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8화 (158/225)
  • < 158. 5월이 오면··· >

    [최재혁, 맨체스터 시티와의 재계약을 거부!]

    [‘나를 담기엔 부족한 조건이었다.’ 최재혁-맨시티와의 불화설?]

    [‘가능하다면 꼭 데려오고 싶은 선수.’ 재계약이 불발된 현재, 과연 이번 여름 그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와. 정말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 구나. 그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안거지?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이었는데.”

    의자에 앉아 스포츠란에 올라온 뉴스들의 헤드 라인들을 재혁이 눈으로 읽어 내려가며 모호한 탄성을 흘렸고, 그런 재혁의 목소리를 듣게 된 케이트는 수화기에 바짝 가져다댄 입을 크게 열며 소리쳤다.

    [그럼 저게 전부 진짜였어? 너 정말 구단이랑 사이 안 좋아?]

    “응? 내가 언급한 부분은 거기가 아닌데.”

    [뭐? 그럼 뭔데?]

    “재계약 거부. 그 부분에 대한 거였지. 엊그제 있었던 일인데 설마 이게 벌써 알려질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재계약을 거부했어?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던 거야? 차별이라던가, 아니면 혹사라던가···. 아! 그러고 보니 비슷한 기사도 본 거 같았는데···.]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며 묻는 케이트의 말에 재혁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뺨을 긁적였고, 진정하라며 그녀를 적당히 타이른 후 베르겐 에이전트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케이트에게 알려주었다.

    기자들이 말하는 것 같은 불화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보다 좋은 조건을 위해, 그리고 자기 만족을 위한 도전 정신에 따른 결정이었다는 것 같은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케이트는 조용히 재혁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얕은 숨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괜히 걱정했잖아.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구.]

    “큰일이긴 하지. 무려 재계약이니까. 하지만 케이트, 네가 걱정하는 것 같은 일들은 없을 걸? 애초에 구단에서 날 싫어할 리가 없잖아? 나름 신용받고 있다고.”

    [그건 모르는 거야. 너 오이 싫어하잖아. 혹시 알아? 그거 때문에 갑자기 구단이 널 싫어할지.]

    “바보. 오이 때문에 설마 프로 구단이 프로 선수를 버리겠냐?”

    [그만큼 별에 별 이유로 감정이 생긴다는 의미였지!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자만하지 말고!]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듣고만 있다간 같은 내용의 대화를 하루종일 주고받을 것 같았기에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히 이해했다는 의미로 답했고, 케이트는 그런 재혁의 말에 뺨을 살짝 부풀렸으나 더 이상의 불만은 표현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가 알고 있는 것보단 재혁이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을 테니까.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그렇게 다음 화제로 넘어가게 된 두 사람은 비교적 평범한 주제, 학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졸업이라는 큰 행사를 앞둔 만큼, 요즘 화제에 맞는 적당한 주제였다.

    5월이 찾아오면 종업식도 함께 올 것이고, 그 때가 온다면 A-레벨의 시험 날도 함께 찾아올 테니까.

    케이트는 침대에 누워 아무렇게나 펼쳐진 머리칼을 검지로 베베 꼬면서 한숨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제 A2레벨 테스트만 남긴 했는데, 잘 칠 수 있을까?]

    “해외 전형 인터뷰까지 통과했잖아? 거의 다 끝났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마.”

    [그건 어디까지나 AS레벨 성적이 좋았으니까 그렇지. 결국은 조건부 합격인 거라구. 만약 여기서 떨어지면 다 허사가 되는 거야. 에휴, 괜히 긴장되네···. 그러는 너는 괜찮아? 일단은 너도 시험 치잖아?]

    “나? 나야 문제 없지.”

    케이트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한 재혁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미술을 제외하면 전부 A인 걸. 내 성적 잘 알잖아? 어차피 바로 대학을 갈 목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부담 없어서 성적이 더 잘나오지 않을까?”

    [그게 신기하단 말야. 대학도 바로 안 갈 거면서 성적은 엄청 좋아. 질투나게시리···.]

    “칭찬이지?”

    [그래. 칭찬이다, 칭찬! 에휴, 그 성적이 전부 내 성적이었다면 나도 이런 고민은 없었을 텐데···.]

    “흐음.”

    또 한 번 길게 늘어지는 한숨과 함께 이어지는 케이트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며 재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잊고 있었던 기억, 케이트는 타고난 것보다 지독한 노력으로 지금의 성적을 일궈낸 노력파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리고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기 시작하면···.

    [재혁아. 대체 넌 어떻게 공부를 하길래 그렇게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거야? 매일 훈련도 받으면서 공부까지 하는 거잖아? 응? 우리 사이에 비법 좀 숨기지 말고 알려주라. 응?]

    “그러니까 그런 거 없다니까. 그냥 시간 남을 때 꾸준히 한다. 그게 전부야.”

    [나한테까지 숨기니? 바보! 멍청이! 치사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툴툴거리면서 있지도 않는 비법에 대해 묻다가 삐진다.

    호주에서도 몇 차례 겪은 적이 있었기에 재혁은 그저 쓰게 웃으면서 이마를 긁적였고, 그런 재혁을 향해 케이트는 계속해서 툴툴거렸으나, 곧 조용해졌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본인도 그런 게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기에 오래지않아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리라.

    조용해진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한 재혁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큭큭 웃었다.

    ‘아쉽네. 맨날 어른스러운 척만 해서 저럴 때 진짜 얼굴이 나왔었는데. 이걸 눈으로 못 보다니. 다음에 만날 땐···.’

    [···재혁아, 듣고 있어? 혹시 삐진 거 아니지?]

    “응? 설마. 그런 걸로 삐지면 내가 너랑 어떻게 지금까지 알고 지냈겠냐?”

    [···안심이 되면서도 뭔가 느낌이 묘하네. 에휴, 모르겠다! 걱정한다고 점수가 오르면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아무튼 이제 공부나 하러 가야겠어. 너도 곧 훈련 시간이지? 열심히 해. 다치지 말고.]

    “알겠어. 너도 중간중간에 스트레칭이랑 가벼운 운동 하는 거 잊지마. 공부도 체력이 돼야 하는 거니까.”

    시계를 확인하면서 서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통화를 마무리 하기 시작한 두 사람.

    그렇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마지막으로 통화를 끝내는 붉은 버튼을 누르려던 중, 재혁이 짧은 탄성을 흘리면서 달력과 함께 펜을 손에 쥐며 케이트에게 물었다.

    “하마터면 까먹을 뻔 했네. 그래서 입학식이 언제야?”

    [입학식? 갑자기 입학식은 왜?]

    “왜긴. 축하해주러 가려면 미리 알고 있어야지. 중요한 날을 빼먹을 수 없잖아? 게다가 살면서 옥스퍼드계 대학 입학식을 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다고. 가능하면 꼭 가야지.”

    [저···, 정말 올거야? 바쁘지 않아? 게다가 9월이면 시즌이 시작할 때일 텐데···.]

    “아무리 바빠도 네 입학식은 꼭 간다니까. 설마 사람이 아무리 바빠도 하루이틀 정도 시간을 못 내겠어? 그래서 언제야?”

    무뚝뚝하게, 하지만 은근한 따뜻함과 애정이 느껴지는 재혁의 말에 케이트는 괜스레 붉어지는 뺨을 손으로 감추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럼 확실한 일정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했고, 그런 케이트의 말에 재혁은 알겠다고 답한 후 통화를 끝냈다.

    그 후 정적이 찾아온 방 안.

    멍하니 통화 시간과 함께 재혁의 이름이 떠올라 있는 휴대폰 스크린을 내려보던 케이트는 다짐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책상을 정리했다.

    ‘재혁이가 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떨어지면 면목이 없지! 꼭 붙는다!’

    “아자, 한 달간 힘내자!”

    찰싹, 가볍게 뺨을 때린 뒤 자세를 다잡은 케이트는 덮어두었던 책들을 펼쳤고, 간만에 제대로 집중력을 끌어올려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맨체스터 시티의 훈련장에 도착한 재혁도 비슷한 다짐을 떠올리며 축구화에 발을 꿰었다.

    쿼드러플까지 앞으로 남은 왕관은 앞으로 두 개.

    ‘꼭 이룬다.’

    첫 해부터 욕심이 많다고, 미니 더블이면 신인에겐 이미 충분하다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재혁의 귀엔 전혀 들리지 않을 소리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듯, 그의 목표는 언제나 최고라는 목표에 닿아 있는 정상을 향해 있었으니까.

    “자, 그럼···. 오늘도 가볼까?”

    힘차게 다짐하면서 훈련장으로 향한 재혁은 곧장 선수들 사이에 스며들었고,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굵은 땀방울을 잔디 위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재혁을 지켜보고 있던 코치들은 신기하단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분명 기사들을 확인했을 텐데, 흔들림이 없군요.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아직 어린 만큼, 훈련 전에 따로 이야기라도 나눠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니 걱정하고 있던 우리 쪽이 바보가 된 것 같은 걸요?”

    “바보 맞지. 다른 누구도 아닌, 재혁이를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말야.”

    “가, 감독님. 듣고 계셨습니까?”

    “바로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내가 귀머거리도 아니고, 당연히 다 들리지 않겠어?”

    코치들의 말에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대답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어깨를 으쓱인 후 이내 피식 실소를 흘렸고, 고개를 돌려 공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재혁을 유심히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재계약을 거부하고 나타난 거라면 모르겠지만, 재혁이잖아? 흔들릴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어. 차라리 캐슬필드에 있는 다리가 흔들렸으면 흔들렸지, 재혁이가 흔들렸으려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하세요?”

    “왜냐면 재혁이가 보고 있는 곳은 내가 보고 있는 곳과 같으니까. 유럽 정상. 멀리 보고 있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에 흔들리지 않아. 단지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는 거야.”

    “···!”

    “그리고 목표가 확실한 만큼, 흔들릴 여유도 없는 거지. 그럴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전진해야 하니까.”

    말을 끝내며 슬그머니 팔짱을 낀 채로 미소를 흘리던 과르디올라 감독.

    그는 지난 밤 알게된 재혁의 재계약 거부 이유를 상기해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급으로 최소 16만 파운드라. 설마 거기서 2배나 인상해달라고 말할 줄이야. 아주 무섭게 후려쳤군. 하지만···.’

    그만한 자신감.

    재혁은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가치에 대한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재혁의 자신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지난 1년간 몸소 실력으로 증명해주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정은커녕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16만 파운드라는 가치에 대한 증명을 시작할 재혁의 실력에 대한 기대가 말이다.

    ‘그리고 그 증명을 위한 무대는···, 다가올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이 되겠지.’

    유럽 정복을 위한 본격적인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어느 팀 하나 얕볼 수 없는, 최고를 두고 경쟁할 8팀들에 대해 떠올리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턱을 쓸어내렸고, 조그만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래저래 쉽지 않군···.”

    아무리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놓았다고 한들, 그걸 조화롭게 꾸미지 못한다면 최고는 최고가 될 수 없다.

    경기에서 이기는 건 최고의 개인들이 아닌, 하나로 뭉친 최고의 팀이었으니까.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신 또한 선수들이 자신을 믿어주는 이유에 대한 증명을 해야 함을 잊지 않았고, 한동안 입술을 다문 채로 침묵하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경기를 뛰게 할 최고의 11명을 정하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한 자리만큼은 확실했으니까.

    슥,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든 과르디올라 감독은 공백에 재혁의 이름을 적는데 망설임이 없었고, 수첩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이래저래 재혁이 자신의 선수라 참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곤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유럽의 태양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4월의 끝자락에 걸린, 5월을 기다리는 태양이.

    < 158. 5월이 오면···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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