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93화 (193/225)
  • < 193. 모자란 조각 >

    조중연 기자가 놀란 얼굴로 이름을 부르자 재혁은 머쓱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언제 이곳에 도착했냐는 이어지는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답했다.

    “공항엔 지난 밤에 도착했는데, 경기장에 온 건 몇 시간 전이에요. 어차피 전 출장할 수 없으니까, 맘 편히 오라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랬군요. 다리에 깁스는 푸셨네요?”

    “부러진 건 아니어서 깁스 자체를 푼 건 꽤 됐어요. 모든 부상들이 그렇듯 재발과 회복이 문제죠.”

    짚고 있는 목발을 슬쩍 들어보이면서 대답한 재혁은 이후 조중연 기자가 묻는 가벼운 근황 토크에 적정한 수준을 맞춰 어울렸다.

    어차피 대단한 걸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한도 내에서 성심껏 대답한 것이다.

    부상의 정도라던가, 회복 시기 같은 정보들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둘의 대화가 끊어진 것은 이상민 기자가 큼큼, 목을 털고 나서였다.

    뒤늦게 자신이 재혁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중연 기자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후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최재혁 선수는 오늘 경기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도 이상민 기자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단은 실점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상대가 볼리비아였어요. 전 적어도 오늘 경기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이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현재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의 팀들 중 최약체로 평가 받고 있다.

    그 말인즉, 월드컵에서 상대하게 될 팀들 중 우리보다 약한 팀은 없다는 소리였다.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는 10경기를 치르는 최종 예선에서 6승을 챙기는 압도적인 강함을 선보였다. 스웨덴은 조별 예선에서 네덜란드를 3위로 내려앉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왔을 정도였으니···.

    그렇기 때문에 볼리비아와의 경기가 중요했다.

    적어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이기는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경기였으니까.

    하지만 그 경기에서마저 득점 없이 무승부라니.

    “이건 팬들의 기대와 희망을 꺾어 버리는 결과였어요.”

    조중연 기자는 냉정한 어조로 말하며 이마를 쓸어내렸고, 재혁과 상민은 그런 조중연 기자의 말에 일단 침묵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 저 한 마디는 단순히 조중연 기자의 심정을 나타내는 게 아닌, 오늘 경기를 지켜본 축구 팬들의 심경을 대표하는 한 마디였으니까.

    실망으로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토하고 있는 조중연 기자를 가만히 지켜보던 재혁은 잠시간 생각에 잠긴 것처럼 턱을 괴고 있다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오히려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던 경기이기도 했어요.”

    “오히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요?”

    그런 재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조중연 기자가 되물었고, 재혁은 그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회상에 잠긴듯, 눈을 감고 있던 재혁이 천천히 입술을 떼며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는 변형 4-4-2로 나왔어요. 센터백 두 명이 중앙을 지키고 양쪽 윙백들은 높게 올라가 전체적인 측면의 조율을 담당했죠.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는 하프백 역할을 소화하면서 후방 빌드업과 수비시 윙백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생기는 공간들을 커버했어요. 적어도 이 부분에서 만큼은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적어도 실점없이 골문을 지켰으니까요.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기엔 부족했어요.”

    “맞는 말씀이에요. 왜냐면 오늘 준비한 전술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니까요.”

    “···!”

    냉정하게 평가를 내린 재혁의 한 마디에 의외라는 듯 조중연 기자의 두 눈이 커졌다.

    아무래도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는 만큼, 팀을 변호할 것이라 기대했던 것인데 오히려 재혁 쪽에서 먼저 문제점을 두둔한 것에 놀란 것이다.

    그런 조중연 기자를 앞에 두고서 재혁이 계속 말했다.

    “수비 상황에서 상대를 막는 움직임 자체엔 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려면 득점이 필요하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 팀의 공격 전개 과정을 한 번 떠올려볼까요? 일단 최전방에 두 명의 공격수를 배치했고 그 뒤에 2선을 담당할 선수 한 명을 배치하면서 최대 3명의 선수가 1선과 2선을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로 또 2명의 선수가 최대 양측면까지 향하는 하프 스페이스를 맡으면서 공격시 상대의 빈 공간을 노리게 되죠. 이렇게 전술 자체로만 본다면 분명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없지만···, 분명 최재혁 선수의 입으로 완성된 전술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네. 맞아요. 전술 자체로 본다면 큰 문제는 없었지만, 완성되진 않았어요. 왜냐면 오늘 우리는 ‘한 쪽의 뇌’를 가지고 경기에 임했거든요.”

    “···한 쪽의 뇌요? 우뇌, 좌뇌, 그런 종류의 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오, 역시 스포츠 기자님이시라 이해가 빠르시네요.”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여기서 왜 갑자기 우뇌와 좌뇌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까?

    당장이라도 그렇게 재혁에게 묻고 싶었으나 조중연 기자는 입술을 꾹 눌러 참았고, 재혁은 그런 기자를 향해 생긋 미소를 보이더니 설명을 이었다.

    “좌뇌와 우뇌가 지니고 있는 기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기자님도 잘 알고 계시죠? 좌뇌가 주로 논리와 언어, 우뇌는 감각과 인지 능력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렇듯 두 뇌가 서로 맡은 역할을 적잘하게 소화해주어야 사람은 문제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한 쪽에서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쪽에서 모든 역할을 담당한다고요?”

    “아마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생각보다 뇌라는 기관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요소들로 가득해 있거든요. 하지만 그 속엔 ‘분명’ 문제가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 팀이 보여준 경기처럼 말이죠.”

    “···!”

    분명 문제가 존재할 거란 문장에 힘을 주어 말을 한 재혁.

    그런 재혁의 말에 조중연 기자의 두 눈이 반짝였다.

    지금 재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얼핏 감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조중연 기자의 눈빛이 변하자 재혁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미소지으며 물었다.

    “기자님께서 보시기에 오늘 우리 팀의 핵심 선수는 누구였나요?”

    “김수용 선수였죠. 하프백 위치에서 수비는 물론, 빌드업을 포함해 공격 작업의 토대가 되어주는 플레이를 많이 보여줬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아쉬운 장면들도 많았죠. 김수용 선수의 ‘행동’에 맞춰 움직여줄 반대쪽 뇌가 없었으니까.”

    “!”

    “축구에 만약이란 가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오늘 경기에서 김수용 선수와 함께 발을 맞춰줄 수 있는 선수가 2선에 위치해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살며시 말꼬리를 늘리면서 장면을 상상하던 조중연 기자가 숨을 모았다.

    김수용 선수로 시작되는 빌드업이 만약 공격진에서 제대로 마무리 할 수만 있었다면, 만약 반대 쪽에서 그런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그러니까···.

    “최재혁 선수가 오늘 경기장에 있었다면···.”

    “만약 제가 오늘 경기장 위에 있었다면 반드시 이겼을 겁니다. 최소 3점차 이상으로 말이죠. 오늘 경기의 전술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걸 연습하는 전술이었어요. 두 뇌가 온전히 자리에 모이는 그 날을 위해 연습하는 전술 말예요.”

    꿀꺽, 재혁의 말에 침을 삼킨 조중연 기자의 두 눈이 기대로 밝게 반짝였다.

    만약 정말 재혁의 말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면, 어쩌면 이번 월드컵을 기대해도 될법하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던 조중연 기자는 이상민 기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 괜찮다면 이곳에 나눈 대화를 토대로 인터뷰성 기사를 하나 써올려도 괜찮을까요?”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인터뷰 대상은 저쪽에 있는데.”

    “하지만 이상민 기자님께선 다 알고 계시던 내용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제가 준비 중인 기사는 따로 있어요.”

    상민의 대답에 중연은 재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재혁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이자 환한 얼굴로 웃었다.

    좋지 않을 소식들만 잔뜩 전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뜻밖에 거둔 수확을 진심으로 기뻐한 것이다.

    조중연 기자는 고맙다는 말을 남긴 후 얼른 일을 하러 가봐야겠다며 가방들을 주섬주섬 챙겨들었고, 떠나는 중연에게 조심하라며 재혁은 손을 흔들면서 배웅했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자 상민이 재혁의 얼굴을 슬쩍 살핀 후 물었다.

    “괜찮겠어? 본인은 납득한 것 같지만, 잘못 했다간 조중연 기자 뭇매 맞을 걸?”

    상민의 걱정도 틀린 게 아니었다.

    당장 오늘 경기가 무득점으로 끝이 났는데,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온다면 그걸 고깝게 볼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마 몰라도 기사의 내용보다 제목만 읽고 댓글을 달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재혁은 자신이 있었다.

    기사가 거짓이 아닌, 현실이 되게 할 자신이.

    “아마 그 때가 온다면 사람들도 알아줄 거예요. 거짓말로 가득한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 그렇겠지. 그러려면 일단은 그 발목이 가장 큰 문제겠군. 어떨 거 같아?”

    목발을 짚고 있는 발목을 턱으로 가리키며 상민이 물었고, 재혁은 이에 슬쩍 발목을 살핀 후 답했다.

    “멕시코와의 경기 전까진 나을 겁니다.”

    “멕시코라···. 정말 얼마 안 남았군.”

    툭툭, 바짓단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상민.

    그럼 다음에···, 러시아에서 보자는 말을 끝으로 상민 또한 자리를 떠났고, 멀어지는 상민을 향해 이곳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인 재혁은 목발을 짚으면서 이동했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오자 그를 기다리고 강철우 코치가 큭큭 웃으며 말을 건넸다.

    “거짓이 아니게 할 거라니.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

    “그건 코치님도 마찬가지죠. 용케 감독님께서 저런 전술을 준비하는 걸 도와주셨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인터넷에선 결과를 놓고 감독님이랑 같이 코치님도 엄청 까일 걸요.”

    “상관 없어. 나는 승률이 가장 좋은 방향을 쫓았을 뿐이니까. 아무튼, 준비 다 됐지? 그럼 움직이자.”

    재혁을 대신해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며 강철우 코치가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쫓으면서 재혁이 목발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다가 잠시 발을 멈춘 후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살핀 재혁.

    그는 공허한 경기장을 쭉 살핀 뒤 다시 등을 돌리면서 멈춘 발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내가 돌아오면 그때부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아무도 듣지 못 할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 재혁이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나자 마침내 경기장의 불이 꺼졌다.

    ***

    분명 시계 초침의 속도엔 변화가 없을 것인데, 개최일이 다가올수록 시간의 흐름도 빨라지는 듯 했다.

    전세계 선수들은 그 시간에 쫓기는 촉박함에 긴장하며 매일 같이 구슬땀을 흘렸고, 그렇게 순식간에 개최일을 이틀 앞두게 되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하나둘 공항을 통해 러시아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러시아에 입성한 이란을 시작으로 우승 후보 꼽히고 있는 프랑스와 브라질 선수들도 공항에 모습을 비추었고, 호날두라는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는 포르투갈 선수단도 월드컵이란 무대를 앞둔 탓에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공항에 얼굴을 드러냈다.

    유명한 선수가 입국 심사를 통과할 때마다 카메라 셔터와 함께 축구 팬들의 함성 소리가 떠날듯 울렸고, 마침내 F조에 속해 있는 또 다른 우승 후보, 독일 또한 결전지인 러시아에 모스크바 브루코보 공항을 통해 입성했다.

    전용기에서 내린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통로를 따라 쭉 걸으면서 준비되어 있는 버스로 향했는데···.

    “어?”

    버스로 발을 옮기던 중 독일 선수단에 섞여 있던 한 선수가 무언가를 발견한 뒤 자리를 이탈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선수에게 향했고···.

    “도, 도와드릴까요?”

    이동 중이던 독일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있던 한국인 기자는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온 선수, 사네에게 물었다.

    사네는 기자의 명찰에 붙어 있는 태극기를 빤히 바라보더니 확인하듯 물었다.

    “한국에서 오신 분 맞죠?”

    “아, 예. 맞는데요.”

    “그렇다면 잘 알고 계시겠네요!”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하자 사네가 잔뜩 기대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재혁이 발목 다 나았나요?”

    < 193. 모자란 조각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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