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45화 (145/225)
  • < 145. 반 년의 차이 >

    무너진다, 혹은 부서진다.

    맨체스터 시티는 현재 해당 단어들이 설명하는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됨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선취점을 빼앗기더니, 이어지는 플레이에서는 치명적인 실수로 패널티 킥까지 허용하면서 두 번째 실점마저 상대에게 헌납하고 만 것이다.

    평소의 맨체스터 시티답지 않게 급격하게 팀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팬들은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질렀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어떻게든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쉽게도 남은 시간동안 상황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전반전 45분은 완벽하게 흐름을 탄 위건의 독무대로 진행이 되었고, 전반전 내내 상대의 공격에 시달렸던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혼이 빠진 얼굴로 락커룸을 향해 걸었다.

    그런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인터넷으로 경기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허탈한 내용의 메시지들을 반복적으로 보냈다.

    [이게 뭐임? 위건한테 털리는 맨체스터 시티라니. 실화임?]

    [무패우승이 날아간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FA컵에서 위건한테 밀린다니. ㅋㅋㅋ.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경기장 분위기 싸해지는게 여기까지 보이네요.]

    [믿기지가 않네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판이 흔들린 걸까요?]

    “아무래도 경험이겠죠.”

    채팅 내용을 쭉 읽어보던 남성, 인터넷 플랫폼에서 온라인 생중계를 담당하는 인터넷 중계인으로 유명한 브로드캐스터 ‘메날두’는 아쉽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따로 이적 소식들을 모아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한 메날두.

    그는 오늘 경기에서 자신이 본 맨체스터 시티의 문제점을 가감없이 지적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후방을 지켜주는 선수들을 보세요. 풀백인 진첸코는 아직 성장해야 할 어린 선수이고, 다닐루는 분명 경험은 있지만 이번 시즌 이적을 한 신입생이죠. 오타멘디와 스톤스는 제법 맨체스터 시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골키퍼인 에데르손 역시 개인 능력은 좋지만 팀 지배력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역시 고개가 갸웃여지는 선수죠. 그렇다 보니 평소와 다르게 진행된 현 상황에 쉽게 흔들리고 만 겁니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경기장에 없으니까요.”

    [콤파니가 부상으로 빠지고, 다비드 실바까지 출장을 못 했으니.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키를 잡아줄 사람이 없는 거군요.]

    [케빈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리더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부족하긴 하죠.]

    [하지만 페르난지뉴가 있잖아요? 페르난지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한 것과 충족하는 건 비슷하지만 분명 다릅니다.”

    메날두는 어느 시청자의 의견에 곧장 반박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었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게다가 페르난지뉴 선수가 오늘 경기까지 출장하면서 혹사당한 기록을 살펴본다면 사실 그는 지금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에요. 오히려 기댈 선수가 필요한 사람이죠. 꼭 필요하다면 버팀목은 되어줄 수 있겠지만, 모두를 받쳐줄 주춧돌은 되기 힘들다는 겁니다.”

    [···어렵네요.]

    [하지만 또 한 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해요. 그동안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하던 팀들이 라인을 모두 깊게 내리는 선택을 한 적이 많잖아요? 그런데 오늘 위건이 맞불을 놓고 선취점까지 빼앗았으니. 흔들리만도 하죠.]

    [그래도 좀 실망이네요. 맨체스터 시티라면 첫 번째 골을 먹혔을 때 바로 진열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예요.]

    [저도요. 뭔가, 리그 최강자라는 포스가 생각만큼 짙지 않다는 그런 느낌?]

    메날두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채팅을 올렸다.

    사실 새벽에 진행되는 경기임에도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였기에 나름 기대하면서 기다렸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무기력한 경기력이라니.

    차라리 잘 걸 그랬다며, 다들 그렇게 아쉬움에 찬 목소리로 채팅을 나누고 있을 때···.

    “그래도 흠···, 자세히 살펴본다면 맨체스터 시티가 아주 심각하게 무너진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전반전 동안 제대로 된 공격 기회도 못 만들고, 그대로 두드려 맞아서 2대0인 상태인데 아주 심각한 건 아니라니요?]

    [메날두님. 지금 시티 팬들한테 병주고 이제 희망고문을 시키려는 건가요?]

    “아뇨. 전 진심인데요. 지금 전반전이 끝나면서 웹사이트에 통계 관련 기록이 올라왔는데, 꽤 재밌는 게 보여서요.”

    [통계 기록이요?]

    [뭐가요? 우리도 보여줘요.]

    메날두의 말에 관심을 보인 시청자들은 혼자만 보지 말고 같이 보자며 떠들었고, 메날두는 곧 방송 화면에 그가 살펴보고 있던 웹사이트를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오늘 경기를 뛴 선수들의 스텟을 정리해서 올려주는 웹사이트에요. 저도 자료를 살피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죠. 실시간으로 모든 상황이 기록되는 건 아니지만, 45분이 지나면 그동안 정리한 자료들이 보기 쉽게 정리 되어서 사이트에 올라와요. 일단 크게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경기 중인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는지,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는 지를 알 수 있죠. 그 부분을 먼저 살핀다면···.”

    [와,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은 죄다 빨갛네. 볼빨간 사춘기임?]

    [위에 분 드립 진짜 핵노잼이네요; 그런데 오늘 경기력이 역대 최악이긴 하네요. 제대로 활약한 선수가 없으니···. 응? 그래도 초록색인 선수가 한 명 있긴 하네요?]

    “네. 딱 한 명 있죠. 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꾸준히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선수가 딱 한 명 말예요.”

    맨체스터 시티의 11명의 선수들 중 유일하게 빨간색이 아닌 선수.

    그 선수의 이름 위로 마우스 커서를 올린 메날두는 왼쪽 버튼을 눌렀고, 곧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방금까지 전체적인 기록을 보여주던 화면엔 곧 한 선수의 세세한 기록이 떠올랐고, 메날두는 그 선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의 중원 중 한 축을 맡고 있는 최재혁 선수. 모두가 흔들리는 상황이지만 이 선수 만큼은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똑바로 보여주고 있어요. 패스 성공률이며, 활동량이며, 포지셔닝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는 상태죠. 분명 맨체스터 시티가 지금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꿀꺽, 말을 한 번 끊고 침을 삼킨 메날두가 하프 타임이 끝나고 경기장 위로 복귀하는 선수들을 살피면서 끊었던 말을 이었다.

    “아마 후반전, 최재혁 선수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기세를 잡는다면 분명 맨체스터 시티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

    저벅, 저벅.

    하프 타임 동안 락커룸에서 땀으로 범벅이었던 얼굴을 말끔하게 닦아낸 케빈 데 브루위너였지만 경기장으로 다시 돌아온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아니,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라면 누구도 절대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경기는 지고 있었고, 락커룸에선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모두 한 소리를 들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저 시선들이 너무 무겁다.’

    경기장에 올라오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팬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케빈은 슬쩍 고개를 숙인 후 숨을 크게 토했다.

    자신을 향하는 기대에 찬 시선을 가만히 맞고 있기엔 지금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못해도 경기력으로 보답해야 하는 게 프로 선수였지만, 평소와 달리 느껴지는 압박감 때문인지 발이 무거웠고, 그 영향력이 그대로 경기장에서 보여지고 있었으니.

    ‘복잡하군.’

    결국 해결되지 않는 고민만 거듭하던 케빈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눈앞을 지나가는 선수를 한 명 발견하곤 대뜸 그를 불렀다.

    “재혁. 괜찮아?”

    “예? 뭐가요?”

    “뭐냐니. 당연히 이거지.”

    되묻는 재혁을 향해 손가락으로 바닥을 찍어 경기장을 가리킨 케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모아 찌푸렸다.

    지금 재혁과 자신은 같은 팀으로 같은 상황에 놓여 있지 않던가?

    그런데 저렇게 태평한 모습이라니.

    케빈은 머리에 이어 찌푸린 이마를 긁적이며 계속 물었다.

    “지금 우린 지고 있다고. 감독님도 정신을 차리라고 그렇게 소리치셨잖아. 그런데 그렇게 실없는 얼굴로 되물으면···.”

    “그렇게 보였어요?”

    “어? 그야 그렇게 웃고 있으니까 당연히···.”

    “아, 미소 때문에 그랬구나. 하긴, 설명없이 보신다면 그렇게 착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케빈의 말에 재혁은 입가에 떠올린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고, 그런 재혁을 앞에둔 케빈은 더욱 당황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착각할 수도 있겠다니? 저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에 늘어진 눈썹을 살며시 꼬던 케빈은 재혁의 이어지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지금 웃고 있는 건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 그게 정말이야?”

    “모든 게 100%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요. 경기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란 것. 그것만큼은 확실히 100%입니다.”

    “그···, 그게 뭐야?”

    “더 자세한 설명을 해드리고 싶긴 하지만···, 시간이 없네요.”

    케빈을 향해 말을 이어가던 재혁이 순간 어깨를 으쓱이며 주변을 살폈고, 재혁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케빈의 눈에 다른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주심의 휘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경기가 시작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기에 케빈은 황급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 발을 옮겼고···.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의 앞에 서있는 재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재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제발···.

    ‘제발 네 말대로 됐으면 좋겠다!’

    삐이익!

    생각이 끝남과 함께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시작된 후반전.

    케빈은 복잡하게 엉킨 잡념을 떨쳐낸 후 남은 45분을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

    재개된 경기장 위에서 공이 빠르게 돌았다.

    하지만 빠르게 돌고만 있을 뿐.

    ‘제대로 길을 찾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 받는 모양새를 살피면서 안토루는 희미하게 웃을 수 있었다.

    하프 타임을 통해 나름 재정비를 갖춘 것 같지만, 그 모양새가 단순히 숨돌리기에 불과해 보였기에 안토루는 입가에 미소를 띤 것이었고···.

    투웅, 퉁!

    그 어느 때보다 자신있는 몸짓으로 상대를 압박하면서 공을 노렸다.

    지금 그들이 2점을 앞서고 있지만, 2점이란 점수는 오히려 추격을 허용하면 그 어느 점수보다 위험한 점수였으니.

    조금 더 확실한 점수 차이를 벌려 승리를 확정 지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위건의 다른 선수들도 그런 안토루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고, 안토루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경기장 전역을 누비면서 공을 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맨체스터 시티의 최후방을 돌던 공은 페르난지뉴의 발에 닿았고, 달려드는 위건 선수를 애써 떨쳐내면서 페르난지뉴는 재빨리 공을 찼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잔디 위를 빠르게 구르던 공은 이슬을 흩날리며 한 선수를 향했고···.

    툭.

    페르난지뉴의 패스를 이어 받은 재혁이 공을 오른발 안쪽으로 가뿐히 받아내면서 그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침을 삼키면서 침착하게 이어질 플레이를 기다렸고, 위건의 선수들, 그 중에서도 안토루는···.

    ‘재혁아. 너한텐 미안하지만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겨야겠다!’

    호전적인 기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재혁의 뒤를 쫓았다.

    지금 자신들이 타고 있는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꼭 이기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공을 소유하고 있는 재혁의 뒤에 바짝 달라붙은 안토루는 재혁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거리까지 다가간 후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보다 재혁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만큼, 그의 실력이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인정하고 있었기에 재혁의 이어질 동작에 최대한 빨리 반응하기 위해 온몸을 긴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온다!’

    공을 컨트롤하는 재혁의 발끝을 노려보던 안토루의 입가에 흐렸던 미소가 서서히 짙어졌다.

    재혁과 발을 맞춘 경험을 통해 눈으로 익히고 있던 동작.

    바로 재혁의 탈압박 턴동작이 이어질 선행 동작을 잡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달려드는 선수가 있다면 그와 멀어지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려는 척,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공을 굴리면서 상대방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 도망치는 턴.

    그 선행 동작을 읽는데 성공한 안토루는 재빨리 발을 멈추었다가 재혁의 발이 이동하는 방향을 향해 다리를 뻗으며 생각했다.

    이 공은 확실히 뺏었다고.

    영국으로 너의 뒤를 쫓아 온 의미가 바로 이 순간 빛을 발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미소를 띤 얼굴로 달려드는 안토루를 등뒤에 두고 있던 재혁은 곧 그의 예상처럼 공을 발바닥으로 굴리며 뒤로 움직였고, 곧 자신의 앞으로 굴러올 공을 노리고 다리에 힘을 주던 안토루는···.

    “?!”

    갑자기 사라진 공을 찾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공이 이곳으로 굴러와야 하거늘.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공을 잃으면서 목표를 잃은 안토루의 다리는 당황한 기색을 그대로 나타내며 허공을 갈랐고, 그 사이에 안토루의 압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데 성공한 재혁은···.

    “안토루는 확실히 눈이 좋네요. 하지만···.”

    투웅!

    그대로 드리블에 속도를 붙이면서 넓게 열린 공간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며 속삭였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호주를 벗어나 영국에 와야 했어요. 저와 벌어졌던 반 년의 차이. 그 차이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오늘 경기를 통해 느끼게 될 겁니다.”

    < 145. 반 년의 차이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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