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1화 (161/225)
  • < 161. 읽히다 >

    “그거야 저도 모르죠.”

    하인케스의 비명과 같았던 외마디에 코치는 당황스러웠으나, 솔직한 감정으로 답했다.

    과르디올라 감독과 맨체스터 시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독심술이라도 펼치지 않는 이상 알 방도가 없지 않겠는가? 물론 독심술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 간단한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축약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코치의 대답에 하인케스는 끄응, 앓는 소리를 흘리면서 벅벅 이마를 긁었다.

    “이해가 되질 않아. 어떻게 오늘과 같은 경기에서 최재혁을 뺄 수 있는 거지? 맨시티에게 있어서 그 어린 친구는 행운의 부적과 같은 게 아니었던가?”

    “과한 행운이 이따금 불행을 안겨주기도 하잖습니까? 그걸 본능적으로 읽은 게 아닐까요?”

    “아니. 아닐거야. 내가 아는 과르디올라 감독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 물론 행운도 믿지 않지. 그렇다면···.”

    스읍, 입술을 매만지며 침을 삼킨 하인케스는 입꼬리를 살며시 비틀더니 중얼거렸다.

    “이건 읽혔군. 여우같으니라고.”

    최재혁이 호주에 있을 적, 그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던 구단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셋 정도. 하지만 그 셋 중엔 바이에른 뮌헨이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구단들이 그의 존재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형적인 선수라고 평가하겠으나, 하인케스는 아니었다.

    재혁에 대한 그의 평가는 어리지만 착실하게 ‘준비된’ 선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고, 구단이 그를 데려오지 않은 것에 크게 실망했다.

    아예 몰랐다면 이런 감정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지 않았는가?

    뮌헨의 철저한 선수 체계는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만들었고, 결국 영국으로 향하는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

    만약 당시 그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면 그 주급 체계를 흔들어서라도 꼭 데려왔을 테니까.

    재혁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었고, 지금 그 가치를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재 그는 오늘 상대해야 할 맨체스터 시티에 있었고, 지금 자신은 그런 맨체스터 시티를 무너뜨려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하인케스는 자신이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지지않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그래서 재혁과의 매치업을 기대했던 것인데···.

    ‘과르디올라. 역시 쉽게 볼 상대가 아니야. 하지만 이 또한 자네의 ‘실수’이기도 하지. 오늘 자네는 그나마 남아 있던 0.1%의 가능성을 0%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요, 감독님? 예정대로 진행할까요? 아니면···.”

    생각에 잠겨있는 하인케스를 향해 코치가 조심스레 물었고, 하인케스는 그런 코치를 향해 고개를 저어보인 후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굳이 바꿀 이유는 없지. 저쪽에선 선수가 한 명 바뀌었을 뿐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선수들 소집하겠습니다.”

    하인케스 감독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여보인 코치는 경기장 위에서 몸을 풀고 있을 선수들을 락커룸으로 데려오기 위해 자리를 떠났고, 문을 닫고 멀어지는 코치의 실루엣을 살펴보던 하인케스 감독은 천천히 시선을 내린 뒤 턱을 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 한 번 지켜보는 것도 제법 재밌겠지?”

    클클, 짧게 웃으며 생각을 정리한 하인케스 감독은 코치가 그런 것처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선수들이 들어올 락커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건너편에서 멀어지는 한 선수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읊조렸다.

    “아쉽지만 기회는 앞으로도 있으니까. 그럼 그때 필드에서 보자고, 최재혁.”

    ***

    와아아아···, 와아아아···.

    경기가 시작되기 15분 전.

    전력 분석을 위해 따로 준비된 공간에 도착한 재혁은 유리벽 너머에서 전해지는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면서 침을 삼켰다.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과 노래 소리에 유리벽이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장관은 어디서 쉬이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이런 모습은 어디서 본 적이 없었기에 재혁은 연신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 보았고, 그런 재혁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로렌스 분석관은 미소를 띤 얼굴로 물었다.

    “엄청나지? 나도 매번 보는 거지만 매번 감탄해.”

    “네. 이런 거 처음 봤어요. 항상 이래요?”

    “요즘 특히 더 강렬해졌지. 이유가 뭘 거 같아?”

    “글쎄요.”

    갑작스런 질문에 재혁의 고개가 기울어졌고, 그런 재혁을 마주보면서 로렌스는 검지를 뻗어 재혁의 가슴을 쿡 찌른 후 말했다.

    “당연히 너, 그리고 경기를 뛰어주는 선수들 덕분이지.”

    “!”

    “최근 성적도 좋고, 원하던 리그 우승도 이뤄냈고, 그리고 참가 대회에선 좋은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경기장을 찾아주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응원 열기도 함께 뜨거워지는게 당연하지 않겠어?”

    “그게 이 정도였군요. 경기를 뛸 땐 전혀 몰랐어요.”

    “그럴 수 있지. 아무래도 시합에 집중하다보면 주변 소리가 잘 안들리곤 하잖아? 하지만 잊지는 마. 네 뒤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열정만큼은 말이지.”

    큭큭,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둘은 웃었고, 로렌스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마무리 작업을 해야겠다며 자리를 옮기다가 재혁을 불렀다.

    로렌스의 부름에 따라 이동하던 재혁은 그가 미리 준비해둔 장비들을 눈여겨 보았고, 로렌스는 재혁을 향해 기기들을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경기장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가 찍고 있는 장면들은 이쪽에 있는 화면으로 넘어오게 되어 있어. 이 스크린은 전체적인 경기장의 모습을, 그 옆에 있는 이건 한 쪽 코트, 그리고 이쪽이 그 반대쪽 코트를 녹화하고 있는 거야. 여기까진 이해가 쉽지?”

    “네. 어렵지 않은데요?”

    “그냥 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그렇겠지. 지금부터가 진짜야.”

    달칵, 로렌스가 테이블에 설치되어 있는 스위치를 건드리자 지금까지 어두웠던 화면에 불이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빛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던 재혁은 복잡한 테이블들이 수십 개가 떠오르는 것을 확인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재혁이 고개를 돌리면서 이게 뭐냐고 묻기 전에 로렌스가 먼저 설명을 시작했다.

    “정밀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이야. 경기장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들은 초 단위로 기록하고, 또 통계로 정리해서 보여주지. 기본적인 패스 방향, 드리블 방향, 전개, 그리고 활동 히트맵까지. 말 그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기록된다고 보면 돼. 하지만 그 말인즉···.”

    “그 모든 것을 보고 우리는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겠죠? 말 그대로 보기 좋게 정리를 해주는 것이지, 그에 관한 분석은 따로 진행해야 하니까요.”

    “역시 재혁이 넌 선수보다 이쪽이 더 맞을 것 같다니까. 어때? 나중에 따로 한 번 일해보는게?”

    “그건 사양할게요. 축구가 좋아서 하는 일인 것 같지만, 역시 전 필드 위에서 뛰는 게 더 좋거든요. 그리고 제가 오늘 이곳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다음 경기를···, 0%에 기울어져 있는 승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니까요.”

    “그래. 그랬지.”

    재혁의 확고한 답에 약간은 아쉬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대하는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던 로렌스는 시계를 확인했고, 멈췄던 손을 움직여 남은 준비를 끝마쳤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분침이 벌써 45분을 가리키기 직전에 와있던 것이다.

    그렇게 로렌스와 재혁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분침이 45분에 도착했고, 주심을 선두로 통로를 빠져나온 양 팀 선수들은 관중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필드 위로 올랐다.

    그 모습을 분석실에 앉아 지켜보아야 했던 재혁은 복잡한 심경으로 필드를 내려보다 황급히 고개를 털었다.

    비록 오늘은 이곳에 앉아 있지만···.

    ‘다음 경기는 아니다. 그땐 필드에 올라와 뮌헨을 상대할 거야. 그리고···.’

    “···반드시 이긴다.”

    와아아아···.

    재혁의 나긋한 혼잣말은 그렇게 관중들의 환호 속에 묻혔고, 경기는 뮌헨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

    “후욱, 후욱···!”

    잔뜩 낮춘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페르난지뉴의 동공이 떨렸다.

    거친 숨이 입술 사이로 퍼져나가는 것이 코끝으로 전해졌고, 바짝 마른 입안은 소량의 수분이라도 공급해주길 원하며 쩍쩍 갈라졌다.

    동시에 70분을 넘도록 쉬지 않고 달린 다리는 한계를 맞은 것처럼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 급격히 쌓이기 시작한 피로도 또한 정신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러는 순간에도···, 뮌헨의 공격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페르난지뉴는 그의 눈앞에 공을 가지고 서있던 선수가 페이스를 올리자 황급히 소리치며 몸을 움직였다.

    “돌아와! 공간 채워!”

    하지만 그런 페르난지뉴의 외침은 공허하게 허공에서 부서졌다.

    프랭크 리베리.

    왼쪽 측면 공격수로 오늘 출장한 리베리의 반응은 오늘 경기장에 올라와 있는 어느 누구보다 빨랐던 것이다.

    순식간에 눈앞에 서있던 페르난지뉴를 벗겨낸 리베리는 쉬지 않고 달렸다.

    공은 마치 접착제로 붙인 듯, 터치라인을 따라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그런 리베리를 향해 이번엔 카일 워커가 달려들었다.

    워커는 자신이 등장했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는 리베리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망할, 오늘만 벌써 몇 번째야? 내가 있는 이곳은 구멍이 아니라고···!’

    오늘 리베리가 시도한 드리블은 총 5회.

    그 중 4번을 성공시켰고, 그 대상은 지금 그를 가로 막으려 하는 자신이었기에 워커는 눈에 불을 켜고 공과 함께 달려오고 있는 리베리를 노려보았다.

    이번 만큼은 반드시 막는다.

    그런 의지가 또렷하게 깃든 얼굴과 행동으로 워커는 온 몸의 신경을 바짝 끌어올렸으나, 리베리는 오히려 그런 워커의 행동이 가소롭다며 옅은 미소를 흘린 뒤···.

    투웅!

    “···!”

    가뿐한 터치를 선보이며 워커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공의 속도를 죽이지 않고 발등으로 터치하면서 워커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는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

    그 기가 막힌 볼 컨트롤에 워커는 이번에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가뿐하게 두 명의 맨시티 선수들을 바보로 만드는데 성공한 리베리였으나, 그는 이런 상황에 만족한 얼굴이 아니었다.

    아직 득점까지 이어진 게 아니었으니까.

    그가 원하는 것은 확실한 결과물이었지, 보기 좋은 과정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리베리는 여전히 공을 가지고 돌진하고 있었고,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다가.

    토옹.

    “···아!”

    마지막의 마지막에 마침내 공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패스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런 리베리의 패스가 흘러가는 장소를 확인하던 콤파니는 짧은 탄식을 흘렸다.

    자신을 드리블 코스로 이동하길 유도한 후 역동작을 강제한 리베리의 똑똑한 플레이에 완벽하게 당했다, 라는 의미가 담긴 탄식이었다.

    그렇게 공은 사뿐히 잔디 위를 굴렀고, 뮌헨의 최전방 공격수인 레반도프스키의 발까지 이어졌다.

    완벽한 침투 패스와 그에 어울리는 완벽한 오프 더 볼 침투 플레이.

    이런 플레이가 마지막을 장식할 장면은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 그려졌으리라.

    레반도프스키는 공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인사이드로 감아찼고, 한 박자 빠른 타이밍에 날기 시작한 슈팅을 바라보며 에데르손은 기합을 내지르며 손을 뻗었다···, 만 안타깝게도 공은 그의 장갑에 닿지 않고 그대로 골망 안으로 감겨 들어갔다.

    철렁, 필드 위의 선수며,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는지, 아니면 골망이 흔들리는 소리였는지.

    모두의 머릿속이 혼잡했지만, 하나 만큼은 확실했다.

    “이것으로 2대0···! 맨체스터 시티, 안방에서 뮌헨을 상대로 벗어나기 힘든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이 실점은 치명적이에요. 무려 원정에서 내준 두 번째 실점이거든요?”

    “맞습니다. 단순히 오늘 경기 뿐만이 아니라, 이어질 2차전과 다음 라운드 진출에 대한 전망이 너무 어두워졌어요. 역대 챔피언스 진출 팀들 중, 1차전에서 2점 이상을 내어주고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한 팀은 정말 극소수거든요?”

    “게다가 상대가 뮌헨입니다. 이런 이득을 취하고 2차전을 가만히 내줄 팀이 아니죠?”

    탈락이란 이름의 어두운 그림자.

    그것이 맨체스터의 상공에 두텁게 쌓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모두가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당장 팀이 두 번째 실점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감독도 어두운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토해냈다.

    어떻게든 1점 차이라는 조건을 지켰어야 했는데, 이걸 놓치다니.

    4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이제 기적이라도 바래야 하는 걸까?

    선수들과 관중들의 머릿속에 모두 비슷한 생각이 떠올랐고, 중계진들 또한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선 한 점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강조하며 이어질 경기를 기다렸는데···.

    그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단 한 명.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재혁은···.

    “드디어 찾았다.”

    다른 이들과 달리 밝은 얼굴로 미소를 떠올린 후 읊조렸다.

    모두가 주변에 두텁게 쌓인 어둠이란 벽만을 바라볼 때, 그 속에 스며들어 있는 희미한 빛, 그 얇은 희망의 줄기를 재혁은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161. 읽히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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