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100% >
“숫자로 정리되는 통계 수치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맨시티의 경기들을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굳이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최재혁 선수의 가치는 2천만 파운드를 뛰어 넘은지 오래라는 것을요!”
“그런 표현이 무리도 아니지요. 맨시티는 선수 한 명을 영입한 것이었지만, 그 한 명이 그동안 약점이라고 알려진 요소들을 커버해준 것은 물론 이제는 팀의 강점으로 자리하게 되었으니까요. 이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바보죠, 바보.”
“역대 최연소에요. 물론 비슷한 나이에 큼직한 커리어를 작성하기 시작한 선수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두가 최재혁 선수처럼 팀의 주역이었던 건 아니거든요. 이미 동 나이대에선 비교할 선수가 없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게 아니겠습니까? 다음 시즌이 기대보다 오히려 무섭게 느껴질 정도에요.”
“맨유 팬이신 마듀커스씨라면 확실히 그렇게 느껴지시겠군요. 하하하.”
“그건 우승 경쟁을 해야 할 첼시도 비슷한 상황 아닙니까? 너무 남 이야기듯 하지 마십쇼.”
그리고 드웨인의 칼럼에 이어 풋볼나잇이라는 심야 축구 TV 쇼에서도 최근 화두로 떠오른 재혁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작을 태웠다.
이번 시즌 승승장구하고 있는 맨시티와 그런 맨시티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최재혁.
미니 트레블을 달성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야깃거리였지만, 그 위에 올라간 소스가 최재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더더욱 컸던 것이고, 그러한 관심은 늦은 밤에도 수많은 시청자들을 소파 위에 앉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느끼는 것처럼 축구에 관해서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전문 지식을 자랑하는 이들 또한 모두 똑같은 생각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으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오직 한 사람, 다른 이들이 모두 신이 난 얼굴로 떠들고 있을 때 조용히 물잔을 매만지고 있는 칼리닌 해설 위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칼리닌 해설 위원은 선이 굵은 미간을 살며시 모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가 조심스레 틈을 봐 입을 열었다.
“글쎄요. 확실히 최재혁 선수의 활약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게 과연 마지막까지 제대로 이어질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칼리닌 해설 위원?”
“지금까지의 활약으로 본다면 재혁의 존재가 맨체스터 시티에게 있어서 ‘편리하다’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만, 편리란 것이 항상 긍정적인 게 아니거든요.”
기묘한 한 마디로 주변을 환기시킨 칼리닌.
그는 카메라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눈동자가 쌍을 이뤄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확인하곤 신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드웨인이 작성한 칼럼이라던가, 혹은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께서 한 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최재혁 선수는 믿기 힘든 활약을 펼쳐 보였고, 그걸 결과로 만들어냈으니까요. 그 덕에 맨시티는 마음 편히 시즌 우승을 조기에 확정 지을 수 있었고, 원하는 대회에서 원하는 결과를 성적으로 이뤄냈죠. 하지만 그 편리함이 주는 익숙함에 녹아들게 된다면 맨시티는 다가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실패하고 말 겁니다.”
“실패라니. 그렇게까지 단언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축구라는 경기들을 통해 익히게 된 경험이죠. 그만한 사례들을 우리 모두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레이카르드의 바르셀로나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 지를 잊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
자칫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말들이 하나의 예시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 모든 것을 뒤집었다.
07-08 시즌의 바르셀로나.
그 전 시즌의 실패를 교본으로 삼아 대대적인 개혁을 준비했으나, 반등에 실패했던 당시의 바르셀로나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다들 단번에 칼리닌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칼리닌은 그런 사람들에겐 보다 자세한 설명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도움을 주기 위해 말을 계속 했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 대대적인 이적이 있었습니다. 빅 네임들의 사인이 줄을 이었고, 새로운 재능들을 발굴, 또 기용하면서 이번 시즌은 작년과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실제로 보얀 선수는 최연소 기록을 갈아 치울 정도로 팀에 공헌했고, 지오반니 선수 또한 지켜보는 이들을 기대로 설레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무관이었죠.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겠지요?”
“아무리 결과를 중시하게 되는 프로 무대라고는 하지만, 그때 분위기는 제법 과했죠. 감독부터 코치, 그리고 선수들까지 모두 쫓기든 자리에서 나와야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또 프로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이었지요. 결과만 좋았다면 편리하게 이용만 할 수 있었겠지만, 그 편리함이 부서지는 순간, 그 조각들이 뿌리는 날에 자신이 베게 될 지도 모르니 말예요. 그리고 맨시티에게 있어서 최재혁이 바로 그런 존재인 겁니다.”
꿀꺽, 말을 끝냄과 동시에 그동엔 손에 쥐고 있던 물잔을 기울여 삼킨 칼리닌은 시선을 스튜디오 중앙의 스크린으로 옮겼다.
재혁의 얼굴과 함께 다양한 기록들이 적혀 있는 스크린 화면으로 말이다.
아직까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 모두의 아이돌이지만, 다가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 그 이후, 어떤 상황을 겪게 될 지 모를 어린 선수.
칼리닌은 엉켜버린 실타래만큼이나 복잡한 머릿속을 간단히 정리하는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려놓으면서 자리를 정리했다.
“이 친구의 유통 기한은 과연 얼마나 될지, 그건 아마 일주일 후의 경기가 끝나면 가늠이 잡히겠지요. 마침 상대도 딱 적당하지 않습니까? 결승에서 만나게 될 상대가···.”
***
“맨체스터 시티와 유벤투스라. 재밌는 이야기를 가진 두 팀이 결국 결승까지 올라왔군.”
“이걸 이변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넌 이탈리아의 챔피언이 결승까지 올라간 걸 이변이라고 말하려는 거냐?”
“하지만 상대가 바르셀로나였잖아요? 이건 이거 나름대로 충격이었다고요. 설마 그 바르셀로나가 유벤투스에게 질 줄이야. 그리고 맨시티도···.”
“그게 축구라는 거다. 100%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재밌는 거잖아?”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식곤증을 이겨내기 위해 커피를 손에 쥔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한적해진 카페에 앉은 이상민 기자와 최동호 인턴은 신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당연히도 둘이 같이 읽고 있는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는 축구였고, 화두는 곧 다가올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향해 있었다.
기나긴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할 경기이며 올 시즌 유럽 최고의 팀을 가르는 경기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하루가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둘과는 입장이 달랐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일전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등장한 청년이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기분 알죠. 뮌헨을 저희들이 이겼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왔으니 말예요. 독일의 챔피언이 졌다는 충격이 저희가 결승에 올랐다는 사실보다 컸나 봐요.”
“흐익! 재혁아! 오면 왔다고 인기척을 좀 낼 것이지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동호 형이랑 기자님이랑 둘이서 진지한 얼굴로 말씀들을 나누고 계시길래 방해인 거 같아서 제 커피만 따로 주문해서 왔어요. 괜찮죠?”
“우리가 마실 건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그보다 우리가 사줬어야 했는데, 미안하군.”
“나중에 커피보다 더 맛있는 걸로 사주세요. 설마 인터뷰를 겨우 커피 한 잔으로 퉁치려던 것은 아니었겠죠? 취재비도 나오잖아요.”
“그래봐야 네 주급의 반도 안 돼.”
이제는 이런 상황이 제법 익숙했는지 되려 농담을 건네며 웃는 재혁.
그런 재혁을 마주보면서 이상민 기자 또한 미소를 떠올렸다.
옛날엔 어색하게 간신히 몇 마디를 유도하면 다행이던 녀석이 여유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아주는 게 괜스레 대견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이상민 기자는 단어로 나열해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의라는 게 있으니까. 다음 주에 시간 괜찮으면 같이 시티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면 되겠어. 마침 예약석을 준비해놨거든. 제법 비싼 곳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비싼 이야기들을 좀 나눠도 괜찮겠지?”
“준비하신 질문들이 많이 있으신가보네요?”
“다른 누구도 아닌 최재혁이 대상이니까. 최소 4부까지 쓸 수 있을 정도로 모아놨지.”
“후후. 좋아요.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요?”
“일단은 우승 이야기들부터 해볼까? 기분이 어때? 나름 팀의 주역으로서 활약했잖아?”
“최고죠. 이걸 또 다른 말로 설명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럼 그 전에 과르디올라 감독님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 먼저 알고 싶은데···.”
리그컵 우승, 리그 우승, 그리고 FA컵 우승.
당시 상황들은 순차적으로 돌아보며 질문을 던지는 이상민 기자의 얼굴에 더 이상 장난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프로 선수를 상대하는 전문 기자의 모습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편안함이 아닌 상대에게 보여줄 최고의 존중과 예의를 나타낼 진정성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대의 진정성에 응답하는 재혁 또한 진지한 얼굴로 인터뷰에 임했다.
평소 공식 석상에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는 만큼, 이런 자리에서라도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는 몇 시간이고 이어졌고, 나름 만족할 수 있을 만한 분량을 모았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상민 기자가 무언가를 떠올리곤 손가락을 튕겼다.
“슬슬 마무리 할 때도 됐으니, 조금은 자극적인 질문을 던져봐도 괜찮을까?”
“자극적인 질문이요? 기자님께서도 그런 질문들을 준비해요?”
“내가 준비한 건 아니고, 신문사에서 혹시 기회가 되면 물어봐달라고 했던 것들이 몇 개 있었거든. 거기서 한 가지가 갑자기 떠올라서 말야.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후룩, 이젠 차갑게 식고 거의 바닥에 닿아 있는 커피를 짧게 한 모금 삼킨 이상민 기자는 여느때완 달리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턱주변을 매만졌고, 호기심에 차오른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재혁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칼리닌 해설위원이 누군지는 너도 알고 있지?”
“모를 수가 없죠. 제 경기도 해설을 하시던 분인 걸요.”
“그럼 그 분이 풋볼나잇에서 하신 말씀도···, 그 표정을 보니 잘 알고 있나 보군.”
재혁의 눈썹과 입주변이 기묘하게 변하는 것을 확인한 이상민 기자가 끝에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고, 그런 상민을 향해 재혁은 호흡을 토해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모를 수가 없죠. 그만한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모른다고 하는 게 오히려 거짓말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에 관한 네 답변은?”
“분명 편리함의 경계와 그것의 유통기한에 관한 이야기였지요. 마치 캔 통조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용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호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 맞는 말인 것도 아니죠.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축구에 100%는 없으니까 말예요.”
생긋, 짧지만 확실한 미소.
의미는 바로 알 수 없었지만 저 미소가 그냥 지어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상민과 동호는 침을 꿀꺽 삼킨 채로 재혁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하지만 제가 축구에서 가능한 100%가 무엇인지 다음 경기에서 꼭 보여드리도록 하죠.”
“축구에서 가능한···.”
“100%···?”
그런 둘을 향해 재혁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을 한 마디를 남기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굳이 지금 이곳에서 떠들 필요는 없으니까.
앞으로 며칠 뒤 다가올 경기.
중요한 것은 그 날 어떤 활약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유벤투스도 마찬가지였고,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은 알레그리 감독은 진지한 목소리로 짧고 간단한 한 마디로 선수들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 바로 말해두겠다. 결승전에서 최재혁과의 1:1 정면 승부는 금지다.”
“네?! 하지만 겨우 그 꼬마 하나가 무서워서···.”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전술적 조언이 아니다.”
묵직한 어조로 반발하려는 선수의 말을 간단히 묵살한 알레그리 감독.
그는 예의 자주 보여주는 굳은 얼굴로 해당 선수를 노려본 후 날카롭게 말했다.
“이건 감독으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 178. 100%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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