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마술 시작 >
“이거, 제대로 한 방 얻어 맞았군.”
디발라가 골을 성공 성공시키는 장면을 벤치 주변에서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주름진 이마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상대팀이지만 흠잡을 구석이 없는 득점 장면이었다.
수비진을 4백으로 구성하면서 준비한 측면 수비를, 간격을 이용한 패스 플레이로 완전히 붕괴시키고 균열이 일어난 중앙으로 매섭게 침투한 뒤 모두의 허를 찌르는 로빙 슈팅 마무리는 평범한 선수라면 보여주기 힘든, 월드 클래스에 근접한 디발라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장면이었으니까.
아마 많은 축구 팬들은 지금 디발라의 플레이를 보면서 감동하고 있을 것이리라.
자신과 같이, 디발라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벌어진 입들이 다물어지지 않는군. 하긴, 저런 플레이를 상대 선수가 보여준다면 기가 꺾일만 하지.’
슬쩍 고개를 들어 벤치 위에 모여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의 표정을 살핀 과르디올라 감독.
그는 이어서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수들의 표정들을 살폈다. 그리고 코치들의 표정을 살폈고···.
‘좋아 죽는군. 하긴,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한 전술이 현실로 펼쳐지면 그 카타르시스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니까’
마지막으로 유벤투스의 감독인 알레그리의 얼굴을 확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예상이 가능했지만, 환희에 찬 얼굴로 양손에 쥔 주먹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고 있는 알레그리 감독의 모습을 보니 슬며시 부아가 치민 것이다
하지만 속에서 싹트는 감정을 애써 억누른 과르디올라 감독은···.
“훗.”
이내 조그만 실소를 흘렸다.
웃을 수 있을 때 실컷 웃어두라는 여유가 담긴 실소였다.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실소를 확인한 미켈 코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곁에 다가와 물었다.
“감독님. 지켜보는 눈들이 많은데요.”
“그게 왜?”
“글쎄요. 팀이 실점한 상황에서 실소를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 과연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진 않겠지. 아마 머리가 이상해졌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렇게 잘 아시면서···.”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될 상황을 상상해보려니 자연히 미소가 그려지더라고.”
“지금부터 시작될 상황이요?”
대화를 이어가던 미켈 코치의 말꼬리가 뒤늦게 올라갔다.
이제부터 시작될 상황이라니?
혹시 이런 상황을 대비해 따로 준비하신 게 있는 건가?
의문을 품고 자리를 지키게 된 미켈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했고, 그런 미켈을 슬쩍 곁눈으로 살핀 과르디올라 감독은 한 차례 어깨를 으쓱인 뒤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우리 측면 수비를 붕괴하기 위해 유벤투스가 준비해온 전술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어. 우리가 4백을 사용할 것이란 걸 완벽하게 예상하고 독주를 고급 포장지로 싼 뒤 선물로 건네줬지. 경기 중 자연스럽게 쉬프트를 바꾸기 위해 알레그리 감독이 선수들을 얼마나 훈련시켰을지 감도 안 잡힐 정도야.”
“동감합니다. 분명 쉽지 않았을 거예요. 지난 4강까지의 경기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지난 며칠간 집중 훈련을 시켜 완성시킨 거겠죠.”
“그 부분에 대해선 알레그리 감독도 대단하지만 선수들도 칭찬해줘야 해. 골을 성공시킨 디발라도 대단했지만, 이만한 전술을 무리없시 소화 중인 퍄니치, 케디라, 마투이디도 적잖은 노력을 했을 테니까.”
“···?”
“아직까진 보여줄 기회가 없었지만 만주키치와 더글라스 코스타 또한 분명 이에 반응할만한 개인 전술이 따로 있을 거야. 그 말인즉, 독이 든 선물 개봉식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겠지.”
“···저, 감독님?”
“왜 그런가?”
“아까부터 유벤투스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고 계신데요. 분명···.”
그에 대응하기 위한 지시를 말씀하시려던 게 아니었습니까?
미켈 코치는 뒤로 이어질 말을 침과 함께 꿀꺽, 속으로 삼켰다.
생각해보면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제부터 시작될 상황을 기대하겠다는 말만 했지,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말은 아니었지 않은가.
혹시 그 기대가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서가 아닌, 축구 팬으로서의 기대라면···.
‘패배가 확정되어도 좋은 축구를 하면 괜찮다는 생각이신···, 건가?’
“미켈 코치. 지금 이상한 생각했지?”
“예? 저는···.”
순간적으로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미켈은 말꼬리를 흐렸고, 그런 미켈을 빤히 바라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곧 피식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큭큭. 농담이야, 농담. 설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란 무대를 앞에 두고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야. 잡생각은 오늘 밤 침대 위에서 하도록.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
“그럼 다시 한 번 말하겠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바짝 굳었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녹인 과르디올라 감독은 방금 했던 말과 비슷한 내용의 말을 반복했다.
유벤투스의 전술 훈련도와 그 능숙함, 그리고 선수들의 개인 전술 또한 알레그리 감독이 그린 큰 그림 위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지를 말이다.
그것도 겨우 ‘며칠’이라는 제한적인 시간 안에 완성해서.
“···!”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물어 길게 이어지던 중 미켈 코치의 두눈에 느낌표가 떠올랐고, 그제야 알아차렸냐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씨익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확실히 겨우 며칠만에 완성한 전술임에도 흠잡을 구석이 없어. 측면이 탄탄한 4백의 측면을 도리어 붕괴 시키기 위해 준비한 전술이니, ‘지금’ 우리 팀을 저격하기 위한 용도로는 딱이지. 하지만···, 완성도는 높지만 과연 그 경험치는 어떨까?”
“경험치···.”
“전술의 완성도와 경험치는 분명 ‘팀을 강하게 한다’라는 목적은 같지만, 세부적인 요소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성격이 너무도 다른 두 가지야. 간단하게 완성도는 치밀함, 경험치는 유연함에 빗댈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알레그리 감독이 준비한 4백을 저격하는 저 전술은 분명한 겉보기에 잘 짜인 ‘도박’이지.”
도박이라는 단어에 힘을 준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에 미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완성된 전술이란 의미에선 분명 부정할 수 없었지만, 만약 그 완성도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부터 필요한 게 바로 경험이다.
여러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경험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유벤투스는 그 경험을 충분히 쌓을 시간이 없었다.
그제야 과르디올라가 그런 것처럼 웃을 수 있게 된 미켈 코치는 기대에 찬 얼굴로 감독에게 다가가 물었다.
“감독님께선 이 모든 걸 꿰뚫어보고 계셨군요. 역시 그 여유엔 이유가 있었네요! 그래서 어떤 준비를···.”
“글쎄, 준비를 한 건 내가 아니라서 말이지.”
“···예?”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가?
잠시간 청각을 테스트해 본 미켈은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재차 되물었고, 감독은 그에 그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상대가 우리의 측면을 노릴 것도, 4백을 부수러 나올 것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어떤 방법으로 나올 지는 나도 정확히 몰랐거든.”
“하, 하지만···.”
“하지만, 그걸 정확하게 예상한 사람이 한 명 있었지.”
“?!”
“말했잖아, 알레그리 감독이 도박을 준비했다고. 그래서 나도 한 번 걸어 봤어, 내가 가진 ‘카드’에.”
“서, 설마···.”
“원래 결승전이란 그런 거야. 99%를 완성 시켜줄 1%는 신, 혹은 운에 걸린 거거든. 그리고 내 1%는···, 저녀석이고.”
툭툭, 말을 끝내며 소매를 털어낸 과르디올라 감독은 고개를 돌려 한 선수를 찾았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처럼 미소를 띠고 있는 선수, 재혁을 말이다.
재혁은 과르디올라 감독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띤 채로 슬쩍 엄지를 들어 올렸고, 과르디올라 감독 또한 재혁과 똑같은 제스쳐를 취해 보인 후 자리에 앉으며 속삭였다.
“자 그럼 한 번 볼까. 이게 판을 뒤집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될 지, 아니면 원페어로 조용히 끝이 날 지를···.”
***
‘이 경기는 이겼다.’
이제 겨우 한 골 차 리드를 잡은 상황이었지만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질 것 같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 말이다.
골을 넣는데 성공한 디발라에겐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패스를 보내려고 마음을 먹으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여러 갈래 길들이 보였고, 드리블을 시도하고자 공을 가지고 이동하면 상대 선수의 다음 행동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이곳으로 지나가라는 듯, 그를 위해 비켜주는 것처럼.
그리고 슈팅을 때리고자 마음 먹으면···.
뻐엉···, 텅!
“아!”
지금처럼 힘이 실린 슈팅을 원하는 대로 때려낼 자신이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이번엔 골망이 아닌 골대를 때리는 데 그쳤지만 말이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이 하나가 되어 아쉬움에 찬 탄식을 흘렸던 것처럼, 디발라 본인도 결과가 못내 아까웠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한 번으로 되지 않으면 두 번, 그리고 세 번을 시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테니까.
다른 날이라면 어려웠겠지만, 적어도 오늘 만큼은 몇 번이든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디발라는 다시금 공을 쫓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흠.”
한 선수를 발견한 뒤 살며시 미간을 모았다.
맨체스터 시티의 88번, 최재혁.
오늘 이곳에서 뛰고 있는 그 어떤 선수보다 어리지만, 지니고 있는 재능만큼은 그 누구보다 위험한 선수.
머지 않아 놈은 유럽 정상, 아니. 세계를 목표로 하게 될 게 분명하리라.
TV를 통해 지켜본 재혁의 발자국을 확실히 눈에 담았던 디발라이기에 알 수 있었다.
아마 경기장에서 무언가 바뀐다면 분명 원인은 저녀석일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곳에서 확실히 밟고 지나간다!’
다른 곳도 아닌, 축구를 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있어서 꿈의 무대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었다.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미 이 경기장에 발을 들인 이상 모두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 또한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디발라가 양다리에 힘을 주었다.
골대를 때렸던 슈팅이 맨시티 수비수의 머리에 걸리면서 상대에게 공격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공은 골키퍼의 장갑을 떠나 재혁을 향해 구르고 있었으니.
‘쉽게 전진할 순 없을 거다!’
그런 재혁을 가로 막으면서 디발라가 두눈을 날카롭게 번득였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가 유지하고 있는 수비 진영은 4백에 2명의 미드필더가 수시로 교대하며 빈 측면을 커버, 혹은 패스 줄기의 뿌리가 되는 피더Feeder가 된다.
그 말인즉, 공격 상황시 패스의 뿌리가 되는 피더를 막게 된다면···.
‘원하는 대로 공격 전개를 하는게 불가능해지겠지!’
현재는 페르난지뉴가 이전 플레이의 수비를 위해 자리를 벗어나면서 재혁에게 피더 역할이 넘어간 상황.
‘그러니까 최재혁, 널 막으면 공은 흘러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 빠지게 될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터엉!
“디발라, 최재혁 선수를 밀착 마크! 유벤투스의 전진 압박이 대단합니다!”
“유벤투스의 선수들은 공격을 하면서도 항상 수비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짜임새 있는 간격 조절이 빛을 발하는 거죠. 맨시티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공격권을 가져와도 빠른 전개가 불가능하고, 결국 득이 없는 고착 상태가 쭉 이어지게 된다면···, 지금처럼 결국 최재혁 선수는 측면으로 공을 빼놓고 시작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던 해설자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가득 실려있었다.
결국 이런 상황으로 전개가 되고 말았다.
중앙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니 공을 바깥으로 빼내 상대적으로 층이 옅은 측면을 이용해 공을 전방으로 보낼 계획이리라.
하지만 그건···.
‘왔다!’
유벤투스가 짜놓은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재혁이 공을 왼쪽 측면 후방으로 빼내자 디발라의 눈빛이 반짝였고.
“공이 빠졌다! 좌우로 열어! 이대로 가둬서 다시 공을 뺏어오는 거야!”
“퍄니치, 올라가! 이건 무조건 뺏는 공이야!”
“알고 있어! 이미 달리고 있다고!”
그의 목소리에 맞춰 다른 선수들 또한 속도를 붙여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탄탄하게 짜여 있는 유벤투스의 진영 또 한 차례 변화했다.
줄기를 틀어 막는 중앙 밀집형에서 공이 빠진 측면을 공략하는 형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 또한 간격을 치밀하게 유지하며 유벤투스가 준비한 전술의 일환.
이번 플레이에서도 한 수 앞을 읽어낸 유벤투스가 이겼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이어질 상황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왔구나.”
“뭐?”
공을 쫓아 이동하기 위해 재혁을 스쳐 지나가던 디발라는 재혁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 거린 것을 주워 듣곤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오다니, 뭐가?
재혁에게 자신도 모르게 되묻고 싶었던 디발라는 그저 숨을 참고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잠시 발을 멈췄던 재혁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공과는, 지금 플레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소를 목표로 말이다.
대체 왜 저기로 가는 거야, 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할 때 즈음.
파앙!
축구공을 차는 소리와 함께 짧은 파공음이 이어졌고 모두를 경악시키는 장면이 마술처럼 연출됐다.
분명 공과는 상관 없는 장소를 향해서 달리고 있었을 텐데, 왜···. 아니, 어떻게···.
“어···, 어떻게 공이 최재혁한테 날아가고 있는 거야?!”
< 184. 마술 시작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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