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75화 (175/225)

< 175. 바람이 멈추는 곳 >

매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는 웸블리 경기장.

현지에 모여든 팬들의 숫자가 수만명이었던 만큼,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결승전이 다름 아닌 영국 FA컵이었던 만큼,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는 쉼없이 메아리치며 현장을 휩쓸었다.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경기처럼,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의 마음 또한 마치 열병에 시달리는 것처럼 쉬이 식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영국 말고 또 한 곳 있었으니.

“세상에, 신형민 선수!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신형민 선수의 한 방을 제대로 얻어 맞은 맨시티, 결국 이렇게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경기는 이제 다시 혼전에 빠지고 말았군요!”

바로 한국.

두 명의 한국인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은 진즉 잠에 들었어야 할 시간에도 눈을 감지 못하고서 한 손에는 닭다리, 다른 손에는 맥주를 쥐고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경기를 한국어로 중계하고 있는 캐스터와 해설자들 또한 현지 중계진들에 못지 않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경기를 중계 하고 있었고, 신형민이 동점골을 터트린 상황에선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런 패스를 살려내는 트래핑이라니요! 그리고 이후 연결 시킨 슈팅은···! 그가 왜 오늘 경기에서 선발로 뛰고 있는 지를 증명하는 슈팅이었죠!”

“맞습니다. 이건 신형민 선수이기 때문에 성공 시킬 수 있었던 득점이었어요. 다시 봐도 정말 기가 막힌 실력이네요. 수년간을 연습하고 단련한 기술들이 그 짧은 순간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고 밖에 볼 수가 없어요. 역시 세계 무대를 호령할만한 실력을 지닌 선수답습니다!”

“이제 점수는 1대1, 동점! 경기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20여분. 웸블리 경기장은 또 한 번 몰아칠 태풍을 기다리며 재개될 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마지막 휘슬이 울렸을 때 웃게 될 팀은 어느 곳이 될 지···!”

“···오빠, 괜찮겠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이들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읊조린 재희.

옅지만 또렷한 걱정이 묻어난 재희의 목소리에 같이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시선을 돌렸고,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차범수는 재희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걱정인 거니?”

“그게···, 그렇잖아요. 지금 저 대회가 엄청 큰 거죠? 그런 대회의 결승전을 뛰고 있는 중인데, 같은 한국 사람한테 동점을 허용했다는 게···.”

“심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다?”

끝없이 늘어지는 말꼬리의 매듭을 차범수가 대신 지어주자 재희는 콜라가 든 컵을 양손에 쥐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재희를 따라 물을 한 모금 삼키던 차범수는 다시 한 번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분명 쉽진 않을 거야. 이제 영국 데뷔 1년차···, 호주에서도 프로 경기를 뛰었다곤 하지만 아직 2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니까. 게다가 다른 시간도 아닌 서서히 종막이 다가오는 시간대에 상대에게 허용한 동점골은 아직은 10대인 어린 선수에게 제법 무겁게 다가올 수 있겠지.”

“그, 그러면···.”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재혁은 평범한 10대의 어린 선수가 아니잖니?”

“!”

설명이 길어질수록 낯빛이 어두워지던 재희의 얼굴이 일순 밝아졌고, 그런 재희를 향해 살며시 검지를 들어보이며 빙그레 미소를 떠올린 차범수는 단호하게 말을 끊은 후, 잠시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술을 떼 말을 이었다.

“어느 10대 선수도 영국 데뷔 시즌에 이만한 활약을 보인 선수가 없었어. 하물며 그 어린 선수가 동양에서 왔다면 더더욱이 말할 것도 없지. 게다가 그 선수가 다른 선수들도 아닌 리그 탑클래스인 다비드 실바와 케빈 데 브루위너 같은 선수들과 경쟁을 해왔다면···, 그런 선수를 과연 우리는 평범한 10대 선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저, 저는 축구 선수들에 대해선 잘 몰라서···.”

“간단하게 이렇게 생각하면 돼. 우리는 지금 재혁이 느끼고 있을 감정의 100분 1도 알 수 없다, 라고 말이지. 왜냐면 지금 그가 서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최고 중의 최고, 오직 선택 받은 상위 1%만이 자리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 사람의 기분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니? 나도 한 때 그런 곳에 올랐던 경험은 있지만, 아마 재혁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거든.”

“···!”

“그렇기 때문에 안심하고 경기를 지켜보면 되는 거야. 앞으로 남은 시간은 평범한 선수들이 아닌, 에이스들의 무대가 될테니까. 그리고 에이스들의 무대라면···.”

사악, 이제는 비어버린 컵을 내려놓으면서 냅킨을 손에 쥔 차범수.

그는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경기장, 그 위에 홀로 서있는 재혁을 바라보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재혁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무대들 중 하나지. 남은 20분은 아마 그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될 거야. 아니, 지켜보는 우리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되겠지. 최고의 선수가 보여줄 최고의 활약, 그게 바로 이제부터 시작될 테니까.”

***

촤아악!

“크읏, 공이···!”

“바로 압박해! 발을 멈추지 말라고!”

“나 열린다! 내 쪽도 봐 줘!”

“막아! 드리블을 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지 마!”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선수들의 목소리들.

제각기 다른 감정과 목적을 이유로 높아지는 목소리들은 쉬지 않고 경기장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목표는 하나로 모두 똑같았다.

우승.

이 경기를 이기고 꼭 트로피를 손에 쥐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놓고 11명씩 나눠진 2팀의 선수들은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지친 심신을 계속해서 재촉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점골을 터트린 형민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숨이 가빠와 고통스러웠으나, 동시에 느껴지는 희열감에 다리를 멈추지 못했다.

그는 뇌리를 수십, 수백번 스치고 지나간 생각을 거듭 떠올리면서 잔디 위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눈동자에 담았다.

‘앞으로 한 골···, 한 골만 더 넣으면 돼···!’

축구에서의 흐름이란 바다에서 춤추는 파도와 같다.

한 차례 몰아치면 뒤로 휩쓸려가고, 다음을 기다리며 숨을 죽인다.

그렇게 모래사장을 반복해서 뒤덮으며 천천히 몸집을 키우던 파도는 더 큰 파도를 일으키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고, 마침내 적절한 때가 왔을 때, 높게 떠올라 입을 큼직하게 벌리곤 달려들기 시작한다.

바로 지금 자신들처럼!

투웅!

길게 뻗은 다리에 공이 걸리고, 맨체스터 시티가 소유권을 잃자 토트넘에선 곧장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동점골을 터트린 후 서로 공방을 주고 받길 수여분.

드디어 다시 한 번 상대의 골망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에 다들 신경을 바짝 곤두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신형민은···.

“흐아아아!”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고통인지, 기합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골.

한 골이면 고대하던 첫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직접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에 형민은 괴롭지만 죽을 힘을 다해 달렸고, 뎀벨레와 델레 알리를 거쳐 해리 케인으로 공이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민은 박스 안으로 직선 코스로 향하던 발걸음을 꺾었다.

그리고 그런 형민의 움직임을 눈으로 포착한 해리 케인은···.

‘나이스 무브먼트!’

파앙!

“!”

자신의 발 아래 공이 놓이기 무섭게 속도는 그대로 살린 채로 각도만 꺾는 발등 패스로 형민의 앞으로 공을 떨어뜨려 주었다.

중앙에 밀집된 맨시티의 수비를 조금이라도 흔들어놓기 위해선 측면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

이때 시도한 형민의 적절한 ‘인사이드-아웃’은 흠잡을 구석이 없는 적절한 선택이었으니, 케인은 형민의 플레이로 일어나는 파도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선택은···.

‘···왔다!’

패널티 박스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형민의 눈에 빛이 떠오르면서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오타멘디와 콤파니 사이에 스며든 해리 케인의 위치, 그런 케인과 거리를 유지하며 2차 침투를 시도 중인 델레 알리, 그리고 반대편 측면에서 혹시라도 공이 빠진다면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에릭센까지.

이어갈 플레이로 어떤 선택을 취해도 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형민은 눈동자에 스며든 빛무리처럼 환한 미소를 살며시 베어 물었고···.

뻥!

짧게 공을 끊어차는 것으로 플레이의 시작을 알렸다.

수많은 선택지들 중 형민이 고른 것은 패스.

처음 자신에게 패스를 주었던 해리 케인에게 다시 공을 돌려주는 리턴 패스를 그는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형민의 선택은···.

“나이스 패스···!”

오타멘디의 뒷공간을 파고 드는데 성공한 케인에게 정확히 이어지면서 토트넘에게 있어선 ‘확실한’ 찬스를, 그리고 맨시티에게 있어선 ‘치명적인’ 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이후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여기서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양팀 팬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호흡을 해야 할 폐를 꾹 움켜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선수들도, 수비를 하기 위해 잰걸음을 취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넣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공을 컨트롤 하는 해리 케인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을 막겠다며 입술을 굳게 다문 콤파니와 에데르손 골키퍼.

세 사람의 시선은 모두 동시에 한 차례 공에 모였고···.

뻐엉!

케인이 슈팅을 때리면서 그들의 시선은 목적이 달랐던 만큼 다시 흩어졌다.

슈팅을 시도한 케인은 빠른 속도로 잔디를 훑으며 구르는 공이 도착하길 기대하고 있는 골대 구석을 노려보았고, 콤파니는 슈팅이 이동할 궤적을 노려보며 제발 그의 발끝에 공이 닿길 기도하면서 다리를 길게 뻗었다. 그리고 골키퍼인 에데르손은 이동하는 공이 움직이는 루트를 확인하면서 양손을 쭉 뻗었다.

그렇게 각기 다른 선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이동을 시작한 공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잔디 위를 스치듯 날았고···.

—터엉!

“아!”

“좋았어, 막혔···!”

슈팅은 골망이 아닌 골대에 걸리면서 큰소리와 튕겨나갔다.

동시에 콤파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한 차례 걸렸으나, 이어지는 장면을 확인하곤 그 미소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신형민.

패스와 동시에 다시 한 번 더 이동 루트를 바꾼 형민은 곧장 패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를 시도했던 것이고, 골대를 때렸던 공은 마치 자석을 쫓는 것처럼 형민의 발을 향해 정확하게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연결될 장면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던 콤파니는 밸런스가 무너져 잔디 위로 쓰러지면서도 핏대를 잔뜩 세운 목청을 키워 소리치려 했다.

만약···.

“후우, 다행이다. 안 늦었네.”

“최재혁!”

재혁이 형민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공을 잡음과 동시에 눈앞에 등장한 재혁을 노려본 형민이 짧게 그의 이름을 읊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이 귀신같은 놈은 언제 여기까지 내려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단 말인가?

혹시 진짜 귀신이 아닐까, 그런 실없는 농담을 머릿속에 잠시간 떠올렸던 형민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물론 최재혁, 네가 늦지 않고 앞을 막는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나.

‘골키퍼가 완전히 빈 골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득점에 실패할 리가 없지 않겠냐?’

투웅!

그러니까 지켜봐라.

내가 직접 경기를 끝내는 모습을!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형민이 오른 발등으로 공을 한 차례 쭉 밀었다.

골키퍼인 에데르손이 선방을 시도하기 위해 자리를 벗어난 지라 재혁만 벗겨내고 공을 밀어넣는다면 득점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그렇다면 그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최재혁, 너를 돌파하고 골을 넣겠다!’

“신형민 선수,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각도를 넓힙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터치! 최재혁 선수, 멀어지는 신형민 선수를 계속 쫓아보지만···!”

“열렸죠! 열렸어요! 신형민 선수의 오른발이 그대로 백스윙···, 그리고···!”

파앙!

“아아앗!”

숨을 죽인 채로 형민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토트넘을 응원하는 팬들도,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팬들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어지는 상황을 확인하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곤 그대로 비명을 내질렀다.

왜냐면 그들이 지켜보던 공이 움직임을 멈췄으니까.

다름 아닌 최재혁, 모두가 골대로 향할 것이라 예상했던 공은 최재혁의 발에 걸려 움직임을 멈춘 채로 잔디 위에 우뚝 섰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한동안 두눈을 부릅 뜬 채로 경기장을 내려보다가 뒤늦게 소리쳤다.

“뺏었어! 신형민의 공을 최재혁이 뺏었어!”

“세상에, 저기서 턴오버라니! 저건 한 점을 거저 먹는 상황이었잖아?”

“대체 저걸 어떻게 막은 거야? 아니 그보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투웅!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깐 발이 멈췄던 선수들의 움직임이 또 다시 격해졌다.

공이 골대와 가까운 상황이었으니 토트넘의 선수들은 어떻게든 다시 공을 뺏어올 심산으로 재혁을 향해 돌진한 것이고, 그런 토트넘 선수들을 상대하게 된 재혁 또한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을 발에 붙인 채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재혁을 향해 사람들은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최재혁, 지금 뭘하고 있는 거야? 얼른 걷어내!”

“아군 위험 지역에서 드리블이라니! 압박감에 미쳐버렸나?!”

“안 돼···, 안 돼···. 저기서 뺏기면··· 만약 뺏긴다면···!”

혹시라도 벌어진다면 겪게 될 끔찍한 상황.

팬들은 그 상황이 제발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며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팬들의 심정과 달리, 재혁은 여전히 공을 자신의 발밑에 둔 채로 드리블을 시도하고 있었고, 재혁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토트넘 선수들은 잔뜩 열을 올린 채로 흥분했다.

“뺏어! 뺏으면 다시 기회가 온다!”

“공이 파이널 써드를 벗어나기 전에 압박하는 거야! 얼른 붙어!”

잃어버린 기회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선수들이 공을 몰고 있는 재혁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고,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던 신형민을 필두로 하나둘 공을 가지고 있는 재혁의 방위를 하나씩 점하며 그를 압박했다.

분명한 위기 상황.

만약 다른 이들의 말처럼 만약 공을 빼앗긴다면 또 다시 찾아올 실점 위기가 확실한 상황이었기에 다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장면을 지켜보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웃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완벽한 ‘체크 메이트’라고.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혼잣말을 곁에서 주워들은 스탭 코치는 대체 이게 어떻게 체크 메이트냐고 되물으려 했으나, 이어지는 장면을 눈에 담게 되자 그는 그저 헛바람을 삼키면서 두눈을 크게 키울 뿐이었다.

왜냐면 지금 그의 눈앞에선 도저히 그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분명 최후방에 놓여 있어야 했을 공이···.

“어, 어째서 저 공이 지금 센터 서클을 넘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돼···! 분명 클리어를 시도할 여유가 없었을 텐데?”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냐?

혹시라도 재혁이 듣고 있다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사람들은 큼직하게 커진 동공을 떨며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디발라가 조용히 한 마디를 내려놓았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 때문에 찾아오게 될 가장 큰 기회. 최재혁은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있었던 거군요.”

“뭐? 하지만···!”

“그리고 위험하다곤 했지만 사실 좀 더 냉정하게 상황을 보자면 그렇게 위험한 것도 아니었어요. 단순히 박스 안에 공이 있었을 뿐, 최재혁은 공을 가지고 철저하게 외곽 코스로 향하고 있었고, 공을 뺏긴다고 해도 그 뒤로 찾아온 풀백과 센터백들이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했을 것이니. 모든 것은 최재혁, 저 꼬마가 ‘위험하게끔’ 상상하게 만든 상황인 거죠.”

“···!”

“하지만 이건 좀 놀랍네요.”

사악, 손바닥으로 턱끝을 쓸어내리며 옅은 미소를 떠올리던 디발라.

그는 단 한 번의 패스로 모든 게 뒤집어진 상황을 지켜보면서 재밌다는 듯, 피식 실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저런 상황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재혁은 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길을 닦고 있었어요. 그리고 성공시켰어요. 팀을 길을 따라 걷게 만드는데 말이죠. 아마···, 이건 제법 치명적일 겁니다.”

“치명적일 거라니?”

“파도란 바람을 타지 못하면 생기지 못하는 거예요. 토트넘이 몰아친 파도가 제법 거셌습니다만, 바람이 흐름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과연 파도가 계속 칠 수 있을까요?”

“···!”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플레이는 그런 겁니다.”

꿀꺽, 서서히 말라가던 입술에 침을 묻히고 목울대를 삼킨 디발라.

그는 확신에 반짝이는 눈동자로 재혁이 차보낸 패스가 이어지는 장면으 지켜보며 말했다.

“토트넘의 파도를 완전히 멎게 할, 그런 플레이 말예요.”

***

파앙!

짧은 소리와 함께 발안쪽에 걸렸던 공이 모멘텀을 잃었다.

가속을 잃은 공은 그렇게 서서히 잔디 위로 떨어졌고, 재혁의 패스를 이어 받게 된 아구에로는 긴장한 얼굴로 공을 컨트롤하며 전진을 시작했다.

당장 그의 눈앞에 들어오는 토트넘 선수들이 셋.

거기에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까지 있으니 최소 네 명이 그를 막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구에로는 쉬이 속도를 낼 수 없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긴장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긴장을 풀지 않고 있을 뿐.

그의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래, 웃음이 나겠지. 패스 한 번에 여기까지 공간을 허용하고 말았으니 말야.’

그런 아구에로의 미소를 정면에서 응시하며 베르통언이 어금니를 물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 자신들은 위험하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상대가 플레이를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그들의 뒤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골문이었고, 그 골문에 공이라도 들어가는 날엔 전망은 더없이 어두워 질테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골문까지 향하는 길을 쉽게 열리게 두지 않아···!’

콰악!

아구에로의 지척에 다가간 베르통언의 어깨가 바로 상대의 어깨를 짓눌렀고, 그 몸싸움에 아구에로는 제법 놀랐는지 두 눈에 이채를 떠올렸다.

이대로 계속 공을 몰고 나가다간 빼앗길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만큼 베르통언의 의지가 대단했던 것이고, 그런 베르통언을 상대로 아구에로는 가까스로 자신을 버텨내다가 혀를 차며 공을 안으로 거두었다.

빼앗기느니 지켜낸다.

그런 선택을 내리고 취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어두운 얼굴로 공을 가지고 뒤로 돌려던 아구에로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고, 아구에로의 갑자기 달라진 기색에 베르통언이 눈썹을 모으다가 그 변화의 이유를 발견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최재혁, 또 너냐?”

< 175. 바람이 멈추는 곳 > 끝

ⓒ 권주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