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92화 (192/225)
  • < 192. 가능성 >

    “그래서 다들 이번 월드컵 성적을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을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16강 진출은 힘들지 않을까요?”

    “16강 진출이 문제가 아니죠. 1승을 목표로 삼아도 힘들 거라고 봅니다.”

    “굉장히 비관적이시네요.”

    “아무래도 지금까지 보여준 과정이 긍정적이지 못하니까요.”

    풋볼올나잇이라는 타이틀의 심야 프로그램.

    한 주간의 축구계 소식을 전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관련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은 심야에 진행된다는 특성 덕분에 다른 공중파 프로그램들과 비교했을 때 매운 맛이 강했다.

    그 매운 맛이 불편하다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이유로 고정 시청층도 적지 않았던 프로그램은 월드컵이 코 앞으로 다가온 만큼 대회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번에 화두된 주제는 당연하게도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었다.

    진행자의 짧은 질문에 각자 의견을 내놓았던 전문가들.

    진행자는 그런 전문가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피면서 그 이유를 물었고, 현 축구 협회 사무국의 일원 중 한 명인 중년인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대회가 당장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까지 전술이 완성되지 않았단 말이죠. 이건 분명한 감독의 재량 부족입니다. 리더의 능력이 부족한데 과연 그 뒤를 쫓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요?”

    “하하. 조장현 임원님께서는 축구 협회에 관련되어 계신데 비판의 강도가 제법 강하네요.”

    “현 상황을 냉정히 분석한 겁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때로는 냉정할 수 있어야 발전하는 법이니까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어서 강형주 해설의 말씀을 좀 들어볼까요?”

    “저도 조장현 임원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경우엔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가 튀어나왔다고 해도 무방하겠죠.”

    “고질적인 병폐요?”

    “인맥 축구를 말하는 겁니다.”

    진행자의 질문에 바로 대답한 강형주 해설.

    그는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을 계속 했다.

    “학연, 지연, 혈연.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는 악순환이 결국 이번에도 이어졌어요. 임종철 감독의 최재혁 선수 발탁이 바로 그겁니다. 최재혁 선수는 임종철 감독이 발굴한 제자들 중 한 명이잖습니까? 남들과 다른 ‘특별한 기준’이 인맥이란 이유로 적용된 거죠.”

    “확실히 최근 최재혁 선수 발탁으로 국내 축구계가 시끄러웠습니다. 관련 영상을 한 번 보실까요?”

    서형주 해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행자가 신호를 보냈고, 곧 중앙 스크린을 통해 최종 명단을 발표하는 임종철 감독의 모습이 비춰졌다.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가장 마지막, 재혁에 관한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은 대략 1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재생됐고, 임종철 감독의 마지막 말과 함께 끝이 났다.

    해당 영상을 다시 확인하게 된 사람들은 한숨을 토해내며 혀를 찼다.

    “바로 이 한 마디로 임종철 감독의 무능이 전국에 드러난 겁니다. 세상에서 선수 한 명에 전술적으로 의존하는 팀이 어딨습니까? 그것도 아직 부상 중인 선수에게 말입니다.”

    “이래저래 문제가 많아요. 결국 임종철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엔 역량 부족이라는 걸 나타낸 한 마디였죠. 월드컵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단은 경기들을 지켜보긴 하겠습니다만, 마음 편히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네요.”

    그렇게 또 한 차례 감독을 향한 독설들이 줄을 지었고, 진행자 또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러던 중···.

    “흠, 그런가요? 다들 저랑은 생각이 다르시네요.”

    낭창한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를 따라 움직였고, 목소리의 주인, 신혜린 스포츠 아나운서는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한 자료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다른 분들과 달리 임종철 감독님의 생각을 지지하는 쪽이거든요.”

    “신혜린 아나운서께선 임감독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건 결과론에 따르는 거잖아요? 제 경우엔 최재혁 선수를 뽑았다는 것을 ‘전술적’ 선택이었다고 강조하시는 걸 지지하는 거예요.”

    진행자의 유도 질문을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관철시키며 넘긴 신혜린 아나운서.

    그녀는 불편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볍게 넘기면서 준비해온 자료를 읽어내려갔다.

    “혜성같이 등장해 초등학생 리그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지역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던 중앙 초등학교를 이끌고 우승 후보들을 차례로 격파, 아쉽지만 부정 선발 의혹으로 중앙초는 징계와 함께 탈락합니다. 이후 호주로 유학을 갔고 유소년 아카데미를 통해 지역 연고 프로 팀에서 데뷔, 어린 나이에 클럽 최다 도움을 기록하면서 유럽 클럽들의 관심을 끌었죠. 그 결과 2천만 파운드라는 이적료와 함께 맨체스터 시티에 입성했어요.”

    “···.”

    “어린 나이에 2천만 파운드라는 가치가 무겁지 않겠느냐는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프리 시즌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어린 선수는 전반기 핵심 선수의 부상을 기회로 자신이 단순한 유망주가 아님을 알렸어요.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리그 컵에선 당연 에이스였고, FA컵, 리그,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대활약을 하며 구단 역사상 첫 쿼드러플을 달성합니다. 자, 그럼 제가 한 번 여쭈어 보고 싶어요. 이런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를 전술의 핵심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요?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 대단한 선수가 현재 부상 중이지 않습니까?”

    “네. 하지만 그 부상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나요? 아니면 인대가 망가졌나요?”

    “···!”

    질문에 역으로 질문으로 답한 신혜린 아나운서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전치 2주 짜리 발목 염좌에요. 그것도 이제 1주가 지났으니 회복이 얼마 남지 않았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최재혁 선수가 적어도 한 경기 이상은 뛸 수 있을 거란 사실과 임종철 감독님께서 그 부분을 확실히 인지하고 최재혁 선수를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신 부분이라고 전 생각해요. 월드컵이란 세계적인 무대에서 강호들을 상대하게 될 만큼, 사용할 수 있는 수는 모두 사용해야 하니까요. 제가 할 말은 이상입니다.”

    “아, 예···. 지금까지 신혜린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러면 잠시 쉬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죠.”

    자칫 분위기가 과열될 것을 우려한 진행자는 얼른 순서를 넘겼고, 그제야 사람들은 큼큼, 헛기침을 토하는 것으로 감정을 달랬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무사히 촬영이 끝났고, 출연자들은 서로 악수를 건네며 작별 인사를 주고 받았다.

    진행자는 먼저 자리를 떠나는 세 남자들과 악수를 나눈 후 신혜린 아나운서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대체 왜 그랬어?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잖아?”

    “그건 저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그거야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저도 틀린 말 안 했어요.”

    “···.”

    평소엔 참 착한 후배인데.

    어째선지 축구와 일이 관련이 되면 이렇게 흥분하는 후배 아나운서를 바라보며 진행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오늘 신혜린 아나운서가 평소보다 더 크게 흥분한 이유는 사실 뻔했다.

    왜냐면 이 친구는···.

    “최재혁 선수는 지금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희망이자 등불이라고요! 그런 선수를 두고 뭐? 인맥축구? 아주 웃기고 있어. 축구 협회에서 최재혁 선수를 빼고 다른 선수를 넣으려고 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보다시피 최재혁을 열렬히 지지하는 축구 팬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구단도 최재혁이 속해 있는 맨체스터 시티였으니. 최재혁이란 선수에 이렇게 빠져있을 수밖에.

    진행자는 가벼운 한숨을 폭 내쉬더니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부상인 것도 사실이잖아.”

    “아까 제가 한 말 못 들었어요? 멕시코와의 경기 전후로 회복이 가능하다니까요?”

    “하지만 멕시코전이 끝난 이후에 돌아오면 모든 게 꼬이는 거야. 그 이후에 우리가 상대하게 될 팀은 독일이라고. 차라리 전력을 보충해서 스웨덴,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승부를 보는 편이 확률적으로 승산이 있지.”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진행자의 말에 씨익, 미소를 떠올린 신혜린.

    그녀는 자신에 찬 얼굴로 곧게 펼친 검지로 허공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오히려 독일과의 경기에서 16강 진출 여부가 갈린다고 봐요.”

    “뭐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저랑 내기하실래요?”

    “내기? 무슨 내기?”

    “한국과 독일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길지. 지는 사람이 밥사는 걸로. 저는 한국에 걸게요. 선배님은 말씀하시는 걸 보니 당연히 독일 쪽에 거시겠죠?”

    “아니, 뭐···. 굳이 건다면 그 쪽이긴 한데···.”

    “그럼 성립된 거예요? 하, 기대된다! 이거 무슨 밥을 사달라고 해야 하나. 기왕이면 비싼 소고기로다가···.”

    ‘···진짜 한국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던 진행자는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더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래, 이런 내기라면, 져도 기분 좋게 밥을 살 수 있는 이런 희망적인 내기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하지만 만약 기대와 달리 독일이 이기게 된다면···.

    생각을 이어가던 남성은 한숨을 폭 내쉬며 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머지 않아 시작될 한 달간의 월드컵을 꼭 즐길 수만 있을 것 같진 않았기에···.

    ***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휴양지인 레오강.

    비행기로 11시간, 버스로 또 4시간을 이동한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던 전지훈련지는 오기까진 참 먼 길이었지만 일단 도착하니 감독과 선수들은 크게 만족했다.

    선선한 기후는 후에 러시아에서 경험하게 될 기후와 큰 차이가 없어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복잡하지 않은 주변 환경은 훈련 후 지친 몸을 달랠 선수들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되어줄 터였으니까.

    그렇게 월드컵을 위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 되고 있었다.

    볼리비아와의 공개 평가전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삑, 삑, 삐이이익!

    “흐음···. 이거 이래서 되겠어?”

    심각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던 남성은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끝이 난 경기의 최종 스코어를 확인한 뒤 입술을 구겼다.

    0대0.

    마지막 공개 평가전에서 한국은 득점 없이 볼리비아와 비기고 만 것이다.

    안방에선 브라질이며, 아르헨티나도 크게 고전하는 볼리비아지만 원정에선 그 강점이 사라지는 팀이거늘.

    “이래서야 정말 기대가 안 가는 걸.”

    쯧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던 남성은 그래도 일단 일을 하러 왔으니 카메라를 손에 쥐고서 경기장 곳곳을 사각 프레임 안에 담았다.

    지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선수들과 스트레칭에 여념이 없는 선수들의 모습, 그리고 몇몇 선수들을 붙잡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스태프의 모습들을 순서대로 카메라로 찍은 남성은 슬슬 떠나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곤 반색했다.

    “이상민 기자님 아니십니까?”

    “응? 조중연 기자님 맞죠? 간만에 얼굴을 보는 군요.”

    “그러게 말예요.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대체 그동안 뭘하면서 지내셨어요? 갑자기 해외 지부로 옮겼다는 소식만 듣고 다른 이야기를 못 들었거든요.”

    “하하. 그럴 일이 있었죠. 그동안 별 일 없으셨죠?”

    조중연 기자의 너스레를 애써 웃어 넘긴 이상민 기자는 가벼운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를 이었고, 두 사람은 서로 짧은 근황을 주고 받으며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아무래도 같은 일을 하다보니 경기장에서 마주친 전적이 많았기에 간만에 나누는 대화가 반가웠던 것이다.

    처음엔 둘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대화는 점차 공통 주제로 이어졌고, 당연하게도 대표팀에 관한 이야기로 연결 되었다.

    마침 오늘 마지막 공개 평가전까지 함께 지켜본 마당이었으니.

    조중연 기자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걱정이 태산이에요. 이런 경기력으로 월드컵이라뇨.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경기 보셨잖아요? 볼리비아를 상대로 0대0! 솔직한 말로 압도는 못 해도 오늘 경기만큼은 어떻게든 이겼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걸 무득점으로 비겼으니···.”

    “흐음.”

    한탄조로 투덜거리면서 이마를 벅벅 긁는 조중연 기자.

    그런 조중연 기자를 바라보던 이상민 기자는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턱을 주억이며 중얼거렸다.

    “저는 오히려 오늘 경기를 통해 가능성을 보았는데 말이죠.”

    “가능성이요? 이런 경기를 보고 가능성을 봤다고요?”

    이상민 기자의 말에 조중연 기자는 놀랍다는 듯이 소리쳐 되물었고, 이상민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득점을 성공시키지 못 한 부분은 아쉽지만 일단 무실점을 지켰어요. 사실 저는 공격보다 수비의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라 그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이기려면 골을 넣어야 하는 게 축구잖아요? 백날 지켜봐야 득점을 성공시킬 능력이 없다면 조별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요.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경기를 실점 없이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말이죠.”

    “흐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이시네요.”

    “그거야 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걸요?”

    별로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칭찬을 해주자 조중연 기자가 머쓱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고, 그런 조중연 기자의 행동에 빙그레 미소를 떠올린 이상민 기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선수 본인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선수 본인이요?”

    갑자기 선수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니.

    그게 무슨 의미냐는 얼굴로 되물었던 조중연 기자는 이상민 기자의 뒤쪽에서 등장한 인물을 발견하곤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놀라 눈을 키웠다.

    “최···, 최재혁 선수 아닙니까?!”

    < 192. 가능성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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