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51화 (151/225)
  • < 151. 블루문 >

    블루문, 너는 내가 홀로 서있는 걸 보았겠지.

    가슴에 품을 꿈도 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하는 나를 말야.

    블루문,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겠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걸 들었으니 말야.

    그러던 중 드디어 내게 다가온 거야. 이제야 내 품에 널 안을 수 있게 된거야.

    이제야 사랑해 달라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너는 금빛으로 변해 있었지.

    블루문,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마침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나 자신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짝, 짝, 짝, 짝!

    경기장에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하자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은 모두 박수소리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가를 부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던,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던 ‘금빛’을 향한 노래를 말이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금빛 왕관을 위해 뛰게 될 선수들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양손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머플러를 펼쳤고···.

    “정말 축제날 같군.”

    누군가에겐 장관이었을, 하지만 본인에겐 감흥보단 입맛이 쓴 장면을 지켜보면서 무리뉴 감독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씹었다.

    “그리고 우리는 은쟁반에 올라갈 돼지목 같고 말이야.”

    신이 있다면 운명을 가지고 정말 제대로 장난을 쳐놓았다.

    다른 경기도 아닌, 리그 우승 확정을 앞두고 자신들을 맨체스터 시티의 상대로 낙점해놓다니 말이다.

    덕분에 오늘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시티즌’들 뿐이었고, 완전한 적지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음에 무리뉴 감독은 떫은 미소를 흘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한 말로 맨유의 팬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들의 안방에서 이웃 사촌이 우승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경기장을 찾지 않은 것도 이해는 갔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없을 줄이야.

    “이게 신뢰를 잃었다는 증거인가.”

    반 년사이 부쩍 늘어난 이마의 주름을 긁적이던 무리뉴 감독은 슬쩍 주변을 훑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얼마 되지 않는 맨유 서포터즈를 바라본 후 살며서 고개를 꾸벅였다.

    오늘의 쇼를 위해 힘들게 발걸음 해준 이들을 향한 예의이며, 절대로 상대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풀어나가지 않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목례, 그리고···.

    ‘오늘은 기필코 막는다.’

    그동안 자신의 목을 죄던 상대에 대한 작별을 고하는 의식을 행동으로 보이며 무리뉴 감독이 두 사람을 눈에 담으며 숨을 토했다.

    우승은 막을 수 없겠지만, 그게 오늘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각오가 깃든 눈빛이 반짝였다.

    ***

    “뒤통수가 괜히 따가운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뒤통수의 시선?”

    재혁의 말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나무랐다.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내 시선은 안 느껴지나? 재혁, 제대로 집중해. 곧 경기 시작이야. 우린 뒤가 아니라 앞을 봐야 해. 1등의 시선은 항상 앞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물론이죠. 잘 알고 있어요. 그냥 뭐가 좀 느껴진다는 거였죠, 크게 신경 쓰던 건 아니라구요.”

    “그럼 다행이군.”

    경기가 시작되기 전, 벤치 근처에 서서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을 듣고 있던 재혁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의 답에 피식 웃어보이더니 표정을 고친 후 끊었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둘이 나누던 대화는 오늘 경기를 위한 이야기였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진지한 목소리로 재혁에게 말을 하며 침을 삼켰다.

    “그럼 다시 한 번 설명하겠다. 오늘 맨유는 우리와 비슷한 전술, 그리고 전략에 터프한 중원 싸움을 목적으로 나올 거다. 그 이유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위건과의 경기. 그 날 경기를 보고 아마 ‘약점’을 파악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그렇지. 그리고 실제로 틀린 방법도 아니야. 아마 여태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팀들 중, 위건이 아마 가장 ‘방법’에 있어서는 근접하게 따라왔었으니. 무리뉴 감독이 그날 경기를 보고 어떤 식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면 분명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이 찾아올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건엔 안토루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나요?”

    “재혁. 오늘 맨유의 선발 명단에 적힌 이름은 산체와 루카쿠, 그리고 마타다. 네가 안토루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저들은 절대 ‘현재’ 안토루에 밀리는 수준의 선수들이 아니야.”

    “···!”

    “그러니 이번 만큼은 확실히 준비해야 했다. 그 점 잊지 말고, 오늘 중원 싸움에 핵심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을 다시 한 번 짚겠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재혁 또한 표정을 굳힌 뒤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고,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둘은 곧 서로를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재혁은 경기장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벤치를 향해서 걸으며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경기.

    우승을 위한 마지막 한 경기라는 생각을 동시에 떠올리며 그렇게 쭉 걸어가던 재혁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짧은 탄성을 흘리면서 멀어지려는 감독을 불렀다.

    “안토루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요 감독님.”

    “···?”

    “저는 안토루를 높게 평가한게 아니에요. 오히려 누구보다 안토루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는 사람일 걸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현재 영국에 도착한’ 안토루라면···, 아마 분명 다를 겁니다. 저곳에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 선수들관 말이죠.”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챠박, 그렇게 잔디를 밟으며 경기장 위로 떠나는 재혁의 뒷모습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시 등을 돌려 벤치에 앉은 후 턱을 쓸어내며 웃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걱정이 됐는데, 오히려 동기부여가 된건가. 어쩌면 오늘 경기는 그 어떤 날보다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있는 경기가 될지도 모르겠군.”

    ***

    “아직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닌데. 벌써 우승팀이 납셨군, 납셨어.

    “솔직히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잖아? 오늘 경기만 이기면 자력 우승 확정이라고. 아마 나도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똑같이 행동했을 걸?”

    “그 말 농담이지?”

    경기가 시작되기 전, 주심이 올라와 휘슬을 불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맨유의 선수들은 잠시간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린가드의 짧은 한 마디에 다들 어처구니 없다는 듯 그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다른 상황도 아니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 상대 팀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니.

    하물며 상대가 다른 클럽도 아닌 맨체스터 시티이거늘.

    가장 먼저 린가드에게 되물었던 포그바는 잔뜩 굳은 얼굴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둘 사이에 서있던 마타는 린가드에게 다시 한 번 차분한 어조로 방금 한 말의 진의를 물었다.

    곧 경기가 시작될 순간이었으니, 팀원들간의 불필요한 분쟁과 오해는 괜히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불안 요소가 될 수 있었기에 어떻게든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출렁이는 감정선을 다잡으려 한 것이다.

    그런 마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린가드는 태연한 얼굴로 입을 계속 움직였다.

    “앞으로 한 번만 이기면 남은 경기 상관 없이 우승이라고. 그런 홈팀을 응원하는 팬들이나, 경기를 앞둔 선수들이나. 당연히 시작될 축제를 기다리면서 카운트 다운을 외치고 싶겠지. 솔직히 나도 같은 상황에 놓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린가드, 너 진짜로···!”

    “포그바. 말은 끝까지 들어. 같은 상황에 놓이고 싶다곤 했지만 나는 그걸 맨체스터 시티가 아닌, 바로 이곳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루고 싶은 거라고.”

    “···!”

    “그리고 지금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또 궁금한거지. 과연 그 꿈이 오늘 좌절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라는 호기심. 그게 계속 내 속을 긁으면서 자극하고 있어. 그러니까···.”

    고개를 반대편 필드로 돌리면서 씨익, 웃어보인 린가드는 한껏 끌어올린 입꼬리를 손으로 꾸욱 누르면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을 하나둘 살핀 뒤 말을 이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상대를 확실히 부숴보자고.”

    ***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면서 드디어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맨유의 선수들이 무섭게 달려드네요. 관중석이 홈팬들로 가득찬 경기장이지만, 기죽지 않고 기세를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오늘 상대 팀에게 자력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넘겨주고 싶지 않겠죠.”

    “하지만 그건 모두 경기 결과에 달린 일이지 않겠습니까? 과연 어떻게 진행이 될 지 지켜보도록 하지요. 아, 말씀드리던 중 경기가 시작된지 겨우 20초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벌써 파울이 나왔어요!”

    “린가드 선수의 파울이었죠? 최재혁 선수가 공을 소유하기 무섭게 달려 들어 태클로 공과 함께 그대로 최재혁 선수의 밸런스를 무너뜨렸습니다. 카드는 나올 것 같지 않지만, 경기장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술렁일만한 장면이었습니다. 심판도 구두로 경고를 주는 군요.”

    “더비에, 우승 결정전에, 아주 피곤한 타이틀이 여럿 붙어 있으니. 혹시 모를 상황에 심판도 대비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만큼 잃을 게 많은 쪽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지!’

    주심이 건네는 말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린가드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말처럼 오늘 경기에 걸린 타이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얻게 될 모든 타이틀은 모두 맨체스터 시티가 이기게 된다면 얻게 될 것들이다.

    자신들이 가져갈 것이 아니란 소리였고, 그 말인즉 조금만 비틀어 생각한다면 비록 상대의 홈경기였지만 결국 자신들보다 상대 팀이 더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의미였던 것이다.

    당장 락커룸에서도 무리뉴 감독이 그것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승리를 통해 얻게 될 기쁨은 상대가 더 많으니, 그걸 부숴버리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 기쁨을 확실히 부시기 위해선···.

    ‘네가 문제였지.’

    아직까지도 잔디에 엉덩이를 붙이고 고개를 갸웃이고 있는 맨시티의 88번 선수, 최재혁.

    지금까지 만났을 때 모두 이 녀석을 막지 못해 무너졌다는 것을 린가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고, 오늘 경기에서 만큼은 철저히 마크해 부서줄 것을 다짐한 린가드는 슬며시 상체를 숙인 후 재혁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괜찮지?”

    “아, 예.”

    “이제 시작이니까 90분간 서로 힘내자고.”

    툭툭, 그렇게 말을 끝내고 웃는 얼굴로 재혁에게서 등을 돌린 린가드는 자리를 찾아 이동했고, 멀어지는 린가드를 멍하니 바라보던 재혁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며 목을 푼 후···.

    “서로 힘내자는 것 치곤 태클에 너무 힘이 들어간 거 아닌가?”

    린가드에게 채인 정강이를 한 차례 확인하면서 중얼거렸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일단은 모두 접어둔 재혁.

    그는 멈춘 경기를 재개하기 위해 공을 찼고, 다시 시작된 경기 상황에서도 거칠게 몸을 부딪쳐오는 린가드를 곁눈으로 확인하면서 슬쩍 미간을 모았다.

    ‘이제 보니 서로 힘내자는 건 이걸 의미하는 거였냐?!’

    ‘앞으로 남은 시간이 85분! 과연 85분간 네가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 한 번 보자고!’

    뚫으려는 자를 상대로 어떻게든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린가드.

    그런 린가드의 거친 플레이를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재혁의 이마에 한 차례 핏줄이 곤두섰다.

    상대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직접 경기장에서 이런 상황을 경험을 하게 되니 썩 유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린가드는 그런 재혁의 기분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압박을 넣으면서 공이 없는 순간에도 그를 괴롭혔고, 재혁의 발걸음이 한 차례 움직임을 멈추자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떠올렸다.

    상대의 감정이 흔들리고 있다.

    그 흐릿하지만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읽으면서 적어도 승리의 추가 오늘 만큼은 자신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맨시티의 진영을 돌던 공이 다시 재혁에게 향했고, 린가드의 눈끝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경기 중 선수가 절대 태클을 피하지 못 하는 순간들 중 하나인 공을 받는 순간.

    그 순간을 노려 이번에 또 다시 재혁을 바닥에 뒹굴게 만들어주겠다, 라는 생각이 그대로 그의 눈동자를 타고서 빛을 뿜은 것이다.

    마침 태클을 넣을 각도도 충분한 상황.

    생각과 계산은 머릿속에 잔뜩 쌓였지만, 린가드는 그 모든 것을 간단하게 축약하는 태클을 날리기 위해 그대로 몸을 날렸고···.

    “당연히 또 그럴 줄 알았다.”

    사악!

    “?!”

    재혁은 그런 린가드의 태클을 마치 허물 벗듯,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가뿐하게 넘어서면서 굴러오는 공과 함께 사라졌다.

    다만 재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잔상을 훑을 수 밖에 없었던 린가드는 거칠게 잔디 위를 굴렀고, 처음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던 린가드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곤 부릅 뜬 눈으로 멀어지는 재혁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노···, 노터치 턴이라고? 3선 미드필더면서 거기서 터치 없이 턴을 돌아?! 대체 저 자식의 간은 뭘로 만들어 진거야?!”

    < 151. 블루문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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