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꼬마 마술사의 마술 >
“최재혁 선수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좁다고요?”
“예. 좀 더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도와드리자면 토트넘의 4-2-3-1 중 중앙에 밀집되어 있는 선수들은 총 세 명입니다.”
“완야마 선수와 뎀벨레 선수는 바로 알 수 알아차릴 수 있겠습니다만···, 나머지 한 명은 누굴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지막 한 명은 그 둘보다 한 칸 위에 위치해 있는 델레 알리 선수죠.”
“델레 알리 선수요? 하지만···.”
“아무래도 포지션 자체로만 전술을 이해하려 한다면 포체티노 감독의 선택을 바로 이해가 쉽진 않을 겁니다.”
의아한 듯 되묻는 캐스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해설자는 이어지는 장면을 설명하며 말을 계속 이었다.
“수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전문 선수들을 제외하고 알리 선수를 뽑았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술적 선택에 따른 선발이었을 뿐입니다.”
“전술적인 선택이요?”
“지금처럼 경기 초반, 뼈대를 구축하고 있을 땐 델레 알리 선수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강하게 압박을 시도하죠. 하지만 경기가 계속 진행되면 토트넘은 자신들만의 색깔을 내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선수들간의 능동적인 스위칭 플레이죠. 알리 선수가 최재혁 선수를 가두는 삼각 편대 중 꼭짓점을 맡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한 겁니다.”
“아···, 혹시!”
“네. 혹시라도 공이 빠져서 지금처럼 최재혁 선수가 압박에서 벗어나면···.”
***
“···다른 누군가가 바로 좁혀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나를 가둘 작정이군요.”
“역시 넌 나이에 비해 눈치가 너무 빠르다니까. 아니, 이 경우엔 머리가 좋은 건가?”
공을 돌려받은 후 알리의 압박에서 벗어나던 재혁은 눈앞에 또 다른 선수, 신형민이 길목을 막아서는 것을 발견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을 위해 토트넘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준비할 것은 예상했었다.
그런데 설마 대인 방어를 위한 차륜진을 준비할 줄이야.
‘확실히 이런 식으로 방어한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많진 않지.’
기본적인 패스조차 이미 자신을 둘러싼 선수들이 점하고 있는 지역을 피해서 보내야 했기에 선택에 제한이 생겼고, 그렇다고 드리블을 택하기엔 자신의 앞을 가로 막을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긴 패스를 보내면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저 4백 라인도 신경을 써야 해. 이래저래···.’
“난감하겠군, 저 친구.”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고, 그와 같은 공간에 자리하고 있던 남성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절대 축구 못 해. 차라리 누구 한 명을 차버리고 퇴장을 당하고 말지, 저런 식의 지독한 압박 전술이라니. 포체티노 감독도 성격이 썩 좋은 건 아니군.”
“글쎄. 내가 보기엔 포체티노 감독은 한 명의 승부사로서 경기에 임하는 것 같은데? 일단은 어떻게든 이기기 위한 확률을 높이기 위한 준비를 해온 거잖아? 콰드라도 너처럼 전술을 욕할 순 없는 거지.”
“그래도 그렇지 저런 어린 꼬마를 상대로 대인 전술이라니. 취향이 너무 고약한 거 아냐?”
“결국 역사가 기억해주는 건 승자야. 승부의 세계에서 고약이고 나발이고 뭐가 있어? 이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한 명이 말하면 그 말에 누군가 답하고, 그 말에 또 다른 이가 말을 덧붙이는 것이 반복 됐다.
그렇게 한동안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의견을 주고 받던 사람들은 곧 시선을 모아 가장 후미진 곳에 앉아 물을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남성을 향해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디발라?”
“음, 글쎄요.”
파울로 디발라.
유벤투스의 새로운 10번이자 에이스인 디발라는 함께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동료의 질문에 말꼬리를 흐렸고, 잠시간 생각에 잠긴 것처럼 가만히 TV 화면을 지켜보더니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토트넘의 수비 전술이 상대하기 편해보이진 않네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에요. 지속적으로 괴롭히면서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는···, 전형적인 에이스 죽이기잖아요? 저라도 케디라의 말처럼 핀트가 어긋나면 누구 하나 걷어 차고 말걸요?”
“들었지? 다들 그렇게 생각 한다니까.”
“그건 좀 봐줘라. 앞으로 다가올 경기들은 하나하나가 중요하다고. 퇴장이라도 받았다가 출장 금지라도 당하면 우리한텐 치명적이야.”
“알고 있어요. 어디까지나 핀트가 어긋나면이라니까요. 저도 퇴장을 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요.”
케디라가 실실 웃으며 말한 것에 키엘리니가 진지한 얼굴로 한숨을 토해냈고, 그런 둘을 향해 살며시 미소를 떠올리며 답한 디발라.
그는 키엘리니를 향해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해 보이면서 계속 말했다.
“어디까지나 제가 저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상상을 해본 것뿐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게 아니라고요. 물론···, 어떤 식으로 대처할 지도 잘 떠오르진 않지만 말예요.”
“공간을 내주지 않고 박스로 블럭을 짜서 막으려 한다면 그걸 쪼개는 플레이를 하면 되는 거 아냐?”
“그게 말은 쉽죠.”
키엘리니의 말에 뺨을 긁적인 디발라는 여전히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을 이었다.
“쪼개는 플레이를 하든, 박스를 부수는 플레이를 하든, 일단은 무엇보다 생각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필요해요. 주변 상황을 아무리 빠르게 읽고 행동한다고 해도 생각을 하지 않고 플레이를 시도한다면 결국 그건 팀에게 해결보다 독을 주는 꼴이 될테니까요. 그리고 토트넘의 저 대인 전술의 핵심은···.”
말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재혁을 압박하고 있는 선수들을 확인하면서 디발라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최재혁에게 생각할 틈을 한시도 주지 않는 거죠. 지금도 결국 최재혁은 공을 뒤로 돌리고 있죠? 달리 떠오르는 패턴이 없는 거예요.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턴을 떠올릴 시간이 없는 거겠죠.”
“흐음···, 확실히···.”
“맞불을 놓아도 지고, 싸움을 걸어도 진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코어를 부수는 거만 남은 겁니다. 그리고 토트넘은 그 코어로 최재혁을 꼽은 거고요. 이건 맨체스터 시티가 제법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고민? 어떤 고민?”
“일단은 어떻게든 경기에서 이겨야 하니까요.”
득실을 따지는 실리.
디발라는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풀어 놓으면서 말을 계속 했다.
“토트넘이 최재혁을 원한다면, 맨시티는 그를 ‘제물’로 내놓고 공략을 시도할 수도 있어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오늘 경기에서 재혁의 존재는 철저하게 지워지게 되겠죠. 필드 위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이어질 30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30분?”
“이건 동시에 맨시티에게 있어서, 아니. 최재혁에게 있어서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평소 경기를 치를 때면 상대 수비수들에게 집중적인 압박을 받는 디발라.
그는 자신이기에, 재혁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생각들을 하나둘 풀어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상대에게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저렇게 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그 위험 요소를 최재혁이 극복할 수 있게 된다면 토트넘은 오히려 위기를 맞게 될테고, 또 다른 구상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겠죠. 이 모든 일들이 30분 안에 이루어진다면···, 최재혁은 오늘 경기에서 45분만 뛸 운명이었던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놓게 될 겁니다.”
“그래서 그걸 어떤 식으로 극복하면 되는 건데?”
“하하. 그거야 저도 모르죠. 말씀 드렸잖아요? 저라면 차라리 마음 편히 레드 카드를 받겠다니까요.”
“···.”
“그리고 그러니까 재밌는 거죠.”
말을 끝맺으며 마르기 시작한 입술을 축인 디발라는 생긋 떠올린 입꼬리를 한층 더 짙게 끌어 올린 후 말했다.
“과연 어린 마법사가 부릴 마법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거든요.”
***
워어어···, 워어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목소리를 높였다.
토트넘이든, 맨시티이든, 어느 쪽이든 응원하는 팬이라면 가만히 자리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힘든 장면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으니, 다들 손에 찬 땀을 꾹 움켜쥐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도 비슷했다.
“쉬지 말고 압박해!”
“계속해서 조여!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마!”
“열린 선수 찾아서 공을 줘!
빠른 페이스로 진행되는 경기에서 1초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1초 사이에 선수들은 포지션을 바꾸거나, 패스를 시도하거나, 혹은 태클을 거는 것 같은 경기장에서 영향을 주는 판단을 내리니 말이다.
하지만 그 1초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을까?
그런 걱정이 떠오른 것에 케빈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재혁, 괜찮은 거냐?’
어떠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극렬한 압박과 견제를 받고 있는 최재혁.
물론 그런 재혁 덕분에 다른 선수들을 향하는 압박이 어느 정도 옅어진 것은 사실이나, 재혁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제법 큰 손실이었기에 케빈은 과연 이게 누구에게 더 이득인 상황인지를 쉬이 판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여주는 상황이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이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면 자신들에게 있어서 더 큰 손해라는 것을 말이다.
‘중원에서 이어질 수 있는 패스 뿌리가 완전히 차단된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쪽 공격은 계속해서 측면에 의지하고만 있으니···.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먼저 무너지는 건 우리가 될 게 분명하다.’
쯧, 혀를 찬 케빈의 얼굴에 갈등이란 감정이 떠올랐다.
벌써 20분가량이 흐른 상황이었다.
이대로 아무런 변화도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을 계속 흘려보낸다면 분명 후에 더 큰 문제가 자신들을 집어 삼킬 게 분명했으니.
‘···지금이라도 위치를 바꿀까?’
자신이 재혁을 대신해 저 위치에 들어가게 된다면 적지만 조금이라도 재혁이 생각할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마도 재혁이 경험하는 압박이 자신에게 쏟아지게 되겠지만, 일단은 흐름에 변화를 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든 케빈은 재혁과 눈을 마주친 후 그에 관한 생각을 전달하려 했는데···.
“···?”
재혁과 눈을 마주친 케빈의 눈동자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일까.
케빈은 눈을 마주친 재혁의 눈빛을 통해 그의 생각이 전달되는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전달 받은 케빈은 가슴속에 스며드는 은은한 포근함에 자신도 모르게 재혁이 떠올린 미소와 비슷한 미소를 흘렸다.
괜찮다고, 오늘 경기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그런 의미의 미소를 말이다.
그리고 그런 미소가 서서히 흐려질 때 즈음.
토옹.
재혁의 발끝에서 또 한 차례 공이 멈췄다.
그와 동시에 토트넘 선수들의 거센 압박이 재차 재혁을 덮쳤고, 재혁의 뒤를 완벽히 점하고서 공을 향해 발을 뻗던 완야마는 자신에 찬 미소를 떠올리다가···.
‘아무리 몸을 비틀어 봐야 결국 네가 벗어날 수 있는 곳은···!’
파앙!
“뭣?!”
재혁의 발에 닿았던 공이 곧장 자리를 떠나자 놀란 얼굴로 멀어지는 공을 향해 시선을 옮겼고, 후방으로만 공을 빼던 방금까지와 달리, 중앙을 침투하고 있는 아구에로를 향해 정확하게 패스가 이어지자 다들 믿기 힘들다는 듯, 황급히 숨을 삼키며 공을 쫓아 다시 진영을 짜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맞이한 위험한 상황에 바빠진 토트넘 수비진들.
그런 수비수들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디발라는 커다란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말했다.
“꼬마 마술사가 결국 찾았나보군요. 어떤 마술을 사용하면 상대가 무너질지를 말이죠.”
< 172. 꼬마 마술사의 마술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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