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3화 (153/225)

< 153. 한계의 한계 >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찾아왔을 때, 분식집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쉬기 위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45분간 꼼짝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다리에 피가 쏠렸던 사람들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애연가들은 따로 뭉쳐 밖으로 나가 뭉게구름을 입으로 뿜었다.

그 외에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고···.

“오빠···, 괜찮을까요?”

자리에 그대로 앉아 광고가 나오고 있는 TV 화면을 바라보며 재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축구는 잘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재혁을 따라 다니며 경기장들을 들락이던 재희였다.

모든 걸 알진 못했지만, 적어도 현재 흐름이 어떻게 흐르는지 정도는 그녀도 눈치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재희의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중얼거림을 받아준 것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차범수였다.

차범수는 손에 쥐고 있던 물컵을 기울여 입술을 축인 후 짧은 시간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개인적인 활약이라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지만, 축구는 팀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이니. 그 부분에 있어선 현재까진 맨체스터 시티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제법 밀리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겠지. 분명 맨시티의 홈일텐데. 이건 약간 의외로군.”

“흐잉···. 그럼 오빠네 팀이 지는 거에요?”

“그건 아직 모르는 거야.”

재희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차범수.

그는 손에 쥐고 있는 컵을 가볍게 흔들면서 찰랑이는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끊었던 말을 조심스레 이었다.

“축구란 골대에 공을 넣는 팀이 이기는 스포츠니까. 분위기라던가, 흐름에서 지고 있다고 한들. 그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세계 최고의 팀이라도 지거나 비길 수 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 아직 45분이나 더 남아 있는 현 상황에서 결과에 대해 단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후후. 그러니까 네가 현역일 땐 나보다 좋은 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선 나보다 하수인거다, 범수야.”

“갑자기 감독 경력이 여기서 왜 튀어 나와?”

대화 중간 툭 끼어든 현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감독을 맡고 있는 임종철의 목소리에 차범수는 당황해 되물었고, 그런 차범수를 향해 종철은 젓가락으로 집은 파전을 입에 넣어 꿀꺽 삼킨 후 빙그레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오늘 경기는 맨시티가 이길 거다. 99% 확실해.”

“호오. 과연 국가대표 감독님이시라 나와는 보는 눈이 다르다 이건가? 한 번 고수의 고견이 듣고 싶어지는 걸? 그보다 99% 확실하다면 남은 1%의 가정은 뭐야?”

“그건 혹시라도 재혁이 부상을 당해 교체를 당해 경기를 이기지 못 할 확률이다. 그러니까 재혁이 경기장에 남아 있다면 오늘 경기는 맨시티의 승리가 확정적이라는 소리지.”

“···.”

계속 이어지는 차범수의 질문에 대답을 남긴 종철은 연신 음식들을 향해 젓가락을 날렸고, 종철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차범수는 기묘하게 꺾인 눈썹을 검지로 긁적이며 다시금 물었다.

“오늘 우리가 모두 재혁이를 응원하려고 모인 건 맞지만, 그건 좀 과한 해석이 아닐까? 마치 재혁이 한 명이 있고 없고에 따라 맨시티의 경기력에도 큰 영향을 받는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 알다시피 지금 맨체스터 시티는···.”

“스쿼드에 포함된 모든 선수들이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에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올 시즌 연승 기록도 수립하고, 독보적인 승점을 쌓으면서 조기 우승 확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 팀이지.”

“···잘 알고 있네. 아무튼 재혁이 대단한 건 맞지만, 그런 팀이 선수 한 명 때문에 경기력이 휘둘릴 정도라는 건···.”

“안타깝겠지만 그런 팀이 선수 한 명 때문에 팀 전체의 경기력이 휘둘릴 정도야. 적어도 오늘 만큼은 말이지. 그리고 그 증거로 뚜렷하게 나타난 게 바로 전반전에 보여준 경기력이야.”

“네 말처럼 오늘 맨시티의 경기력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이야기 하기엔···.”

쯧쯧, 차범수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혀를 찬 종철은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 놓으면서 답했다.

“친구. 아직도 모르겠어? 한 선수 때문에 경기력이 휘둘린 건 재혁 때문이 아니야. 다비드 실바 때문이지.”

“···!”

다비드 실바의 부진.

그제야 종철이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차범수가 짧게 탄식을 흘렸고, 그런 친구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종철은 다시 한 번 말라가는 입술을 적신 후 고개를 살며시 들며 말을 계속 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재혁의 존재가 중요한 거야. 실바를 대신해 키를 잡아야 하는 역할을 소화해야 하니까.”

“흐음···, 확실히 그렇겠군. 게다가 최근까지도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 했을 실바의 경기 감각을 고려하면 후반전 내에 모든 걸 회복하긴 힘들 거고···.”

“이래저래 맨시티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다행이라면···, 오늘 재혁이가 경기장 위에 그와 함께 올라가 있다는 것이겠군. 과르디올라 감독도 참 운이 좋았어. 2천만 파운드라는 헐값에 재혁이를 데려갔으니 말야.”

다시 한 번 재혁의 이름으로 운을 뗀 종철.

그는 희미하지만 의미가 확실한, 믿음에 찬 미소를 떠올리면서 웃었고, 친구의 미소를 확인하면서 차범수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재차 떠오르는 의문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재혁이가 좋다곤 하지만 그 믿음은 어째 정도가 심한데?”

“그렇게 보여?”

“그래. 종교적인 믿음과 비슷해 보일 정도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마치 모든 해결이 재혁에게 있다는 것처럼 들리거든.”

“맞아. 정확하게 봤어. 오늘 경기의 해결책은 결국 재혁이로 귀결될 테니까.”

“?!”

가벼운 농담을 섞어 말했던 차범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설마하니 농담으로 던진 말에 이리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해 올 줄이야.

계속해서 쉬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종철에 적잖이 놀란 차범수는 그저 동그랗게 뜬 눈을 크게 껌뻑이고 있었고, 그런 친구를 향해 종철은 씨익 환하게 미소를 떠올려 보이면서 말했다.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무리뉴 감독과 과르디올라 감독, 현재 두 감독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나?”

“글쎄. 머리숱?”

“그 차이도 물론 있지만, 더 큰 차이가 지금 딱 한 가지가 있지. 바로···, 무리뉴 감독은 재혁이라는 선수를 기용해본 경험이 없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재혁이라는 선수가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 그저 적으로서 상대를 분석한 경험 밖에 없어. 데이터에 의존하는 그런 경험말이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건 분명 큰 차이가 될 게 분명해.”

“큰 차이가 될거라고?”

“솔직히 말할까? 내 선수인데도 그 한계를 모르는데 그걸 상대팀이 분석으로 모두 알아낸다고? 말도 안 될 소리지.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과르디올라 감독과 같은 입장에 서있는 경험자의 말이니까 믿어도 좋다고.”

스윽, 하프 타임이 끝나고 다시 경기장의 모습이 TV에 나오자 시선을 돌리며 턱을 매만진 종철은 머릿속으로 몇 가지 장면들을 떠올렸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재혁이 보여주었던 나이를 믿기 힘들었던 순간들과 국가대표로 나와 아직도 자신은 더 성장할 것이라며 보여준 활약들을 말이다.

그때의 활약들을 기억하고 있는 종철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에 펼쳤던 경기를 토대로 전략을 준비했다면 무리뉴 감독은 오늘 경기에서 분명 패배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꿀꺽, 제법 말을 많이 떠든 탓에 물을 삼키면서 마른 목을 축인 종철은 후반전이 시작될 기미를 보이자 자세를 고쳐 앉았고, 자리를 떠났던 사람들도 하나둘 의자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면서 이어질 경기를 기다렸다.

차범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뒤에 두었던 의자를 쭉 당겼고···.

“그래서···, 방금 한 그 말의 의미는 너랑 과르디올라 감독이 동급이라고?”

“그게 그렇게 되나?”

“결국 자기 칭찬이 하고 싶었던 거면서 능청 떨기는.”

은근한 어조로 종철의 말꼬리를 괜스레 물고 늘어졌다.

그런 차범수의 장난스런 말에 종철은 그저 희미하게 웃어보일 뿐이었고, 차범수 또한 종철이 그런 것처럼 물컵을 한 차례 기울인 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나도 오늘 보고 싶군. 과연 무리뉴 감독이 생각한 ‘한계’에서 재혁이 또 어떤 모습으로 그 한계를 넘어설지 말야.”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경기가 끝나려면 앞으로 45분이 남았으니까! 그 안엔 보여줄 거예요!”

지금까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희가 불끈, 양손에 주먹을 쥐어 보이면서 말했고, 느닷없이 목소리를 낸 어린 소녀를 향해 시선을 옮기게 된 두 사람은 이어지는 재희의 말에 소녀를 따라 웃었다.

그 후, 세 사람의 테이블의 웃음 소리가 그친 것은 마침내 후반전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 소리가 크게 울렸을 때였다.

***

‘이길 수 있다!’

투웅!

후반전이 시작 되고, 중원에서 플레이를 이어가던 마티치의 입가에 마침내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승리를 확신한다는 그런 미소.

오늘 경기에선 확실히 자신들이 우위에 서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떠올리게 된 미소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흘러가는 상황이 전반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을 지도 모르겠으나, 경기를 직접 뛰고 있는 선수들은 피부로 달라진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그건 필드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무리뉴 감독에게도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는지 마티치와 비슷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공략은 성공적이다. 이대로 경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분명 균형은 우리 쪽으로 기울 것이다.’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무리뉴 감독이 가장 크게 신경 썼던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맨체스터 시티가 3선에서 마음대로 경기를 운영하도록 두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다비드 실바의 고립이었다.

다른 10명을 막아도 1명의 다비드 실바를 막지 못하면 맨체스터 시티에게 질 것이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그가 계획했던 두 가지는 맨시티 공략의 핵심이었고, 적어도 오늘 경기에서 만큼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바 특유의 창의성과 탈압박을 통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적어도 지금까진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제대로 된 활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맨시티의 플레이를 보면서 무리뉴 감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턱을 끌어 당긴 후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저 녀석이 너무 조용해. 불안할 정도로 말이지···.’

다비드 실바와 함께 3선과 2선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중원을 조율하고 있는 또 다른 선수, 88번 최재혁.

무리뉴 감독은 재혁에 대해 생각을 떠올리자 불편한 생각이 다시금 머릿속에 차오르는 것에 입술을 씹은 후 숨을 토해냈다.

사실 경계 대상으로 따지자면 재혁도 다비드 실바에 버금 갈 정도로 위험한 존재였기에 초반부터 강한 견제를 선수들에게 주문했던 것이거늘.

아무리 견제가 강했다고 한들, 아직까지 조용하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했기에 무리뉴 감독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던 것이다.

그렇게 쭉 재혁을 살피던 무리뉴 감독은 이내 시선을 거둔 후 주름을 풀었다.

하프 타임 동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마티치와 산체스, 그리고 마타에게 혹시라도 재혁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최우선적으로 압박을 넣으라 주문해두었으니.

이제 후반 10분이 경과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직까지도 활약이 미미하다면 분명 자신의 주문이 통하고 있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자 무리뉴 감독은 서서히 재혁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맨시티의 패스가 모이는 핵심 줄기는 다비드 실바였으니.

이대로 계속해서 실바를 고립시키는데 성공한다면 경기는 분명 자신들의 손에 떨어질게 분명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지.’

“포그바!”

벤치에 앉아 있던 무리뉴 감독이 터치 라인으로 걸어나간 뒤 포그바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한창 경기장 위에서 경기에 집중하고 있던 포그바는 무리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맞췄다.

무리뉴 감독은 포그바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그 즉시 양손을 앞으로 밀어내는 수신호를 보냈고, 그 신호의 의미를 바로 파악한 포그바는 고개를 짧게 끄덕인 후 조심스레 포지션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그바가 포지션에 변화를 주자 마티치를 포함한 다른 미드필더들의 진영도 조금씩 변화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마침내 승부수를 띄웠군요.”

“승부수요?”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자의 짧은 한 마디에 캐스터가 고개를 갸웃이며 되물었다.

분명 무언가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그 변화가 직관적이지 못 했기에 캐스터가 물었던 것이고, 해설자는 그런 캐스터의 질문에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중원 압박을 핵심으로 삼아 경기를 진행하던 맨유였어요. 그만큼 미드필더 진영에 쌓여 있는 볼륨감은 두터웠지만, 그 두께가 전방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었죠. 왜냐면 그들의 첫 번째 목적은 어디까지나 맨시티의 패스 줄기를 자르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포그바 선수가 전방으로 이동을 시작했고, 그에 따라 다른 선수들의 위치도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좌우 측면을 보신다면 그 변화가 더 확실히 눈에 보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애슐리 영 선수와 발렌시아 선수의 중심도 앞으로 서서히 쏠리고 있네요.”

“다비드 실바 선수가 활약하지 못하고 있고, 그 탓에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도 100% 발휘가 되지 않고 있어요. 이건···, 맨체스터 시티에게 있어서 첫 번째 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점유율이 높고, 패스 횟수가 상대 팀보다 많다 한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이 골라인을 통과하느냐, 마느냐이다.

이대로 계속해서 맨체스터 시티가 소극적인 플레이를 반복한다면 결국 흐름은 완벽하게 맨유의 쪽으로 넘어갈 것이고, 해설자는 그 부분을 우려하며 한 마디를 남긴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 경기 내용도 점점 맨유의 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니.

첫 번째 위기가 충분히 ‘마지막’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던 중···.

‘기회다!’

파악, 파악!

전방에서 끊임없이 압박을 시도하던 맨유 선수들의 눈동자가 빛을 뿜었다.

오타멘디와 콤파니, 두 선수 사이를 돌던 공이 다비드 실바를 향해 구르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침 다비드 실바의 근처엔 산체스와 포그바, 두 선수가 자리하고 있던 상황.

어쩌면 분기점이 될 지도 모를 순간을 포착한 선수들은 재빨리 다리에 힘을 주어 달렸고, 그 외 다른 선수들도 혹시라도 패스가 이루어질지 모를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두 선수들과 함께 전방 압박에 참여했다.

평소의 실바라면 절대로 이같은 압박에 쉬이 공을 빼앗기지 않겠지만···.

‘오늘의 실바라면 가능할 지도···!’

누구보다 먼저 다비드 실바의 등 뒤에 바짝 따라붙은 산체스가 호흡을 토해내며 자세를 낮췄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공을 받기 전에 뒤를 점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압박해 상대가 턴하는 것만 막아도 플레이는 자연히 자신들의 쪽으로 기울게 분명했으니.

마침내 모든게 계획했던대로 이어진다는 것에 미소를 떠올린 것이다.

산체스에 이어 포그바도 백업 위치를 잡으면서 허리를 숙였고, 그 외 지역에도 마타와 린가드, 그리고 최전방 공격수인 루카쿠까지 전방 압박에 참여하면서 다비드 실바의 가능한 패스각을 모두 조여내는데 성공했다.

이걸로 드디어 흐름을 잡았다!

맨유 선수들의 뇌리엔 모두 같은 생각이 한 차례 스치고 지나갔고, 어떤 선택을 취해든 반드시 막아주겠다, 라는 집념과 함께 눈동자에 담아둔 불꽃을 태우던 맨유의 선수들은···.

토옹.

“···?!”

다비드 실바의 발끝에 닿았던 공이 기묘하게 떠오르는 것을 확인하면서 커다란 물음표를 얼굴에 떠올렸다.

실바를 공을 잡으면서 턴을 돌지도, 압박에서 벗어나는 드리블을 시도하지도, 혹은 전방을 향해 패스를 이어주는 선택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공이 발밑에 오기 무섭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을 향해 패스를 찔렀다.

미들도 아니고, 윙백을 이용하기 위한 패스도 아닌···.

‘거기서 후방으로 빠지는 패스라고? 대체 누굴 보고 저런 패스를···, 헛?!’

굴러가는 공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마티치의 두눈이 커졌다.

예상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저런 패스를 대체 누가 받는가, 라는 의문을 떠올리던 그에게 저 ‘이해가 되지 않는’ 패스를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선수가 공이 향하는 장소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88번, 최재혁.

그는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있는 곳으로 공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실바의 패스를 받기 무섭게 가뿐하게 발을 뻗어 터치를 성공 시켰고···.

뻐엉!

터치를 성공시키기 무섭게 그 즉시 전방으로 향하는 패스를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재혁의 패스를 확인한 맨유의 선수들은 표정에 드러나게 된 다급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비드 실바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펼쳐 놓았던 그물망이 재혁이라는 이레귤러로 인해 모두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재혁의 패스가 떨어지는 공간에 위치해 있는 케빈이 너무도 쉽게 공을 잡는데 성공하자 맨유 선수들의 다급함은 배가 되었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 나서는 순간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지.”

재혁의 플레이로 인해 모든 것이 단번에 뒤집어지자 과르디올라 감독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마침내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한계를 넘는 한계의 플레이.

세상 어느 감독도 예상하지 못할 플레이가 마침내 필드 위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153. 한계의 한계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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