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9화 (159/225)
  • < 159. 1차전은··· >

    “안녕하십니까, 잠을 잊은 전세계의 축구팬 여러분! 유로피언 프리뷰의 브래들리, 그리고···.”

    “코헨이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

    “늦은 시간임에도 빈 자리 없이 모두 꽉 찼군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촤르륵, 기계음을 내며 돌기 시작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스튜디오에 선 두 사람은 활기찬 목소리로 프로그램의 시작을 열었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방청석에 자리한 관객들은 큰 박수소리로 둘을 맞으면서 기대에 찬 눈동자들을 반짝였다.

    챔피언스 리그의 경기들이 열리는 그 전날 밤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인 유로피언 프리뷰는 올해로 벌써 30여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장수 프로그램으로 유에파 리그가 유러피언 컵이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진행 할 때부터 축구 팬들과 함께 해온 곳이었다.

    그런 만큼 탄탄한 팬층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를 통해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 프로그램들 중 하나로 잘 알려진 유로피언 프리뷰.

    오래된 세월 만큼, 세대 교체를 겪으며 이제 5대 호스트의 역할을 역임 중인 브래들리는 오늘도 늦은 밤을 함께 해주는 방청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자리에 앉았고, 그런 브래들리의 건너편에 앉으면서 코헨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8강전이 시작하는 군요.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16강 2차전 이후 거진 3주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렸던 가요? 사실 지난 시즌보단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더 오래 기다린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거 때문이겠죠?”

    딱!

    브래들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면서 스크린을 가리키자 곧 화면이 바뀌었고,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팀들과 그 대진표가 떠올랐다.

    브래들리는 팔짱을 끼고서 한동안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젓다가 간신히 한 마디를 꺼내 내려놓았다.

    “대체 이런 대진표를 내어 놓고 3주나 기다리라니요. 이건 고문이 따로 없었죠.”

    16강을 뚫고 올라온 여덟 팀들.

    어느 팀 하나 만만하게 볼 곳이 없는 명단에 적힌 구단 명들을 하나씩 읊으면서 브래들리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계속해서 말했다.

    “영국의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스페인에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세비야가 살아남았고, 이탈리아에선 유벤투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올라온 샤흐타르가 AS 로마를 무찌르고 마지막 여덟 번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팀들은 준결승으로 향하는 티켓을 놓고 또 한 번 격돌하게 되지요.”

    “그 대결 구도도 한 번 살펴 보신다면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8강이라는 무대로 올라오면서 각기 화려한 이야기를 만드는 팀들이 모였거든요. 일단 리버풀과 샤흐타르는 목적이 확실한 두 팀이 8강 다리에서 만났어요. 어떻게든 높은 순위를 차지해야하는 이유가 확실한 두 팀이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음은 무려 엘클라시코에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8강에서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기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무려 3주나 기다리게 하다니요! 신도 참 너무하셨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죠. 오늘 저희가 가장 먼저 리뷰로 다룰 경기는 바로 이 두 팀의 경기들입니다! 바로···.”

    “맨체스터 시티와 바이에른 뮌헨! 정말 고대하던 경깁니다. 저에게 있어선 이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 없거든요!”

    영국의 맨체스터 시티와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두 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스크린은 또 한 차례 바뀌었고, 각 과르디올라 감독과 하인케스 감독의 얼굴 아래 이번 시즌동안 두 팀이 기록하고 있는 전적이 떠올랐다.

    호스트 브래들리와 코헨은 그런 양팀의 전적을 쭉 읽어보다가 조용한 스튜디오 내부를 향해 호응을 유도하며 소리쳤다.

    다른 팀도 아닌 맨시티와 뮌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냐면서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의 목소리에 방청객들은 입소리와 함께 박수소리로 호응했고, 이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브래들리가 준비한 자료를 훑으며 말문을 열었다.

    “이번 시즌 뮌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역시 유프 하인케스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최악의 시작, 최악의 컨디션, 그리고 최악의 부진. 이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 이번 시즌 몰락하는 게 아니냐고 사람들이 떠들던 뮌헨이었는데. 소방수로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자리에 오르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리그에선 곧장 선두 자리를 꿰찼고, 부진하다고 비난 받던 선수들의 기량도 언제 그랬냐는듯 회복해 리그 정상급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대체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요?”

    “그만큼 바이에른 뮌헨과 하인케스, 둘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유대 고리는 다른 어떤 감독들보다 특별하다는 것이겠지요.”

    브래들리의 물음에 자연스레 답문을 남긴 코헨은 가장 먼저 하인케스와 뮌헨, 둘이 유지하고 있는 유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입술을 뗐다.

    누구보다 뮌헨을 잘 이해하고 있고, 또 역사적인 결과물을 내놓은 감독인 하인케스에게 있어서 뮌헨이 경험하고 있던 문제점과 고쳐야 할 점을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다른 누구도 아닌 하인케스라면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뮌헨은 의심없이 그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분위기 반전과 함께 성공적인 시즌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인케스의 뮌헨을 상대하게 된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는 사실 맨체스터 시티에도 대입이 비슷한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와의 인연이 전부터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무관으로 그친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올해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 그동안 문제로 남아 있던 것들을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니 말이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이 경기가 무엇보다 기다려지는 겁니다. 하인케스와 과르디올라, 두 사람은 어쩌면 이번 경기를 통해 마치 ‘자기 자신’을 상대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르니 말예요.”

    “자기 자신을 상대한다고요?”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가 진짜 재밌는 부분이죠.”

    되묻는 브래들리를 향해 기대가 잔뜩 깃든 미소를 떠올리며 웃어 보인 코헨은 물을 삼키면서 큼큼, 목을 가다듬었고, 준비한 자료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인케스와 과르디올라는 단순히 뮌헨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는 것 외에도 비슷한 점이 제법 많은 감독들입니다. 일단 둘 다 경기를 지배하려고 하고, 또 원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조율하죠. 하지만 그 외에는 오히려 다른 점들이 더 많은 감독들이에요. 일단 축구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고, 원하는 목표도 다르니까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스스로를 상대하는 느낌이 들겠죠.”

    “다른 점이 더 많은데, 자신을 상대하는 느낌이 들다니. 그거 어불성설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난다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브래들리를 포함해 잔뜩 떠오른 물음표들을 향해 미소를 보인 코헨.

    그는 다시 한 번 목을 가다듬었고, 멈췄던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일단 과르디올라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가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축구는 방법에 비해 제법 간단합니다. 보다 높은 곳에서 공을 점유하고, 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골대를 찾는다. 그리고 전진한다. 물론 상황에 따른 유동성도 최근 장착하긴 했지만, 기본 모토는 저겁니다.”

    “그 결과 티키타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운영법을 창조해냈죠.”

    “맞아요. 누구도 쉬이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장착했어요. 자 그러면 이제 하인케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가 원하는 축구 또한 과르디올라 못지 않게 간단합니다. 상대의 취약한 곳을 포착해 압박하고, 공을 가지고 이동해 주도권을 취하면서, 최종적으로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을 찾아 골대에 공을 집어 넣는다. 어떻습니까, 비슷하죠?”

    “비슷···, 하지만 묘하게 다른 거죠?”

    “그렇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팀은 끊임없이 싸우게 될 것이고, 두 감독들은 고민하게 될테니까요.”

    툭, 말을 끝내며 다음 스크린으로 넘긴 코헨은 바뀐 화면을 가리키며 슬슬 이야기를 정리했다.

    “일단 첫 째로 둘은 압박을 중요시하지만, 또 경시하기도 합니다.”

    “···네?”

    중요시하지만 경시한다.

    그 이해가 어려운 말에 브래들리는 곧장 되물었고, 코헨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체적인 중원을 이용한 압박’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하지만 하인케스 감독은 ‘요건에 따른 지역 압박’에 중점을 두고 있죠. 이런 차이점 때문에 과르디올라 감독과 하인케스 감독이 ‘압박’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같지만 각자 추구하는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또 상대에 비해 경시하는 압박 전술이 생기는 것이지요.”

    “···!”

    “그리고 그런 차이점은 양팀이 진행할 ‘빌드업’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빌드업에도요?”

    “왜냐면 중점으로 두게 될 압박 지역이 다른 만큼, 서로 노리게 될 지향점이 다를테니까요.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양팀의 감독들은 상대에게 자신을 읽히는 기분이 드는 거죠. 서로가 ‘취약하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노리고 달려들테니 말입니다.”

    “아, 그래서···!”

    마침내 코헨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파악한 브래들리가 눈을 반짝이며 탄성을 흘렸고, 코헨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했다.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가장 다를 두 감독. 과연 이 감독들이 보여줄 경기가 어떻게 될지, 저는 감히 예측할 순 없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요?”

    “맨체스터 시티와 바이에른 뮌헨, 두 팀의 경기에서 누구보다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될 선수가 누구인지를 말이죠. 그건 아마도···.”

    말꼬리가 늘어지자 스튜디오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코헨은 생긋 미소를 떠올린 얼굴로 그 시선을 즐겁게 만끽하다가···.

    “최재혁. 맨체스터 시티의 어린 마술사, 최재혁의 존재가 이번 경기를 더욱 재미나게 해줄 겁니다.”

    “최재혁이요?”

    모두를 의아하게 할 한 마디를 남긴 후 손을 털었고, 그런 코헨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경기가 될 매치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의 존재가 경기에 흐름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니?

    이건 또 무슨 이해 못 할 이야기란 말인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차오르는 호기심에 재차 벌어질 코헨의 입술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고···.

    ***

    “네? 잠깐만요 감독님.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

    뮌헨과의 1차전이 있기 바로 전 날 밤, 과르디올라 감독의 집무실.

    그곳에 감독의 부름에 응해 자리하게 된 재혁은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닌가 싶어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재차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재혁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 재혁, 너는 홈에서 진행될 뮌헨과의 1차전에선 쉬게 될거다. 그러니까 ‘신체적인’ 컨디션 관리는 당분간 소홀히 해도 괜찮다.”

    < 159. 1차전은···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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