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91화 (191/225)
  • < 191. 각자가 짊어진 무게 >

    “후욱, 후욱, 후욱!”

    바닥에 등을 대고 코어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 재혁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가쁘게 몰아 쉬는 숨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격해졌고, 몸을 지탱하고 있는 양팔은 당장이라도 무너질듯 부들부들 떨렸지만 재혁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재혁을 향해 할 수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던 재활 트레이너는 시계를 확인한 뒤 소리쳤다.

    “좋아, 그만! 30초간 휴식!”

    “후우!”

    “앞으로 한 세트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

    짝짝짝, 호흡을 고르고 있는 재혁을 향해 기운 내라며 박수를 쳐준 트레이너 또한 제법 지쳤는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마른 입안을 적시기 위해 물을 머금었다.

    아무래도 선수와 끊임없이 호흡을 맞춰야 하기에 재활 트레이너도 선수 못지 않게 체력을 소모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선수만큼은 아니었기에 이정도로 지쳤던 적은 없었다.

    트레이너는 질렸다는 얼굴로 바닥에 누워있는 재혁을 바라보며 이마를 긁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수의 선수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재혁은 그 중에서도 가히 비교할 대상이 없는 독종 중의 독종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재혁과의 재활 첫 날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재활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통증을 수반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한 번 통증을 느끼면 선수는 재활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혹시라도 부상이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 라는 두렴이 말이다.

    특히 아직 경험이 적은 어린 선수라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허나 재혁은 달랐다.

    통증에 대한 경계는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30초 다 된 거 같은데요.”

    “아, 그래. 그럼 다시 시작할까?”

    저 지독함.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었을 텐데, 재혁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 극한까지 본인을 몰아 세웠다.

    그 지독함에 속으로 혀를 찼던 트레이너는 짧게 박수를 친 후 재혁이 자세를 잡는 것을 도와주었다.

    선수보다 트레이너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볼쌍사나운 꼴을 보여줄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숫자를 외치는 트레이너의 목소리와 거칠게 호흡을 토하는 재혁의 숨소리만이 맴돌던 재활실은 그 후로 수십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조용해졌고, 오늘도 고생했다며 재혁의 어깨를 토닥인 트레이너는 주변을 정리하면서 재혁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이 기세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오겠는데? 발목 가동 범위도 거의 차이가 없고.”

    “그래야죠. 대회가 금방이니까요.”

    “대회라, 그러고 보니 월드컵이 정말 코앞이군. 개막까지 2주 정도 남았나? 너도 고생이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뛰고 나서 쉬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야.”

    고생이라.

    트레이너의 말에 스트레칭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겼던 재혁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야 이곳 맨체스터에서 재활 훈련을 하고 있잖아요. 오히려 해야 할 고생을 피하고 있는 느낌이죠.”

    “···고생을 피하고 있다고?”

    “저 스트레칭 끝났으니까 가봐도 되죠? 내일 뵐게요.”

    “어, 어. 그래.”

    트레이너는 이해 못 할 한 마디를 남기고 재활실을 떠나는 재혁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머리를 긁었다.

    ***

    “몸상태는 좀 어떤 거 같아?”

    재활 훈련을 끝내고 샤워실에 다녀온 재혁을 향해 임종철 감독이 보낸 김박사가 물었고, 재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쁘지 않아요. 지난 주보다 확실히 좋아진 게 느껴져요.”

    “그래야지. 슬슬 인대가 붙을 시간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무리는 하지마.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회복, 그리고 재발 방지야.”

    “알고 있습니다.”

    김박사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재혁은 물병을 향해 손을 뻗었고, 김박사가 읽고 있던 인터넷 신문의 한 문장을 슬쩍 확인한 뒤 쓰게 웃었다.

    “역시 분위기가 좋진 않죠?”

    “아, 이거?”

    재혁의 말에 스크롤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김박사.

    그는 난감한 얼굴로 콧등을 긁적였고, 재혁 또한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며 자리에 앉았다.

    김박사가 읽고 있던 기사는 임종철 감독의 인터뷰가 담겨 있는 기사였다.

    지난 밤에 있었던 보스니아와의 평가전을 치르고 난 후 진행한 인터뷰가 말이다.

    경기 결과는 3대1로 한국의 패.

    당연히 인터뷰의 질문들도, 그리고 내용도 긍정적일 수 없는 기사였고, 자신 또한 그 중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에 재혁은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이다.

    재혁은 단번에 물병을 비워버린 후 의자에 앉으면서 중얼거렸다.

    “설마 감독님께서 먼저 선수를 칠 줄은 몰랐어요. ‘부상을 당한 건 사실이지만 최재혁은 여전히 후보 중 한 명’이라고 회견장에서 말씀하시다니. 이래서야 실력으로 남은 게 아닌 것 같아졌잖아요?”

    실력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강조한 재혁.

    그런 재혁의 반응에 김박사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들을 확인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터였으니까.

    [결국 이번 대표팀도 학연, 인맥 축구냐? 부상 당해서 평가전도 못 뛰는 선수를 후보에 넣는다고? 임종철 감독 정신 못 차렸네.]

    [축협이든, 대표팀이든, 그냥 전부 썩었다니까요. 이번 월드컵은 정말 기대도 안 됨ㅋㅋ.]

    [이런 상태론 16강은커녕 1승도 못 거둠. 3패 예상합니다. 화딱지 날 거 같으니 경기 볼 시간에 잠이나 자야겠음.]

    [그거 아세요? 재혁이 부상 당했다고 기사 뜨기 무섭게 대표팀 의료진들을 영국을 보냈댑니다. 이건 뭐 사실상 확정이나 다름없죠.]

    게다가 협회 관련인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정보들까지 댓글로 떠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박사는 대체 누가 이런 정보들까지 풀었냐며 미간을 찌푸렸고, 그런 김박사의 표정을 살핀 재혁은 빈 물병을 쓰레기통에 집어 넣으면서 물었다.

    “박사님. 정확하게 말씀해주세요. 박사님께서 예상하실 때 발목이 언제쯤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으세요?”

    “정상이라. 회복 자체는 분명 속도가 빠른 편이야. 하지만 정상 컨디션까지 고려한다면···, 아마 빨라야 멕시코전 때겠지.”

    “빨라야 멕시코전···.”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거야. 언제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돕는게 내 일이니까. 그러니까 재혁이 너는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재활에만 집중해.”

    역시 불안해 있는 걸까.

    재혁과 대화를 나누던 김박사의 표정이 좋지 못 했다.

    재혁이 나이에 비해 성숙한 선수임은 그도 알고 있었으나, 실상을 따지고 본다면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어린 선수이지 않던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기에 김박사는 무어라 몇 마디를 더 해주려다가 재혁이 먼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여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기에 댓글을 단 사람들의 말도 틀린 건 아니죠. 평가전도 제대로 못 뛰고 바로 본선에 합류한다는 건 누가 보기에도 특혜처럼 보일 거예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말 죽어라 준비할 겁니다. 경기장 위에 올라 섰을 때 누구도 다른 말을 못하도록.”

    “···.”

    “그럼 내일 뵐게요. 먼저 들어가서 쉬겠습니다.”

    말을 끝낸 뒤 고개를 꾸벅인 재혁이 방을 떠났고, 자리에 혼자 남게 된 김박사는 재혁이 사라진 방향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재혁이 왜 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 지 이해 못 할 김박사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지켜봐온 바, 실력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일수록 자존감이 뚜렷했고, 그걸 증명하려는 성향이 강했으니까.

    아마 부상을 이유로 탈락을 확정지었어도 재혁은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임종철 감독이 처한 상황에 안타까워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미안한 말이지만 재혁아. 임감독을 위해서라도 네가 꼭 뛰어줘야 한다.’

    드르륵, 드르륵.

    휠버튼을 굴려 길게 늘어져 있는 댓글들을 확인한 김박사는 쓰게 웃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최재혁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같은 국적인 한국인들 밖에 없었으니까.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컵 대회 우승을 이끌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선수인데도 말이다.

    읽다 보면 분통이 터질만한 댓글들도 많았지만 김박사는 그저 웃어 넘겼다.

    지금이야 이렇게 욕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지만, 재혁이 경기장 위로 올라가는 순간 모든게 바뀔 것일테니까.

    비단 여론뿐만이 아니라···.

    ‘그 구식 건물까지도 말이지. 새 건물엔 새로운 가구들을 들여야 하니까. 앞으로 한 달간 임감독이 고생이 많겠군.’

    툭툭, 서류들을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난 김박사도 문을 닫고 자리를 떠났다.

    비록 몸은 영국에 와있지만 팀을 돕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결정의 날이 찾아왔다.

    러시아 월드컵으로 향할 최종 명단 발표일.

    수많은 카메라들과 기자들을 눈앞에 두고서 자리에 앉은 임종철 감독은 냉수를 한 모금 삼킨 후 선수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고, 선발하게 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22명의 선수들이 발표 됐고, 마지막 한 명을 남겨둔 임종철 감독.

    그는 잠시간 뜸을 들이며 숨을 토했고, 고개를 들어 회견장에 있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팀에 합류할 선수는 최재혁 선수입니다. 등번호는 8번, 뽑은 이유는 지금 이 선수를 대체할 자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질문 받겠습니다.”

    “감독님! 이번 최재혁 선수 선발에 대해 의문이 많은데요! 과거 함께 했던 인연이 선발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최재혁 선수와의 인연이 제법 오래된 것은 사실이나, 선발 과정에서 실력을 제외하고 그 어떠한 요소도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 모든 것을 걸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 의료진들 중 한 명인 김박사님께서 부상 소식을 접하고 바로 영국으로 향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상비 자원인 최재혁 선수의 상태를 보다 면밀히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데일리의 기자입니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최재혁 선수의 부상은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 완치가 힘들 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본선에서 사용할 수 없는 선수 때문에 애꿎은 선수가 피해를 본 건 아닙니까?”

    예상대로 재혁의 이름이 나오자 기자들은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기 시작했고, 종철은 자신이 답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그러던 중 재혁의 몸상태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종철은 잠시 입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침묵하던 종철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뗐다.

    “그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최재혁 선수의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 예상되는 시점은 대략 22일 정돕니다. 멕시코와의 경기를 앞둔 날이겠지요.”

    “그렇다면 적어도 멕시코전부터는 경기장에 나설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것도 확실하지 않지요.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하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의 말문을 막은 임종철 감독.

    그는 자신에게 모이는 눈빛들 하나, 하나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하나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선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최재혁 선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거 하나 만큼은 제가 자신을 걸고 장담합니다.”

    < 191. 각자가 짊어진 무게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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