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4화 (154/225)
  • < 154. 지배하다 >

    “젠장할, 저 자리가 열려 있었나?”

    재혁의 패스가 뻗어나가는 방향을 확인한 마티치가 잇소리를 흘렸다.

    분명 어떤 방위로도 공이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묘하게도 재혁은 실바의 패스를 받았고, 또 그 공을 전방으로 연결하며 케빈에게 공을 건네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저게 연결됐는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마티치는 미간을 모았으나, 생각을 길게 끌 수 없었다.

    투웅!

    재혁의 패스를 받은 케빈이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그대로 속도를 붙여 드리블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측면에서 골대가 위치한 중앙을 향해 빠른 속도로 최단거리 라인을 그리며 안쪽으로 침투를 시작한 케빈.

    분명 평소의 맨유였다면 케빈의 정직한 드리블을 무리 없이 중간에 차단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실바를 막겠다고 너무 라인을 위로 올렸다. 망할,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수비의 1차벽이 되어야 할 3선 라인을 한계까지 올렸던 상황.

    덕분에 거칠 것이 없었던 케빈은 최단 거리로 잘라들어갈 수 있는 루트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마티치를 포함한 맨유의 선수들은 그런 케빈의 뒤를 쫓는 선택 밖에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후욱!”

    케빈의 앞을 필 존스가 늦지 않게 등장해 막았다는 것일까.

    잔뜩 붉어진 얼굴로 케빈의 앞을 가로 막는데 성공한 필 존스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케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고, 상대가 거리를 두는 선택을 취한 탓에 아무래도 쉽게 뚫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 케빈은 속도를 죽인 후 발바닥으로 공을 몸 안쪽으로 끌어 당기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는 사이 케빈의 뒤를 잡는데 성공한 마티치는 곧바로 케빈의 왼쪽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부딪치면서 몸싸움을 걸었고, 필 존스에 이어 마티치까지 상대하게 된 케빈은 눈썹을 찌푸린 뒤 몸 쪽으로 당겼던 공을 계속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압박을 버텨냈다.

    그런 케빈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부딪치던 마티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래도 전방 압박이 효과가 있긴 했군.’

    재혁의 빠른 패스가 케빈까지 연결된 것은 분명 좋은 플레이었으나, 후방 깊숙한 곳에서부터 플레이가 시작된 탓에 맨체스터 시티는 케빈의 드리블 속도에 맞춘 빠른 역습 전환을 시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케빈은 어쩔 수 없이 공을 지키기 위해 드리블을 멈추고 몸 안쪽으로 당겨야만 했으리라.

    이 말인즉, 아무리 위험 지역까지 상대가 공을 가지고 올라와봐야 그 플레이를 함께 맞춰줄 선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맨유의 입장에선 굳이  상대가 시도할 역습에 대한 걱정을 깊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으니.

    ‘이 플레이는 여기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투웅!

    과연 그의 예상처럼 쉽사리 공간을 찾을 수 없었던 케빈은 가지고 있던 공을 앞으로 보내는 게 아닌 뒤로 보내는 선택을 골랐고, 공이 뒤로 빠지기 무섭게 마티치는 재차 목소리를 높이며 선수들을 이끌었다.

    “공이 빠졌다! 다시 라인 올려서 압박한다! 전부 움직여!”

    공을 중심으로 다시 진영을 짜는 양 팀.

    그 사이에서 마티치는 미소를 띤 얼굴로 공을 쫓아 움직이는 다리에 속도를 붙였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큰 문제였던 후방 백업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그는 자신의 플레이에 확신과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곧장 행동으로 나타났다.

    다시금 공이 맨체스터 시티의 두 명의 센터백 사이를 돌다가 다비드 실바에게 이어지자 이번에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나서 실바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마티치를 앞에 둔 실바는 눈썹을 모으더니 입술을 씹었고, 실바의 표정이 굳는 것을 살피면서 마티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자신이 실바의 앞을 가로 막는 순간, 양 옆으론 예정대로 포그바와 마타가 자리를 지키고 서면서 상대를 가둘 그물망을 확실하게 펼치는데 성공했으니 실바의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거기에 이어···.

    ‘이번엔 절대 틈을 주지 않겠다!’

    콰악, 콱!

    실바와 거리를 좁히기 무섭게 바짝 달라붙어 공을 빼앗기 위해 끊임 없이 몸싸움까지 걸기 시작했으니.

    실바의 입장에선 사방이 꽉 막혀 있는 지금이 그 어떤 때보다 답답할 게 분명할 터.

    어떻게든 압박에서 공을 지키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실바를 내려보면서 마티치는 굵어지는 땀방울처럼 짙어지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고, 곧 찾아올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며 숨을 모았다.

    공을 지키는 선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남지 않았을 때 취하게 되는 최후의 선택.

    상대에게서 등을 지고 후방에 패스할 곳을 찾는, 바로 그 순간을 말이다.

    그 타이밍만 확실히 포착하고 공을 빼내는데 성공한다면 즉시 역습으로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선취점을 얻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니.

    그러니까···.

    ‘얼른 등을 보여라!’

    머릿속으로 실바가 등을 돌리는 모션을 취하길 기다리던 마티치는 차분하게 호흡을 다졌고, 그런 마티치를 앞에 두고 있던 실바는 더 이상 남은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에 공을 천천히 끌어 당기다가···.

    사악, 툭.

    “···?!”

    당기던 공을 그대로 앞으로 밀어내는 짧은 패스를 시도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멀리 나가지도 않을 아주 짧은 패스를 말이다.

    그런 실바의 예상치 못 한 패스에 마티치는 얼굴을 굳혔다.

    분명 실바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을 것인데, 여기서 저런 짧은 패스를 시도한다고?

    ‘대체 누구를 보고 패스를 건넨 거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생각을 거듭하며 큼직한 물음표가 자리한 눈동자를 공을 따라 이동시키던 마티치.

    그는 공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

    자세를 낮추면서 공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한 선수를 발견한 뒤 헛숨을 삼켰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여리한 체격의 동양인 선수.

    최재혁.

    대체 언제 도착했는지, 재혁은 자신들이 펼쳐놓은 그물망 사이에 바늘이 통과할 정도로 얇은 공간을 만들고선 실바의 패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또 너냐?!’

    포그바도, 그리고 마타도 마티치가 놀란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재혁이 공을 받는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혀를 차면서 서둘러 몸을 돌렸다.

    녀석이 저곳에서 공을 받는다는 것은···.

    ‘아까처럼 전방을 향해 다이렉트 패스를 찔러주겠다는 의미겠지!’

    뻐엉!

    ‘역시!’

    리시브와 동시에 180도 턴을 돌면서 패스까지 넘기는데 성공한 재혁.

    그런 재혁의 발끝을 떠나 이동하는 공을 좇으면서 시선을 옮기던 맨유의 선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저 패턴은 모두가 머릿속으로 숙지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모두 수비에 망설임이 없던 것이다.

    그렇게 허공을 떠돌던 공은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케빈의 앞에 떨어졌고, 드리블을 시작하려는 케빈을 보면서 마티치가 소리쳤다.

    “이번엔 안 늦었어!”

    재혁이 공을 잡는 순간부터 뛰기 시작했던 마티치.

    그는 이번 만큼은 늦지 않고 제자리에 도착해 1차 수비벽이 되는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할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케빈의 앞을 막아서면서 웃었다.

    이걸로 너희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막혔다.

    이제 무얼 할테냐?

    그런 승리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고, 공을 밟고 서서 마티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케빈은···.

    “아니. 늦었어.”

    툭!

    “···?!”

    마티치의 것보다 더욱 밝은 미소를 한 차례 선보인 후 짧게 공을 밀었다.

    실바에 이어 케빈까지 연이어 짧은 패스라고?

    마티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재차 공을 좇아 시선을 옮겼고, 이번에 또 다시 공을 받고 있는 선수···.

    “최···, 최재혁?!”

    재혁을 발견하기 무섭게 헛숨을 삼키면서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여기서까지 케빈의 패스를 저 꼬마놈이 받아내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런 마티치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중계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해설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최재혁 선수 또한 공이 발을 떠나기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죠. 재빠른 판단과 예측력이 맨유 선수들을 당황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격보단 수비 숫자가 더 많은 상황입니다. 맨유 선수들도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을 취하지 않고 공간을 침착하게 지키고 있어요.”

    “맞습니다. 수적인 우위를 지키려는 모습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정적인 수비 자세는 오히려 지금의 맨유에게는 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이게 해가 된다고요?”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이더니 되물었다.

    “수적으로 우위를 점한 수비가 맨마킹 이후 여유 인력을 통해 공간을 지키는 건 지극히 정석적인 수비가 아니던가요?”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너무 정석적이기 때문에 문제인 거죠. 만약 맨유가 현재 번리라던가, 사우스햄턴 같은 팀을 상대하고 있다면 저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건 과르디올라의 맨시티에요. ‘정석’이라는 기준을 벗어난 팀이란 소리죠.”

    “···!”

    “과연 현 상황에서 최재혁 선수가 이번엔 어떤 판단을 내릴지 기대되는 가운데···, 마침내 공을 찼습니다!”

    뻐엉!

    끊어차는 임팩트로 공의 밑둥을 깎아 차는 로빙 패스.

    높게 떠올라 느릿하게 날아가는 패스가 선수들의 머리 위를 가르며 이동했고, 해당 패스가 향하는 장소를 확인한 맨유의 선수들은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분주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톱이다! 톱을 향해 찌르는 패스야!”

    “아구에로를 확실히 마크해! 일단 거기만 확실히 막으면 된다!”

    ‘결국 그 고생을 해서 시도한 패스가 저거냐? 최재혁!’

    둥실, 가볍게 떠올라 이동하는 공을 보면서 마티치는 어이가 없었다.

    2선까지 올라와 공격을 전개하는 움직임까지는 분명 위협적이었는데, 거기서 마지막에 선택한 플레이가 ‘뻥축구’라니.

    아무리 적이라지만 마지막에 맥이 턱 빠지는 시도에 마티치는 실소를 흘린 것이다.

    거기에 저런 무식한 타겟 플레이를 아구에로를 목표로 실행하다니.

    팀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최악 중의 최악의 선택.

    결국 이런 선택을 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긴 패스를 보내지, 왜 굳이 마지막에 와서 지켜보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었는가?

    공이 뜨는 순간 그 즉시 아구에로의 뒤에 바짝 붙어 있는 필 존스, 그리고 그 백업을 위해 스몰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마티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이번 공격도 완벽히 막았다.

    그런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아니, 스치고 지나가려 했다.

    만약 저 공이 모두의 예상처럼 아구에로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더라면 말이다.

    “···어?”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낀 것은 아구에로의 뒤에 붙어 있던 필 존스였다.

    분명 아구에로는 자신의 앞에 서있었고, 등을 진 채로 공을 받기 위해 몸싸움을 걸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공은···.

    ‘왜···, 나를 넘어갈 것 같지?’

    이쯤되면 슬슬 떨어질 기미를 보여야 하거늘.

    공은 여전히 허공에 떠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 차린 필 존스가 고함을 질렀다.

    “아···, 아니야! 저건 그냥 로빙 패스가 아니야! 스, 스몰링! 뒤로 더 물러나!”

    “뭐? 갑자기 왜···.”

    그런 필 존스의 고함을 뒤늦게 들은 스몰링이 눈썹을 찌푸렸다.

    필 존스를 백업해주기 위해선 지금 자신의 위치가 가장 좋은 자리이거늘.

    여기서 뒤로 더 물러나라니.

    도저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스몰링의 눈가엔 주름이 잡혔던 것이고, 그 주름진 눈으로 필 존스에 이어 이동 중인 공을 눈에 담았던 스몰링은 뒤늦게 필 존스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비명을 흘렸다.

    “정회전 로빙 스루?!”

    이동하는 거리가 늘어날수록 역으로 돌아가는 회전 때문에 속도가 죽으면서 비거리가 짧아지는 역회전 로빙 패스와 반대되는 성향인 정회전 로빙 스루 패스.

    스몰링은 재혁이 시도한 패스의 성질이 무엇인지를 뒤늦게 파악하고 헛숨을 삼킨 것이다.

    왜냐면 저 패스가 노린 타겟은 아구에로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아구에로가 서있는 곳보다 좀 더 뒤에 떨어질 장소인···.

    터엉!

    “나이스 패스다!”

    스털링이 침투하는 박스 안을 정확히 노리고 떨어지는 패스였던 것이다.

    모두가 아구에로라는 미끼를 물어준 덕에 너무도 쉽게 박스 안으로 들어서면서 공을 트래핑하는데 성공한 스털링은 공이 바닥에 닿기 무섭게 그대로 밀고 들어가면서 드리블을 시도했고, 그런 스털링을 보면서 맨유의 수비수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완벽하게 당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맨시티가 계획했던 바에 완벽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실점한 건 아니야!’

    한 템포 늦었지만 멀어지는 스털링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한 발렌시아가 숨을 거칠게 토해내면서 전력을 다해 달렸다.

    분명 치명적인 돌파를 허용한 건 사실이나, 아직 공은 골망에 걸친 게 아니었다.

    그들의 뒤엔 리그 최고의 수문장이라 불리는 데 헤아가 버텨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데 헤아는 스털링의 움직임을 재빨리 읽고 반응하고 있던 것이다.

    낮은 자세로 슬라이딩을 시도하면서 활짝 펼친 상체론 가능한 슈팅 각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는 데 헤아.

    뒤에서 그런 데 헤아와 스털링의 충돌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발렌시아는 더더욱 다리에 힘을 주어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저런 데 헤아의 수비를 뚫고 스털링이 득점을 성공시키려면, 그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데 헤아의 키를 넘기는 로빙 슈팅 밖엔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난 최대한 빨리 골라인에 붙어서 공을 막으면 된다! 그러면 분명 막을 수 있어!’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졌던 발렌시아는 곧 충돌하려는 스털링과 데 헤아의 옆을 지나쳤고, 그와 동시에 몸을 돌리면서 공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

    만약 그의 눈에 공이 보였다면 말이다.

    분명 스털링의 발밑에 공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거늘.

    사라진 공의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발렌시아는 서둘러 공을 찾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뻐엉!

    곧 짧은 소리와 함께 이동을 시작한 공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흐려진 낯빛을 잔뜩 구겼다.

    최재혁.

    어떻게 된 것인지 이번에 또 다시 공은 재혁의 발끝을 따라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있었고, 마치 컴퍼스로 잰 것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공은 그대로 골대 안쪽에 박힌 뒤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이게 현실인가, 혹은 귀신에게 홀린 것인가.

    그런 혼란에 잠시 빠졌던 발렌시아는 사방에서 터지는 함성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바닥에 떨구었다.

    1대0.

    그토록 빼앗기기 싫었던, 오늘 만큼은 꼭 가져갈 것이라 다짐했던 선취점을 결국 맨체스터 시티에게 빼앗기는 순간이었다.

    ***

    “이건···, 마법입니다! 에티하드 경기장에서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맨시티의 득점 과정을 지켜보던 캐스터는 놀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

    도저히 다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일이 지금 막 그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 캐스터의 말에 해설자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마법이라뇨. 이건 그런 허무맹랑한 게 아닙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야죠.”

    “혀, 현실적인 설명이요?”

    되묻는 캐스터를 향해 이번엔 고개를 끄덕인 해설자.

    그는 진지한 얼굴로 득점을 축하하는 맨시티 선수들 사이에 섞여 있는 재혁을 찾으면서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가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한 겁니다. 다름 아닌 최재혁 선수의 설계를 통해서 말입니다.”

    < 154. 지배하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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