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48화 (148/225)
  • < 148. Points with Choi >

    우승을 완성시켜줄 퍼즐의 마지막 조각.

    사실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혹시라도 빈 구멍이 생긴다면 간단히 때울 목적이라거나, 다가올 먼 미래를 위해 사놓은 여유 파츠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경기를 치를 수록 재혁은 그들의 생각이 처음부터 잘못 되었음을 실력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여론이 있다면 그에 반하는 여론도 있기 마련.

    비록 그 크기는 작았으나 몇몇 사람들은 또렷한 목소리로 역시 아직은 재혁에 대해 평가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 그리고 새로운 얼굴이 등장한 것은 분명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아직 시즌이 완전히 끝이 난 게 아닙니다. 최재혁 선수에 관한 평가는 앞으로 남은 3개월이 모두 지났을 때 내려도 늦지 않죠.]

    [맞는 말입니다. 어린 선수들이 반짝 빛을 냈다가 사그라진 일들은 축구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꾸준히 있었던 일이에요. 당장 다음 경기부터 필드가 아니라 벤치에 머물러도 이상할 게 전혀 없죠.]

    [하지만 그 모든 선수들이 ‘다비드 실바’와 비등한 실력을 선보여준 건 아니죠.]

    [다비드 실바요?]

    [여기서 갑자기 실바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가뜩이나 개인사로 힘들 선수인데 말예요.]

    [그야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최재혁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다비드 실바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죠.]

    그 사이에 끼어든 한 유저.

    아이디부터가 ‘맨체스터 이스 블루’라는 맨시티를 상징하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유저는 재혁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내놓는 사람들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말을 이었다.

    [지난 시즌까지도, 그 전 시즌까지도, 그리고 이번 시즌에서도. 다비드 실바는 맨시티 중원의 핵이면서 모든 플레이를 지도할 줄 아는 선수였어요. 케빈 데 브루위너라던가, 페르난지뉴가 좋은 선수인 것은 맞으나, 다비드 실바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니었죠. 하지만 그 일을 현재 스쿼드에서 가장 어린 선수인 최재혁 선수가 해낸 겁니다.]

    [그 일을 최재혁 선수가 해냈다니. 대체 무얼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근거라면 확실하죠. 당장 이번 시즌 기록과 지난 시즌 기록들을 비교해보세요. 그럼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기록이라고 해봐야···.]

    [사실 다비드 실바 선수의 공격 포인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크게 뛰어난 게 아니잖아요? 물론 기록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긴 하지만, 스털링과 비교해도 많이 모자란 게 사실인데요.]

    [맞아요. 기록으로 비교하라는 것 자체가 이미 ‘맨블루’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한 반박이라구요.]

    허술한 틈이 보이자 사람들은 기세를 올려 꼬집었고, 계속해서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다비드 실바의 실력은 분명 흠잡을 구석이 없었지만, 공격 포인트라는 기록적인 측면에선 다른 선수들에 비해 눈에 뚜렷하게 보이던 바가 크지 않았기에 다들 맨블루라는 유저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맨블루는···.

    [다들 일차원적으로 선수를 보고 계셨군요. 뭐, 저도 옛날까진 그랬으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짧고 강력한 한 마디를 남기면서 잠시 정체되어 있던 어그로를 확실히 끌어 올렸고, 커뮤니티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일차원적이라뇨. 기록으로 비교하라면서요? 그렇다면 공격 포인트보다 확실한 기록이 또 어디 있습니까?]

    [반박을 당하시니 계속 말을 돌리시려고 하시네요. 아니면 아닌 거지, 변명만 늘어 놓는게 오히려 더 추한 거 아닙니까?]

    [일단 아이디부터가 맨체스터 이스 블루인 것부터 문제가 있는 분이셨어요. 맘에 들지 않으니 아이디부터 얼른 바꾸시길.]

    [전 제 아이디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것도 아닙니다. 정말 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기록.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였으니까요.]

    [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 기록···?]

    [그런게 뭐 따로 있습니까? 있다면 당연히 공격 포인트죠.]

    [재밌게도 따로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이번에 새로 배운 부분에선 말이죠.]

    공격 포인트가 아니라 팀에 도움이 된 기록이 따로 있다니.

    맨블루가 쓴 댓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눈동자엔 한 차례 의심이 떠올랐으나, 이내 서서히 또 다른 감정이란 물감이 물에 풀린 것처럼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호기심.

    대체 어떤 생각으로 저리 자신에 찬 단어들로 글을 작성하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궁금했던 것이다.

    한 차례 호기심이 떠오르니 곧 궁금해졌고, 사람들은 이어질 맨블루의 댓글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동안 조용하던 중···, 마침내 맨블루가 따로 새 글을 작성해 올렸고, 해당 글을 발견한 사람들 중 한 명인 맨체스터 일간지의 기자, 도우니뎁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입을 쩍 벌린곤 중얼거렸다.

    “미···, 미친. 이 사람 정체가 뭐야···?”

    도우니뎁 기자는 새로 올라온 글에 담겨 있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보면서 크게 뜬 눈을 껌뻑였다.

    글은 과연 맨블루라는 사람이 계속 언급하던 것처럼 기록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알려진 공격 포인트라던가 패스 성공률, 혹은 찬스 메이킹 같은 기록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뛴 경기당 획득한 평균 포인트 기록.

    맨블루라는 유저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별로 시즌당 뛴 경기와 함께 그 선수가 뛰면서 평균적으로 획득한 포인트 양을 기록 지표로 준비해 글을 올린 것이다.

    게다가 그 양이 한정적이지 않고 참가 대회까지 따로 나눠 지표로 갈라 놓을 정도로 방대했기에 도우니뎁 기자는 한동안 이 기록이 제대로 된 자료가 맞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확인을 거치다가 머지 않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맨블루라는 유저는 평범한 팬이 아닌, ‘진짜’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도우니뎁 기자를 포함한 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맨블루는 해당 글에 댓글을 추가하면서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기록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도움을 드리자면 PTG는 선수가 뛴 경기들의 총합 숫자이고, PEPG는 선수가 평균적으로 획득한 점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따로 추가한 사항들이 있지만, 일단은 저 두 가지만 알고 계신다면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말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 겁니다.]

    [먼저 선수들을 정렬한 기준은 PEPG가 높은 선수들을 가장 위로, 낮은 선수들을 아래로 놓은 겁니다. 이렇게만 나누었을 때 확 눈에 띄는 선수들이 몇 명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 PTG 점수를 추가한다면 기록은 또 바뀌게 됩니다. 단순히 몇 경기를 뛰지 않고 포인트를 획득한 선수들이 걸러지면서 평균적으로 꾸준하게 점수를 따온 선수들이 상위에 남게 되는 거죠.]

    [하지만 전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맨체스터 시티와 다비드 실바라는 연결 고리를 확실히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따로 추가한 카테고리가 ‘PWD.’ 다비드 실바와 함께 했을 때 선수들의 평균 점수와 함께 하지 않았을 때의 평균 점수를 따로 구분해놓은 카테고리죠. 그리고 이 카테고리를 보게 되신다면 다들 바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비드 실바와 함께 했을 때 선수들의 포인트 획득량이 최소 0.5점에서 최대 1.2점까지 증가한다는 것을요.]

    댓글을 쭉 읽어내려가던 도우니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서 기록지를 계속 살폈고, 충격에 동공을 떨었다.

    그동안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던 부분을 맨블루라는 사람은 지표로 구성해 현 맨체스터 시티에서 다비드 실바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또렷하게 자료로 준비해준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선수들을 정리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런 상념에 빠졌던 도우니뎁은 맨블루의 댓글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바짝 마른 목을 축인 후 얼른 남은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언급하고 싶은건 다비드 실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죠. 이제부터 주목할 부분은 최재혁 선수에 관한 기록입니다. 실바와 다르게 안타깝지만 최재혁 선수의 경우 총합 경기 횟수가 굉장히 적은 상황이죠. 그렇기 때문에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신빙성과 정확도가 제법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만약 최재혁 선수를 다비드 실바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찾게 된다면 어떨까요?]

    [최재혁 선수와 다비드 실바를 직접 비교해요?]

    [만약 그게 된다면···.]

    ‘···다비드 실바의 기록을 가지고 최재혁에 관한 스텟을 보충할 수 있는 자료가 탄생하게 된다.’

    꿀꺽.

    숨까지 참아가며 글을 읽던 도우니뎁 기자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사실 처음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소리를 하나, 라는 호기심에 읽던 글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당장 그의 눈앞에 적혀 있는 글들이, 자료들이, 그리고 기록들이 설명해주고 있던 것이다.

    지금 그가 읽고 있는 건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맨블루는 사람들을 향해 또렷한 문체로 마지막 댓글을 적었다.

    [보신 것처럼 최재혁 선수는 단순히 다비드 실바와 비슷한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몇몇 부분에선 실바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죠. 그리고 그 증거로 맨체스터 시티는 실바가 출장하지 않은 경기에서도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치면서 우승 경쟁을, 아니. 이젠 거의 확정을 위해 달리는 중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연 최재혁 선수의 능력을 계속 깎아 내릴 수 있을까요? 전 단순히 맨시티의 팬이기 때문이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맨체스터에 찾아온 작은 마술사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죠.]

    “···정말 대단하군.”

    도우니뎁 기자가 짧게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다.

    길었던 글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길기만 한 글이 아니었다.

    단순 커뮤니티에 남을 만한 글이 아닌, 어느 스포츠 학과의 논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글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우니뎁 기자는 글을 모두 읽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바로 마우스를 손에 쥐었고, 맨블루라는 유저에게 개인 쪽지를 보냈다.

    쪽지의 제목과 내용은 간단했다.

    오늘 올려준 자료를 토대로 칼럼을 작성하고 싶다. 그리고 신문과 인터넷에 올려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쪽지를 작성하기 무섭게 전송을 누른 도우니뎁 기자는 초조한 얼굴로 초침을 확인하며 답장을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한 것에 반짝이는 쪽지함을 확인하고 반색하며 얼른 커서를 눌렀다.

    쪽지 내용을 살핀 도우니뎁 기자는 잠시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바로 답장을 보냈고, 머지 않아 또 다시 도착한 답장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집었다.

    그렇게 전화번호를 찍어누른 후 통화 버튼을 누른 도우니뎁 기자는 상대가 전화를 받자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맨블루 유저님 맞으십니까?”

    [네. 제가 맨블루입니다.]

    “쪽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런데···, 다시 확인 좀 시켜주시겠습니까?”

    [적은 내용 그대롭니다. 그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때, 저 혼자 일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제 독단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혼자 하신게 아니라니···. 그럼 어디서 도움을 받은 건가요? 혹시 기관이라던가, 허락 절차가 복잡한 곳에서···.”

    [아뇨. 그런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이라는 말도 애매하죠.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온 기자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준비하게 된 자료였거든요.]

    “한국에서 온 기자님이요?”

    유저와의 대화가 뜻밖의 존재로 이어지고 있는 것에 도우니뎁 기자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고, 맨블루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사람이었죠. 한국에서 오직 최재혁 선수와 관련된 기사와 이야기를 짜내기 위해 맨체스터에 왔다고 말예요. 제가 준비한 자료긴 하지만, 그 기자님의 아이디어도 적지 않게 섞여 있으니. 그 분과 한 번 대화를 먼저 나눠보시는게 좋을 겁니다.]

    ***

    철컥, 문소리를 내면서 회의실 안으로 재혁이 들어갔고, 오늘 인터뷰를 위해 희의실 안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간만에 뵙는 것 같아요, 이상민 기자님.”

    < 148. Points with Choi > 끝

    ⓒ 권주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