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두 번째 >
경기를 지배한다.
말은 참 쉬웠다.
하지만 지배한다는 그 단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면 해설자가 남긴 그 한 마디는 결코 쉬운 한 마디가 될 수 없었다.
원하는 대로 플레이하면서 공수를 조율하고, 틈이 보였다고 느껴진 순간 빛을 발해 득점권까지 공을 연결시킨다는 그 설명을 프로들이 즐비한 프리미어 무대에서 해낸다는 것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설자는 단언했고, 그런 해설의 말을 들은 캐스터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벌려 되물었다.
“그렇지만 전반전···, 그리고 후반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흐름은 분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쪽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최재혁 선수가 경기를 지배했다는 말씀은···.”
“그런 이유에서 이해를 힘들어 하실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조금 더 주의 깊게 경기를 지켜보셨다면 전반전부터 최재혁 선수는 꾸준히 층을 쌓아왔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군요.”
“층을 쌓았다고요?”
“어떠한 일이든, 갑작스레 벌어지는 상황은 없습니다. 꾸준히 쌓아 놓은 과정들이 겹쳐져 완성된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마치 층을 이루는 것처럼요.”
캐스터의 말에 차분히 대답을 시작한 해설자는 세레머니 이후 다시 나오기 시작한 득점 과정을 하나씩 포인트로 짚어주면서 설명을 계속 했다.
그가 가장 먼저 짚은 포인트는 실바가 재혁에게 패스를 건네는 장면이었다.
해당 장면을 가리키면서 해설자는 두 눈을 반짝였다.
오늘 경기 내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 장면이었지만, 이 장면에서만 보이는 확실히 다른 점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장면을 보신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총 두 가지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첫째. 맨시티를 공략하기 위해 과도한 전방 압박을 시도하지만 밀도가 부족했다는 점과 둘째, 그로 인해 최재혁 선수에게 바늘 구멍 같이 좁지만 ‘완벽한 자유’가 주어지는 공간을 허락한다는 점이죠.”
“과도한 전방 압박의 밀도 부족이요···?”
낯선 설명에 캐스터가 고개를 갸웃이자 해설자는 곧장 그를 위해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이런 겁니다.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상대를 ‘제대로’ 압박하기 위해선 10명이 모두 움직여야 하지요. 하지만 맨유의 선수들은 ‘이 순간’에선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바로 이전 상황에서 최재혁 선수에게 당했던 케빈에게 향하는 기습 패스. 그 한 방에 한순간 허를 찔렸다는 사실이 모두의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던 겁니다.”
“아···, 그래서···!”
“네. 그래서 이처럼 필 존스와 스몰링은 전방 압박에 100% 관여하지 못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후방을 지키는 선택을 취하면서 최재혁 선수가 그토록 원했던 자유로운 공간이 아주 작지만 또렷하게 생겨난 것이죠.”
“확실히 과정 설명을 듣고 나니 왜 그런 일이 생겼는 지가 이해가 되네요!”
“그 이후의 플레이에서 최재혁 선수는 가뿐하게 턴을 돌았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케빈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시켜 줍니다. 이 또한 최재혁 선수가 설계한 ‘층’들 중 하나지요.”
“그것도 설계라고요?”
약간의 의심이, 하지만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로 캐스터가 물은 것에 해설자는 가뿐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뒤로 이어지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바로 케빈 선수에게서 리턴 패스를 받는 이 장소. 맨유의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케빈에게 향할 것이라는 확신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최재혁 선수는 그 다음 순간 플레이에서 패스를 보내기 가장 최적의 장소로 누구의 압박도 받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고, 실제로 케빈 선수에게 받은 패스를 전방으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찔러 넣을 수 있었던 것이죠.”
“과연···.”
“그리고 그 결과 아구에로 선수를 미끼로 사용하는 패스를 성공시켜 스털링 선수의 발로 패스를 연결시켰고, 두 차례나 움직임이 읽혔던 맨유의 선수들은 세 번째도 여지없이 읽히면서 최재혁 선수에게 슈팅을 허용하고 만겁니다. 완벽한 찬스에서 나온 완벽한 슈팅이었기에 이건 아무리 데 헤아 선수라고 해도 실점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죠. 과정처럼 궤적도 너무 좋았어요.”
마지막에 기가 막히게 감겨 골망으로 들어가는 재혁의 슈팅을 리플레이로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감탄을 흘린 해설자.
다시 보아도 전율이 흘렀는지, 부르르 몸을 떨었던 해설자는 ‘정말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플레이었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현실로 돌아왔고, 캐스터 또한 떨림이 잦아든 입을 움직여 이어지는 상황을 설명했다.
1대0이라는 스코어와 맨체스터 시티가 리그 우승 확정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것, 그리고···.
“괜찮아! 아직 1대0이야! 고개 들어!”
“끝나려면 한참 남았어! 후반전은 이제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맨유 선수들이 아직 기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들을 말이다.
그런 선수들 사이에 섞여 있는 마티치는 특히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더더욱 큰소리를 많이 냈는데···.
‘그게 들어가다니···.’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과는 다르게 실점의 기억은 쉽사리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었으리라.
그 순간 점수를 빼앗긴 것이 자신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만약 자신이 전방 압박에 기를 쓰고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만약 자신이 조금 더 신중하게 후방에서 수비를 했더라면···.
그렇게 한창 잡념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쳤다.
툭.
“정신 차려. 경기 아직 안 끝났어.”
“···마타.”
오늘 그와 함께 누구보다 많은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을 누비고 있는 선수, 후안 마타.
마타는 흔들리고 있는 마티치의 속내를 바로 읽곤 조용한 목소리로 낮지만 확실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흔들려도 오늘 너는 흔들려선 안 돼. 네게 등을 보여주고 있는 동료들도, 네 등을 보고 있는 동료들도, 모두 네 패스를 기다리고 있다고. 너가 우리 팀의 중앙 미드필더잖아?”
“···!”
“한 점 빼앗긴게 계속 마음에 걸리면 두 점 빼앗아올 생각을 해. 마지막까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라고. 그게 우리가 널 뒤에 두고 안심할 수 있는 이유니까.”
툭툭, 말을 끝내며 다시 한 번 마티치의 어깨를 토닥인 마타는 자기 자리를 찾아 이동했고, 경기장 위에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마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티치는 그제야 어둡기만 하던 주변이 밝아짐을 느꼈다.
‘그래. 이제 겨우 한 점이야.’
자신들이 한 골을 넣으면 동점이고, 두 골을 넣으면 역전이 되는 한 점 차.
마타의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린 마티치는 진심으로 동료들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잠겼던 목을 풀고 힘내자며 소리쳤고, 그 모습을 건너편에서 지켜보던 재혁은 콧등을 긁적이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직 안 꺾였네.”
“안 꺾이다니. 뭐가?”
그런 재혁의 목소리를 옆에서 주워들은 케빈이 다가와 물었고, 콧등을 긁적이던 손을 내린 재혁은 케빈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맨유 선수들이요. 아직도 해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네요.”
“난 또 뭐라고. 그거야 당연하잖아? 당장 입장이 반대였다고 생각해 봐. 너라면 한 골 먹혔다고 포기할래?”
“아니죠. 뛰다가 죽어도 제가 보는 앞에서 우승 세레머니 하는 건 절대 못 보죠.”
“잘 알고 있네. 자 그럼 이제 우리 쪽으로 화제를 돌려보자고. 그럼 어떻게 해야 이번엔 확실히 상대가 꺾일까?”
씨익, 재혁의 말에 미소를 보인 케빈은 엄지로 쿡 찍어 자신과 다른 동료들이 위치한 곳을 가리켰고, 그런 케빈의 말에 재혁도 그를 따라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한 골 먹혔다고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서요?”
“그러니까 확실히 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거지. 한 골로 부족하면 두 골, 그걸로도 부족하면 세 골을 넣어줘야 하니까. 상대 입장일 때 싫다는 거지, 우리 입장에선 어떻게든 경기를 끝내야 하지 않겠어?”
오늘 경기에서 모든 걸 확정 짓는다.
그런 의미가 담긴 케빈의 말에 자연히 고개를 끄덕인 재혁은 곧 손을 모아 케빈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재혁의 말을 들은 케빈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게 가능해?”
약간의 의심, 조금의 기대, 그리고 엄청난 흥미가 깃든 눈빛으로 재혁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런 케빈을 향해 재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안되면 한 번 턴오버 내주는 거고, 만약 성공한다면···, 케빈이 원하는 것처럼 ‘완벽한’ 승리를 구축하는게 가능하지 않겠어요?”
“확실히 그렇긴 하지.”
“그럼 정한 거죠?”
다시 한 번 묻는 재혁의 말에 잠시간 입술을 매만지던 케빈은 이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곧 심판의 호각 소리와 함께 재개된 경기를 위해 멈췄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치열합니다···! 양 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끊임없이 서로를 압박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 거예요. 지금 흐름을 빼앗기면 남은 20분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양 팀 선수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겁니다.”
“말씀하시던 중, 마침내 맨유 쪽에서 공을 점유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 시간임에도 쉬지 않고 달리던 마타 선수가 커팅에 성공했습니다!”
점수판의 상황은 여전히 변화없이 1대0.
그러던 중 마침내 찾아온 역습 기회.
마타는 공을 끊어내기 무섭게 재빨리 방향을 전환했고, 눈앞으로 펼쳐지는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미간을 모았다.
‘커팅도, 전환도 빨랐는데···, 벌써 파고들 틈을 모두 막아내고 있다니···.’
분명 최단 거리, 그리고 가능한 빠른 속도로 공격을 전개하려 했거늘.
맨시티의 반응은 그런 그들보다 훨씬 빨랐던 것이다.
중앙을 치고 달려가는 루카쿠는 수비수들이 에워싼 장벽에 가로 막혀 있었고, 산체스 또한 반대편에서 공간을 노리고 달리고 있었으나 바로 이어질 루트는 모두 차단된 상태였다.
같은 라인에 서있는 린가드가 뒤를 돌며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게 보였지만, 저것을 기다리기엔 템포가 죽을게 자명한 상황.
후욱, 짧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숨을 토해낸 마타는 굳은 표정을 숨기질 못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진다.
그런 생각이 그의 뇌리를 한 차례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동안 공을 소유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마타는···.
“···!”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한 선수를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마티치.
중원에서 지원을 위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마티치가 때마침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덕분에 고민을 위한 생각은 짧았고, 마타가 취할 선택은 금방 정해졌다.
퉁, 정확한 땅볼 패스로 달려오는 마티치의 발앞에 공을 붙여준 마타는 그 즉시 자신 또한 공간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고, 마타의 패스를 전해 받은 마티치는···.
‘이 패스를 연결시키지 못하면 오늘은 후회만 남을 거다···!’
뻐엉!
마타가 전달해준 패스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전방을 향해 찔러 넣었다.
왼쪽 측면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산체스의 공간 침투를 적절하게 보조해주는 정확한 스루 패스가 마침내 맨시티 후방의 빈 공간을 노리고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거리까지 완벽하게 조절이 된 패스는 공간을 파고 드는 산체스에게 적절하게 연결되었고, 수비를 하기 위해 달려드는 카일 워커를 앞에 두고 있던 산체스는 라인을 따라 달릴 듯, 한 번 공을 접었다가 그대로 안쪽을 노리고 들어가는 드라이빙 드리블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5미터, 그리고 10미터.
지금까지와 달리 망설임 없이 달리며 공간들을 점유해 나가는 맨유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면서 해설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마침내 맨유에게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인사이드 드라이빙으로 인해 좌우 측면, 그리고 중앙까지 원하는 곳을 모두 뚫어낼 수 있는 활로가 열린 상황.
어쩌면 지금 동점 골이 터질 수도 있다.
그런 기대감에 연신 높아지는 목소리를 캐스터와 해설자는 다잡으며 상황 설명에 집중했고, 그렇게 둘의 시선과 경기를 지켜보는 모두의 시선이 산체스의 발끝을 향하고 있을 때···.
텅!
마침내 산체스가 공을 차면서 선택을 내렸다.
박스 우측면을 따라 달리면서 진첸코와 오타멘디 사이를 파고드는 린가드.
산체스는 그에게 맞춰주기 위한 스루 패스라는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그런 산체스의 패스를 확인한 맨시티 수비수들의 낯빛이 확 흐려지며 동시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뚫린다···!’
절묘한 패스와 절묘한 타이밍의 라인 브레이킹.
하지만 그 전에 양 측면을 흔드는 마타와 마티치의 플레이 때문에 시선 처리가 혼잡해지면서 집중력이 잠깐 흐려졌고, 그 탓에 린가드에게 완벽한 노마크 찬스를 제공하고 만 것이다.
진첸코와 오타멘디는 이미 린가드의 뒤에 놓이면서 수비 상황에서 배제되고 말았고, 그나마 나설 수 있는 선수는 늦게라도 백업을 달려온 콤파니와 골키퍼와 에데르손 밖에 남질 않은 상황.
산체스에게 공을 이어 받은 린가드도, 공을 막기 위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숨을 참았다.
‘이 공은 확실히 골대 안으로 들어간다!’
“아냐, 안 들어가!”
촤라락, 터엉!
짧은 외침과 함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잔디 훑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고, 이어진 투박한 소리와 함께 린가드의 발밑에 있던 공이 허공으로 높게 떠올랐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달려오던 콤파니는 모든 상황을 똑똑히 목격하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최재혁!”
“최재혁 선수! 언제 달려왔는지 린가드의 슈팅을 태클로 끊어냈습니다!”
“세상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모두 뚫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최재혁 선수가 막아냈습니다!”
“아직 플레이 안 끝났어!”
놀라고 있는 선수들과 중계진들에게 마치 일갈을 날리듯, 곧장 잔디를 손으로 짚고 일어난 재혁은 높게 떠오른 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의 말처럼 공은 아직 경기장 밖으로 나가지 않은 탓에 인플레인 상황.
뒤늦게 재혁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수비수들은 황급히 공을 쫓아 움직이며 몸을 날렸고, 이번엔 대인 마크를 놓치지 않고 지키는데 성공한 오타멘디가 머리로 공을 걷어내는데 성공한 뒤 큰 소리로 외쳤다.
“라인 올려!”
“떨어지는 공 위치로 세 명! 잊지마!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잡아! 다시 잡아서 공격으로 연결해!”
다만 오타멘디만 열을 올리는게 아니었다.
극적인 기회가 무산된 맨유 선수들도 어떻게든 다시 한 점을 찾아오기 위해 서로를 향해 소리치며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인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경기장은 생존을 위해 싸우기 시작한 선수들의 전쟁터로 바뀌었다.
이기기 위해,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선수들은 쉬지 않고 몸을 부딪치며 공을 위해 경쟁한 것이다.
그러던 중···.
통.
가볍게 잔디 위에서 한 차례 튀긴 공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경쟁을 위해 발을 맞부딪친 선수 사이에서 튀긴 주인을 잃은 공이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은 그렇게 잔디 위를 굴렀고···, 재혁의 발밑에서 멈췄다.
순간 선수들 사이에서 눈빛이 변했다.
맨유 선수들은 잔뜩 긴장한듯, 떨리는 눈빛으로 재혁을 바라보았고, 재혁의 발 아래 공이 놓인 것을 확인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왔다, 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쌓아왔던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좌우 측면을 맡고 있는 스털링과 사네와 스털링은 벌써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수들과 자리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아구에로 또한 원하는 위치에서 공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필 존스와 어깨를 부딪치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을 앞에 두고 드리블을 시작한 재혁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퉁, 퉁, 퉁!
“?!”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드리블을 치고 달렸다.
순식간에 하프라인, 그리고 센터 서클을 넘고, 파이널 써드에 진입하기 시작한 재혁.
그런 재혁을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게 된 맨유의 선수들은 낭패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분명 패스를 줄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곳까지 드리블로 전진해 오다니.
제대로 당했다.
지금이라도 나서서 막아야 하나?
네 명의 수비수들의 머릿속에 네 가지 다른 생각들로 가득차게 된 순간.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포백의 뒤를 파고 들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선수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케빈 데 브루위너.
재혁과 라인을 맞추며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리던 그가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맨유 수비수들의 시선이 한 차례 케빈 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역시 이만한 거리까지 왔다면 침투 패스를 시도하겠지!
그런 동일한 생각을 떠올리며 케빈을 따라 시선을 옮겼던 것인데.
케빈은 그런 맨유 수비수들을 향해 되려 미소를 보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내가 아니야.”
“···?!”
뻐엉!
케빈에게 쏠렸던 시선들이 짧은 파공음을 좇아 다시 이동했다.
파이널 써드에서 패널티 박스 아크 바깥 쪽까지 이동한 재혁.
그의 발밑에 있던 공은 패스가 아닌 곧게 뻗어 나가는 슈팅이 되어 날기 시작한 것이다.
50미터가 넘는 드리블 이후 시도한 기습 슈팅에 맨유 선수들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날아가는 공의 궤적만 쫓아 눈동자를 굴렸고, 데 헤아 또한 케빈에게 한 차례 넘겼던 시선을 황급히 회수한 후 공을 쫓아 몸을 날렸다.
그렇게 공을 향해 팔을 쭉 펼친 데 헤아는 손가락 끝에 무언가 닿는 감각은 느낄 수 있었으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슈팅이 시작한 여행의 종착점이 어딘지를 말이다.
철썩!
짧은 소리.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던 그물망이 흔들리는 소리가 짧게 한 차례 울리자 그동안 숨을 참고 기다렸던 관중들은 마침내 함성을 내뱉으며 기뻐했고, 맨시티의 선수들 또한 곧장 재혁을 향해 달려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오늘 에티하드 경기장이라는 무대에서 단연 돋보인 주역을 환영하기 위한 함성 소리였으며, 믿지 못할 활약을 펼친 동료를 축하는 함성 소리, 그리고 이번 시즌을 결정 짓는 마침표를 찍은 이를 위한 함성 소리였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해당 경기를 TV를 통해 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또한 기쁨에 자리에서 일어나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큰 박수로 재혁을 축하했다.
“두 골 차이야, 두 골 차이! 이거만 잘 지키면 이제 우승이야!”
“재혁아 힘내라! 힘들겠지만 힘내!”
“진짜 이거 지면 바로 전화해서 따질 거야! 그러니까 끝까지 뛰어!”
그렇게 남은 시간에 맞춰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 사람들은 경기 종료 3분이 남은 시점에선 조마조마했는지 양손을 모은 채로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았고, 마침내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다시 한 번 참았던 기쁨을 표현하며 서로를 부등켜 안았다.
2018년 4월.
맨체스터 시티는 재혁의 두 골로 이번 시즌 두 번째 트로피를 캐비넷에 추가하는데 성공했다.
< 155. 두 번째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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