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9화 (169/225)
  • < 169. 완성 >

    “무서운 기셉니다. 뮌헨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쉬지 않고 압박하고 있어요!”

    “정규시간이 벌써 65분을 지나고 있는데요, 뮌헨의 의지가 바로 보이는 군요. 남은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겠다는 심산이에요.”

    “그리고···, 말씀하시던 중 또 한 번 공격이 이어집니다! 왼쪽 날개, 리베리가 라인을 따라 달립니다!”

    투웅, 투웅, 투웅!

    “후욱, 후욱!”

    캐스터의 말처럼 공을 달고서 드리블을 시작한 리베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자 반대편에선 코망이 간격을 좁혔고, 알라바는 언더래핑을 시도하면서 중앙 침투를 위한 공간을 찾았다.

    순식간에 세 명.

    양 측면을 지배하는 세 명의 선수들이 흐름에 맞춰 재빨리 전술적인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그 바로 뒤를 뮐러와 비달이 올라와 지원했고, 최전방의 레반도프스키까지 참여하면서 극단적인 공격 형태의 정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한 뮌헨.

    그런 뮌헨을 상대로 맨체스터 시티는 눈앞의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오타멘디, 뒤로 물러나! 그곳은 페르난지뉴한테 맡겨야 돼! 실바, 좀 더 뛰어! 앞라인까지 내려 와! 그리고···!”

    당장 수비수들의 중심에 선 콤파니의 말과 행동만 보아도 그 다급함이 바로 느껴지리라.

    실제로 지금 콤파니의 머릿속엔 수비 이후의 역습이란 단어는 떠오를 틈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런 맨시티의 수비수들을 지켜보면서 리베리는 비릿한 미소를 떠올렸고···.

    퉁!

    “아!”

    기묘한 드리블 루트를 찾아 이동하면서 속도를 붙였다.

    오타멘디와 페르난지뉴,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틈을 파고 드려던 것이었다.

    리베리의 드리블을 확인한 맨시티의 선수들은 동시에 헛숨을 삼켰다.

    ‘이 시간대에 저런 폭발력이라니···! 체력이 떨어진 거 아니었어?’

    ‘슬슬 한계지만···, 나가기 전에 모든 걸 쏟아내고 가는 거지!’

    아마 이번이 전력을 다한 마지막 플레이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리베리는 안으로 파고 들었고, 그런 리베리의 움직임을 확인한 레반도프스키는···.

    “기다리고 있었다!”

    투웅!

    짧은 외침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의 뒷공간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 정확히 땅볼 패스를 감아 보낸 리베리.

    관증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공을 쫓아 이동했고, 레반도프스키가 가벼운 터치 이후 바로 슈팅을 때리는 것에 손을 모았다가···..

    터엉!

    “아으! 저게 골대에 맞냐!”

    슈팅이 골대를 때리고 크게 굴절된 것에 안타까워하며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또한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모았던 숨을 뱉었다.

    에데르손 골키퍼가 몸을 날려 공을 손끝으로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공이 머물고 있는 장소는 골라인 밖이 아닌, 골대 안이 되었으리라.

    콤파니를 포함한 선수들은 몸을 일으키는 에데르손의 어깨며 머리를 토닥이며 잘했다고 칭찬했고, 에데르손은 그런 동료들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흐름이 너무 안 좋아요. 지금이야 막았지만, 다음은 어떻게 될 지 몰라요.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우리도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너도 알잖아? 우린 계획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고.”

    “하지만 계획이란 것도···.”

    “아직 후반 23분이에요. 에데르손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알고 있잖아요? 아직은 때가 아닌 걸요.”

    “재혁.”

    콤파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에데르손의 말을 자르고 등장한 재혁.

    그는 코너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말을 계속 했다.

    “확실히 후반들어 뮌헨의 공격이 거세진 것도 사실이고, 조그만 실수를 범하는 순간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올 것도 사실이예요. 하지만 그걸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잖아요? 아직까진 모든 게 ‘예상 범주’ 내인 걸요. 그렇죠, 주장? 오히려 최악을 면하고 있음이 다행이라고요.”

    “최악이라면···.”

    “후반 35분이 되기 전에 2점 이상을 실점하는 것. 듣기만 해도 정말 좌절감 들지 않아요?”

    “그건 최악이 아니라 패배 확정···.”

    “아뇨. 어디까지나 최악이에요. 경기는 90분이 모두 지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요. 지는 팀은 90분이 끝났을 때 정해지는 겁니다.”

    “!”

    “그러니까···, 아직까진 모든 게 ‘수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만족하자고요. 그리고 때가 온다면···.”

    툭툭, 유니폼에 붙어 있는 잔디를 손등으로 털어낸 재혁은 늘렸던 말을 끝맺는 짧은 한 마디를 전한 후 마크를 찾아 이동했다.

    “그땐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다니···.”

    “에데르손! 곧 공이 움직인다! 집중해, 집중!”

    재혁의 마지막 말을 혼자서 되뇌어보던 에데르손은 멀리서 들린 동료의 목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렸고, 공이 준비되어 있는 코너를 향해 고개를 돌린 후 호흡을 다잡았다.

    짧은 대화로 모든 의문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선 마음을 정할 수 있었으니까.

    에데르손은 방금까지 남아 있던 불신이 조금이나마 옅어진 눈빛을 빛내며 뇌까렸다.

    “그래. 적어도 최악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후욱, 숨을 토한 에데르손의 눈에 길게 뻗어 올라오는 코너킥이 들어왔고, 동시에 선수들이 공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든 머리로 공을 건드리겠다.

    조금의 양보도 없이, 전력을 다해 몸을 맞부딪히는 모습들을 말이다.

    그 사이에서 에데르손은 공과 선수들을 빤히 지켜보다가···.

    “흐아!”

    짧은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려 양손을 쭉 뻗었다.

    곧 파앙, 그의 두 주먹이 공을 때렸고, 에데르손은 잔디 위로 무너지는 마지막까지 공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제발 끝날 때까지 최악은 면하게 해달라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그렇게 공이 다시 맨시티의 박스 밖으로 튀어 나오자 필드 플레이어들이 분주해졌다.

    어떻게든 공세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바이에른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의지로 뭉친 맨시티.

    양팀의 뜨거운 기세에 공은 쉴 새없이 그 사이를 오갔고···.

    찰칵.

    “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낸 작은 소음에 시간을 확인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경기 시간을 나타내는 전광판을 찾았다. 그 후 잠시간 턱을 쓸었고, 몸을 일으킨 뒤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신호를 받은 선수들은 잠시간 서로 시선을 교환했고, 그 중심에 선 재혁 또한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천천히 몸을 풀면서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앞으로 10분. 10분이면 하이라이트로 정리하기 딱 좋은 시간이지.”

    ***

    “고생했어. 이제 들어와서 좀 쉬어.”

    “후우···, 그래도 결국 넘지 못 했어요.”

    “아니. 그정도면 충분해. 분위기도, 흐름도 충분히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져왔으니까. 이걸 마지막까지만 이어간다면···.”

    벤치로 돌아오는 리베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어가던 하인케스 감독.

    비록 그가 원했던 상황 반전을 위한 득점은 터지지 않았으나, 분위기만큼은 꾸준히 가져올 수 있었으니. 최선은 아니되 최악도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리베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던 것이었는데.

    그런 감독의 입술이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필드로 시선을 옮기자 무언가 바뀌는게 그의 눈에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시간 말을 멈추고 눈을 얇게 뜬 하인케스 감독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왜 저 꼬마가 위로 올라가는 거지?”

    지금까지 중앙에 플레이를 집중시키며 경기를 풀어가던 최재혁.

    그런 재혁이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히 위치를 위쪽으로 이동하더니 이제는 2선과 비슷한 장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인케스 감독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 것은 그 직후부터 변화한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방향을 확인한 이후였다.

    맞불을 놓을 심산으로 그동안 뭉쳐놓았던 맨체스터 시티가 재혁이 위로 올라가자 다시금 측면을 이용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뭐가 달라진 거야?’

    바뀐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 하인케스 감독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일단 과르디올라 감독이 교체한 선수들을 먼저 떠올리던 하인케스는 살짝 말린 입꼬리를 지그시 누르며 꼬았다.

    아구에로는 제수스로, 스털링의 자리엔 귄도안이 들어가면서 케빈과 위치를 바꾼 상황이다.

    자신에게 두 장이 남은 것처럼 상대에게도 한 장의 교체 카드가 남아 있었지만···.

    ‘아직 전술적으로 큰 틀은 벗어나지 않았어. 오히려 전보다 파괴력 측면에선 모자라다고 생각이 드는데···, 뭐가 바뀐 거지?’

    생각을 이어가던 하인케스 감독은 바로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 눈썹을 모은 채로 혀를 차다가 공이 하메스의 발 아래 멈춰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허리를 폈다.

    앞으로 경기가 끝나기까지 10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공격 기회는 사막을 떠도는 여행자에게 찾아온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었으니, 제발 이번 기회를 확실히 살려 주길 기대하면서 상체를 편 것이다.

    그런 하인케스 감독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인지, 뮌헨의 선수들은 전보다 더 예리하고 재빠르게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 공간을 공략해 들어갔다.

    하메스의 발에 머물던 공은 곧 비달에게 전달 됐고, 중앙에서 어느 쪽으로 공략을 시작할지 상황을 가늠해보던 비달은 무언가를 발견하기 무섭게 묵직하게 깔려 들어가는 패스를 전방으로 찔러 보냈다.

    토마스 뮐러.

    수비수 두 명 사이를 뚫고 이동하며 뒷공간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뮐러가 비달을 기다리고 있었고, 비달은 그 순간을 바로 포착해 그에게 공을 이어준 것이다.

    공간을 이해하고 취한 뮐러의 순간적인 전술적인 움직임.

    그 찰나의 순간을 빼앗긴 맨시티의 수비수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고 입술을 씹었다.

    완벽한 노마크 골키퍼와의 1대1 찬스.

    우측에서 서서히 각을 벌리며 들어오는 뮐러와 그를 막기 위해 양팔을 벌리고 몸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는 에데르손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다리며 침을 삼켰고, 마음을 정한 뮐러가 마침내 슈팅을 때렸을 때···.

    파앙!

    “!!”

    희비가 엇갈렸다.

    뮐러의 슈팅을 완벽하게 읽은 에데르손이 공을 펀칭해내면서 또 한 번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득점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며 비명을 질렀고, 선방 덕에 수비 진영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던 선수들은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위해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공의 소유권을 되찾아온 맨체스터 시티의 콤파니는 페르난지뉴에게 패스를 건넸고, 공을 빼앗기 위해 전방 압박을 시도하는 뮌헨 선수들을 앞에 두고서 페르난지뉴는 망설임없이 공을 찍어차 보냈다.

    둥실, 가벼운 포물선을 그리며 떠오른 공은 중앙선을 넘은 후 낙하를 시작했고.

    사락.

    “드디어 왔네.”

    발등으로 떨어지는 공을 부드럽게 잔디 위에 떨어뜨린 재혁이 빙긋,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고 있던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재혁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데르손은 아직까지 얼얼한 양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뇌까렸다.

    “드디어 네가 말했던 시간이 왔으니까, 한 번 보여줘 봐. 네가 말한 믿음의 결과가 뭔지···!”

    ***

    “마침내 맨체스터 시티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최재혁 선수, 주변을 둘러본 후 천천히 공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공격을 시도하는게 얼마만이죠? 정말 간만에 제대로 된 위치에서 공을 터치한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후반 점유율이 7:3, 그것도 수비를 위해 소유하고 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공격 자체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옳겠죠.”

    “정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이번 공격을 통해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 대화 중 최재혁 선수 드리블을 시작했습니다!”

    중계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둘의 표정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한 가지만큼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는지 맨시티가 시도하는 공격 작업을 지켜보면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바로 맨체스터 시티의 역전 가능성.

    전반에만 터트린 2골을 기반으로 후반전까지 그 기세를 끌어 올려 압박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지 모르겠으나, 정규 시간이 10분도 남지 않은 현재, 그리고 후반전 내내 뮌헨에게 끌려다니던 맨시티의 모습을 기억하면 아무래도 그 가정의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둘의 공통된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만큼 공을 잡은 재혁이 드리블을 시작하자 둘의 낯빛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확실히 재혁의 재능은 뛰어나다.

    하지만 그 재능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뮌헨의 수비수들을 모두 벗겨내고 골망에 공을 넣을 정도일까?

    그 부분에 대해선 당연히 의문 부호가 따라 붙을 수밖에 없었으니, 저런 재혁의 시도가 다급함에 나오는 무리한 시도라는 것이라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해설자는 특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재혁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 양 측면에 한 번씩 공을 뿌려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거든요. 이걸 너무 쉽게 포기한게 아쉽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상대적으로 기회가 제법 나왔던 장면들이 모두 측면에서 시작됐으니까요. 그러는 중에 최재혁 선수,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이동하고 있고···, 그 앞을 비달 선수가 막아섭니다.”

    ‘더 이상 마음대로 못 간다!’

    오늘 몇 번이고 재혁에게 당했던 기억에 섣불리 다가서진 않았으나, 일단 드리블로 치고 나갈 수 있는 방향들은 막는데 성공한 비달.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을 다잡으면서 공을 굴리면서 다가오는 재혁의 발끝을 노려보았다.

    이미 모든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자신들이다.

    후반전이 끝나면 연장전이 시작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원정 팀의 피로도가 극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까지 이어가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의 공이 골망을 향하지 않도록 지켜야 했으니.

    이번만 막으면 된다, 이번만.

    그런 생각을 반복하면서 비달이 호흡을 골랐고, 재혁이 계속해서 드리블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하며 웃었다.

    ‘전반전엔 바보처럼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주 철저하게 물어 뜯어주마!’

    그땐 상황이 나빴다.

    상대가 밀고 올라오는 움직임 속에서 패스 길목을 막을 생각까지 했으니 뚫릴 수밖에.

    하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다.

    그런 비달의 의지는 그대로 행동에 묻어나왔고, 정면으로 이동하던 재혁이 서서히 측면으로 빠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비달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대로 쭉, 아무 것도 못하고 경기에서 물러나게 만들어주마.

    계속해서 재혁을 압박하며 승리를 예감한 비달은 재혁이 한 차례 방향을 꺾는 동작을 취하자 견제했고, 그 동작 이후 패스가 이어지자 피식 실소를 흘렸다.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흐름도 완벽히 우리 쪽에 있어!’

    공이 우측면에 위치한 케빈에게 이어지긴 했으나, 저쪽에서 알라바와 후멜스를 상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플레이는 전무했으니.

    상대는 이대로 고립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희망적인 전망을 떠올리며 생각을 이어가던 비달은 갑작스레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비달! 계속 쫓아!”

    “뭐? 저 꼬마 놈, 언제 저기까지!”

    케빈에게 패스를 주었던 재혁의 행동은 거기서 멈춘 게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공을 건네준 케빈이 위치한 측면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던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비달이 멀어지는 재혁을 쫓았고, 케빈은 소유하고 있던 공을 오버래핑을 시전하며 터치 라인을 따라 이동하는 재혁의 앞으로 밀어준 뒤 자리를 이동했다.

    그 순간 알라바는 이동하는 케빈을 쫓았고, 후멜스는 중앙을 견고히 지키기 위해 케빈과 재혁, 두 사람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다가 소리쳤다.

    “아, 잠깐! 이 패턴은···, 비달! 돌아와야 해!”

    “뭐? 지금 돌아오라고 해봐야···.”

    “이미 늦었지.”

    그리고 그런 둘을 지켜보며 굴러오는 공을 향해 발을 뻗기 시작한 재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구에로와 스털링을 빼고 제수스와 귄도안을 투입시킨 이유와 비달을 측면으로 유인한 후 케빈과 스위칭 플레이를 시도한 이유.

    언뜻 보기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미드필더의 측면 오버래핑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관중석에 앉아 모든 걸 한 눈에 지켜볼 수 있었던 뢰브 감독은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중앙과 측면을 스위칭 하면서 뮌헨이 PTA에 집중 시킬 수 있는 인원을 분산시키는 사전 작업이었지. 그리고 그 작업이 성공하면 바로 지금처럼 우측면에서 재혁이 굴러오는 공을···.”

    뻐엉!

    “차올려주는 거야. 낮고, 빠르게, 누구라도 건드리는 순간 득점을 노릴 수 있도록 말야.”

    “마, 망할! 막아야 돼! 절대로 저 크로스 흘리지 마!”

    다급한 목소리가 뮌헨 수비수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 선수들이 있었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맨시티의 선수들.

    마치 지금까지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전력을 다해 크로스 궤적을 따라 달리면서 플레이의 정점을 찍으려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의 노력은···.

    팡!

    누구보다 먼저 공을 건드리는데 성공한 제수스의 발끝에서 완성되었다.

    아주 짧은 터치로 속도를 그대로 살려 궤적만 살며시 꺾는데 성공한 제수스는 공이 비어있는 골대를 향해 완벽하게 들어간 것을 확인하며 양손을 위로 뻗었고, 득점이 확인되기 무섭게 두 중계진들의 목소리도 터질 듯이 높아졌다.

    “고오올! 골입니다! 세상에, 꿈은 아니겠지요? 후반 41분, 맨체스터 시티가 앞서나가는 역전골을 터트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음 라운드 진출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한 골은 치명적이에요! 당장 뮌헨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거든요? 이대로 종료 휘슬이 울리면 뮌헨은 탈락입니다!”

    “하인케스 감독, 필드로 빠져나와 선수들을 향해 윽박을 지르기 시작합니다만 이미 들어간 골이 취소되진 않아요.”

    “다급하게 공을 센터 서클 위로 올려놓는 뮌헨 선수들. 세레머니 중인 맨시티 선수들을 붙잡고 얼른 이동하라고 재촉하고 있죠? 아, 그러는 와중 관중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상황이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모든 게 바뀌었다.

    맨시티를 압박하며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던 뮌헨은 이제 따라가야만 하는 입장에 놓였고, 그나마도 한 골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두들 입밖으로 꺼내곤 있지 않았지만 다들 머릿속으론 한 가지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라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다가올 미래가 탈락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을 때, 뮌헨 선수들은 빠른 속도로 공격을 전개하며 상대를 압박하려 들었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그냥 당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대와 더욱 치열하게 맞붙었다.

    지금까지 수세를 취했던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었음을 보여주려는 듯, 지지않고 맞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모두 흘러 주심이 마침내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을 때.

    “경기 종료! 맨체스터 시티, 뮌헨과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면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합니다!”

    재혁은 발을 멈춘 후 주위를 둘러보며 쓰게 웃었다.

    악역 완성이었다.

    < 169. 완성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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