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8화 (168/225)
  • < 168. 책임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러면 동점이잖아!”

    “전반전 다 끝났는데 여기서 실점이라니. 이거 꿈이지? 누가 꿈이라고 말 좀 해줘!”

    경기장의 9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뮌헨의 홈팬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높은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르며 현실을 부정했다.

    분명 2대0이었다.

    그것도 원정에서 가져온 2대0 승리였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집안에서 날려버리다니.

    “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동네 축구 하는 거냐? 우리가 지는 걸 보고 싶어서 여기에 앉아 있는 거 같아?”

    우우우!

    충격을 받은 관중들은 락커룸을 향해 걷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고, 선수들 또한 당면한 현실을 믿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사실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기에,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용히 락커룸으로 향하는 것뿐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장의 분위기였을 뿐.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어느 스포츠바에서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하프 타임을 맞아 재생되는 전반전 하이라이트를 함께 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응원하는 팀은 뮌헨에 있었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함께 한다는 의미의 행동이었고···.

    “안토루, 대체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들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그 사이에 앉아 음료를 홀짝이고 있던 케이트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안토루를 향해 물었다.

    일단은 위건의 선수이고, 고향은 호주인데. 행동은 블루스 그 자체였으니.

    “혹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무슨 소리야. 어디까지나 팬심이라고, 팬심.”

    이해하기 힘들다며 감자 튀김을 하나 집어 입에 넣던 케이트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즉각 반응한 안토루는 동생을 향해 검지를 두어 번 흔들어 보이면서 웃었다.

    “재혁이랑 함께 발을 맞춰본 입장에서 맨시티를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던 거지. 그러다 보니 노래도 외웠고, 이렇게 유니폼도 한 벌 사서 입고 있는 거라고.”

    “그거 오빠 팀에선 모르지?”

    “굳이 숨기진 않았는데, 말할 이유도 없잖아?”

    “제발 앞으로도 꼭 숨기고 있어. 프로팀 선수가 다른 프로팀의 선전을 위해 유니폼까지 입고 나와서 응원한다니. 위건 팬들이 알면 무슨 생각을 할지 굳이 뉴스에서 확인하고 싶지 않거든.”

    나름 오빠를 걱정한 마음에 건넨 한 마디였으나, 안토루는 그런 동생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정돈 괜찮아. 아직 같은 리그에 있는 것도 아닌 걸. 그리고 여기서 날 알아봐줄 사람도···.”

    “오우! 위건의 안토루 선수 아니십니까? 지난 번 경기하는 모습 잘봤어요! 정말 매섭던데요?”

    “뭐? 안토루 선수? 그때 그 호주 출신 선수?”

    “하하. 그래도 재혁이한텐 그냥 당하고 말았는 걸요. 다들 말씀 감사합니다.”

    “···.”

    알아봐줄 사람도 없을 거라며.

    케이트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안토루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지금까지도 뮌헨을 제외하면 맨체스터 시티에 위기다운 위기를 경험하게 해준 건 위건이 유일했을 테니. 맨시티의 팬들이 저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으리라.

    자리에 혼자 남게 된 케이트는 그렇게 음료를 또 한 모금 삼켰고, 스포츠바의 주인에겐 싸인까지 해주고 돌아온 안토루를 향해 혀를 찼다.

    “진짜 위건 팬이랑 안 만나길 기도해. 혹시라도 만나면 난 오빠 모른 척 할거야.”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사실 영국인이라면 모두가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아, 물론 몇몇 팬들은 빼놓고 말이지.”

    싸인을 해준 게 고맙다며 서비스로 받아온 감자칩을 입에 넣은 안토루는 중계 화면을 통해 여전히 나오고 있는 하이라이트를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8강까지 진출한 영국팀이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뿐이니까. 리그 위상을 위한다면 분명 응원해줄 거야. 그리고 저런 플레이들이 나오는데, 누구라도 응원하고 싶지 않겠어?”

    말을 끝냄과 동시에 턱끝으로 TV를 가리킨 안토루는 배시시 웃었다.

    그곳엔 그도, 케이트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 공을 다루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최재혁.

    오늘 성공시킨 두 골에 직간접적으로 모두 관여하고, 경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율하며 팀을 이끌고 있는 재혁의 전반전 활약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던 것이다.

    이미 몇 번이고 본 장면이었지만 바에 자리한 사람들은 재혁이 골을 넣는 장면이 나올 때면 여지없이 감탄했고, 후반전이 기대된다며 들뜬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달리 케이트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는 걱정에 대해 꺼내놓으며 물고 있는 빨대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치만 아직 경기가 끝난 게 아니라고. 이대로 후반전이 끝나면 연장일테고, 그렇게 되면 홈구장인 뮌헨에게 또 다시 유리한 흐름이 넘어가게 될 게 분명하잖아? 그러면 중원에 남게 될 재혁이한테 쏠릴 압박들이···.”

    “와. 누가 사귀는 사이 아니랄까봐 끝까지 재혁이 걱정이네. 너 평소에 오빠 걱정은 하냐?”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어디까지나···!”

    “뭐, 케이트 네가 왜 남자 친구 걱정을 하고 있는 지는 대강 나도 알겠어. 체력이란 부분이 현재 재혁이의 유일한 단점이니까. 소모전으로 진행될 연장으로 넘어가면 물론 맨시티 입장에선 피곤해지겠지.”

    “그러니까 남자 친구가 아니라···.”

    “하지만 그건 오히려 네가 재혁이를 못 믿고 있어서 하는 소리야.”

    “···?”

    농담과 장난을 섞어 말하던 안토루의 진지한 목소리에 케이트의 표정도 그를 따라 변했고, 안토루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예의 미소를 보이면서 말을 계속 이었다.

    “시드니에 있을 때 일이야. 한창 컵대회를 진행하던 중이었지.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어. 우린 원정이었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체력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노출하고 있었지.”

    “대륙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대한 이야기야? 위험했다던 그 경기?”

    “맞아. 바로 그 경기야. 점수는 동점이었고, 정규 시간은 겨우 5분정도 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어. 아마 모두가 연장전을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우리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였고, 모든 선수들이 걱정스럽게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지. 오직 한 사람, 재혁이를 제외하곤 말이지.”

    씨익, 자연스레 미소를 떠올린 안토루는 잠깐 입을 멈춘 후 간단히 목을 축였고, 은근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생과 눈을 마주치며 끊었던 말을 계속 했다.

    “사실 좋든, 싫든, 상황이 그랬던 만큼 우리 팀도, 그리고 상대 팀도 모두 연장을 준비하고 있었어. 경기에서 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최대한 이길 확률이 높은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지. 그런 상황에서 재혁이가 공을 잡았고···, 모두가 당황했어. 왜냐면 갑자기 드리블을 시작했거든. 그것도 하프 라인 뒤에서부터, 단독으로 말이지.”

    “그게 중요해? 오히려 위험한 플레이 아니야? 독단적인 선택이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왜냐면 졌을 때의 책임도 모두 본인이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내릴 수 없었을 선택이었을 테니까. 재혁이는 경기의 압박감에서 버틸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선수인거야.”

    “!”

    “그러니까 만약 뮌헨에서 오늘 경기를 연장까지 계획하고 있다면···.”

    바삭, 감자칩을 또 하나 입에 넣으면서 시선을 경기장으로 옮긴 안토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승패는 바로 거기서 결정이 날거야.”

    ***

    복잡,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던 락커룸에서 하인케스 감독은 전술 설명을 끝냈다.

    선수들은 그런 감독의 말을 경청했고, 승리를 다짐하면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선수들이 자리를 떠났을 때, 하인케스 감독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감독님.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들린 코치의 목소리를 찾아 얼굴을 돌렸다.

    하인케스 감독은 코치의 걱정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끄덕였으나, 동시에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이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어. 연장전을 기대하고 후반전을 준비한다면 수세에 몰릴 건 우리가 될 게 분명하니까. 홈이라는 이점을 살리는 것보다, 지금의 분위기가 더 중요한 거네. 분위기를 잃으면 경기도 잃는 거야.”

    “그렇지만···, 저건 너무 치우쳐졌는 걸요.”

    말을 끝내며 전술판을 살핀 코치의 두 눈엔 걱정이 가득했다.

    사실 어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지금 전술판에 기록된 마크들을 확인한다면 말이다.

    4-3-3에서 상황에 따라 변형 3백, 이후 공격에만 7명을 투입시키는 전술이라니.

    단어 그대로 뒤가 없는 전술이었기에 코치의 걱정은 그 어떤 때보다 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코치와 달리 하인케스 감독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공격 중에 실수가 나와 역습을 허용한다면 제법 치명적으로 작용하겠지.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을 노리기도 했어. 흐름을 빼앗긴 맨시티가 역습만을 노려준다면 나머지 시간을 우리가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선수들에게 끝없이 강조한 거야. 이 경기는 45분 안에 끝나야 한다고. 아마 선수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해주겠지?”

    “글쎄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야. 솔직히 그걸 제외하면 이길 방법이 보이질 않거든.”

    마지막에 슬쩍 코치의 얼굴을 살피며 되물은 하인케스 감독은 코치의 확신이 부족한 대답에 아쉬운 미소를 떠올리곤 턱을 긁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라도 선수들이 연장전을 기대하고 경기에 임하게 된다면, 그때 찾아올 미래는 제법 가혹할 것이다.

    그런 걱정에 쩝, 짧게 입술을 쓸어내린 하인케스는 닫힌 락커룸 문에 손을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은퇴 연금 걱정만 하고 살던 때가 좋았어. 이제 별들의 전쟁이 아니라, 괴물들의 전쟁이 됐으니. 더 이상 나같은 노인이 머물 곳이 아니야.”

    끼이익, 그렇게 문을 열고 복도로 빠져나온 하인케스 감독은 눈앞을 지나치는 재혁을 발견하곤 쓰게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자신의 스쿼드에 저 꼬마가 포함되어 있다면, 아마 은퇴를 한 시즌 정도는 미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러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하인케스 감독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웃었다.

    늙으니 욕심만 늘어난다고, 일단 눈앞에 놓여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라며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후반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하인케스 감독은 바로 보이는 장면을 확인하곤 쯧, 혀를 찼다.

    “역시 저 꼬마를 데리고 왔어야 했어. 구단이 이번엔 크게 실수를 했구만.”

    < 168. 책임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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