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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미드필더-173화 (17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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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최재혁 선수의 패스 한 방에 토트넘의 중앙이 완벽하게 꿰뚫렸습니다!”

    “이건 그냥 꿰뚫린 수준이 아닙니다. 토트넘의 목에 맨시티의 칼날이 닿기 직전까지 갔어요! 명백한 토트넘의 위깁니다!”

    최재혁에서 아구에로로 이어지는 패스를 확인한 중계진들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높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단번에 중원을 통과한 후 골키퍼를 바로 상대하게 만드는 찬스를 만들어주는 패스를 보고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단 말인가?

    게다가 그 패스가 15여분간 지지부진하던 분위기에 반전을 주는 패스라면?

    양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 또한 상황에 따라 자연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워어어! 드디어 왔다!”

    “넣어! 넣어야 해!”

    “막아! 제발 막아!”

    드디어 상황다운 상황이 연출된 것에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묻어나는 목소리들.

    아구에로의 발에 닿은 공이 골망에 향하길 바라는 맨시티의 팬들과 요리스가 어떻게든 선방해주길 기대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허공에서 복잡하게 뒤섞였고, 수만 관중들의 눈동자들이 모인 두 선수의 대결은···.

    티익!

    “악!”

    “휴우!”

    아구에로의 잘 감긴 슈팅이 골대를 스치고 벗어나는 것으로 끝이 나면서 또 한 번 웸블리 경기장을 흔들었다.

    쉽게 찾아 오지 않을 찬스를 저렇게 날려버리다니.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 맨시티 팬들의 탄식과 한숨이 길게 늘어졌고, 아구에로 또한 자신의 슈팅이 기대했던 궤적을 벗어나자 한 차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린 후 혀를 차면서 재혁을 향해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흔치 않은 기회를 날려버려서 면목이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아구에로의 목소리에 스털링 또한 뺨을 긁적이며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오른쪽에서 간격 좁히고 있어서 조금만 침착하게 했으면 충분히 기회를 만들만 했는데. 반대편에선 사네가 달리고 있었고···, 쩝. 이번 기회를 날린 건 너무 아쉬운데?”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이미 지나간 플레이 한 번에 너무 개의치 마세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 상황이 그렇게 녹록한 게 아니라구. 지금까지 제대로 된 패스가 연결된 적이 없다가 이번에 간신히 한 번 나온 건데. 그걸 이렇게···.”

    “그러니까요.”

    스털링의 말을 중간에 자른 재혁이 빙그레 웃었다.

    패스를 건네준 본인이 오히려 더 안타까워할만도 하건만, 그런 감정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재혁은 둥글게 떠오른 초승달처럼 환한 미소를 보였고, 되려 아구에로와 스털링을 위로했다.

    “이미 지나간 플레이잖아요? 게다가 아직 경기가 끝나려면 70분은 더 남았는 걸요. 70분 동안 공격하기 위한 준비 과정 정도로 본다면 실수 한 번 정도는 애교 아닌가요? 확실한 다음을 위한 반보 후퇴인 거죠.”

    “반보 후퇴? 하지만···.”

    다만 재혁의 마지막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스털링의 말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갔고, 그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것인지 재혁과 눈을 마주치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70분 동안 공격이라니. 뭔가 방법이라도 찾은 거야?”

    “이걸 찾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몸으로 이해했다고 해야 하나, 약간 애매하긴 한데요. 음.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처음부터 답은 나와 있었던 거였어요.”

    “처음부터···, 답이 나와 있었다고?”

    예상치 못 한 대답에 두 눈을 동그랗게 키운 스털링.

    그런 스털링을 향해 재혁은 생긋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당황해서 잊고 있었던 걸 이번에 그저 다시 깨닫게 된 계기가 된 거죠.”

    “당황해서 잊고 있던 거라니···.”

    “아마 머지 않아 알게 되실 거예요. 슬슬 골킥이 날아오겠는 걸요? 전 자리로 갑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라고 재차 물어보려던 스털링은 재혁이 뒷걸음질을 시작하자 입을 닫았고, 그 또한 토트넘의 골킥으로 경기가 재개되려 하는 것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재혁의 옆 얼굴을 향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함과 옅은 흥분감이 엿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는 얼굴로 말이다,

    어디선가 얼핏 본 기억이 있는 듯한 느낌에 스털링은 미간을 살며시 모았다가, 옅은 숨을 토해내며 입술을 씹었다.

    상대에게 흐름을 완벽하게 빼앗겨 끌려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간신히 찾아온 기회와 희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거늘.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을 유지하면서 다음을 노리겠다는 재혁의 말은 어느 누구라도 쉬이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재혁에게 확신이 있다면···.

    ‘분명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겠지?’

    후욱, 지금까지 모았던 숨을 뿜어내며 스털링이 표정을 굳혔고, 때마침 요리스가 길게 뻗어 보내는 골킥을 차면서 멈췄던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공이 향하는 방향에 위치해 있는 선수는 에릭센.

    에릭센이라면···.

    ‘내가 잡아야 할 마크다!’

    생각과 동시에 에릭센의 뒤쪽에 바짝 따라붙은 스털링은 곧장 압박 수비를 시작했고, 에릭센이 전방을 향해 몸을 돌리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방해하며 공이 전방으로 이어질 기회를 최대한 차단했다.

    하지만 그런 스털링의 견제에도 에릭센은 테크니션다운 양발 기술을 선보이며 방향을 찾았고, 넓은 시야를 십분 활용한 패스를 선보이며 패스의 뿌리를 살리는데 성공했다.

    공이 3선을 넘어 후방으로 넘어가려는 것을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린 스털링.

    공은 해리 케인의 가슴에 떨어졌고, 해리 케인은 그의 뒤에 위치해 있는 알리와 플레이를 연계하며 계속해서 수비수들 사이를 헤집었다.

    하지만 그런 토트넘의 공격은 다행히도 페르난지뉴의 강하고 재빠른 태클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고, 잔디 위를 통통거리며 뒹굴던 공은···.

    “최재혁!”

    누군가의 외침처럼 재혁을 향하고 있었다.

    동시에 선수들 사이로 여러 감정이 실린 바람이 스며들었다.

    걱정, 불안, 초조, 혼란···,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또렷한 감정의 바람은···.

    ‘···네가 한 말이니까 믿는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마음을 휘감은 ‘기대’라는 감정이었고, 마침내 공이 재혁의 발에 닿는 순간.

    또 한 번 모두의 숨이 멈췄다.

    파앙, 짧은 소리가 한 차례 경기장에 흘렀다.

    그 후 바닥을 구르던 공은 공중으로 떠올랐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기 시작한 공이 닿는 방향에 위치해 있는 선수를 발견하며 다들 또 한 번 경악했다.

    측면을 따라 달리고 있던 사네.

    재혁은 시야상으로 보이지도 않았을 장소에서 공간을 찾아 달리고 있는 사네를 향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로 잰 듯 정확한 패스를 찔러 넣어주는데 성공한 것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라는 의문을 떠올리며 잔뜩 커진 두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또 다시 전개되는 맨체스터 시티의 공세에 엉덩이를 들썩였고, 패스를 이어 받은 후 공간을 노리고 드리블을 치고 달리던 사네가 중원에서 그와 라인을 맞추며 달리고 있는 재혁에게 공을 돌려주자···.

    파앙!

    “또···, 또다!”

    “또 보이지 않을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해줬어!”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분명 주변을 살필 시간 같은 건 없었잖아?”

    “···이거, 엄청난 괴물이었군.”

    또 한 번 하늘을 날며 중앙을 침투하기 시작한 아구에로의 허벅지에 떨어진 패스를 확인하며 경악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디발라의 입가에 다양한 의미가 담긴 썩은 미소가 떠올랐고, 디발라의 미소가 담고 있는 의미를 바로 파악한 키엘리니가 그를 향해 물었다.

    “괴물이라니. 저 꼬마가 뭘 하는 건지 알아낸 거야?”

    “대강은요. 추측이긴 한데···, 근데 이게 가능한가?”

    “대체 뭘 생각했길래 그래?”

    스스로 다시 한 번 고민 해보며 고개를 기울이던 디발라.

    키엘리니는 그런 디발라에게 재차 재촉했고, 디발라는 콧등을 긁적이며 답했다.

    “토트넘이 준비한 ‘최재혁 잠그기’의 기본 전제는 최재혁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겁니다. 수비 상황에서든, 공격 상황에서든, 공이 그에게 향하기 전까지 최대한 그를 괴롭히면서 방해를 하는 거죠.”

    “확실히 그랬지. 아마 심판이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다면 바로 경고를 줬을만한 장면도 몇 차례 있었어.”

    “그렇지만 경고는 나오지 않았어요. 왜냐면 토트넘의 방해가 그만큼 지능적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랬던 만큼, 공이 자신에게 올 상황에서 최재혁은 어떤 식으로 플레이를 이어가야 할지, 쉬이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전제를 뒤집을 수 있게 된다면 말이 달라지죠.”

    “전제를 뒤집는다고?”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인 키엘리니.

    그런 키엘리니를 향해 디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틈을 주지 않는게 목적이라면···, 생각하지 않을 시간에 생각을 하면 되는 거니까요.”

    “뭐? 생각하지 않을 시간에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토트넘은···.”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상대는 수비를 할 때도, 공격을 할 때도 재혁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딱 한 순간, 아무리 재혁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토트넘 선수들이라고 할 지라도 어쩔 수 없이 재혁을 열어주게 되는 순간이 딱 한 순간 있죠.”

    “설마···?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말이 안 되지만 그거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저 ‘말이 되지 않는 패스’들은 말이죠.”

    디발리가 뜸을 들이자 대강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린 키엘리니의 표정이 그를 따라 굳었고, 디발라는 그런 키엘리니의 시선을 받으면서 TV 속에 있는 재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가 토트넘을 상대로 공을 빼앗는데 성공하는 바로 그 한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한 번 최재혁을 떠나 공으로 향하는 그 순간에 최재혁은 필드 위의 모든 상황을 그 즉시 분석하고, 이어질 상황을 예측한 뒤 자신에게 오게 될 공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패스로 연결시킨 겁니다.”

    “그게 가능해?! 아무리 같이 훈련하고 전술을 공부한다고 해도 그 찰나의 순간에 모든 걸 분석한다니?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렇죠. 각 선수들이 원하는 패턴이 있고, 공략법이 있으니까요. 단순히 예측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다른 선수들이 재혁의 ‘말’이 되어 움직이게 된다면 말입니다.”

    “?!”

    “환상이라고, 말이 되질 않는다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분명 패스들은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것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죠. 자신이 ‘이동시킬’ 말들이 어디로 향할지 모를 체스 플레이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상황인 거예요. 최재혁은 축구장이라는 체스 판에서 축구공을 이용해 말들을 옮기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따라서 예상도 할 수 없었던 디발라의 말에 키엘리니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걸 판단할 수 있다고? 아니 그걸 떠나서···.

    “···다른 선수들을 말처럼 부린다니. 여태까지 축구를 하면서 그런 플레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들어본 적은 없지만 키엘리니도 경험은 있을 걸요? 피를로. 그의 패스를 쫓을 때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았어요? 이곳으로 가면 공이 올 것이란 믿음과 함께 마치 공에게 이끌리듯 달리던 경험이 말예요.”

    “!”

    “아마 그런 걸 거에요. 저 꼬마의 플레이는 말이죠. 그리고···, 슬슬 나오겠군요. 오늘 경기의 첫 번째 ‘체크’가 말이죠.”

    뻐엉!

    디발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슈팅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 나왔다.

    동시에 아구에로의 발끝을 떠난 공은 또렷한 선을 남기며 허공을 날았고, 골라인에 서있던 요리스는 공을 쫓아 몸을 날리며 양손을 길게 뻗었다.

    하지만 그런 요리스의 시도는···.

    “고오올! 골입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기어이 선취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허사로 끝이 났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각으로 향한 슈팅은 그대로 골망을 때리면서 그물을 사정없이 흔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어떻게 득점 상황이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저 소리를 내지르며 감탄하기 바빴고, 관중들의 환호성 사이에서 세레머니를 이어가던 아구에로는 재혁을 찾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믿음에 대한 보답을 해주었다며 말이다.

    그리고 그 장면을 TV 화면을 통해 지켜보던 키엘리니는 침을 삼킨 뒤 디발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정말 네 말대로라면···, 오늘 경기는···.”

    “반쯤 끝이 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죠.”

    “후우, 미쳤군. 미쳤어. 어떻게 된 게 시간이 흐를수록 더 괴물같은 놈들만 나타나는 것 같아.”

    “그만큼 축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하하, 웃음을 흘린 디발라는 물잔을 채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방으로 향하는 그를 향해 키엘리니는 큰소리로 재차 물었다.

    “디발라, 너라면 어떨 거 같아? 만약 너가 재혁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다지 생각해보고 싶지 않네요. 저런 게 가능한 선수가 흔하지 않을 거고, 제가 그런 선수들 중 하나라는 건 아직 저 자신도 믿지 못하고 있거든요.”

    “역시 그런가···.”

    “하지만 전 저만의 축구를 할 수 있으니까요.”

    씨익,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든 디발라는 물을 삼키며 마른 목을 축인 후 화면 속 재혁의 얼굴을 찾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필드 위에서 꼭 만나보고 싶네요. 과연 경기가 끝났을 때 웃고 있을 사람이 누구인지, 꼭 확인해보고 싶어졌어요.”

    “만나게 된다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야.”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꼭 올라가도록 해요, 결승전.”

    디발라의 짧은 한 마디에 키엘리니의 표정도 한 층 진지해졌고 이내 고개를 끄덕인 둘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막 전반이 진행된 상황이었으나, 그 사이 많은 것들을 바꿔 놓고, 또 바꾼 장소로 말이다.

    < 173. 트릭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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