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60화 (160/225)

< 160. 왜?! >

“글쎄요, 전 여전히 이해가 되질 않는데요. 혹시 제가 뭘 잘못 했나요?”

격식을 차린 어조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감정은 전혀 숨겨지지 않았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어지는 재혁의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응? 아, 이런. 설마 오해하고 있는 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절대로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어. 그러니 절대로 오해하지 말아.”

“하지만 저한텐 그렇게 들렸는 걸요. 명단 제외에 관리 부재라면, 나올 수 있는 답은 하나 뿐이잖아요?”

전력 외 취급.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것 외엔 다른 이유가 없으리라.

하아, 재혁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숨을 토해내며 불만을 그대로 표현했고, 그런 재혁을 바라보며 자세를 고친 과르디올라 감독 또한 속에 담아두고 있던 숨을 풀어내며 애꿎은 뺨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내가 설명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군. 미안하네. 최근 무슨 말을 해도 재혁이 너라면 바로 이해해줄 것이라는 이상한 기대감이 머릿속에 가득했거든. 전후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내 잘못이야. 흐음, 그럼 어디서 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처음부터요.”

“그래. 당연히 처음부터 해야지. 처음부터라···, 끙.”

단호하게 대꾸한 재혁과 눈을 마주친 과르디올라 감독은 주름을 잔뜩 끌어올린 이마를 긁적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마침내 생각을 정리했는지 손을 마주쳐 소리를 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엔 재혁이 혼동하지 않도록, 아주 처음부터 말이다.

먼저 과르디올라는 재혁의 앞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밀어주면서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한 번 확인해 보는게 좋을 거야.”

“이게 뭔데요?”

“바이에른 쪽에서 선발로 출장할 것이라 예상되는 선수들과 그 포메이션이지.”

“!”

“100% 확실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아마 큰 틀은 지금 우리가 예상한 대로 나올 거야. 아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저게 바이에른이 준비할 수 있는 베스트거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재혁이 너를 관중석에 앉히려는 거다.”

진지한 얼굴로 말을 끝맺이며 눈동자를 반짝인 과르디올라 감독.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재혁과 시선을 맞추었고, 곧 다음 자료를 둘 사이에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팀과 뮌헨은 많은 부분들이 비슷하면서도 또 중요 지점들은 다르다는 것을 재혁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공 쟁탈을 위해 싸움을 유도하는 지역이라던가, 빌드업의 요충지로 삼는 장소, 그리고 압박 선택에 관한 이야기시라면 굳이 따로 언급하지 않으셔도 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요. 뮌헨도 제가 한창 공부하던 팀들 중 하나니까요.”

“큭큭. 그래. 호주에서 너랑 나누었던 대화는 다시 떠올려 보아도 엄청난 순간이었어.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만한 지식과 분석력을 갖췄는지···.”

“감독님. 대화가 옆으로 빠지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응? 이런. 큼큼, 미안하군.”

재혁의 지적에 잠시간 뺨을 붉히며 목을 청소한 과르디올라는 통통, 책상에 대고 있던 검지를 튕기며 잡념을 털어냈고, 다시금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아마 가장 상대하기 껄끄러운 적수는 뮌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하인케스 감독과는 축구관은 달랐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목표 자체는 제법 비슷했거든. 그리고 실제로 보여준 경기력도 아마 뮌헨이 우승을 위한 9부 능선이 될 것 같다고 나, 그리고 로렌스는 생각하고 있어.”

“감독님과···, 로렌스요? 로렌스라면···.”

“아마 너도 얼굴 정도는 알고 있겠지. 로렌스 스튜어트. 우리 팀의 전력 분석관. 로렌스도 물론···.”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재혁이하곤 제법 말이 잘 통했거든요. 안타깝게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말예요.”

“응? 로렌스. 벌써 왔나?”

“벌써라뇨. 시계 좀 보세요. 오히려 30분이나 늦었다고요. 이만한 양을 혼자서 준비하라니. 겨우 30분만 늦은게 기적이긴 하지만 말이죠.”

재혁과 과르디올라 감독이 대화를 나누던 중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남성, 로렌스는 투덜거리며 대충 쓴 모자를 벗어 허벅지를 이용해 툭툭 털어낸 뒤 다시 머리 위에 올렸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재혁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보인 다음 말했다.

“회의실에서 짧게 만났을 때 이후 이렇게 본 건 처음인가? 로렌스 스튜어트다.”

“서로 통성명을 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일 걸요. 최재혁입니다.”

가볍게 이름과 악수를 교환한 뒤 다시 자리에 앉게 된 둘.

그렇게 이젠 세 사람이 된 자리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시 처음의 진지한 얼굴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재혁이 너는 이번 1차전에서 명단이 제외될 것이지만, 관중석엔 앉게 될 거다. 로렌스와 함께 말이지.”

“로렌스 분석관님과 함께요? 하지만 전···.”

“선수지. 그리고 선수라면 응당 필드에 있고 싶어하는 게 당연해.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선 너와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이 조금 달라서 말야.”

툭,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로렌스는 모자를 벗은 뒤 습관처럼 안을 털어낸 후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 했다.

“이대로 다가올 경기에 나서게 된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부숴질거다. 아주 철저하게, 수비부터 공격까지, 어느 곳 하나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완벽하게 하인케스 감독한테 파훼될 게 분명해.”

“···그걸 어떻게 아시죠?”

“노노, 말이 틀렸어. 그냥 아는게 아니야. 난 확신하는 거야. 단어는 확실히 정정해야지.”

“···!”

“아는 것과 확신하는 건 분명 다른 거니까. 그렇지?”

주욱, 입꼬리를 귀에 걸릴듯 높게 끌어올린 로렌스.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재혁을 향해 한 번, 그리고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한 번 미소를 보여준 후···.

“그럼 지금부턴 제가 설명을 해도 괜찮겠죠? 이대로 대화가 끝나면 저만 나쁜 놈이 될 것 같거든요.”

“물론.”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손을 펼쳐 보이며 물었고, 그런 로렌스를 향해 감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난 로렌스는 준비해온 영상 자료를 스크린에 떠올렸고,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재혁을 향해 말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보여줄 영상들은 뮌헨이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치른 시합들 중 ‘결정적인’ 장면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놓은 영상들이다. 일단 한 번 쭉 같이 보고, 그 후에 다시 대화를 시작해보도록 하지. 그럼, 재생.”

꾹, 리모콘에 달린 재생 버튼을 누른 로렌스는 다시 두 사람과 같이 자리에 앉았고, 멈췄던 화면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용히 팔짱을 낀 채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 로렌스의 옆에 자리하게 된 재혁은 여전히 모든 게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 불만스러웠으나, 일단은 조용히 그가 말한 것처럼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생되는 첫 번째 장면을 보게 된 셋은 반복적으로 토해내는 숨소리만 흘리면서 영상을 지켜보았다.

첫 장면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것은 뮌헨의 수비수, 후멜스였다.

상대 팀이 진행하는 역습을 끊어낸 후, 공을 소유한 채로 드리블을 시작한 후멜스는 지긋이 상황을 주시했다.

높은 위치에서 공을 빼앗긴 만큼, 강한 압박으로 공격권을 다시 찾아오려는 상대 선수들이 하나둘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주 여유롭게, 전혀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말이다.

그렇게 상대 선수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을 때 즈음, 후멜스가 마침내 공을 뿌렸고···.

“···!”

이어지는 플레이를 확인한 재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그런 재혁의 변화를 알아차린 로렌스는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문 뒤 자세를 고쳤고, 조용히 다음 장면을 재생시켰다.

그렇게 한 장면, 그리고 그 다음 장면···.

대략 15분 정도 이어진 영상 자료를 셋은 함께 확인했고, 로렌스는 꺼진 불을 다시 키기 위해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던 중···.

“한 번 더 보여주세요. 그래도 괜찮죠?”

재혁이 손을 들며 목소리를 낸 것에 미소로 화답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론이지. 닳는 것도 아니니까. 처음부터 볼까?”

“네. 그게 확실할 것 같아요.”

“좋아 그럼 뒤로 돌아가서···.”

그렇게 다시 시작된 영상회.

세 사람은 보았던 장면이었음에도 온 신경과 함께 집중력을 끌어올려 마지막까지 조용히 분석 영상을 지켜보았고, 모든 장면들을 꼭 한 번씩 더 보게 되자 마침내 다시 불을 켠 뒤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짧은 침묵이 고요하게 이어지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 영상을 네게 보여준 이유는···.”

”로렌스 분석관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단계였겠죠. 영상 속에서 뮌헨이 보여준 플레이들이 우리와 치를 1차전에서 벌어진다면···, 아마 ‘확신’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대로 무너질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에 대답하면서 재혁은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재혁은 지금의 ‘자신’이 자리할 맨체스터 시티는 뮌헨이라는 벽을 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오늘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뮌헨이라는 100% 완성된 팀에게 자신들은 99%든, 99.9%든, 결국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존재하는 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곳을 완벽하게 공략 당한다면···.

쯧, 불길한 생각이 들자 재혁은 혀를 차며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떨어뜨렸는데, 그런 재혁을 향해 로렌스가 말했다.

“후후. 역시 넌 머리가 좋아. 지금까지 수십 년을 분석관으로 지냈지만, 너만한 선수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재혁. 네 생각 중 반은 맞았지만, 반은 틀렸어.”

“예?”

“오늘 이 영상을 준비해 온 이유는 간단해. 현재 뮌헨의 강점을 확실히 분석해 뽑아 올리기 위해서, 그 강점이 우리의 목을 확실히 조일 것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잠시간 말을 끊고 살며시 떠올린 미소를 천천히 지운 로렌스.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진지한 얼굴로 재혁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이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너와 함께 말이지.”

“저와 함께요?”

“처음 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을 기억하고 있겠지? 필드가 아니라 관중석으로 나와 함께 갈 거라고. 넌 단순히 1차전을 쉬게 되는 게 아니야. 필드 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 이동하는 거다. 모든 걸 결정 지을 ‘2차전’을 확실히 준비하기 위해서 말이지.”

“!”

“물론 이걸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네 자유다. 구단에서 너를 데리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선수라는 역할을 위해서니까. 네가 싫다면···.”

“이걸 위해 1차전에서 제외라는 말씀은 2차전에선 무조건 뛰게 될 것이란 말씀이겠죠, 감독님?”

로렌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이던 재혁은 중간에 고개를 과르디올라 쪽으로 돌리며 물었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재혁을 빤히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네가 무언가를 찾았든, 찾지 못 했든, 2차전에선 넌 꼭 뛰게 될 거다. 원정 경기라 힘들겠지만, 처음부터 우리는 1차전이 아닌, 2차전을 목적으로 구상했던 거니까.”

“알겠습니다. 두 경기를 모두 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죠.”

“그럼 이걸로 결정됐군.”

다행이도 재혁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마침내 안도한 얼굴로 미소를 떠올렸고, 로렌스 분석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럼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겠다며 먼저 사무실을 떠났다.

그렇게 둘만 남은 자리에서 과르디올라는 다시 한 번 재혁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며 콧등을 긁적였다.

재혁을 명단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니.

모든 게 설명된 지금 이 순간도 미안한 감정이 넘실 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감독을 향해 재혁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것 또한 팀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며 말이다.

그 후 재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감독에게 좋은 밤 되라며 작별 인사를 건네며 문 손잡이에 손을 걸쳤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주어 비틀었고,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이동하던 중···.

“전 반드시 답을 찾을 거예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꼭 다음 라운드로 올라갈 겁니다. 제가 원하는 건 우승컵이지, 참가상 따위가 아니니까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웃으며 떠나기 전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그렇게 문은 짧은 소리를 내며 닫혔고,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된 과르디올라 감독은 고개를 작게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참가상 따위가 목적이 아니야. 그러니까 널 관중석으로 보낸 거라고. 그러니까 기다리마, 재혁.”

***

“최재혁이 선발 제외라고?”

뮌헨의 감독, 유프 하인케스.

그는 수석 코치가 전해준 정보에 하얗게 센 눈썹을 비틀었다.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수석 코치는 그런 하인케스 감독을 바라보며 침을 삼킨 뒤 재차 말했고···.

“아뇨. 그냥 선발 제외가 아닙니다. 최재혁은 오늘 1차전 명단에서 아예 이름이 빠졌어요.”

수석 코치의 말을 들은 하인케스 감독은 잔뜩 찌푸린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소리쳤다.

“아니, 왜?!”

< 160. 왜?!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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