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2화 (152/225)
  • < 152. 즉위식 >

    공이 흐르는 방향과 속도를 그대로 살려 이동하는 턴.

    그만큼 굴러오는 공과 함께 주변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다면 리스크가 컸을 턴을 망설임 없이 시전한 재혁을 보면서 린가드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경기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고, 재혁의 플레이도 이제 겨우 빌드업을 시작했을 뿐이었으니까.

    그걸 알고 있었기에 맨유의 다른 선수들은 하체를 바짝 긴장시키면서 재혁을 노려보았다.

    과연 재혁이 이후 어떤 선택지를 택할지, 확실히 확인한 뒤 움직이겠다는 듯 다들 하나가 되어 재혁의 발끝만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그런 맨유 선수들을 상대로 재혁은···.

    퉁!

    “···!”

    가볍게 공을 발등으로 밀며 움직이는 기본적인 드리블을 선보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공과 함께 현재 라인을 위로 올리는 드리블.

    그런 재혁의 판단이 확인되자 맨유 선수들은 또 한 번 분주하게 진영을 모았고, 그 중심에 선 마티치는 한 차례 미간을 모으더니 고개를 작게 주억였다.

    ‘아직 경기 초반인 만큼, 평범한 선택을 취한 것인가.’

    린가드를 벗겨내는 순간 재혁은 그의 앞에 열린 공간을 이용해 한 차례 플레이를 만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전개에 힘을 실어주거나, 중장거리 패스로 빈 틈을 찌르는 것 같은 기회를 살리는 플레이들을 말이다. 과거 몇 번이고 당했던 바로 그 패턴들이었다.

    하지만 재혁은 전과 달리 굳이 조급하게 그 순간에 선택을 내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택했고, 그 의미는 경기가 아직 초반인 만큼 흐름과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리라.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의 ‘초반’은 경기장 위에 흐르는 공기 마저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흐름을 넘겨주게 된다면···.

    ‘숨을 쉬는 것 조차도 놈들의 허락을 받아야 할 상황이 오게 된다. 그때 당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상대의 흐름을 기다려줄 이유가 없지.’

    “마타, 포그바!”

    생각을 끝낸 마티치는 바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두 선수들을 불렀고, 자신을 중심으로 양측면에 위치해 있는 두 선수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마티치는 둘을 향해 손을 끌어 모으는 짧은 동작을 보여주었다.

    그 행동의 의미를 바로 파악한 두 선수들 또한 마티치와 비슷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촘촘한 패스를 시전할 적을 위해 준비할 촘촘한 그물망 수비 진영.

    분위기를 가져가기 위해 짧은 패스를 반복하며 예열을 준비할 맨시티를 상대로 마티치는 싸움을 멈추지 않기 위한 수비 진영을 구축하기 위해 둘을 부른 것이다.

    예전의 자신들이었다면 상대의 패스 플레이에 바보가 될 위험이 있었지만, 위건이 보여준 맨체스터 시티가 노출한 ‘약점’을 노린다면 분명 승산은 자신들에게도 있었기에 마티치의 부름에 호응한 두 선수들의 얼굴에도 자신감이란 빛이 넘실거렸고, 당장 재혁이 다가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마티치도 고개를 작게 끄덕인 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와라.”

    퉁!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과연 예상처럼 재혁의 발에 붙어 있던 공이 빠르게 구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재혁이 공을 건넨 선수는 그와 함께 라인을 맞추고 있던 케빈이었고, 재혁의 패스를 건네 받은 케빈은 공을 터치하기 무섭게 다음 선수를 찾아 패스를 연결했다.

    그렇게 케빈, 스털링, 그리고 아구에로에 이어 다시 재혁에게 공이 돌아오는 순간을 지켜보던 마티치의 두눈이 빛을 뿜었다.

    바로 이 타이밍.

    공이 한 차례 반원을 그리며 돌고 다시 재혁으로 돌아오는 바로 이 타이밍 이후 이어질 플레이가 마치 아로새겨지듯 그의 눈앞에 떠오른 것에 마티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아마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네가 원하는 플레이를 시작하겠지!’

    린가드를 제쳤을 때와 달리, 더 이상 후방에서만 공을 소유하고 있을 이유가 맨체스터 시티에겐 없었다.

    특히 재혁이라면 당장이라도 공을 전방으로 전개하고 싶어 좀이 쑤실 터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찾아올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리라.

    그리고 그 말인즉···!

    ‘이 순간만 막으면 분명 기회가 넘어 온다!’

    콱!

    마티치가 몸의 축이 되어 주고 있던 오른발을 잔디 깊숙하게 박아넣은 후 그대로 체중을 실어 달리기에 속도를 붙였다.

    그렇게 왼발, 그리고 또 오른발.

    두세 걸음만에 순식간에 재혁과의 거리를 좁혀버린 마티치는 공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냉정하게 식은 두 눈으로 재혁과 공을 동시에 노려보았다.

    아마 이쯤 달려왔다면···, 아니. 재혁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이 달리려고 마음 먹는 그 순간부터 변화를 잡아내고 나름의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 터다.

    이건 상대에 대한 과대 평가가 아니다.

    시즌 초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맞부딪친 재혁은 그 믿기 힘든 플레이들을 몇 번이고 실제로 보여주었기에 마티치는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처럼···.

    ‘···놈의 눈이 빛났다!’

    재혁과 시선이 한 차례 마주쳤던 마티치가 굳은 얼굴로 시선을 상대의 발끝에 모았다.

    자 과연 어떤 선택을 보여줄 것이냐?

    ‘적어도 나는 마음을 정했다!’

    공을 받고 패스를 찌르기 위해 공의 각도를 조율하는 그 순간을 노려서 태클.

    실패한다고 해도 적어도 상대가 패스를 찌를 타이밍을 뺏을 수 있으니, 분명 상대의 흐름을 끊는데 주효한 플레이가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파울을 범하게 되겠지만···.

    ‘네가 상대라면 그것도 이득이야!’

    촤르륵!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디딤발을 공중으로 내던지고 잔디 결을 따라 몸을 날리는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마티치와 그런 마티치를 앞에 두고 공을 받게 된 재혁.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고 있던 중계진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핏대를 바짝 세워 소리쳤다.

    자칫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플레이가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으니,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해설자는 초 단위로 급변하는 상황을 무어라 쉬이 설명하기 어려웠기에 신음만 잔뜩 흘리다가···.

    “아!”

    이내 탄성을 흘리면서 두 눈을 부릅 떴다.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장면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설자와 같은 장면을 보았던 캐스터도 헛숨을 삼키더니 크게 놀란 얼굴로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버, 벗겨냈습니다! 최재혁 선수, 마티치 선수의 날아오는 태클을 그대로 공과 함께 떠오르면서 태클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습니다!”

    “놀라운 플레입니다! 공을 그대로 멈춰 세웠다면 태클에 뺏겼고, 패스를 시도한다면 공과 함께 잘렸을 순간이었는데. 최재혁 선수, 아주 재치있게 상황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역시 넌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야!’

    마티치의 태클을 공중에서 벗어나고, 천천히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고 있는 재혁을 노려보면서 포그바가 심지를 불태웠다.

    설마했는데, 저걸 피할 줄이야.

    기가 막혔다.

    정말 설마 하는 마음에 마티치의 백업을 준비했던 것이거늘.

    그 설마가 현실로 찾아온 것에 포그바는 무어라 할 말을 잃었으나, 일단은 준비한 것을 해야 했으니 천천히 재혁의 뒤로 다가가면서 숨을 모았고,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한 재혁과 그의 발에 닿아 있는 공을 찾으면서···.

    “···?!”

    포그바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떨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진 탓이었다.

    포그바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비명을 질렀다.

    “고, 공이 어디로 간거야?!”

    재혁과 함께 허공에 떠올라 있어야 할 공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포그바의 비명에 대답을 해준 것은 그와 함께 재혁에게 압박을 넣기 위해 달려왔던 마타였다.

    “공중에서 공을 그대로 뒤꿈치로 차서 넘겼어!”

    “공중에서 차서 넘겼다고? 그럼 공은···.”

    “최재혁 선수, 순간적인 센스를 발휘한 엄청난 패스! 그대로 공은 그와 곁에 서있던 다비드 실바 선수를 향해 날아갑니다!”

    “망할! 누가 막아봐!”

    “라인! 뒷라인 커버해!”

    “기회다! 맨유 중원이 완전히 망가졌어!”

    “달린다! 바로 찔러줘!”

    재혁의 플레이에 경기장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재치에 속은 맨유의 선수들은 어떻게든 수비에 나서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혼란 속에 기회가 나올 것이라 예상한 맨시티의 선수들 또한 소리를 내지르면서 공간을 찾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중계진들도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열을 올렸다.

    재혁에 이어 다비드 실바가 과연 어떤 슈퍼 플레이를 보여줄지, 크게 기대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공은 천천히 떨어졌고···.

    터엉.

    “?!”

    다비드 실바의 발을 그대로 지나쳐 잔디 위를 굴렀다.

    그 순간 모두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캐스터가 당황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최, 최재혁 선수의 패스가 다비드 실바 선수에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트래핑 실수였을까요?”

    “글쎄요. 일단 지나친 공을 쫓아가 다시 소유권을 찾아오긴 했습니다만, 이미 늦었죠. 패스를 보낼 타이밍을 완전히 잃었어요. 결국 공을 전방이 아닌 후방으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된 다비드 실바 선수. 표정을 보니 본인도 제법 당황한 것 같습니다.”

    “선수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입장이었던 저희들도 당황스러웠죠. 다른 선수도 아닌 다비드 실바 선수가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요?”

    “어쩌면 혹시나 했던 생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혹시나 했던 생각이요?”

    “다비드 실바 선수의 실전 부족으로 인한 급격한 기량 저하.”

    “···!”

    “겨우 한 번의 플레이로 판단하긴 힘듭니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실바의 실수로 타이밍을 잃자,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 맨시티의 패스들이 이리저리 중구난방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설자는 이번 일의 원인이 된 실바를 눈동자에 담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와는 다른 의미입니다만, 이번 경기 또한 다비드 실바 선수의 발에 결과가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

    “···.”

    까드득, 까득.

    전반 45분이 지나고 찾아온 하프 타임.

    락커룸에 돌아온 실바는 잔뜩 굳은 얼굴로 땅을 내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45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거늘.

    실바는 진심으로 45분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마엔 땀이 흐르고 있고, 축구화도 잔디로 더러운 것을 보면 분명 경기를 뛴 것이 맞았는데···.

    으득, 입술을 깨물고서 얼굴을 구긴 실바는 그대로 손을 올려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늘 경기를 잘하고 돌아오겠다고, 꼭 우승을 확정 짓고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왔는데.

    이런 못난 꼴을 경기장에서 보이고 말다니.

    몸을 숨길 수 있는 쥐구멍이라도 보인다면 그곳에 당장 고개를 틀어박고 숨고 싶은 기분에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실바는 계속해서 시선을 땅에 박아둔 채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왜 그러고 있어요? 목 안 말라요? 수분은 미리 섭취해 둬야죠. 나중에 마시면 다 토해요.”

    “···재혁?”

    곁에 다가온 재혁의 목소리가 그의 귓바퀴를 맴돌았다.

    실바는 슬쩍 고개를 들어 재혁의 얼굴을 살폈다가 이내 다시 숙였다.

    도저히 그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45분이라는 시간 동안 대체 몇 번의 실수를 했을까.

    기억이 나질 않기에 오히려 더 부끄러웠던 실바는 이어지는 재혁의 말에도 묵묵부답이었고, 그런 실바를 가만히 지켜보던 재혁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뺨을 긁적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 없어요?”

    “···.”

    “흐음, 그럼 안되는데. 그러면 저까지 자신이 없어진단 말예요.”

    “···너는 왜?”

    재혁의 말에 드디어 간신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낸 실바.

    다만 아직까지도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고, 떨림 또한 전혀 잦아들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재혁은 미소를 띤 얼굴로 말했다.

    “그야 제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흔들린다면 당연히 저도 그러지 않겠어요? 실바는 이곳에서 제가 진심으로 의지하는 몇 안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라고요.”

    “···!”

    “그러니까 적어도 제 앞에선 자신 없어도 있는 척, 연기라도 해줘요. 그래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리그 우승 트로피. 하루라도 빨리 확정 지어야 이래저래 편하지 않겠어요? 스페인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많잖아요? 좋은 소식은 하루라도 빨리 전해줘야죠. 그래야 편해지니까.”

    “하지만 오늘 난···.”

    “흠. 아직도 부족해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때요?”

    재혁의 이어지는 말에도 여전히 말끝이 흐린 실바의 표정은 처음과 똑같이 어두웠고, 그런 실바를 빤히 바라보던 재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해결책을 제시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실바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재혁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실바와 눈을 마주치면서 재혁은 싱긋 웃은 뒤 말했다.

    “그렇게 자신이 못 미더우면 그냥 믿지 마세요. 아무리 고민해도 생기지 않을 믿음이라면, 차라리 버리는게 낫죠.”

    “뭐? 차라리 믿지 말라고? 대체 그게 무슨···.”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못 믿겠다면 그냥 믿지 말아요. 대신···.”

    되묻는 실바를 향해 검지를 펼쳐 보인 재혁은 여전한 미소를 그를 향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대신 실바는 저를 믿어줘요.”

    “너를 믿어 달라고?”

    “네. 자신을 못 믿겠다면 나를 믿어요. 그리고 공을 줘요. 어떤 상황에서든, 실바의 발밑에 공이 있다면 무조건 저를 향해 그 공을 보내주는 거예요.”

    “뭐? 하지만···.”

    “제가 방금 말했죠? 자신을 못 믿겠으면 저를 믿어달라고. 그런데 벌써 제 말에 토를 다는 건가요?”

    “!”

    “물론 패스라는게 무조권이라는 전제가 말이 안되겠죠. 하지만 저를 믿어봐요. 제가 어떻게든 공을 받을 위치에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꼭 제게 패스를 주세요.”

    “···.”

    “자, 저는 분명히 말했어요. 이제 선택은 실바의 몫이에요. 어떻게 할래요? 계속 아무 것도 믿지 못한 채로 경기장에 다시 올라갈래요? 아니면 저를 믿어 볼래요?”

    재혁의 말을 들으면서 실바는 멍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피식 실소를 흘렸다.

    무조건 자신을 믿던지, 혹은 말던지라니.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이 단순 무식한 선택지가 어디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런 선택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건네다니.

    실바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리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늘 하루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입가를 매만지던 실바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금 재혁과 시선을 맞췄다.

    자신에게 오늘 처음으로 웃음을 선사해준 친구이자···.

    “그래. 그럼 믿는다.”

    오늘 하루 버팀목이 되어줄 친구를 향해서 말이다.

    그런 실바를 향해 재혁 또한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눈을 돌려 시계를 찾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45분.

    이 45분이 지나면···.

    ‘나는 두 번째 왕관을 쓴다.’

    생애 두 번째 타이틀.

    그 달콤한 꿈이 현실로 찾아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재혁은 복도를 따라 다시 경기장으로 향해 걸었고, 벌써 자리한 선수들을 한 차례 둘러본 재혁은 조그맣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반전, 아니···.

    “즉위식 시작이다.”

    < 152. 즉위식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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