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연장전은··· >
‘자신만 지켜보면서 뛰어달라니, 대체 그게 무슨 의미야?’
뒤로 물러나면서 멀어지기 시작한 재혁의 뒷모습을 힐끔 어깨너머로 훔쳐본 콤파니의 눈썹이 위아래로 파도쳤다.
분명 재혁이 무어라 말을 한 것인지는 제대로 들었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축구장은 넓고, 공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자신을 제외하면 21명이나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오직 한 명, 자신만 봐달라는 의미인가?
‘도저히 말이 되질 안잖아.’
자신은 공과 함께 상대 선수를 막아야 하는 수비수다.
그런데 상대 선수를 보지 않고서 그게 가능하겠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던 콤파니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처럼 상대를 막을 수 있는 초능력이라도 주어지지 않는 이상, 그게 가능할 리 없었으니까.
손을 올려 머리를 긁적이던 콤파니는 양뺨을 가볍게 치면서 얼굴을 털었다.
재혁이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지금 알 수 없었지만 곧 경기가 다시 시작될 터이니.
‘일단은 경기에 집중하자. 빼앗긴 한 점을 되찾아오는 게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해.’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며 경기 재개를 알렸고, 아구에로가 공을 밀어준 후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사네와 베르나르도 실바가 쫓았고···.
퉁, 퉁!
공을 건네 받은 재혁은 공간을 찾기 위해 전방을 살피며 드리블을 했다.
그런 재혁의 뒷모습을 노려보면서 콤파니는 오타멘디를 이끌고 수비 라인을 끌어올렸다.
동료들이 상대를 압박하며 침투할 공간을 찾고 있었으니, 후방 라인을 바짝 올려 그 뒤를 받쳐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재혁을 중심으로 공격을 펼치려 하는 동료들을 유심히 살피던 콤파니의 미간이 모이면서 주름이 잡혔다.
‘뭐지?’
기묘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 떠올라 자신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게 대체 뭘까?
다시 한 번 똑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던 중 물음표로 가득하던 콤파니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이채를 뗬고, 그와 함께 이동하고 있던 오타멘디를 향해 재빨리 소리쳤다.
“오타멘디, 뒤로 물러나!”
“네?”
“뒤로 물러나서 공 받을 준비를 하라고!”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도 지금은···, 어?!”
콤파니의 말에 의문을 표하던 오타멘디가 놀라 헛숨을 삼켰다.
분명 전방으로 공격을 진행하던 상황이었을 것인데, 언제부터 굴렀던 것인지 빠른 속도로 잔디를 훑으며 이동하는 공이 그의 코앞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정신을 차린 오타멘디는 서둘러 오른발면을 뻗어 공의 속도를 죽였고, 늦지 않게 트래핑에 성공한 것에 진땀을 식혔다. 그리고 비어있는 동료를 찾은 후 패스를 연결 시켰다.
때마침 우측면을 따라 카일 워커가 오버래핑을 시도하고 있는 게 바로 보였기에 공은 무리 없이 이어졌고, 카일 워커가 공을 가지고 쇄도하는 것을 두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오타멘디는 한숨을 돌리며 콤파니를 찾았다.
“콤파니, 대체 방금 뭐였어요?”
“뭐가?”
“패스가 오기 전에 공이 올거란 걸 알았잖아요? 분명 공이 후방으로 빠질 상황이 아니었는데 말예요.”
오타멘디가 의아해 한 것은 당연했다.
최전방에 자리를 잡은 아구에로와 그 양옆을 지키는 사네와 베르나르도 실바, 그 외에도 전방에서 공을 받아줄 수 있는 동료가 많았거늘.
재혁은 그런 선택지들을 전부 거르고 최후방에 위치해 있는 자신을 향해 패스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덕에 측면을 타고 달리는 카일 워커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래저래 동선 낭비가 많은 패스였다라는 게 오타멘디의 생각이었다.
공을 카일 워커가 위치해 있는 측면으로 보내고자 했다면 굳이 자신이 아닌, 중원에서 같이 줄을 맞추고 있는 페르난지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했었을테니까.
그랬다면 더 빠르게 공이 연결될 수 있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콤파니에게 물었던 오타멘디는 여전히 재혁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이고 있었고, 콤파니는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타멘디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패스가 ‘오기 전’에 알아차린 게 아니야. 패스가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네게 소리친 거지.”
“···네?”
“그리고 그 패스는 평범한 패스가 아니었어. 그 패스는 증거야. 오늘 이 경기에서 우리가 이길 수 밖에 없을 거란 증거 말야. 아무래도 방금 그 패스의 의미를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군.”
“···?”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말로 콤파니에게 재차 질문을 던지려던 오타멘디.
그는 콤파니의 얼굴에 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떠오르자 오타멘디는 당황해 말문이 막혔고, 콤파니는 그런 오타멘디를 향해 확신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최재혁···, 저 괴물 같은 꼬마하고 같은 팀인 이상 오늘 우리는 이긴다. 우리가···, 아니. 저 녀석이 이기게 할 거야.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앞으로 흐름을 쫓아가려면 제법 바쁠테니까.”
***
“압박해서 막아! 공이 오기 전에 먼저 공간을 차단해!”
“좋았어. 계속 그런 식으로 상대가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공 다시 뒤로 몰렸다! 압박 강도를 낮추지마!”
맨체스터 시티의 공세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유벤투스 선수들의 목소리도 계속해서 높아졌다.
상대가 어떻게 해서든 한 골을 넣어 동점을 만들겠다고 열의를 불태우고 있으니, 그들 또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 한 골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수비에 나서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오타멘디에서 카일 워커로 전해진 패스도 수비 벽에 막혀 결국 측면을 겉돌고 있을 뿐이었고, 그 외의 기회들도 득점이 터질만한 위험 지역까지 전개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만 계속 지키면 된다.
다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공을 쫓고 있을 때···.
‘뭐지, 이 묘한 느낌은?’
디발라는 갑자기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눈썹을 모았다.
오한이라도 난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훑은 것에 잠시 몸을 떨었던 디발라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현재 공이 구르고 있는 위치를 살폈고, 상대 선수들의 전체적인 포메이션을 확인한 디발라는 마지막으로 요주의 인물인 최재혁을 노려본 뒤 입술을 씹었다.
분명 눈에 띄는 무언가가 달라지진 않았는데, 재혁의 얼굴을 통해 느껴지는 여유가 디발라를 불안케 한 것이다.
그렇게 재혁의 곁에 다가선 디발라는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붙였다.
“뭘 꾸미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마음대로는 안 될 거다.”
디발라의 목소리를 듣고 슬쩍 시선을 옮긴 재혁.
재혁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디발라를 향해 생긋 미소를 보이더니 ‘그래요?’ 라는 짧은 말을 남긴 후 다시 등을 돌렸고, 디발라는 그런 재혁의 뒤를 쫓으며 눈에 불을 켰다.
지금부터 더욱 철저하게 상대를 마크하며 승리를 굳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디발라가 재혁을 괴롭히는 장면을 확인한 중계진들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하나가 되어 말했다.
“골을 넣은 이후부터 유벤투스의 기세가 더욱 무서워졌어요. 맨체스터 시티에게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게 바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역전을 허용한 이후부터 맨시티는 제대로 된 공격을 단 한 번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장기인 점유율은 어떻게든 지키고 있지만, 공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에요. 확실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결국 시간은 유벤투스의 편이 될테니까요.”
“말씀하시던 중 맨체스터 시티는 결국 또 한 번 공을 최후방까지 빼냅니다! 파고들 틈을 못 찾고 있는 걸까요? 최재혁 선수가 소유하고 있떤 공을 뒤로 건네줍니다!”
퉁!
그러던 중 재혁이 보낸 패스를 확인하면서 중계진들이 탄식을 흘렸다.
의도가 명백한 숨고르기.
짜임새 있는 수비를 뚫어낼 방법을 찾지 못 한 맨시티는 결국 다시 한 번 공을 뒤로 물리는 선택을 내린 것이다.
그런 맨시티의 선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는데···.
‘역시 그것 밖엔 수가 없었겠지!’
디발라를 포함한 유벤투스 공격진들은 재혁의 패스가 뒤로 빠지자 기대에 찬 얼굴로 안광을 빛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들이 고대하던 순간이 마침내 찾아온 것을 말이다.
좁은 간격을 유지한 밀도 높은 수비의 장점은 단순히 수비 상황에서만 빛을 발하는 게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상대가 중심을 후위로 내리면 그 순간을 노려 날개를 활짝 편 모습으로 상대 진영을 압박할 때, 공격과 수비를 함께 하기 위해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며 간격을 유지했던 것이고, 그런 유벤투스의 재빠른 상황 판단을 확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질듯 커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온다, 그런 묘한 기대감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만주키치, 디발라, 그리고 더글라스 코스타가 공을 받는 콤파니의 패스 각을 완벽하게 차단하는데 성공했을 때 확실해졌다.
이번 플레이를 통해 맨시티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콤파니의 정면을 가로 막으며 달려드는 디발라의 입술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양옆을 만주키치와 더글라스 코스타가 맡고 있고, 공은 아직 콤파니의 발에 닿지도 않은 상황.
이대로 달린다면 압박 타이밍은 완벽할 것이고, 그렇다면 콤파니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기껏해야 둘밖에 남질 않는다.
밖으로 공을 차내던가, 아니면 또 한 번 뒤로 공을 물리던가.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상대에게 득이 될 게 없었으니.
이번 플레이도 완벽히 자신들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라고 마음 먹으며 콤파니를 향해 몸을 날리던 디발라는···.
“드디어 열렸다···.”
“···?!”
속삭이듯 읊조린 콤파니의 목소리를 주워듣곤 얼굴이 굳었다.
열렸다니?
뭐가?
이해할 수 없는 콤파니의 한 마디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따라 움직이던 디발라는 콤파니가 공이 발이 닿게 무섭게 길게 차내는 것을 확인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열리긴 뭐가 열린단 말야. 동료가 건네준 패스도 가누기 힘들어 걷어내기 급급한···, 상태일···, 텐데?’
생각을 이어가던 디발라의 두눈이 부릅 떠졌다. 그리고 그건 경기장 위에 서있는 선수들도, 관중석에 앉아 지켜보는 사람들도, 중계석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이해할 수 없는 장소에서 콤파니가 걷어낸 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인물은···.
“최재혁?!”
“저 꼬마, 대체 언제 저기로 이동한 거야?!”
“하지만 그래봐야 독안에 든 쥐야!”
재혁에게 공이 향하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발을 움직인 마투이디의 외침엔 틀림 없었다.
콤파니가 시도한 것은 클리어에 가까운 패스였기에 공이 떨어지는 장소는 터치 라인 주변으로 공을 성공적으로 받는다 하더라도 쉽사리 빠져나갈 구석을 찾기 힘든 장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재혁의 양 옆, 그리고 필드 안 쪽으로 향하는 길목까지 유벤투스의 선수들이 자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대로 조여서 공을 뺏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며 재혁에게 다가가던 선수들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한 시라도 빨리 공을 뺏어 상대 골문을 노리고자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바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걸 보았다면···.
“드디어 왔구나.”
재혁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보았다면, 지금과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까?
그리고 만약···.
“아, 아니야! 지금 거기로 가면 안 돼! 돌아가!”
디발라의 외침을 들었더라면, 재혁을 향해 달려드는 행동을 계속 이어갔을까?
디발라는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를 괴롭히던 감각이 무엇인 지를 말이다.
그건 처음부터 재혁이 노리고 있던 플레이로···.
“저녀석은 처음부터 우리가 라인을 위로 올리길 기다리고 있던 거라고!”
터엉!
“?!”
디발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을 앞으로 쭉 밀고 나간 재혁.
그런 재혁의 행동에 마투이디의 동공이 커졌다.
자신이 쇄도하는 방향을 제대로 읽은 후 그 반대 방향으로 발이 딱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며 빠져나가는 세밀함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받게 될 충격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케디라.
분명 그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을 케디라는 방향을 정하고 빠져나가는 재혁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인데, 케디라 또한 멀어지는 재혁을 바로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처, 처음부터 케디라까지 예상에 둔 터치였다고?!’
말도 안 된다.
그저 우연이 겹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로 몸의 균형을 찾은 후 재혁을 뒤쫓으려던 마투이디는 케디라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전방으로 패스를 찌르는 재혁의 행동을 확인 한 뒤 헛바람을 삼켰다.
대체 어떻게 중원에서 찔러 넣은 패스 한 번에···.
“저 패스 한 번에 어떻게 전부 뚫리는 거야?!”
“아구에로 선수! 최재혁 선수의 패스를 쫓아 이동하는 아구에로 선수에게 순식간에 일대일 찬스가 만들어졌습니다! 유벤투스의 선수들은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인데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건 간격을 부순 겁니다! 최재혁 선수가 유벤투스의 세밀한 간격을 완벽하게 부수는데 성공한 겁니다!”
치밀하게 조직된 진영일수록 한 번 균열이 일어나면 그 파급력은 여타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혁은 그 점을 노리고 실점 이후 꾸준히 ‘빌드업’을 준비한 것이다.
반대편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하려 할 때 굳이 후방 자원을 이용한 것도, 남들이 보기엔 쓸데 없이 필요 이상으로 후방 자원들과 잔패스를 주고 받았던 것도, 모두 이를 상대 팀의 뇌리에 확신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공을 뒤로 뺄 것이다’라는 확신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을 이용한 플레이로 만들어질 찬스는 한 번이면 족하다.
단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재혁, 저 놈은 그 기회를 어떻게든 살릴 테니까.”
큭큭,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안토루는 실소를 흘린 뒤 들리지 않을 재혁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걸 정말 해냈구나. 정말 괴물이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골키퍼를 앞에 둔 아구에로가 박스 안으로 스며들었고, 골키퍼를 앞에 두고 오른발을 크게 휘둘렀다.
어떻게든 막겠다고 몸을 날리는 부폰 골키퍼는 양팔과 다리를 활짝 열었으나, 힘이 잔뜩 실린 아구에로의 슈팅을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날아간 슈팅이 골망에 걸리자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팬들과 선수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걸로 또 다시 동점.
이렇게 경기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또 한 번 빠졌고, 양팀 선수들은 서로를 향해 소리치며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앞으로 후반전이 끝나기까지 겨우 10분여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부터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은 경기 결과에 직결될 수 있었으니, 다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열의를 불태운 것이다.
그렇게 후반 43분, 44분, 그리고 45분을 넘어 추가 시간···.
“허억, 허억, 허억!”
선수들은 각자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쉬지 않고 달렸다.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턱끝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걸 손으로 훔쳐낼 시간조차 없었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실수 혹은 기회가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경기장 위에 서 있는 22명의 선수들은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절대로 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공이 촤르륵, 잔디를 훑는 소리와 함께 구르더니 한 선수의 발 밑에서 멈췄다.
맨체스터 시티의 최재혁.
등번호 88번을 달고서 달리던 재혁은 센터 서클을 살짝 벗어난 지역에서 공을 받더니 한 차례 템포를 죽였고···.
뻐엉!
낮고 빠르게 뻗어 나가는 중거리 패스를 전방을 향해 뿌렸다.
공이 재혁의 발에서 벗어나자 선수들은 뻗어나가는 재혁의 공을 쫓아 시선을 옮겼고.
“후욱!”
투웅!
사네가 허공으로 살짝 떠올라 가슴을 이용해 재혁의 패스를 받아내는 것을 발견하곤 서로 소리쳤다.
“죽어도 막아!”
“어떻게든 살려!”
오늘 경기의 마지막 플레이가 될 지도 모를 상황에서 유벤투스의 선수들은 기필코 막으라고 소리치며 몸을 날렸고,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어떻게든 사네를 도와 공을 박스 안에 집어 넣기 위해 공간을 찾아 달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네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상대 수비수를 노려보다가 짧게 드리블을 쳤다.
터치 라인을 따라서 한 번, 상대가 쫓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또 한 번.
그렇게 두 번의 이후 사네가 내린 선택은···.
투웅!
패스.
그것도 전방이 아닌 후방으로 향하는 패스였다.
대체 누구를 노리고 준 패스인가, 공을 쫓아 고개를 돌리던 선수들은 오버 래핑 중이던 멘디를 발견하곤 또 달렸다.
‘결국 측면을 파고 든 뒤 크로스를 올릴 생각이구나!’
터치 라인을 따라 달리는 멘디의 발 앞으로 패스를 바짝 붙여주는데 성공한 사네는 그대로 경기장 위에 넘어졌고, 덕분에 편히 패스를 전달 받을 수 있었던 멘디는 첫 번째 터치를 길게 뽑으면서 가속했다.
이걸 기필코 마지막 플레이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몸 안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모두 불태운 것이다.
그의 장기인 순간 속도가 폭발했고, 멘디를 쫓아 달리던 콰드라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대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멘디를 막겠다며 그의 유니폼을 향해 손을 쭉 뻗던 콰드라도는···.
“?!”
갑자기 발을 멈춘 멘디를 발견하곤 손을 거두었다.
대체 왜 여기서 멈췄는가, 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 멘디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찔러주면 반드시 그곳에 녀석이 있을 거거든.”
뻐엉!
좌측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패널티 아크를 향해 대각선으로 잔디를 스치듯 깔려 날아가는 빠른 패스.
아니, 슈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공은 받는 사람의 사정을 생각해주지 않으며 구르고 있었다.
대체 저런 무식한 패스를 누가 받겠는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 받았다!”
“대체 저걸 어떻게 받아? 저게 말이 돼?!”
재혁이 나타나 공을 이어 받자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건 유벤투스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완벽한 노마크에 골대까지 향하는 슈팅 코스도 완전히 열린 오픈 찬스를 상대에게 줘버렸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재혁의 슈팅이 빗나가길 기도하는 것과 골문을 지키고 있는 골키퍼의 능력을 믿는 것 뿐이었다.
‘제발 빗나가라···!’
‘제발 넣어줘!’
공의 운동력을 완벽하게 제어한 재혁이 왼발을 크게 디디며 슈팅 동작을 취하자 다들 속으로 소리쳤다.
그렇게 뒤로 쭉 뻗었던 재혁의 오른발이 반원을 그리며 공을 향했고···.
뻐어억!
삐이이익!
“아앗! 디발라 선수의 백태클! 뒤에서 들어온 디발라 선수의 태클에 최재혁 선수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주심이 곧장 휘슬을 분 뒤 레드 카드를 꺼냅니다! 퇴장입니다!”
“이건 큰데요? 만약 후반전이 동점으로 끝나게 된다면 연장전이 시작될텐데, 유벤투스는 한 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최재혁 선수,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데요. 혹시 부상이라도···.”
***
“재혁아, 최재혁! 괜찮아?”
“디발라, 저 미친 새끼가! 어딜 도망가는 거야, 이새끼야! 당장 일로 와 봐!”
“참아, 참아! 이미 퇴장 당했잖아. 괜히 케빈 너까지 퇴장을 당하면 곤란한 건 우리라고. 침착하게 상황을 읽을 줄 알아야···.”
“그래야···, 경기에서 이기죠···. 헤헤.”
“재혁아! 괜찮은 거야?”
“네. 다행히도 멀쩡해요.”
순간의 흥분으로 바짝 달아올랐던 상황에서 재혁이 헛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키자 케빈을 포함한 선수들이 그를 둘러쌌다.
태클을 당할 당시 범상치 않은 타격음이 났던 탓에 다들 걱정이 컸던 것인데, 재혁은 거뜬하다며 몸을 일으켰고 제자리에서 뜀뛰기까지 해보이면서 멀쩡하다는 것을 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 한 주심은 재혁에게 다가가 재차 물었다.
“어차피 이게 마지막 플레이야. 혹시라도 몸이 안 좋다면 빠지는 게 너를 위해 좋아.”
“전 괜찮습니다. 의료진도 올 필요 없어요. 바로 뛸테니까요.”
“흐음···.”
“정말 괜찮다니까요. 또 한 번 뛰어 볼까요?”
“후, 오케이. 알겠으니까 프리킥이나 준비해.”
재혁이 수차례 괜찮다고 말을 하고 나서야 삑삑, 호각을 불면서 교통 정리에 나선 주심은 스프레이를 뿌려 공이 놓일 장소와 수비벽이 쌓일 장소를 표시했다.
그러는 동안 재혁은 마음을 다잡으며 호흡을 골랐고, 그의 곁으로 실바와 케빈이 다가와 물었다.
“정말 멀쩡한 거야? 태클이 심상치 않았는데···.”
“뭐예요, 그 말은. 제가 부상이라도 당했으면 좋겠다는 건가요?”
“아, 아니.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
“농담이에요, 농담.”
말 한 마디에 당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슬쩍 미소를 흘린 재혁.
그는 또 한 차례 호흡을 다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프리킥은 양보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찰겁니다. 만에 하나 다리가 부러졌더라도 말예요.”
“···으음.”
범상치 않은 재혁의 표정과 말투를 확인하면서 잠시간 시선을 교환한 실바와 케빈.
두 사람은 좀 더 재혁의 모습을 살펴보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벗어났다.
어차피 재혁이 얻은 프리킥이었고, 딱히 양보를 바랬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재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믿는다는 말을 남긴 후 둘은 유벤투스 선수들이 뭉쳐진 수비벽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후우, 하아.”
심호흡으로 폐를 가득 채웠던 재혁이 가라앉은 눈동자로 골문을 노려보았다.
마지막 기회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이 프리킥을 마지막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이 상태로 연장전을 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니까 말이지.’
멀쩡한 것처럼 연기를 했지만 전혀 멀쩡하지 않은 왼쪽 발목을 살핀 재혁.
아마 지금 자신의 몸상태를 알게 된다면 욕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보다 재혁은 기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경기를 지켜보며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골대와 수비벽, 그리고 발목을 내려본 재혁은 멈추었던 발을 한 걸음씩 옮겼고, 왼발을 길게 뻗어 디딤발을 디딘 후 방금 디발라의 태클 때문에 완성할 수 없었던 오른발을 움직여 공을 때렸다.
곧 파앙, 공기 소리와 함께 체중이 한껏 실린 공은 허공에 높게 떠올랐다.
빠르게 떠오른 공은 순식간에 수비벽을 넘었고, 부폰 골키퍼가 몸을 날려 뻗은 장갑을 가뿐하게 피한 다음···.
“고···, 고오오올! 골입니다! 최재혁 선수의 추가 시간에 때린 프리킥이 유벤투스의 골망을 갈랐습니다!”
< 188. 연장전은···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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