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선택 >
관중석이든, 집이든, 혹은 펍이든, 어느 자리에서든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들이 응원하는 팀이 뮌헨이었든, 혹은 맨체스터 시티였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같이 눈의 초점을 잃었고, 손이나 무릎 같은 것들을 부여잡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긴장감.
머지않아 무언가 터질 것 같다는 그 바짝 날이 오른 긴장감에 모두 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심을 잃은 갈대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몸과 달리, 필드를 향하는 시선 만큼은 모두 곧았고, 중계진들 또한 그와 비슷한 감정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군요.”
마이크에 입을 바짝 가져가 소리치던 캐스터.
입술은 사막의 그것처럼 말라 쩍쩍 갈라지고, 턱은 뻣뻣함에 미묘한 통증을 남기고 있었으나, 그는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단순히 공이 구르고 있는 장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온더볼 상황이든, 오프더볼 상황이든···, 경기장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이 흥미로워 도저히 시선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캐스터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런 중계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해설 또한 참고 있던 숨을 가까스로 토해내며 말을 계속 했다.
“챔피언스 리그의 경기들이 모두 그랬지만, 오늘 경기는 특히 치열합니다. 매 순간마다 양 팀의 전술과 전략이 맞부딪치며 매섭게 불꽃을 튀기고 있으니, 치열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유럽에 속한 각 리그들의 정상들이 모인 대회라 하여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챔피언스 리그다.
단순히 리그를 넘어 유럽 최정상이 되겠다는 목표로 모인 팀들인 만큼, 상위 라운드로 향할 수록 그 치열함은 다른 대회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고, 그 뜨거움은 곧 세밀함이 되어 서로의 목을 겨눈 것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그들보다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테니까.
그 미세한 ‘간격’의 싸움을 맨체스터 시티와 바이에른 뮌헨은 끊임없이 벌이고 있었고, 해설자는 담담하지만 열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이어지는 장면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분명 경기 초반, 흐름을 잡고 있던 것은 뮌헨이었습니다. 1차전에서 거둔 2대0 완승을 기초로 탄탄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또 풀어나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흐름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맨체스터 시티였죠.”
“선제 골을 성공시키던 장면에 대한 말씀이시겠죠?”
“그렇습니다. 단순히 운으로 넣은 게 아니라, 뮌헨이란 팀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뚫어내 골을 넣었다는 게 바로 보인 인상적인 장면이었죠. 그 후 분위기는 균형을 되찾았습니다.”
일진일퇴.
서로의 허점을 노리고 파고 들거나, 공격을 방어하는 형세가 이어졌다.
지루할 틈도 없이 끈질기게 말이다.
하지만 바로 전에 언급했듯, 오늘 경기는 ‘세밀함’과 ‘간격’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해설자가 계속 말했다.
“허나, 오히려 그게 맨체스터 시티에겐 독이 된 것 같습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뮌헨의 결속력을 다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리고 결속력을 기반으로 뮌헨은 변화한 맨체스터 시티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근 5분간 뮌헨의 공격만 계속되고 있는 것 같네요.”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뮌헨의 공격 장면을 설명하면서 해설자가 뺨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맨시티가 준비해온 전술은 발상의 전환 수준이 아니었어요. 상식적인 윙포워드들의 움직임과 개념에 반하는 것이었거든요. 물론 그 덕에 점수를 내긴 했지만, 그만큼 양 윙포워드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었죠. 바로 체력적인 부담을 말입니다.”
짤막하게 설명을 끊은 해설자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오늘 준비해온 ‘안티 바이에른’ 전술에 대한 해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은 바이에른의 약점이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공략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설을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들을 향하고 있는 역날이 무엇인지도 설명하면서 해설자는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묻혔다.
“맨시티의 공략법이 기발했지만, 뮌헨은 멍청한 팀이 아닙니다. 다른 어느 팀들보다 효율적인 움직임을 목표로 움직이는 팀이에요. 그런 팀이 수비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맨체스터 시티로선 이제 진짜 힘든 상황을 직면하게 된 것이죠.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성공적인 후멜스의 커팅 이후 연결되는 뮌헨의 자연스러운 역습.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중계진들의 입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비달을 거쳐 뮐러에게 연결된 공은 코망의 발에 걸려 쉼없이 움직였고, 라포르테를 앞에 두고서 자신감 넘치는 드리블을 선보이던 코망은 틈을 발견하기 무섭게 곧장 크로스를 높게 띄워 보낸 것이다.
회전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코망의 크로스는 정확하게 박스 안쪽, 레반도프스키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졌고, 콤파니의 견제를 이겨내며 시도한 레반도프스키의 헤딩슛의 종착지를 확인하면서 모두가 탄식을 흘렸다.
“조금만 더 안 쪽으로 꺾였다면 에데르손 골키퍼가 손댈 수 없을 각도였을 텐데요!”
“그대로 공을 끌어 안고 바닥에 떨어진 에데르손 골키퍼.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넘겨줄 곳을 찾고 있습니다만···, 여의치 않아 보이죠?”
“그럴 수밖에요. 공간을 넓게 벌려주고 있어야 할 선수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바로 넘겨줄 곳을 찾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 선택을 내려야할 때입니다.”
“선택이요?”
“이대로 경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다음 라운드 진출팀은 뮌헨으로 확정되겠죠.”
겨우 30여분이 흐른 상황에서 단정을 내린 해설자.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캐스터는 그런 해설자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진행되는 경기 양상이 그랬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해설자는 진심을 담아 계속 말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이라면, 맨체스터 시티라면, 분명 이대로 경기를 포기하지 않겠죠. 그러니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또 다른 변화를 위한 선택을 말이죠. 그런데···.”
에데르손의 골킥으로 재개된 경기를 쭉 지켜보던 해설자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손을 올려 턱을 괴었고, 신중한 얼굴로 선수들의 위치를 확인한 뒤 재밌다는 듯, 눈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제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나 보군요.”
“예?”
“선택을 내렸어요.”
되묻는 캐스터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웃은 해설자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진영을 확인하면서 계속 말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아니. 맨체스터 시티라는 하나의 ‘팀’이 마침내 선택을 내렸습니다. 자신들은 아직 경기를 포기한 게 아니라는 선택을 말예요.”
***
‘대체 왜 네가 거기 있는 거냐?’
필드 위에서 상대 진영을 노려보고 있는 후멜스가 미간을 잔뜩 꼬았다.
그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 내렸고, 깊게 패인 골에 웅덩이를 만든 땀을 손등으로 훔쳐낸 후멜스는 고개를 털어낸 뒤 생각을 계속 했다.
사네와 스털링의 리버스-윙 플레이는 둘에게 패스를 연결해줄 수 있는 재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었고, 동시에 후방에 과하게 쏠렸을 부담감도 재혁이란 존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재혁의 포지션이 바뀐 것이다.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후멜스는 생각을 거듭했다.
‘최재혁. 녀석은 부정할 수 없는 맨시티의 핵이다. 그런 놈이 움직였다면 분명 노림수가 있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그 노림수가 대체 뭘까?’
고민이 이어지자 후멜스의 표정은 변화를 찾지 못한 채로 계속 굳어 있었고, 그런 후멜스에게 보아탱이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문제 있어?”
“저 녀석의 위치가 바뀌었어.”
“저 녀석?”
“최재혁 말야.”
후멜스가 이름을 언급하자 보아탱이 그제서야 아, 짧은 탄식을 흘리며 주변을 살폈고, 과연 후멜스의 말처럼 재혁의 위치가 전과 달라진 것에 고갤 갸웃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자리는 그대로잖아? 그렇다면 그냥 저 녀석 혼자 무리해서 움직인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치? 그럼 굳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최재혁이라고. 최재혁이 혼자 무리해서 자리를 옮긴다고? 저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능글맞은 녀석이? 절대 그럴리 없어. 이건 분명 뭔가 있는 거야. 분명 있다고.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단 말야. 후우.”
“흐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재혁을 노려보며 연신 입술을 씹고 있는 후멜스.
그런 후멜스를 옆에서 빤히 지켜보던 보아탱 또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실제로 오늘 경기를 시작하기 전, 락커룸에서 하인케스 감독에게 재혁에 관한 이야기를 수 차례 들었으니까.
다른 선수는 몰라도 재혁의 움직임엔 주의하라는 말을 말이다.
게다가 후멜스까지 이런 말을 하고 있었으니···.
잠시간 고민에 빠졌던 보아탱이 후멜스를 향해 슬쩍 고개를 기울인 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내가 붙어볼까?”
“네가 붙는다고?”
“우리 후방은 충분히 단단해. 특별한 일만 없다면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조금 더 올라가서 최재혁, 저 꼬마 옆에 붙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지켜보는 거야.”
“으음···.”
“어차피 전반전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이대로 마지막까지 지켜봐도 괜찮겠지만, 정 걱정이라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거지.”
보아탱의 말을 들은 후멜스의 얼굴엔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확실한 답이 없기 때문에 이번 선택은 더더욱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고민에 빠졌던 후멜스는 곧 심호흡을 반복했고, 마음을 정했는지 보아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면 부탁한다.”
“좋았어. 밧줄로 묶은 것처럼 확실히 붙잡아 둘테니 걱정 말라고. 앞으로 10분 정도 남았지?”
“정확히 8분이야.”
8분이면 여유지, 그런 말소리를 반복하며 멀어지는 보아탱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후멜스는 마음을 다잡았고, 기도했다.
제발 자신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이기를, 제발 자신이 틀렸기를 말이다.
그러는 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공을 찾아 시선을 옮겼고, 후멜스가 침을 삼켰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사이를 돌던 공은 마치 보란 듯이 재혁의 발밑에 도착해 구르고 있던 것이다.
실바의 패스를 받은 재혁은 터치와 동시에 정면을 향해 돌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후멜스와 한 차례 시선을 교환한 후 드리블을 시작했다.
그런 재혁을 노려보던 후멜스는···.
“아!”
탄식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약속했던 대로 보아탱이 등장했고, 재혁의 앞을 가로 막기 위해 달리는 보아탱을 향해 후멜스가 소리쳤다.
“아, 안 돼! 보아탱, 뒤로 물러나!”
“뭐? 하지만···.”
난 이 녀석을 막아야 하는데, 라는 말을 남기려던 보아탱의 입술은 순간 움직임을 멈췄고, 그의 두 눈에 떠오른 이채는 한 차례 번득이더니 빛을 잃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길을 찾지 못하고 빛을 잃은 것이다.
후멜스의 목소리에 반응했던 보아탱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당황해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최재혁이 사라졌어?!”
“사라진 게 아니야!”
그리고 그런 보아탱의 비명에 후멜스가 소리쳐 대답했다.
“드리블이야!”
< 166. 선택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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