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3화 (163/225)
  • < 163. 말도 안되는 계획 >

    워어어, 워어어···!

    높은 함성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알리안츠 아레나.

    안내 방송을 통해 뮌헨 선수의 등번호와 함께 그들의 이름이 흘러 나올 때면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그를 응원하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터져나오고 있었고, 이제 그 뒤를 이어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등장했을 때, 맨시티의 선수들은 주변을 살피며 쓴웃음을 흘렸다.

    선발로 출장한 11명의 바이에른 선수들 이후, 자신들의 이름이 나올 차례가 되자 전과 다르게 관중석에선 야유 소리가 사정없이 터져나와 그들의 고막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어깨를 으쓱인 사네는 옆에 서있는 스털링을 향해 장난을 섞어 말했다.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군. 우리가 더 잘생겼는데 말야.”

    “원래 잘생기면 시기와 질투를 받는 거지. 난 익숙해.”

    “놀고들 있군.”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케빈이 낮은 목소리로 쯧쯧, 혀를 찼고, 케빈의 혼잣말을 주워들은 재혁은 큭큭 웃었다.

    “뭐 어때요? 긴장 풀리고 좋죠.”

    “다른 선수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저러는 건 이해해도, 저 둘은 제외야. 쟤들은 오히려 긴장을 좀 해야 한다고.”

    “그런가요?”

    “당장 어제 연습할 때만 봐도···.”

    재혁의 되물음에 케빈의 한탄 섞인 투정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경기 전날엔 컨디션 조절을 위해 체력이나 기술보단 전술적인 훈련에 비중이 크게 쏠린다. 그리고 몸보단 머리를 쓰는 훈련인 만큼, 다른 무엇보다 크게 요구되는 것은 집중력이었는데···.

    “그걸 집중을 못해서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만들고 말야. 대체 뭐가 문제야?”

    “그래도 훈련은 좋게 마무리 됐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죠.”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긴 한데, 후우. 모르겠다, 모르겠어.”

    짧게 숨을 토해낸 케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찾았고, 그곳에 적혀 있는 여러 숫자들 중 꼭 한 가지를 확인한 뒤 입술을 구겼다.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1차전의 점수.

    2대0으로 끝이난 그 경기의 점수 또한 전광판에 떠올라 있었기에 케빈은 자연히 새어 나오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벅벅 긁었고, 그런 케빈을 곁눈으로 슬쩍 살핀 재혁이 넌지시 말문을 뗐다.

    “이미 지나간 경기는 잊으세요. 걱정해봐야 돌아오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아요.”

    “그걸 알곤 있지만, 4강에 진출하려면 무실점으로 3골을 넣어야 한다고. 최소 2골을 넣어야 연장전이고, 그것도 못 한다면···.”

    “그것도 못 한다면 떨어지는 거죠. 아쉽겠지만.”

    “떨어진다는 말을 뭐 그렇게 쉽게 하냐? 여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올라왔는데.”

    “원래 그런 거예요. 말이 가장 쉬운 법이잖아요?”

    발끈한 케빈에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 재혁.

    재혁은 이후 슬쩍 고개를 돌려 케빈과 시선을 맞춘 후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사네와 스털링을 믿어요. 전술 훈련에선 집중력이 모자라 보였겠지만, 그만한 결과를 쏟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을 전 봤거든요. 아마 자신들이 누구보다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노트를 외웠던 것일 걸요?”

    “···!”

    “그러니까 지금은 좀 편하게 두세요. 아마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 누구보다 열심히 악역을 자처할 선수들이니까요.”

    쿡쿡, 축구화로 잔디를 건드리며 말을 끝마친 재혁은 생긋 미소를 떠올렸고, 케빈은 그런 재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재혁이 인정한 것이라면 틀림 없을테니까.

    오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재혁이라면···.

    ‘믿을만 하지. 아니, 믿을 수밖에 없지.’

    불끈, 생각을 정리하며 주먹을 쥔 케빈.

    그는 이후 얼굴에 떠올라 있던 감정들을 하나둘 지웠고, 곧 재혁이 그런 것처럼 둥그런 미소를 떠올렸다.

    지금 아무리 고민하고, 걱정해봐야 결국 모든 것은 90분 후, 경기가 끝이 난 후에 결정이 날테니까.

    그러니까 재혁이 말했던 것처럼···.

    ‘일단은 우리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다.’

    오늘 이곳에 모여있는 관중들의 99%가 싫어할 역할.

    승자가 되는 역할.

    그에 관한 마지막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케빈은 눈을 감고서 천천히 호흡을 골랐고, 마침내 울린 주심의 휘슬 소리에 맞춰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준결승에 오르게 될 최후의 4팀, 그 한 자리에 들기 위한 경기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

    ‘우리가 유리하다, 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경기가 시작되고 15분 정도가 흐른 시간.

    벤치에 앉아 턱을 괴고 흐름을 살펴보던 하인케스 감독은 아직까지 균형이 지켜지고 있는 점수판을 한차례 슬쩍 살핀 후 입술을 깨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뭐지. 이 불안감은···.”

    “와아아아아!”

    그런 하인케스 감독의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측면에서 돌파를 시도하려던 사네의 드리블 시도가 키미히의 태클에 걸리면서 그대로 무산되었고, 곧장 뮌헨의 역습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을 달고서 드리블을 시작한 키미히는 재빨리 공을 자신의 앞에 위치해 있는 뮐러에게 연결해주었고, 중앙선 근처에서 공을 받게 된 뮐러는 패스해 줄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중앙에 홀로 위치해 있는 비달에게 패스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빌드업을 지켜보면서도 하인케스 감독은···.

    ‘이상해.’

    찌푸린 인상을 펴질 못했다.

    대체 뭘까?

    뭐가 이렇게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남기는 불안감에 하인케스 감독은 표정을 쉬이 풀 수 없었고, 레반도프스키의 슈팅이 골대 위로 떠오르는 것에 진한 아쉬움을 흘렸다.

    지금 상황에서 한 점을 더 추가할 수 있었다면, 그것보다 더 안심이 될 상황이 또 없었을 텐데.

    그런 의미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에데르손의 골킥으로 다시 경기가 재개 되려는 상황을 지켜보던 하인케스 감독의 눈동자에 무언가가 잡혔다.

    다른 게 아닌, 이번에도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기이한 행동이 그의 시선을 끌어당긴 것이다.

    다만 그 행동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하인케스 감독은 골이 팬 이마의 주름을 긁적이며 미간을 모았고, 에데르손의 골킥이 빠르게 뻗어나가는 것을 확인하며 공을 쫓아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공이 떨어지려 하고 있는 위치를 확인하면서 하인케스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압박을 넣을 타이밍이다! 하메스, 케빈의 뒤에 바짝 붙어!”

    맨체스터 시티의 후방에서 시작되는 공은 어떤 이유에서도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된다.

    그게 골키퍼든, 센터백이든, 혹은 측면에 위치한 선수가 보낸 공이든 말이다.

    왜냐면 맨시티의 후방에는 다른 팀들과 다르게 빌드업을 시도할 수 있는 플레이 메이커들이 즐비했으니까. 하물며 골키퍼인 에데르손의 발밑에서 빌드업이 시작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본 전제가 하인케스의 뮌헨이 맨체스터 원정에서 상대를 2대0으로 꺾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였다.

    상대가 후방에서부터 플레이를 시작하길 원한다면, 그 후방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상대를 막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으니까.

    혹여 100% 우리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한들, 어느 정도의 점유율만 뺏어와도 성공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공격’임과 동시에 ‘최고의 방어’이기도 했다.

    ‘공이 우리 골대에서 70, 80미터씩 떨어진 곳에서 계속 구른다면 우리가 실점할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테니. 이것만큼 확실한 수비법이 없지.’

    과연 그의 의도처럼 케빈은 하메스의 강한 압박 때문에 쉬이 등을 돌 수 없었고, 결국 공은 다시 한 번 후방을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인케스 감독은 이번엔 리베리와 코망에게 소리쳤다.

    “공이 빠졌다, 이제 돌아와!”

    케빈에게 이어졌던 공이 페르난지뉴를 지나 콤파니에게 닿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전방 라인들을 중앙으로 불러내린 하인케스 감독.

    그는 모든 선수들이 그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고 있는 것에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후방에서 빌드업을 진행할 수 있는 플레이 메이커가 많다는 강점은 지금처럼 결국 ‘강제로’ 공이 뒤에 남을 수밖에 없다면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하기 마련이었으니.

    하인케스 감독은 1차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맨체스터 시티가 자연히 무너지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의도는···.

    파앙!

    “기회다···!”

    콤파니의 패스가 비달에게 잘리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성공적으로 흘러갔다.

    중앙선 근처에서 이루어진 턴오버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얼른 수세로 돌아섰고, 뮌헨의 선수들은 또 한 번 선이 굵은 침투를 시도하며 역습에 나섰다.

    게다가 공을 끊어낸 선수가 다른 이들도 아닌 비달이었으니.

    하인케스 감독은 즉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다른 선수를 거치지 말고 네가 직접 만들어!”

    뻐엉!

    그런 하인케스 감독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비달은 중앙 침투를 시작한 레반도프스키를 노린 패스를 재빨리 찍어 차 보냈고, 감독들과 관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허공에 떠오른 공을 쫓아 이동했다.

    제법 높게 떠올라 공간을 노리고 날아간 공은 아마 이어지기만 한다면 그 어떤 때보다 위협적인 상황이 연출될 게 확실해 보였던 것이다.

    ···이어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칫, 패스가 너무 높았나.”

    공을 받으면 골대로 향할 방향을 쫓아 이동하려던 레반도프스키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떻게든 패스 길목만 끊으려 드는 오타멘디에 비해 운신할 폭이 좁았고, 공은 아깝게도 레반도프스키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오타멘디의 머리에 걸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하인케스 감독은 아쉬움에 혀를 찼고, 계속 될 경기를 지켜보며 눈동자를 빛냈다.

    때마침 공이 떨어질 위치에 서있는 선수들을 보니 어쩌면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도 있게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코망과 뮐러, 두 선수 사이에 떨어지는 공을 보며 하인케스 감독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다가···.

    “왜 저녀석까지···!”

    그 사이에 나타난 한 선수를 발견하곤 인상을 구겼다.

    최재혁.

    언제 달려왔는지 재혁은 둘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 고개를 올린 채로 플레이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떨어지는 공을 향해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재혁의 가슴에 공이 닿는 것을 확인하며 잇소리를 흘렸던 하인케스 감독은···.

    터엉!

    “그렇지!”

    가슴 이후 재혁의 발등 위로 떨어지려는 공을 뮐러가 성공적으로 걷어내는 것을 확인하곤 주먹을 휘두르며 기뻐했다.

    리바운드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공을 잡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끊어냈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보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후, 또 한 번 그의 시선에 걸린 ‘기묘한’ 움직임에 하인케스 감독은 눈썹을 찌푸렸다.

    맨체스터 시티의 양 측면을 담당하고 있는 사네와 스털링.

    둘의 포지셔닝은 수비 상황에 있는 선수가 취하고 있기엔 무언가 이상했던 것이다.

    ‘대체 뭐지? 대체 뭘 준비한 거야?’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해결이 되지 않아 주름만 하나둘 쌓아 올리게 된 하인케스 감독.

    그는 이내 고개를 털어낸 후,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이해가 되질 않는 행동이라면, 굳이 이해하려고 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축구로 상대를 부수면 되는 거니까.’

    그의 생각처럼, 현재 확실한 것은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것. 그리고 경기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상대의 알 수 없는 의도에 빨려들어갈 것이 아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을 끝낸 하인케스 감독은 드로잉으로 다시 시작된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했다.

    ‘맨체스터 시티가 오늘 다급하긴 한가 보군! 가장 안정감이 있다고 평가되는 후방에서의 패스가 이어지는 족족 끊어지고 있으니!’

    맨시티의 장점이라고 평가되는 후방 빌드업.

    오늘은 어째선지 그 후방에서 이어지는 패스들이 대부분 커팅을 당하면서 오히려 위험한 상황만 초래하고 있던 것이다.

    이에 하인케스 감독은 기쁜 얼굴로 또 한 번 찾아온 공격 기회에 짙은 미소를 뗬다가···, 그대로 표정이 굳었다.

    분명 보이는 상황으론 자신들이 공격을 하는 모습이거늘.

    어째서···.

    “왜···, 저 둘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을 하려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거야?”

    사네와 스털링.

    아까부터 거슬리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던 두 선수는 이번에도 그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질 않는 행동을 보여주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상황은 그 직후 이어졌다.

    파앙!

    “?!”

    무언가 표면을 때리는 짧은 소리.

    그 짧은 소리를 쫓아 잠깐 기울어졌던 고개를 돌렸던 하인케스 감독은 믿기 힘든 장면에 눈앞에 펼쳐지자 입술을 떨었다.

    분명 중원에서 자신들 소유에 있던 공.

    그 공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고 있던 것이다.

    그가 예상했던 방향과 정반대인, 자신들의 골대가 있는 쪽으로 말이다.

    “이, 이게 뭐야?!”

    당황한 하인케스 감독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고, 그런 하인케스의 외침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난 과르디올라 감독이 마침내 참고 있던 미소를 빙그레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후방 빌드업이 원하는 대로 완성될 수 없고, 상대의 압박에 제대로 양 날개를 펼칠 타이밍을 찾을 수 없다면···.”

    “날개를 접어야 할 때 미리 펴놓는다고? 무, 무슨 이런 무식한 계획이···?! 누구야,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계획한게?”

    < 163. 말도 안되는 계획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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