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7화 (167/225)
  • < 167. 리셋 >

    “최재혁 선수, 보아탱 선수를 앞에 두고 드리블 돌파를 시도합니다!”

    “저기서 드리블이라고?”

    “저 어린 놈이 우리 뮌헨을 우습게 아나!”

    재혁이 드리블을 시작하기 무섭게 큰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캐스터와 해설자의 놀란 목소리는 기본이었고, 관중석에 자리하고 있던 뮌헨의 팬들은 몸을 일으키더니 목청을 키워 공을 몰고 이동하는 재혁을 향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으니 그 소리가 작을 수가 없던 것이다.

    이유는 확실했다.

    뮌헨의 4-3-3에서 중원에 쌓인 블럭의 숫자는 최소 5개, 많게는 7개까지도 구축이 가능할 정도로 짜임새가 탄탄했는데. 그런 곳을 향해 공을 몰고 달려든다니.

    누가 보아도 자살 행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이에른 뮌헨은 하인케스 감독의 밑에서 ‘독일식’ 토털 축구를 완성한 팀이지 않은가.

    그런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고함을 내질렀다.

    “절대 봐주지 마!”

    “죽여! 죽여버려! 바로 태클을 걸라고!”

    “한 대 치면 그대로 날아갈 것처럼 생겼잖아! 어깨로 밀어!”

    한 골을 실점했다는 분노와 상대에게 얕잡아 보이고 있다는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

    그 두 가지가 뒤섞이자 관중들은 공을 가지고 이동하고 있는 재혁을 향해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고, 곧 보아탱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들 주먹을 불끈 쥐고 이어질 장면을 기대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보아탱이라면 분명 재혁을 막아줄게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믿지 못 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다들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었다.

    투웅!

    “?!”

    아주 가벼운 터치처럼 보였다.

    재혁의 자연스럽게 공을 밀고 움직이는 움직임.

    분명 특별할 것도 없고, 특이할 것도 없는 움직임이었거늘.

    그런데 그 움직임이 끝나 있자 재혁의 앞을 가로 막고 있어야 할 보아탱은 중심을 잃고 잔디 위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고, 재혁은 그 옆을 유유히 지나쳐 계속해서 공을 몰고 이동하던 것이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이 당황한 것처럼, 뮌헨 선수들 사이에서도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보아탱, 뭐하는 거야?!”

    보아탱이 간격을 올리는 바람에 그와 함께 라인을 맞추게 되었던 비달은 갑작스레 무너진 파트너가 당황스러웠지만 재빨리 정신을 추스리고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달렸고, 어렵지 않게 재혁의 드리블 루트에 다리를 집어 넣으면서 견제를 가할 수 있었다.

    이 후 어깨를 맞대고 틈이 보인다면 그대로 오른 다리를 집어 넣어 공을 빼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재혁과 끊임 없이 몸싸움을 벌이던 비달의 눈썹은···, 차츰 미간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뭐야, 틈이 없어?’

    분명 붙는다면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는데, 거리를 좁히니 오히려 틈이 보이질 않는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등골을 엄습하는 기묘한 불안감에 비달은 당황해 숨을 모았다가 최소한 공과 최재혁, 이 둘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로 재혁을 쫓아 움직였고···.

    사악.

    “···뭣?!”

    순간적으로 재혁의 움직임을 놓치면서 그와 거리가 벌어진 것에 놀라 참던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숨을 놓친 것처럼 비달 또한 보아탱이 그런 것처럼 잔디 위를 미끄러졌다.

    보아탱에 이어 비달까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당황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현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는 뢰브 감독은 예의 미소를 떠올린 채로 말했다.

    “제가 아까 그런 말을 했었죠. 맨시티가 측면을 원하니 뮌헨은 오히려 측면을 열어줬다고.”

    “아, 예. 그 덕에 경기 양상에 변화가 생겼었다고···.”

    “이제 보니 하인케스는 열어준 게 아니었습니다. 열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왜냐면···.”

    꿀꺽, 이어질 장면을 상상하며 기대에 찬 얼굴로 침을 삼킨 뢰브 감독.

    그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기자의 시선에 또 한 번 빙그레 미소를 보인 후 말을 이었다.

    “측면을 열어두지 않으면 맨시티는 방위를 가리지 않고 침투할테니까요. 바로 지금, 저곳에 있는 최재혁처럼 말이죠.”

    “···최재혁 선수! 공을 가지고 계속 움직입니다! 비달의 압박에서도 벗어났어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최재혁 선수가 운좋게 공을 지키는데 성공하면서 뮌헨의 중원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습니다!”

    같은 장면을 눈에 담고 있던 캐스터의 뺨이 흥분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보아탱을 넘어 비달까지 제친 상황이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흥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더 중요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며 말을 아끼던 해설자는···.

    “위험합니다. 뮌헨, 위기에요! 지금 당장 공을 잘라야 합니다!”

    뒤늦게 다급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런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확실히 보아탱과 비달이 뒤로 넘어간 상황인지라 이번 공격이 위협적이긴 합니다만, 뮌헨의 입장에선 곧장 공을 자르기보단 기다리는 수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는 편이···.”

    “기다리면 늦어요!”

    “늦는다구요?”

    확신에 찬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는 되물었고, 그런 캐스터를 향해 해설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최재혁 선수가 보아탱과 비달을 제친 건 단순 운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간격’이 완전히 맨체스터 시티의 쪽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걸 되찾아 오지 못한다면 뮌헨 수비수들은 길을 잃고 말겁니다!”

    간격.

    애매한 단어로 상황을 설명한 해설자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높아졌고, 필드 위에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눈으로 담으며 설명을 이었다.

    “패스와 드리블 그리고 슛.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선택지들이 매번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수비수들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하니까요. 그런데···, 최재혁 선수와 맨체스터 시티는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역으로 이용한다고요?”

    “패스할 각을 좁히려면 상대에게 달라붙어야 하고, 드리블을 막으려면 공이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상대와 두어야 하죠. 그걸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게 바로 선수와 선수 사이의 간격입니다. 효율적으로 상대를 공략하려면 패스할 장소와 거리에선 패스를, 드리블을 해야 할 곳에서 드리블을 시도하는게 옳으니까요. 하지만···.”

    설명이 이어지는 중에도 쉬지 않고 뮌헨의 중원을 헤집고 있는 재혁과 그의 양옆을 받쳐주고 있는 두 선수를 눈동자에 담아두고 있던 해설자는 바로 보이는 장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을 맨체스터 시티는 이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뚫어내고 있어요, 뮌헨의 중원을 말입니다!”

    파앙!

    해설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혁의 발끝에 머물던 공이 위로 떠올랐고, 공이 향하는 방향을 쫓아 고개를 돌리던 선수들의 얼굴엔 다양한 표정이 그려졌다.

    대부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대체 왜 공이 저기로 향하고 있냐는 듯한 표정 말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명.

    후멜스는 공이 날아가는 궤도를 바로 읽어내더니 소리쳤다.

    “라인···, 라인 올려! 아냐, 이미 늦었어! 제기랄! 키미히, 빨리 쫓아!”

    한숨 섞인 욕설을 토해낸 후멜스의 눈에 떠올랐던 공이 서서히 낙하를 시작하는 것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두 선수들이 공을 쫓아 달리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맨시티의 사네와 자신과 같은 팀인 뮌헨의 키미히.

    중원 사이를 꿰뚫고 차올린 재혁의 패스를 쫓아 움직인 둘은 낙하 중인 공을 놓고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둘을 보면서 후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최악이다.

    자신이 예상했던 10분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10분이 현재 진행되려 하고 있던 것이다.

    ‘축이 무너지면서 상대에게 기세를 허용하게 되고, 그 탓에 강제로 라인을 뒤로 물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제기랄. 가능하면 휘슬이 울리기 전엔 최대한 골대에서 먼 곳에서 플레이를 했으면 했는데. 최재혁, 마지막까지 피곤하게 하는 구나!’

    패스와 드리블, 그리고 슛. 공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선택지.

    재혁은 이것을 토대로 다가오는 수비수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었다.

    이건 재혁이 기술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었다.

    간격을 이용한 심리전.

    마치 삼장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재혁은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달라 붙었던 선수들의 심리를 그대로 꿰뚫어 읽었고, 그를 토대로 기본 동작만을 사용해 그들의 압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뜨린 중원을 뚫고 보낸 전진 패스.

    그 패스 또한 타이밍이 미묘해서 만약 자신이 소리치지 않았다면 키미히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시도하기 위해 라인을 올리느라 반응하지 못했으리라.

    ‘정말 괴물같은 놈이다. 1차전에 나오지 않은 게 어쩌면 행운이었을 지도···.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정신 차려!’

    잡생각에 빠질 뻔한 자신을 깨우기 위해 황급히 고개를 털었던 후멜스는 숨을 고른 후 눈빛을 갈았다.

    우린 바이에른이다.

    기록의 챔피언이고, 남쪽을 밝히는 별이지 않은가.

    독일에서 자신들이 아니면 누가 4강으로, 결승전으로 향할 수 있겠는가.

    복잡하게 생각하느니, 차라리 머리를 비우겠다.

    그러는 편이 지금은 더 수비하기 편할 것이란 생각에 후멜스는 고함을 내질렀고, 시야에 들어오는 상황들을 읽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야!’

    공은 사네의 발 아래 위치해 있었고, 그 앞을 키미히가 가로 막고서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터치 라인 가장 끝, 조금만 더 이동하면 코너 플래그에 닿을 정도로 구석에 몰려 있는 사네를 보면서 후멜스는 일단 안도했다.

    공이 저곳에 있다면 한 번에 골대로 향할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만큼 이곳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지.’

    골라인과 패널티 마크, 그 사이에 존재하는 PTA, 프라임 타겟 지역.

    공이 올라온다면 이곳을 노릴 것이고, 골이 터진다면 이곳에서 터질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하면서 후멜스는 공의 위치와 함께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고, 그의 예상처럼 PTA를 목표로 모여드는 선수들을 확인하며 침을 삼켰다.

    상대의 톱 자원 아구에로와 반대편 윙어인 스털링, 박스 안으로 침투를 시도하는 케빈과 실바까지.

    결국 그의 예상처럼 아무리 사네가 드리블로 키미히를 돌파하고 공을 몰고 올라올 지라도 마지막 종착점인 골대로 향하기 위해선 이곳을 거쳐야 했으니, 자연히 이곳으로 모두 모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공격수들이 그런 것처럼 수비수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박스 안으로 밀집되는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사네가 키미히를 벗겨내는 것을 확인한 후멜스가 재차 고함을 질렀다.

    “전반전 끝나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 적어도 이 점수는 지키고 끝내야 해!”

    최소한의 목표.

    가능하다면 꼭 지키고 싶은 그 목표에 대해서 후멜스는 소리쳤고, 다들 눈동자를 반짝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곳도 아닌 홈에서 추태를 보이는 것으로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사네의 발끝으로 향했고···.

    파앙!

    패널티 박스 안으로 드라이브 인을 시도하던 사네는 왼발 인사이드로 공을 강하게 차보냈다.

    사라락, 잔디 위를 구르면서 순식간에 선수들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한 공과 그런 공을 쫓아 시선을 옮기던 선수들.

    그 사이에서 사네의 패스가 흘러가는 궤적을 읽은 누군가가 소리쳤다.

    “케빈이다! 케빈 슈팅각 주지마!”

    “어떻게든 막아, 몸으로라도 막아!”

    “알고 있어! 간다!”

    어쩌면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플레이.

    그 한 번의 플레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그리고 막기 위해 선수들의 행동이 분란스러워졌다.

    후멜스 또한 그 사이에 뒤섞여 공을 좇아 고개를 움직였는데.

    ‘···아니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본능적인 감각에 몸을 떨었다.

    확실히 사네의 패스가 향하는 장소에 서있는 건 케빈이었다.

    공의 속도도, 그리고 각도도, 마지막 한 조각 남은 퍼즐의 완성을 눈앞에 둔 것처럼 그의 오른발만 남은 상황이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에 남아 있는 불쾌한 감각에 후멜스는 인상을 구겼고···.

    “아···!”

    마지막 조각이라 믿고 있던 케빈의 뒤에 준비 되어 있는 ‘진짜’ 조각을 확인한 뒤 탄식을 흘렸다.

    최재혁.

    사네의 패스가 향하고 있는 케빈, 그 뒤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재혁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자 사실 사네의 패스가 노린 선수는 케빈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른 공은 과연 후멜스의 예상처럼 케빈을 그대로 지나쳤고, 케빈 덕에 박스 외곽에서 노마크 찬스를 맞이할 수 있게 된 재혁은···.

    “이걸로 리셋,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뻐엉!

    정확히 발등에 얹은 슈팅을 때리면서 자신에 찬 미소를 떠올렸다.

    파워보다 정확도, 그리고 이상적인 궤적을 노리고 찬 슈팅은 그대로 골문 구석을 노리고 빨려 들어갔고, 재혁의 슈팅이 골망에 걸리자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 167. 리셋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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