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6화 (156/225)
  • < 156. 당연함 속의 새로움 >

    날이 저물고 새로운 해와 함께 새로운 하루가 찾아왔다.

    어떤 이들에겐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고, 또 다른 이들에겐 오히려 지나버린 하루를 그리워할 하루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맨체스터 시티 팬들에게 있어선 오늘 찾아온 하루처럼 달콤한 하루가 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맨체스터 시티, 맨유를 상대로 2대0 승리! 안방에서 라이벌을 꺾고 리그 우승을 확정 짓다!]

    [마침내 우승이란 고지를 밟은 펩시티!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필요했던 건 2년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 “선수들이 이룬 결과물. 행복한 경기였다.”]

    [완벽했던 경기. ‘디테일’을 지배한 맨체스터 시티가 당연한 승리를 취했다!]

    [(포토)13-14 시즌 이후 마침내 이뤄낸 리그 우승에 기뻐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

    [(포토)‘우리 우승했어요!’ 조기 우승 확정에 기뻐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과 팬들.]

    다름 아닌 리그 조기 우승이라는 결과를 이뤄낸 팀덕에 응원하는 팬들은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승식이 진행되는 시즌 마지막 홈 경기까지는 아직 한 달 가량이 남았기에 실질적으로 트로피를 손에 쥔 것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남은 경기들을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팬들은 모두 기뻐했고, 팬들 만큼이나 언론사들도 맨체스터 시티를 향해 뜨거운 관심을 보내주었다.

    사실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을 의심하는 시선들이 제법 많았기에, 그들이 이뤄낸 조기 우승 확정에 언론사들은 더더욱 놀랐다.

    아무래도 다른 구단들에 비하면 ‘월드 클래스’라고 불릴 선수의 새로운 영입이 적었던 맨체스터 시티였고, 실제로 부상으로 선수가 빠질 때마다 선수 구성에 골머리를 썩였으니.

    하지만 ‘팀’은 ‘선수’보다 위대하다는 공식.

    과르디올라 감독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단단히 뭉친 맨체스터 시티는 개개인의 선수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번 시즌 확실히 보여주었고, 언론사들은 그 과정에 대해 보도하면서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기사들 속에 마치 짠 것처럼 매번 언급되는 선수가 한 명 있었으니···.

    [맨체스터 시티가 이번 시즌 우승을 위해 사용한 금액은 ‘2천만 파운드’였습니다. 그리고 그 2천만 파운드는 최재혁 선수 영입을 위해 사용된 이적료였죠. 아마 역대 우승팀들 중 가장 적은 금액을 사용해 얻어낸 우승 컵이 아닐까 합니다.]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10대에 불과한 선수에게 과한 투자를 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만, 시즌이 끝나니 모든 게 확실해졌습니다. 최재혁 선수에게 2천만 파운드라는 가격표는 사실상 헐값이나 다름 없었다는 게 말예요.]

    [한 때 최재혁 선수를 놓고 경쟁했던 팀들이 모두 손을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맨체스터 시티 때문에 갑자기 올라간 비싼 이적료였는데. 이제 보니 오직 맨체스터 시티만이 최재혁 선수의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었던 거라는 게 이번 시즌을 통해 증명이 되었죠. 당장 비슷한 이적료의 선수들이 기록한 스텟과 비교해보면···.]

    여름에 시드니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둥지를 옮긴 최재혁.

    팬들이며, 언론사들이며, 모두들 이번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재혁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즌 초, 모두가 예상했던 재혁의 포지션은 어디까지나 서브에 백업이었다.

    사실 영입 당시 막 19살이 된 선수를 보면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저 제대로 성장 해주길, 혹은 필요한 순간에 1인분 정도라도 해주길.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며 재혁의 맨체스터 입성을 지켜보았던 것인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 재혁은 오히려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위기의 순간 기지를 발해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또렷하게 알렸던 것이다.

    물론 몇몇 장면들에선 아직 성장이 필요한 모습도 보여주긴 했지만, 아쉬웠던 모습보다 오히려 기대 이상의 모습들을 보여준 적이 많았으니 사람들은 이번 우승의 주축들 중 한 명으로 재혁을 뽑길 망설이지 않았고, 뜨거운 관심을 쉬지 않고 보내주었는데···.

    그게 꼭 기쁜 일인 것만은 아니었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으윽. 이거 또 울리네.”

    훈련장으로 향하던 재혁은 쉬지 않고 진동하고 있는 휴대폰을 내려보며 난감한 얼굴로 이마를 긁었다.

    그렇게 발을 멈추고 지문 인식을 통해 잠금 화면을 푼 재혁은 그 사이 또 쌓여 있는 수천 개의 소셜 네트워크 알림들을 확인하곤 한숨을 푹 내쉬었고, 검지를 뻗어 앱 아이콘을 눌렀다.

    평소의 재혁이었다면 알림 자체를 꺼놓고 생활했기에 소셜 네트워크와 그다지 연이 없었겠지만···.

    ‘최재희, 너 때문에 내가 진짜···. 후우’

    한국에 있는 그의 여동생인 재희는 그와 다르게 이런 쪽의 유행에선 전혀 뒤쳐지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동생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던 중, 재희는 그래도 프로 선수니까 팬들에게 근황이라도 전할 겸 소셜 앱에 사진이라도 한 장 올려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재혁은 그에 귀찮다고 대답했는데.

    프로 선수가 팬들한테 그러면 안된다면서 재희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재혁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고, 재혁은 아무 생각없이 사진을 보냈다가 재희가 자신의 이름과 함께 태그를 걸어 게시글을 하나 올리면서 지금의 상황이 터지고 만 것이다.

    앱을 키고 멍하니 스크롤을 내리던 재혁은 또 한 차례 숨을 뱉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팔로워 숫자는 그 사이 또 2배가 늘어나 있었고, 댓글 숫자도 만 개를 넘어 2만 개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

    재혁은 이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숫자들을 내려보다가 슬쩍 스크롤을 올린 후 그의 계정과 연결되어 있는 동생 재희의 계정을 얇은 눈으로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귀찮은데 그냥 싹 지워버릴까.”

    “지워? 뭘 지워?”

    “어, 실바.”

    “안 들어가? 아무리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어도 훈련에 늦으면 감독님께 얄짤없이 혼날 걸?”

    훈련 복장을 모두 차려 입고 복도에 나왔던 실바는 재혁이 평소와 다르게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질 못하고 있자 신기해하며 말을 붙여온 것이다.

    그런 실바의 물음에 재혁은 쓰게 웃더니 어깨를 으쓱인 뒤 대답했다.

    “그게, 평소 소셜 네트워크 쪽은 아예 건드리질 않는데, 이번에 동생 때문에 사진 한 장이 올라갔거든요. 그거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서 해본 말이었어요.”

    “그 이야기였구나. 난 또 뭐라고.”

    “별일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지 마세요. 저한텐 꽤 중요한 이야기라구요. 축구 외엔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괜히 속이 찔려서···.”

    “큭큭. 설마. 그 맘 잘 알아. 나도 한 때 그랬거든.”

    “···네?”

    “말 안했던가? 나도 원래 이런 거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어. 그러다가 바뀐 거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재혁을 향해 예의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한 실바는 잠시간 생각에 잠긴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또 한 번 웃어보이면서 대답을 이었다.

    “팬들이 응원해주는게 기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했지. 아무런 필터도 거치지 않고 팬이 내는 목소리를 바로 듣게 해주는 매체인 거잖아? 그래서 그걸 무시하자니 팬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관리를 하자니 축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 같고. 그럴 바엔 차라리 없애는 게 낫겠다 싶었지.”

    “맞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였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알게 됐어. 저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는 지를 말야.”

    “···네?”

    “아주 짧게 예를 들어 볼게. 만약 축구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뛰고 있는 지금 이 리그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경기를 찾아와주는 사람들도 없는데?”

    “···!”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가정일 뿐이야. 하지만 본질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도와주긴 하지. 나라는 존재, 그러니까 축구선수로서의 나라는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거야. 결국 우리도 사회의 구성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귀찮으니까 하지 않는다? 내가 옳고 그름을 나눌 순 없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노력이란 건 보여줘야 하는게 옳다고 봐. ‘프로 축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회원이 낳을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란 내가 행동을 해야 나오는 거니까. 그런데 그 행동을 귀찮아해 삭제라는 결론으로 끝내버리면, 오히려 그게 더 아마추어같지 않을까?”

    “···.”

    “그리고···, 최근엔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위로를 받았거든.”

    스윽, 손을 주머니에 넣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든 실바는 스크린을 몇 차례 쿡쿡 누르더니 소셜 계정에서 가장 최근에 올린 글에 달려 있는 댓글들을 재혁에게 보여주었고, 글과 댓글들을 조용히 읽어 내려가던 재혁은 침을 삼킨 후 고개를 들었다.

    그런 재혁과 눈을 마주친 실바는 생긋 웃음을 띤 얼굴로 말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내 아들 마테오. 거기에 힘내라는 댓글들을 적어준 사람들은 축구 선수인 내가 아닌, 사람 다비드 실바를 위해 그런 댓글들을 달아주었어. 참 고마운 일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굳이 모든 일을 축구와 연관 짓지 말라는 거야. 너는 너고, 축구 선수라는 타이틀은 그저 너를 설명하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이해가 조금 어려웠으려나?”

    “···아뇨. 전혀요.”

    쓰게 웃는 실바를 향해 굳은 얼굴로,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고민은 남아있지 않은 얼굴로 대답한 재혁은 그를 따라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덕분에 정신이 말끔해진 기분이에요. 복잡하게 엉켜있던게 조금은 풀린 것 같거든요. 조언 고맙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나는 먼저 나갈테니까, 너무 늦지마. 벌금으로 주급을 날리기엔 너무 아깝잖아?”

    “네. 알겠어요. 저도 금방 갈게요.”

    등을 돌리고 멀어지는 실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던 재혁은 한동안 멍하니 실바가 사라진 복도 끝을 바라보다가 또 한 번 습관처럼 머리를 긁었고, 이내 살며시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색한 손짓으로 스크린을 몇 차례 두드렸고, 곧 찰칵! 짧은 셔터음과 함께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그 후 어색한 손짓으로 자판을 두드렸던 재혁은···.

    “이정도면 됐으려나.”

    방금 찍은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적어 자신의 계정에 새로운 포스트를 올렸다.

    어제 있었던 경기에 대한 이야기와 그동안 보내준 응원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남은 대회들에 대한 각오가 담긴 포스트를 말이다.

    해당 포스트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뜬금없이 올라온 재혁의 포스트를 새벽에 읽게 된 재희는 반쯤 감긴 눈을 비비더니 배시시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좀 프로 선수 같네. 몸만 컸지, 역시 아직 애였다니까···.”

    자다 일어난 탓에 길게 하품을 늘어놓았던 재희는 짧막한 댓글을 남긴 후 다시 잠에 빠졌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다음 경기, FA컵 8강전.

    해당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는 소름이 잔뜩 돋은 팔을 벅벅 긁으면서 소리쳤다.

    “맨체스터 시티, 경기가 시작 된지 겨우 20분만에 벌써 4번째 득점에 성공하면서 점수 차이를 크게 벌리는데 성공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해요. 리그 챔피언인 맨체스터 시티는 오늘 경기를 통해 자신들의 실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자신들은 더 많은 트로피를 원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선수는···.”

    “역시 최재혁 선수죠!”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재혁의 이름을 부른 해설자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 했다.

    < 156. 당연함 속의 새로움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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