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79화 (179/225)
  • < 179. 준비 시간 >

    “하지만 아무리 감독님의 말씀이라고 하셔도 그 요구는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든데요.”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들다?”

    “그러니까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전적으로 따를 수 있는 적절한 설명이 말예요.”

    퍄니치는 되묻는 알레그리 감독에게 침착하게 흔들림 없는 어조로 대답했고, 그런 퍄니치의 말에 몇몇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웅성거리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호응했다.

    자신들이 누구던가.

    유벤투스다.

    현재 이탈리아 리그를 점령하고 유럽 정상을 노리고 있는 구단이 바로 자신들이었다.

    그런 구단에 속해 있는 선수들인 만큼, 개개인이 품고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은 다른 누구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감독은 그런 자신들을 향해 상대 선수와 1:1 대결을 하지 말라고 하다니.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이제 20살 정도 됐을 어린 선수를 상대로 그런 말을 듣게 된 선수들은 굳이 표현하진 않았지만 상처가 난 프라이드 사이에서 뿔이 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린 것이다.

    그 중에서 몇몇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나름의 근거들을 토대로 삼아 반박했다.

    “만약 감독님의 말씀을 따라 그 친구와의 1:1을 피해야 한다면, 최소 2명의 선수들이 계속 그 선수를 마크해야한다는 소리인데. 그렇게 된다면 자연히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1명이 부족하게 될 게 아닙니까? 이건 제법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팀들이 겪은 문제도 비슷한 것들이었고요.”

    “단순히 그것만 문제가 아니에요. 매 순간 누가 누굴 상대해야한다는 고민을 거듭하다간 동선이 꼬일 위험도 있어요. 만약 그 꼬마가 중앙을 파고 들다가 측면으로 빠진다면 그때까지 마크하던 2명의 선수들은 길을 잃고 방황할 게 분명하다고요. 단순히 2명이 붙는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상황들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불만이 줄을 이었고, 감독은 팔짱을 낀 채로 선수들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선수들이 목소리가 잦아든 것에 알레그리 감독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걸로 칭얼칭얼 떼쓰고 싶은 사람들은 다 나온 건가?”

    “예? 저희들은 어디까지나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여기서 지고 싶어서 경기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던가?”

    “···!”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게 꼭 말해주게. 다른 누구보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워버릴테니까.”

    감독의 짧은 한 마디에 되려 반박할 말을 잊은 선수들.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짧게 훑으며 말을 이었다.

    “아, 혹시 공개적인 곳에서 이야기 하기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날 찾아와. 그정도 익명은 당연히 보장해줄 테니.”

    “···.”

    “후우,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그럼 이제 내 차롄가? 가만히 들어주고만 있으려니 보통 좀이 쑤셨어야 말이지. 자아, 뭐에 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

    툭툭, 가볍게 손바닥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 알레그리 감독이 전술판을 찾으면서 마커를 손에 쥐었고, 선수들은 그런 감독을 지켜보며 침을 삼켰다.

    방금까지야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떠들었지만···.

    ‘감독님 성격이면···.’

    ‘그냥 떠드는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내가 아까 뭐라고 했었더라. 생각없이 멍청한 소리를 했던 건···.’

    “그러면 먼저 콰드라도가 떠든 생각 없는 멍청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답을 해주는 게 좋겠지? 그건 솔직히 가만 듣고 있기 조금 힘들었거든.”

    “···.”

    꿀꺽, 지목을 당한 콰드라도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이는 것처럼 미팅룸 내부의 분위기도 한 차례 파도라도 탄 것처럼 술렁였고, 알레그리 감독은 손에 쥔 마커를 연신 이리저리 흔들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뭐, 전체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야.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마크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 쪽에 한 명이 부족할 수 있겠지. 산수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하지만 우리는 산수를 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한다. 그걸 잊으면 곤란하지. 우리의 무대는 수학 올림피아드가 아니라 축구장이라고. 각도기와 계산기 대신에 공과 골대가 있는 축구장이란 말이다.”

    알레그리 감독의 말에 콰드라도의 뺨이 붉어졌다.

    감독의 설명 때문에 자신은 축구가 아닌 단순 산수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탓이다.

    하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콰드라도는 이마를 긁적이며 침묵했고, 이어질 감독의 설명을 기다렸다.

    비록 알레그리 감독의 성격이 불같고, 또 입도 걸었지만, 그만큼 보충해주는 설명이 많은 감독이었기에 아무런 이유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콰드라도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초등학교 산수가 아닌,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자기가 축구 선수라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도록.”

    탁탁, 마커가 전술판을 빠르게 때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선들이 그어졌다.

    그 선들은 선수들을 의미하는 22개의 자석들 사이를 오가거나, 묶거나, 혹은 이어주었고, 그렇게 빽빽하게 가득 찬 전술판을 알레그리 감독은 만족스럽게 바라본 뒤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실제로 많은 팀들이 ‘펩시티’를 상대하기 위해 다양한 전술들을 준비했고, 또 시도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대로 먹힌 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 이유가 뭐였을까, 라고 고민을 해본다면 답은 예상 외로 간단하다.”

    “간단하다고요?”

    “가장 먼저 케빈을 묶으려 들었던 전술이 어떤 식으로 파훼 됐는 지를 살펴볼까? 중앙을 파고드는 케빈의 움직임에 제한을 두려 했던 전술은 초반까진 제법 효과적이었어. 실제로 펩시티는 점유율을 제법 많이 빼앗겼었고, 실점까지 당해 경기를 끌려갔으니 상대가 원했던 그림의 9할은 완성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거기서 펩시티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결과는 3대2 맨체스터 시티의 역전승. 과정과 함께 결과까지 뒤집은 역전승이었지.”

    “···.”

    “그리고 다음으로 실바를 묶으려 든 전술도 있었다. 아무리 실바라 할 지라도 숨 쉴 여유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압박 전술이었던 걸 모두 기억할 거다. 하지만 이 경기 또한 맨체스터 시티는 지고 있던 흐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결과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또한···.”

    “맨체스터 시티는 ‘새로운 길’을 찾았죠.”

    자신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목소리를 낸 디발라.

    그런 디발라의 말에 알레그로 감독은 불쾌하다기보다 오히려 빙그레 미소를 띠며 ‘그 길이 무엇인지 아느냐’며 되물었고, 디발라는 감독의 물음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최재혁. 맨체스터 시티는 ‘최재혁’이라는 통로가 만들어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미로처럼 꼬였던 경기를 풀어냈던 겁니다.”

    “역시 잘 이해하고 있군.”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던 매치업인지라 그 경기들의 진행 순서까지 외울 정도로 돌려봤거든요.”

    “그래? 그렇다면 대화가 빨라지겠어.”

    사악, 사악!

    알레그리 감독의 입술이 또 한 번 둥그런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와 함께 목소리 톤 또한 변화한 알레그리 감독은 손에 쥐고 있던 마커를 몇 번이고 휘둘렀고, 서서히 전술판 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의 의중을 파악한 선수들의 두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가장 먼저 감독이 무엇을 지시하려는 것인지를 이해한 키엘리니가 손을 뻗으려 했으나, 감독의 이어지는 설명이 그보다 빨랐다.

    여태까지와 달리 힘과 기세가 실린 목소리로 알레그리 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디발라의 말처럼,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을 것처럼, 맨체스터 시티가 무너질 뻔한 적이 많았으나 그걸 지켜낸 것은 그 뒤에 최재혁이란 안전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케빈에게 부족했던 한 순간의 창의성이라던가, 실바에게 부족했던 전투적인 전방 플레이들···, 맨시티에게 약점이 될만한 요소들을 최재혁이란 존재가 모두 커버해냈지. 경의로울 정도로 말야.”

    “그렇다면 저희도 최재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전술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지. 이미 다른 팀들이 그런 시도를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 지를 키엘리니,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야 우리도 남들이 하는 실수를 답습하는 결과 밖에 나오질 않겠지?”

    “그러면···.”

    “우리는 좀 더 확실한 타겟을 목표로 둘 거다. 특정 선수가 아닌···.”

    말을 이어가며 전술판을 툭툭 건드리던 마커를 거둔 알레그리 감독.

    그는 하얀 이가 훤히 드러나는 미소를 진득하게 뿌리며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라는 팀 자체를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를 말야. 이번에도 다른 장치 없이 최재혁에게만 의지할 생각이라면, 맨체스터 시티는 이번에야 말로 각오하는게 좋을 거야. 나는 최소한의 수단도 상대에게 허락할 생각이 없거든.”

    ***

    “그러니까 휴가를 받았다? 나흘 뒤면 다른 경기도 아니고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인데?”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꼭 쉬어야 한다고 감독님께서 강조하시더라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휴식은 취하지도 못하고 계속 달리기만 했잖아? 그리고 말이 휴가지. 그냥 하루 훈련을 쉬는 거밖에 되질 않는다고. 이게 휴가면 학교 방학은 거의 학생 은퇴 수준이야, 은퇴.]

    “아니, 이걸 방학에 비교하면···.”

    [그리고 사실 감독님의 말씀도 틀린 게 아니야.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쉬어 줘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나도 은연 중 떠올리고 있었거든.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것처럼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니까. 최근 경기에서 많이 치이기도 했고.]

    “뭐, 네 말이 그렇다면야···.”

    검은색 운동복과 가벼운 재질의 운동화, 그리고 어깨에 걸친 크로스백.

    한쪽 손에 휴대폰을 들고 케이트와 통화를 이어가는 재혁의 모습은 어느 날의 모습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몇 가지 세세한 점들이 평소와 달랐다.

    오늘 그의 가방엔 축구공을 대신해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구슬 땀을 뚝뚝 흘리며 훈련장을 뛰고 있는 대신 동네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전술을 고민할 시간에 간만에 걱정없이 먹게 될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들이 말이다.

    다만 그런 재혁의 모습에 오히려 본인보다 불안해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케이트는 속으론 이해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감에 머리카락을 베베 꼬면서 재차 물었다.

    “그러다가 경기에서 졌을 때 후회하지 않겠어? 나는 이번에 시험 준비하면서 정말 하루도 제대로 발 뻗고 잔 적이 없었다구.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당연히 지면 후회하겠지. 그것도 엄청나게.]

    “그, 그것 봐. 그렇다면···.”

    [하지만 그것도 결국 결과론에 빗댄 가정인 거잖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걱정하는 건 아무래도 나랑 맞지 않아서 말야.]

    “!”

    [그리고 차라리 걱정을 해본다면 좀 더 생산적인 걱정을 해볼래. 예를 들면 오늘 먹을 계란 후라이에 소금을 뿌릴까 말까 라던가, 콜라 한 캔 정도는 더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라던가···.]

    “그래. 그거 참 생산적인 걱정들이구나.”

    [혹은 나중에 누군가와 데이트를 한다면 어떤 코스로 다녀야 할까, 같은 것들을 말이지.]

    “···데, 데이트?”

    재혁이 중얼거리는 혼잣말들을 대충 흘려 들으며 고개를 주억이던 케이트의 두눈이 순간 동그랗게 커졌다.

    갑자기 데이트라니?

    케이트는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닌가 싶어 재차 데이트라는 단어를 반복했고, 넋을 잃은 케이트를 향해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 했다.

    어떤 레스토랑을 주변 사람들한테 추천 받았고, 디저트가 맛있는 곳과 분위기가 좋은 곳 중 아직도 어느 곳을 골라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라는 것과 같은 말들이었다.

    멍하니 재혁의 말을 듣고 있던 케이트는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최근 호주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나누게 된 이야기가 문득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간 탓이었다.

    ‘제니도 메튜랑 너무 친해져서 이성보다 그냥 친한 친구의 느낌이 더 강해졌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성 문제로 상담까지 하려고 했다고···. 혹시 재혁이도 나한테 느끼는 감정이···.’

    메튜가 제니에게 그런 것처럼 재혁 또한 자신에게 이성의 호감보다 그저 친한 친구와의 우정으로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다른 누군가와 할 계획에 대해 자신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케이트는 방금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차가움은 곧장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어디로 가든 아무렴 어때. 장소보단 사람이 중요한 거지.”

    [그런가? 아무래도 이런 거에 대해선 잘 몰라서. 그래서 의견을 좀 물어보고 싶었거든.]

    “하, 그래. 그렇겠지···.”

    ‘역시 생각대로였어. 하긴, 나도 제니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

    짧은 한숨과 함께 탄식을 토해낸 케이트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재혁과 지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사실 솔직하게 따지고 본다면 자신처럼 재혁과 거리낌 없는 시간을 보낸 사람이 과연 또 누가 있겠단 말인가.

    그런 과정을 생각해보면 재혁이 자신에게 연애 감정이 아닌, 친구로서의 우정이 더 커졌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리라.

    ‘···여기서 내가 상대가 누군지 물어보는 게 이상할까?’

    입술을 곱씹는 케이트의 안색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파리해져갔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학생일까?

    혹은 구단에 관련 되어 있는 인물?

    아니면 재혁의 플레이를 보고 반한 열렬한 여성 팬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느 누구라도 아마 지금의 자신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또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인물이리라.

    고민을 거듭하던 케이트의 입술이 서서히 떨어졌고···.

    “···그래서 누구야?”

    [응? 뭐가?]

    “그 데이트 코스 같이 가기로 한 사람 말야. 성격이라던가, 취향 같은 걸 내가 좀 더 알아야 조언을 해줘도 더 해주지. 자세할수록 좋아, 자세할수록.”

    [자세할수록?]

    “응. 자세할수록.”

    되묻는 재혁의 말에 답하는 케이트의 붉게 물든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정도면 자연스러웠을까?

    혹시 질투하는 모습이 읽혀서 추하게 보이진 않을까?

    아니지. 지금 내가 뭘 질투하고 있는 거람?

    사실 재혁이 데이트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모든 게 끝이 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손가락 끝으로 입술을 꾹 누르던 케이트는 스피커를 통해 재혁의 말소리가 흘러나오자 숨까지 참고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이는 나랑 같은데 취미는 좀 달라. 아무래도 난 운동을 하고 그 친구는 공부를 해서 그렇겠지. 최근까지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 다이어트엔 제법 신경을 쓰던데, 시험이 막 끝났으니 그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겠지?]

    “아무래도 여자들은 보통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니까.”

    [아, 어쩌면 가족이 함께 할 수도 있을 거 같아. 그 아이 오빠랑도 제법 친하거든.]

    “가, 가족이랑 본다고? 벌써 그런 사이인 거야? 대체 언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것에 화들짝 놀란 케이트의 양뺨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보다 벌써 가족과 친해질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니.

    당황한 케이트는 무어라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그러게. 우리가 벌써 그런 사이였나 봐.]

    “···응?”

    재혁의 짧은 한 마디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황한 듯 눈은 커지고, 입은 크게 벌어진 케이트를 향해 재혁이 재차 말했다.

    [그러니까 시간 비워둬. 결승 끝나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안토루도 껴서. 네가 싫다면 안토루는 사실 빠져도 상관 없지. 둘이서 몰래 먹는 것도 제법 괜찮겠지?]

    “바, 바보야. 그런 거 고민할 시간에 경기부터 이길 생각을 해. 그러다가 지면 다 꽝이라구.”

    [설마 내가 질 거 같아?]

    “진거 같다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혹시 같은 건 없어.]

    걱정스레 되묻는 케이트의 말을 단칼에 자른 재혁은 그 어떤 때보다 자신에 찬 목소리로 웃으며 답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무조건 이길 거야. 그러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니까. 그러니까 관중석에서 지켜봐줘. 가능하면 대답은 그 날 경기가 끝나는 순간 바로 듣고 싶거든.]

    “아, 아니. 나는···.”

    [아, 미안. 전화 이만 끊어야겠다. 이 뒤는 나중에 이야기 하자.]

    “응? 왜?”

    갑작스레 분위기가 달라진 것에 케이트가 당황해 되물었고, 그런 케이트를 향해 재혁은 간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터디 그룹 멤버들이 지금 막 다 모였거든.]

    < 179. 준비 시간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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