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5화 (165/225)

< 165. 세 가지 조건 >

“미···, 미친놈들이요?”

“그래. 저게 미친 게 아니면 뭐가 미친 거겠어?”

당황한 목소리로 되묻는 코치의 물음에 쓰고 있던 모자를 잠시 벗은 뒤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한 하인케스 감독.

그는 기울어진 모자 챙 끝에 걸려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을 빤히, 그 중에서도 재혁의 얼굴을 진득하니 바라보다가 입술을 비틀며 말을 이었다.

“설마 저렇게 ‘무식한’ 방법을 준비해서 올 줄이야. 아니, 그걸 떠나서···. 저게 가능할 거라 믿은 건가?”

“일단 한 점을 뽑긴 했잖아요? 그럼 가능은···. 다, 다물고 있겠습니다.”

“흥.”

기록표를 점검하며 아무 생각 없이 입을 떠벌리던 코치는 예리하게 빛나는 하인케스 감독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손을 올려 입을 가렸고, 시선을 거둔 하인케스 감독은 다시 필드를 응시하며 말했다.

“전술의 기본은 삶과 같아. 연속성, 규칙성, 그리고 반복성. 이 세가지 조건들이 필수적이지. 축구는 다른 운동들과 달리 10분을 뛰고 멈추는 운동이 아니니까. 쉬지 않고 뛰게 될 45분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 혹은 전후반을 포함한 90분 동안 전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이루어질 것이냐. 이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건 전술이 아니라 단순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과르디올라 감독이 준비해온 건···, 전술이 아니야.”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래도 일단 한 골을 넣은 건 사실이긴 한데···.”

“그래. 사실이지. 하지만 앞으로 10분이 지난 후의 사네와 스털링을 상태를 상상해봐. 지금은 당장의 한 골을 합작해서 기분이 좋겠지만, 저 둘을 극한까지 혹사 시키는 계획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반복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이제 저 둘이 무너지면 다른 선수들은?”

“!”

“사네와 스털링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겠지. 과르디올라 감독이 간과한 점이 바로 그거야. 어떻게든 균열을 만들어 보려고 한 것까진 좋았지만, 그 균열을 찾은 후 꺼내온 방법이 그다지 좋지 못 해. 자신들이 퍼마실 우물에 오히려 독을 푼 게지.”

쯧쯧, 말을 끝내며 혀를 찬 하인케스 감독은 반대편 벤치에 자리하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평소와 같이 고고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턱을 괴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말이다.

하인케스 감독은 고쳐쓴 모자를 푹 눌러 쓰며 아쉬움에 찬 한숨을 토해냈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과르디올라. 오늘만큼은 모든 게 명백해. 이건 자네의 실수야. 그리고···, 그 날도.’

처음 과르디올라와 만났던 순간과 과르디올라가 뮌헨의 감독으로 취임하던 순간을 기억해낸 하인케스 감독은 이어서 짧았지만 그와 구단을 행복하게 지켜볼 수 있었던 ‘영광의 순간’들도 떠올렸다.

그렇지만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이별.

그 이별과 함께 흔들리는 구단을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하인케스 감독은 아직까지도 진하게 남은 미련이란 감정을 잊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경기는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나야 한다. 아니, 끝이 날거다.’

그 미련을 떨쳐낼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오늘 경기를 위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준비해 쏟아부었다.

훈련장에선 선수들을 따로 불러 특별 지시를 내렸고, 전체적으로 가다듬을 수 있는 부분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손을 보았다.

오직 한 가지를 위해서.

가장 ‘바이에른다운’ 축구로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졌던 하인케스 감독은 터치 라인으로 올라갔고, 양손을 모아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모두 정신차려! 경기는 이제 시작 됐을 뿐이다! 여기까진 모든 게 예상 범주잖아? 비달, 후멜스! 라인을 재조정한다. 하메스와 뮐러는 조금 더 안쪽으로 좁히고, 그리고···.”

이제 겨우 한 골을 내줬을 뿐이라며 선수들을 다독인 하인케스 감독.

그런 하인케스 감독의 지시에 맞춰 선수들은 진영을 바꿨고, 그렇게 다시 짜인 뮌헨의 진영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뢰브 감독은 눈을 크게 껌뻑이더니 크게 웃었다.

옆에 앉아 있던 빌스의 기자는 뢰브 감독이 왜 갑자기 웃는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고, 기자의 질문에 뢰브 감독은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대꾸해 주었다.

“열어줬으니까요.”

“예? 열어줬다니요?”

“방금 플레이로 맨체스터 시티가 양 측면에서 활로를 찾으려고 한다는게 확실해진 상황이지 않습니까? 거기서 하인케스 감독은 수비 라인을 끌어 올렸고, 라인과 라인 사이를 좀 더 콤팩트하게 좁혔어요.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축구에 조금 더 힘을 주겠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맨시티가 공략하길 원하는 측면을 열어주었다···? 아니 왜?!”

“자존심 싸움인 거죠. 두 감독의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축구’를 놓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 말예요.”

“하, 하지만 이건 챔피언스 리그 8강 마지막 경기라고요? 여기서 지면 탈락인데!”

“그거야 두 사람 모두 질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허.”

왜 이런 일을 벌이냐며, 당황해 하고 있는 기자를 향해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뢰브 감독은 휘슬 소리에 맞춰 재개되려 하고 있는 경기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고, 오늘 경기의 또 다른 주인공들인 두 감독을 한 번씩 살핀 후 읊조렸다.

“하인케스가 생각하는 뮌헨의 정수와 과르디올라가 추구하는 축구. 오늘 경기가 남길 파장은 절대 작지 않을 겁니다.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이 날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

무섭다.

다시 시작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 경기는 지켜보기 무섭다, 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 또한 매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잔디 위를 뛰고 있었다.

신체적 피로감에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조금만 실수하면 흐름과 균형이 깨진다는 압박감이 낳은 스트레스 말이다.

뻐엉!

“휴우···!”

위험 지역으로 떨어지는 공을 후멜스가 가까스로 걷어내는 것을 확인한 뮌헨의 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이걸로 벌써 몇 번째일까?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경기를 처음부터 지켜본 어느 누구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경기는 긴박하게, 그리고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맨시티의 드로잉으로 경기가 재개되려 하는 걸 지켜보면서 뮌헨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남성이 옆에 앉아 있는 친구를 향해 물었다.

“우리가 이기고 있는 건 맞지?”

“일단은.”

“어우,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냐?”

“···.”

친구의 질문에 대답 대신 자신의 엄지 손톱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한 남성.

그 또한 친구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불안감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성은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뮌헨 선수들이 맨시티의 공을 빼앗는 장면을 확인하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공격이 무산되는 것을 확인했을 땐 탄식을 흘리며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을 토해냈다.

“젠장! 왜 아직도 전반 30분이냐고?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거야?”

느낌상으론 벌써 전반이 끝난 것 같았는데, 실질적으로 흐른 시간은 겨우 30분이라니.

조급함에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을 토해냈던 남성은 애써 고개를 털어내며 다시 시선을 경기장 위로 옮겼다.

자신은 그저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필드 위에서 뛰고 있을 선수들이 느낄 압박감은 이것보다 훨씬 무거웠을 테니까.

그걸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남성은 힘찬 목소리로 선수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들을 위해 응원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가 원하던 것과 달리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남성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려 한 것에 비명을 질렀다.

최재혁.

그의 발끝을 떠난 공은 또 한 번 포물선을 그리더니 매끄럽게 사네를 목표로 날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번에 또 실점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지켜보던 관중들은 이어지는 플레이에 얼굴을 폈다.

투웅!

“나이스! 역시 후멜스다!”

공을 좇아 높게 떠올랐던 후멜스.

공이 사네에게 닿기 전, 한 발 먼저 뛰어올랐던 후멜스가 헤딩으로 재혁의 패스를 끊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후멜스의 머리에 걸렸던 공은 그의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보아탱의 발밑에 떨어졌고, 보아탱은 트래핑과 동시에 비달을 향해 패스를 밀어주면서 공을 완벽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손쉽게 수비에 성공한 후멜스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자신의 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네를 살핀 후···.

‘드디어 지쳤군. 하긴, 지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살며시 입꼬리를 말았다.

무려 30분이었다.

30분간 쉬지 않고 상황에 맞춰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수비시엔 개인 전술에 맞춰 따로 움직이면서 체력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었으니.

슬슬 몸에 이상이 찾아오고 있으리라.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활동량이었으니까.

세상 어느 선수도 저런 페이스로 90분을 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네와 마찬가지로 스털링 또한 눈에 띄게 활동량이 줄어들고 있었고, 그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이겼다···!’

전술의 승리.

상대의 노림수가 제법 매서웠지만 그 매서움도 겨우 1골에 그쳤고, 이젠 한계에 종착해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그 누가 보아도 패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남은 시간은 후반전을 포함해 총 60분이나 되었으니.

마침내 모든 것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에 후멜스는 중앙선 너머에 위치해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진영을 살피며 진한 미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성벽은 무너졌고, 퇴로는 끊어져 함락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적의 모래성을 살펴보며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이것 외에 다른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비달을 거쳐 계속해서 전진하는 동료들을 향해 시선을 옮긴 후멜스는 다시 예의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뒤 숨을 골랐다.

이제부터 시작될 ‘진짜’ 무대를 준비하려면 가벼운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으니.

‘물론 함락된 성에 깃발을 꽂는 정도의 작업이지만, 그게 꽂히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도 전력을 다해서···, 철저하게 부순다!’

“집중력을 잃지마! 끝까지 집중해야 해!”

주변에 위치해 있는 선수들의 자리를 조율하면서 큰 목소리로 소리친 후멜스.

마지막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후멜스는 천천히,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고···.

“?”

자신의 정면에 바로 보이는 얼굴을 확인하곤 살며시 미간을 모았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서 달리고 있는 재혁.

공격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재혁의 모습을 보면서 후멜스는 재혁의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바로 짚어낼 수 없었던 후멜스는 그저 눈썹을 찌푸린 채로 생각을 거듭할 뿐이었고···.

“흐음.”

후멜스를 포함해 경기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눈에 담아 지켜보고 있던 과르디올라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턱을 쓸었다.

그는 약속된 전술대로 한 박자 늦게 진영으로 돌아오고 있는 사네와 스털링의 움직임을 살폈고, 시계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30분 이상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지.”

지금이야 단순히 두 명의 선수들이 오버워크된 상태지만, 만약 이 상태가 조금 더 길게 이어진다면 전술에 맞춰 움직여주고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서서히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할 터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자신들을 이렇게 부를 게 분명했다.

바보라고.

작은 이득을 위해 한 경기를 모두 포기한, 세상에 다시 없을 바보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바보가 아니거든.”

짝짝짝!

필드 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친 과르디올라 감독은 곧장 그들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비부터 시작해서 공격라인까지, 선수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사항들을 전달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시 벤치에 앉았고, 슬쩍 고개를 돌려 뮌헨의 벤치를 살폈다.

“하인케스 감독께선 전술론에 꼭 필요한 세 가지를 항상 언급하곤 했죠. 90분이란 시간동안 유지될 수 없으면 전술이 될 수 없다는, 자신의 전술론을 지켜줄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매번 그와 달랐죠.”

사악, 말을 끝내며 시선을 회수한 과르디올라 감독.

그는 떠오르는 미소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자신의 무릎 위에 놓여 있는 전술판 위의 말들을 하나하나 움직인 뒤 말했다.

“그 증명이 오늘 시작될 겁니다. 뮌헨에서 태어난 팀이 아닌, 맨체스터에서 뮌헨으로 데리고 온 이 팀으로 말입니다.”

< 165. 세 가지 조건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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