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딱 한 명 >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남성, 세련된 옷차림과 세월이 적절하게 녹아든 미중년인 독일 대표팀의 뢰브 감독은 필드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확인하곤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토하고 말았다.
지금 그의 눈앞에선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플레이들이 연달아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눈꺼풀을 깜빡이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부릅 뜬 눈으로 경기장을 내려보던 뢰브 감독은 숨까지 참고서 이어지는 맨체스터 시티의 플레이를 지켜보았고, 길게 허공을 날았던 공이 성공적으로 스털링의 발 아래 떨어지자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저 공이 어떻게 스털링한테 이어져?”
분명 방금까지 공세를 취하고 있던 팀은 뮌헨이었거늘.
어째서 맨체스터 시티의 역습으로 장면이 이어진단 말인가?
허나 공은 이어졌고, 맨시티의 공격도 계속 됐다.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스털링은 그 즉시 속도를 붙여 중앙을 파고 들기 시작했고, 곧 그의 앞으로 알라바가 등장했다.
알라바는 최대한 침착하게, 낮은 자세로 스털링의 앞을 가로 막아 섰으나, 그의 머릿속은 뢰브 감독의 그것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대체 뭐야? 어떻게 여기까지 공이 온거지?’
분명 공격을 진행하던 것은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공을 빼앗겼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날아온 공은 스털링에게 정확하게 이어졌으니.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대로 치명적인 역습을 허용할뻔 했다는 사실에 알라바는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미간을 잔뜩 찌푸렸던 것이었으나, 그런 그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과 함께 몸을 움직이는 상체 페인팅을 시도한 후 드리블의 진행 방향을 꺾은 스털링이 중앙을 파고 들기 위해 쉼 없이 열려있는 공간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스털링의 의도를 바로 읽은 알라바는 얇게 뜬 눈으로 스털링의 발끝을 노려보며 입술을 비죽였다.
‘그래. 중앙을 뚫고 싶겠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수비를 하느라 내려간 선수들이 많아서 너와 함께 연계를 맞춰줄 선수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국 지금 이 순간 너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드리블뿐이다.
그렇게 상황 분석을 끝마치고 스털링의 움직임을 기다리던 알라바.
그런 알라바의 눈동자는···.
“···?!”
또 한 번 떠오른 강렬한 물음표로 물이 들었다.
자신을 앞에 두고 있던 스털링은 드리블을 선택하지 않았다.
투웅!
짧고 빠르게 이어지는 땅볼 패스.
최전방이 아닌, 자신 보다 약간 아래의 3선으로 이어지는 패스를 연결한 뒤 공간을 찾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스털링의 패스를 받은 선수는···.
“아구에로! 아구에로 선수가 내려와 스털링 선수의 패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는 맨시티의 최전방 공격수, 아구에로.
왜 저곳에 그가 있는지 사람들은 의아해했으나, 자연스럽게 아구에로와 월패스를 주고 받은 스털링의 돌파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다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막아! 막아야 돼!”
“태클! 파울이라도 해서 끊어! 어떻게든 끊으라고!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월패스 이후 공을 쫓아 달리기 시작한 스털링은 벌써 가속을 받은 상황.
그런 스털링의 뒤를 쫓고 있는 뮌헨의 센터백인 보아탱은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잔뜩 구겼다.
완벽하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정확히 3초.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맨체스터 시티의 역습에 보아탱은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것이고, 그런 탓에 스털링의 앞이 아닌 옆을 쫓아 따라 들어가는 수비 형태를 이루면서 계속해서 그에게 침투할 공간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패널티 박스 안까지 들어선 스털링을 따라 이동하던 보아탱은 마침내 스털링의 앞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스텝을 정리했는데, 공은 그 상황에서 더 이상 스털링의 발 아래 위치해 있지 않았다.
뻐엉!
공이 멈추기 직전 방향을 바꾼 스털링은 각도가 열리기 무섭게 그 즉시 반대편 공간을 노리는 낮은 크로스를 올려보낸 것이다.
제대로 감긴 공은 수비수들의 머리와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을 장소를 날며 빠르게 이동했고···.
파앙!
수비수들보다 한 박자 느리게 침투했으나 정확히 공이 노리는 위치에 서있던 사네가 높이 떠올라 이마 한가운데를 확실하게 맞추는 헤딩슛으로 플레이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사네의 이마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공을 향해 이동했다.
빠르게 날아온 크로스의 속도를 그대로 살려, 방향만 정확하게 꺾어 골대 안으로 향하기 시작한 공으로 말이다.
관중들과, 선수들, 그리고 감독들의 눈동자에 걸린 축구공은···.
철썩!
“우와아아!”
그대로 골망 안쪽에 걸리면서 경기의 균형을 깨뜨렸다.
1대0.
마침내 맨체스터 시티가 한 점을 만회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득점에 성공한 사네는 전광판에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펼친 채로 골라인을 따라 달렸고, 그런 사네의 뒤를 쫓으면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기쁨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런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뢰브 감독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무식한 방법이군.”
“무식하다뇨, 무엇이 말입니까?”
그런 뢰브의 혼잣말을 곁에서 주워 듣게 된 한 남성이 되물었고, 뢰브는 슬쩍 곁눈질로 남성의 얼굴을 확인한 후 콧등을 긁적였다.
“빌스의 기자님이 왜 이곳에 계십니까? 미디어 존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큐리티 체크인에 늦는 바람에 이쪽으로 쫓겨나고 말았지 뭡니까. 하지만 그 덕에 뢰브 감독님 옆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저로선 이것도 나쁘지 않지요.”
“그래도 안 잘립니까? 철밥통이시네요.”
“여기서 뢰브 감독님의 인터뷰라도 따낸다면 어떻게든 목은 보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
헤헤,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려 보이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기자와 시선을 마주친 뢰브 감독은 쩝소리를 내며 입술을 핥았다.
협회를 긍정적으로 지켜봐주는 빌스에서 써준 기사들 덕을 본 적이 몇 번 있었으니.
‘대화를 나누는 정도는 뭐···.’
“하지만 민감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알아서 잘라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뢰브의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인 기자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른 후 앞주머니에 끼워 놓았고, 뢰브는 시선을 경기장 위로 옮기면서 말을 시작했다.
“1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시죠?”
“전방 압박을 토대로 맨시티의 후방을 부수는데 성공하면서 뮌헨은 90분 내내 경기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조율할 수 있었죠. 저도 따로 기사로 작성해 정리한 경기인지라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장점이 약점이 되자 맨시티는 그야말로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죠. 홈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무기력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도 일정 부분은 1차전과 비슷하게 상황이 흘러갔습니다.”
“실점을 하기 전까지···, 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되묻는 기자의 말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뢰브 감독은 본격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무식한 방법’을 시도했는 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분명 맨시티는 모든 부분에서 바이에른에게 압도되고 있었어요. 점유율, 패스, 볼 경합, 그리고 찬스 메이킹까지. 수비와 공격, 모든 부분에서 오늘 맨체스터 시티는 기회를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죠. ‘날개를 펼치기 전까진’ 말입니다.”
“날개를 펼쳐요?”
“경기장을 넓게 쓰는 팀들. 특히 과르디올라 감독처럼 ‘포지셔닝’을 중요시하는 팀들은 기본 전술에 어떤 식으로 날개를 활용할지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공격을 할 때 펼치고, 수비를 할 때 접는다’가 바로 그것이죠.”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공을 막아야 할 땐 뭉쳐야 하고, 공격을 시작할 땐 넓게 퍼져야 공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용의하니까 말예요.”
“그렇죠. 맞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오늘 맨시티는 어땠을까요?”
“···!”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닌 오히려 되묻는 뢰브 감독.
그런 뢰브 감독의 물음에 기자는 잠시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오늘 맨시티의 양 날개를 맡은 선수는 사네와 스털링, 둘이었고, 그 둘은···.
“···수비를 할 때 오히려 거리를 넓게 벌렸고, 역습이 시작되는 순간 그걸 이득으로 삼았죠. 아니, 뭐죠? 이게 말이 되나요?”
“단순하게 기본적인 전술로만 따진다면 전 그 질문에 대해 당연히 고개를 저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맨시티가 준비한 전술이라면···, 가능하다는 걸 직접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 하지만 어떻게···?”
“그 부분이 진짜 무식한 부분이죠.”
큭큭, 당황하고 있는 기자를 앞에 두고서 짧게 웃어보인 뢰브 감독이 양손의 검지를 하나씩 펼치며 말했다.
“4백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양쪽 풀백들의 오버래핑과 언더래핑은 다른 팀들이 따라할 수 없는 뮌헨만이 가지고 있는 공격의 강점입니다. 이 측면 선수들이 가장 강력하게 활동할 때가 기자님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을 빼앗고 역습을 시작하는 순간···,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풀백들이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또 언제일까요?”
“역습을 진행하면서 자리가 비었을 때···, 아!”
뢰브 감독의 질문에 대답을 하던 기자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질답을 주고 받는 사이, 뢰브 감독이 어떤 말을 의도하고 있는 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르게 보자면 수비 해야 할 상황에서 양쪽 선수들의개입을 포기한다는 의미인데···.”
“그걸 과르디올라 감독이 고민하지 않았을 리가 없죠. 그래서 두 선수에겐 ‘3초 룰’이 적용된 걸겁니다.”
“3초 룰이요?”
“공을 빼앗긴 후 3초간 양 선수는 침투하기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3초가 지난다면 수비를 하기 위해 돌아올 것. 그리고 그 3초동안 대신 ‘1차 수비벽’이 되기 위해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선수가 바로 최전방의 아구에로.”
“그, 그래서···!”
“그래서 아구에로가 스털링과 3선에서 월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었죠.”
“세상에···.”
뢰브 감독의 해설을 들으면서 기자는 얼이 빠졌다.
이게 가능한가, 라는 의문보다···.
“이, 이런 무식한 방법을 대체 누가 생각해낸 겁니까?!”
이런 방법 자체를 떠올렸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라 소리친 것이다.
그런 기자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 뢰브 감독은 앉은 자세를 고치면서 턱을 괸 후 중얼거렸다.
“뭐, 계획하는 것 정도야 누구라도 가능했겠죠. 물론 전제 조건들이 조금 붙겠지만 말입니다. 양 날개에 3초룰을 적용시키는 동안 공을 빼앗을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선수라던가, 그에 준하는 ‘트랩 설계’가 가능한 선수, 혹은···.”
뢰브 감독이 잠시간 말을 끊고 뜸을 들이자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기자의 뜨겁게 쏘아지는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경기장 아래를 지켜보던 뢰브 감독은 씨익 웃으며 끊었던 말을 끝맺었다.
“경기장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는 선수···, 라면 충분히 계획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제 머릿속으론 이 모든 조건들에 부합하는 선수가 딱 한 명 떠오르는 군요.”
“하, 한 명이라면···?”
“맨체스터 시티의 최재혁. 오늘 맨시티의 전술은 저 선수가 없다면 처음부터 실행될 수가 없는 전술이었거든요.”
“!”
“큭큭, 정말 재밌는 사람들끼리 만난 것 같습니다.”
짧게 웃으며 고개를 작게 저었던 뢰브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경기장 위, 선수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재혁과 그런 재혁을 향해 박수를 쳐주고 있는 과르디올라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뢰브 감독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사람, 하인케스 감독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진심어린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미친놈들. 미친놈들끼리 만나서 팀을 이뤘어.”
< 164. 딱 한 명 > 끝
ⓒ 권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