켜보면서 콜린이 말했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캐스터의 질문이 바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런 캐스터의 질문에 콜린은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저 말고도 다른 분들도 눈치채셨겠지만, 최재혁 선수가 후반전에 투입되고 20분간 한국은 몇 가지 ‘패턴’들을 실험했습니다.”

“패턴들이요?”

대체 그런 실험이 언제 있었냐고 캐스터가 의아한 얼굴로 물은 것에 콜린은 웃으며 답했다.

“바로 최재혁 선수가 패스를 할 때 실험했었지요.”

“최재혁 선수가 패스를 할 때요?”

“경기에 투입되고 20여 분간 최재혁 선수는 무난한 패스들을 반복했습니다. 읽기도 편했고,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한, 별 특별하지 않은 패스들이었죠. 하지만 그건 바로 지금 이 한 골을 만들기 위한 셋업이었던 겁니다.”

“그게 셋업이었다고요?”

“최재혁 선수가 중앙에서 측면으로 라인을 끌어 올리는 패스를 시도했을 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었죠. ‘아, 저 패스는 측면에서 멈출 거야’라고 말이죠.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되묻는 콜린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보인 캐스터.

그 무언의 긍정에 콜린은 자신 또한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 패스에 깜빡 속아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겁니다. 바로 다른 선수들의 반복되는 ‘오프 더 볼 움직임’을 말이죠.”

“오프 더 볼이요?”

“최재혁 선수의 주요 패스 장면들을 살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저게 어떻게 셋업이 되었는 지를 말이죠. 한국의 최전방에서 골대를 노리는 세 명. 그 세 명의 선수들은 모두가 매 순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어요. 최재혁 선수가 공을 찰 때, ‘최재혁의 패스는 반드시 자신을 향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정말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성실히 말입니다.”

“아···!”

“물론 그 전까진 모두 측면으로 향하는 평범한 패스들이었지만, 방금 도움을 기록한 패스는 상대 수비수들을 단 한 번의 패스만으로 완벽하게 붕괴시키는 엄청난 패스였죠. 그런 패스를 찔러 보낸 최재혁 선수의 능력도 대단했지만, 그 패스를 쫓아 이동한···, 최재혁 선수의 ‘사기’에 적절히 반응한 파트너들의 활약도 충분히 대단했다는 겁니다. 신뢰와 믿음이 밑바탕이 된 정말 멋진 한 골이었어요. 제가 기대하던 그런 모습을 드디어 최재혁 선수가 보여줬군요.”

하하하, 만족한 얼굴로 웃으며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컵을 찾은 콜린 벨.

다만 그런 콜린과 달리, 함께 앉아 있는 해설자들은 불편한 듯 연신 목을 가다듬었다.

설마하니 정말 그가 했던 말처럼 최재혁의 활약을 통해 한국이 멕시코를 따라가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들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이건 우연이다.

방금 저건 운좋게 들어간 패스에 우연히 최주성이란 선수와 발이 맞았을 뿐라며, 운에 기대어 잠시 반짝였지만 분명 결과는 실력에 의해 결정이 날 것이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어질 경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아···.”

넋이 나간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경기 결과는 실력에 의해 결정이 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한국의 18번, 최재혁에 의해서 말이다.

***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는 과르다도는 잔뜩 지쳐보였으나 계속해서 달렸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만약 지금 멈춘다면, 달리고 싶어도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과르다도는 그 원인이 되는 상대를, 최재혁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꼬마 자식한테 또 뚫리면···, 그렇게 되면 이젠 정말 끝이야!’

“허억, 허억, 허억!”

쉴 새 없이 거칠어지는 호흡 소리.

이미 더 이상 구길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찡그린 얼굴.

당장 지쳐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지만 과르다도는 발을 멈추지 않았고, 공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재혁을 쉴 새 없이 압박했다.

자신이 힘들다면 분명 상대도 힘들테니까.

편함을 찾는 순간 상대에게 여유를 허용하게 될 터고, 그러면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 같았기에 그는 몸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과르다도를 앞에 둔 재혁 또한···.

‘···지치네. 역시 아직은 체력이 부족해.’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힘겨워 하고 있었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다른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는데 노력했지만, 역시 단기간 내에 컨디션을 완벽하게 회복하는 건 무리였던 것이다.

감독님도, 코치님들도, 그리고 자신도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후반 20분 이후를 노렸던 것인데···.

‘지금이 몇 분 째더라? 분명 동점골을 넣었을 때가 20분가량이었으니, 진즉 오버 워크 상태겠군. 이크!’

공을 가지고 이동하던 중 과르다도가 뻗은 발로부터 공을 지키기 위해 황급히 몸을 돌린 재혁.

그는 자신이 그런 것처럼, 과르다도 또한 호흡이 크게 뒤틀려 있는 것을 확인하곤 쓰게 웃었고, 멈춰있는 공을 다른 선수에게 건네준 뒤 다시 공간을 찾아 달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뒤를 계속 쫓아오고 있는 과르다도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힘드시면 좀 쉬시는 게 어때요? 그러다 쓰러지면 다시 못 일어나실 것 같은데.”

“네 걱정이나···, 해···!”

“전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왔잖아요? 아직 팔팔하죠.”

“당장 죽을 것처럼 땀을 흘리고 있는 놈이 허세는···.”

“역시 그렇게 보이나요? 확실히 몸이 힘들긴 하네요.”

과르다도와 나눈 짧은 대화의 끝을 미소로 얼버무린 재혁.

그런 재혁을 노려보면서 과르다도는 거칠어진 호흡을 침착하게 가다듬었다.

저 여유는 분명 자신을 속이기 위한 장막일 것이니.

저기에 속아 흔들린다면 무너지게 되는 건 본인이 될 것이기에 과르다도는 바짝 마른 숨에 섞인 단내를 토해내며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았다.

이어지는 재혁의 한 마디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하지만 전 정말 편한 걸요. 마음만큼은 말예요.”

“?!”

재혁은 거짓없는, 순수한 의미의 미소를 떠올려 보이며 말했고, 그런 재혁의 미소를 발견한 과르다도의 눈썹이 꼬였다.

마음만큼은 편하다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계속 고민하고 겨를도 없었다.

큰소리와 함께 공이 하늘로 튕겨 오르는 것을 발견한 과르다도는 다시 달려야만 했으니까.

높게 떠올랐던 패스가 재혁을 목표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공을 잡을 수 없도록 재혁에게 달라붙어 방해하던 과르다도는 재혁이 골대를 등지고서 공을 받는 것을 확인하곤 얕은 숨을 뱉었다.

이런 상태라면 적어도 쉽사리 전방으로 공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니.

‘턴만 못 하게 막으면 된다···!’

경기가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만큼 플레이 한 번, 한 번이 중요했고, 그 한 번들을 막다보면 분명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 분명하리라.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반복하며 뛰던 과르다도는 재혁이 결국 등을 진 몸을 돌리지 못하고 공을 뒤로 빼는 것을 발견하며 안도했다.

역시 이녀석도 지친 게 분명하다.

그런 희미한 확신을 방금 플레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르다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지금부터 보여드릴게요. 제가 왜 마음이 편한 지를. 그리고 우리가 왜 오늘 이길 것인 지를!”

“!”

파파팍!

짧은 한 마디 이후 재혁은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그런 재혁의 뒤를 쫓으면서 과르다도는 인상을 구겼다.

분명 지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저런 체력을 남겨두고 있었던 건가?

부상에서 막 복귀했다더니.

‘저거 정말 부상에서 복귀한 거 맞아? 아니 그 전에···.’

지금부터 보여주겠다니?

대체 뭘?

‘아냐. 허세일 거야. 분명 허세야! 그러니까 흔들리면 안 돼! 하지만···.’

만약 저게 허세가 아니라면?

그런 가능성에 대해 떠올리자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한 과르다도는 현재 공이 위치해 있는 장소와 재혁의 위치를 점검하면서 미간을 모았다.

한 차례 뒤로 빠진 공은 오른쪽 측면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최민을 거쳐 이경훈에게 연결된 공은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고, 끊임없이 측면을 파고 들기 위해 이리저리 굴렀다.

그러는 사이 재혁은···.

‘중앙에서 공간을 파고 들려고 하고 있어.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 윤활유가 되기 위해 공을 찾아 이동하겠지.’

하지만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두지 않을 거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자신이 달리고 있는 거니까.

후욱, 마지막 숨까지 끌어모은 듯, 폐를 잔뜩 부풀린 과르다도.

재혁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그의 곁을 맴돌며,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달리던 그의 안광이 번득였다.

우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을 가지고 움직이던 이경훈이 드리블을 포기하고 패스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뻐엉!

그 패스가 향하는 방향을 바로 읽을 수 있었던 과르다도는 발을 멈추고 자세를 낮췄다.

최재혁.

역시 이번에도 결정적인 순간 한국 선수가 시도한 패스는 녀석에게 향하고 있던 것이다.

‘이번엔 그냥 두지 않는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근육을 긴장시킨 과르다도.

그는 마치 프레임들이 쪼개지듯, 조각난 시공간을 타고 재혁의 발밑을 향해 구르는 공을 노려보며 호흡을 맞췄다.

바닥을 구르는 공이 가까워질수록 과르다도의 호흡 소리는 서서히 작아졌고, 굴러온 공이 재혁의 발밑을 구를 때···.

“후욱!”

참고 있던 숨을 모두 토해내면서 몸을 내던졌다.

반드시 재혁의 발밑에 있는 공을 빼앗겠다는 의지가 단단히 깃든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재혁의 어깨와 그의 몸이 충돌하는 순간.

“···됐다!”

과르다도는 미소를 떠올렸다.

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어야 했거늘.

재혁의 몸은 그의 예상과 달리 너무도 쉽게 옆으로 밀린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밀리기 시작한 재혁은 중심을 잃은 것처럼 계속해서 밀렸고, 이번 경합에선 확실히 이겼다는 생각에 과르다도는 마침내 환히 웃을 수 있었다.

‘역시 너도 지쳤던 거로구나!’

그는 밀면 밀리는 대로 몸이 빠지는 재혁을 향해 입술을 말아올렸고, 확실히 주도권을 취했다는 것에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자리를 빼앗기면서 재혁이 흘렸을 공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 공을 전방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번엔 자신들에게 확실한 기회가 오는 것이었으니, 그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그 어떤 때보다 밝아보였다.

만약···.

“?!”

그가 공을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면 말이다.

과르다도의 얼굴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아 그대로 굳었다.

분명 이곳에 공이 있어어야 했는데, 그 공이 보이지 않던 것이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든 과르다도를 향해 누군가 소리쳤다.

“거기가 아니야! 공은 거기서 안 멈췄어!”

“공이 안 멈췄다고?!”

동료의 말대로였다.

공은 멈추지 않았다.

재혁은 굴러오는 공을 받지 않고 그대로 흘렸던 것이다.

그리고 몸싸움에서 밀렸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은 다음 동작을 위해 반바퀴를 회전하던 것이었으니.

‘망할!’

황급히 자세를 고친 콰르다도의 시선이 다시금 재혁을 쫓았다.

재혁은 반대편에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최주성에게 공을 흘려준 후 또 다시 공간을 찾아 달리고 있었고, 이번엔 흘려준 공을 받은 최주성이 재혁을 노리고 패스를 찔러 넣었다.

이번엔 확실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기필코 재혁을 막겠다고 다리에 힘을 주었던 과르다도는···.

후웅!

“뭐, 뭐라고?!”

이번에도 공을 받지 않고 흘려버린 재혁의 헛발짓에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반드시 막겠다고 잔뜩 힘을 주고 움직이는 바람에 그만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결국 무너진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잔디 위로 쓰러지기 시작한 과르다도.

그는 그 사이 재혁의 얼굴을 확인한 뒤.

‘그런 의미였나···.’

재혁이 말했던 ‘마음이 편하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자신이 공을 잡지 않아도 자신의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확신에 찬 자신감에 재혁은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곧 결과로 이어졌다.

두 번의 흘리기로 상대의 중앙을 헤집은 재혁.

공을 잡는 게 아닌, 오히려 잡지 않는 것으로 자유를 찾아낸 재혁을 향해 세 번째 패스가 향했고, 해당 패스를 지켜보게 된 멕시코 선수들의 얼굴엔 혼란이 가득했다.

설마 이번에도 흘릴 것인가? 아니면 이번엔 잡을 것인가?

만약 흘린다면 저 공을 받게 될 건 이번엔 누군가? 아니면 패스를 찔러 넣을 공간이 어딘가?

선택에 대한 고민이 한 번 떠오르니 그 고민은 해결되지 못한 채로 계속 쌓였고, 그런 멕시코 선수들의 고민을 바로 읽은 콜린이 웃으며 말했다.

“한 번 사기를 당하면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고 조심하기 마련입니다. 신중한 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에 제한이 없을 때의 이야기. 지금 멕시코 선수들이 망설였다는 건···.”

뻐엉!

“오늘 그들은 ‘최재혁’ 한 사람에게 패배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콜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을 받은 재혁은 바로 선택을 내렸다.

그 선택은 드리블도, 패스도, 혹은 흘리기도 아니었다.

직접 골문을 노리는 슈팅.

재혁은 굴러오는 공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오른발로 감아 슈팅을 시도한 것이다.

분명 골대와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정확히 골문 오른쪽 상단을 노린 재혁의 슈팅은 날카로운 호선을 그렸고,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축구장 바닥에 뿌리를 내린 채로 멍하니 재혁의 슈팅을 바라보던 멕시코 선수들은···.

철썩!

공이 골망을 가르고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무너져 내렸다.

설마 저기서 슈팅을 때릴 줄이야.

전혀 예상도 못 했다는 얼굴이 되어서 말이다.

진즉에 바닥에 쓰러졌던 과르다도는 잔디 바닥에 주먹을 내리쳤고, 오초아 골키퍼를 비롯해 재혁이 슈팅이 때리는 것을 지켜만 보았던 다른 선수들도 분한 감정을 참지 못 했다.

특히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 재혁의 능력을 얕잡아 보았던 벨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경기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리라.

방금 실점으로 이 경기의 흐름을 상대에게 완전히 빼앗겼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멕시코 선수들과 대비 되게.

“나이스 슛이었다, 이자식아!”

“거기서 슈팅을 때린다고? 이 꼬맹이가 사람 간 떨리게 하고 있네! 그런데 그걸 또 넣었어? 이런 발칙한 녀석!”

“윽, 너무 세게 누르지 마세요. 저 그래도 아직까진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 된 선수라고요?”

“복귀한지 얼마 안 된 놈이 그런 슈팅을 때려? 너 솔직히 말해 봐. 사실 진작에 다 회복했던 거지? 그렇지? 응? 나한테만 알려줘!”

한국 선수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골을 넣은 재혁의 주변을 둘러쌌다.

엄청난 골을 넣었음에도 특별한 세레머니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탓에, 정확힌 도망칠 체력도 없었던 탓에 동료들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린 재혁.

그런 재혁의 모습을 보면서 중계진들은 마이크가 터져라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혼자 힘으로 뒤집은 재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승리가 정말 코 앞까지 다가온 덕에 후끈 달아오른 열기는 주심이 다가와 경기를 속행할 것을 요구하면서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확실히 부여잡은 승기는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국 선수들은 경기가 재개되기 무섭게 멕시코 선수들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 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틀어막으면 승리가 확정이었으니까.

그들은 아껴두었던 체력을 전부 쏟아냈고.

삑, 삑, 삐이이익!

“우와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에 감격하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패배 이후의 승리.

자칫 2패로 조별 예선을 두 경기만에 끝낼 뻔 했던 한국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16강 진출 가능성의 불씨를 다시 한 번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선수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코칭 스태프들도 드디어 해냈다면서 서로를 찾았고, 재혁 또한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마음 편히 경기장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그를 억누르던 부담감에서 비로소 해소된 것처럼, 아주 편안하게 말이다.

그러던 중 재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 손길에 살며시 눈을 떴다.

재혁은 오늘 경기 내내 그를 괴롭혔던 얼굴, 과르다도를 마주하며 씨익 웃었다.

“제가 말했죠? 오늘 이기는 건 우리가 될 거라고 말예요.”

< 200. 마음 편하게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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