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42화 (142/225)
  • < 142. '최' >

    “오, 챔피언이다! 사네, 얼른 챔피언한테 예의를 갖춰!”

    “크. 이번 시즌 첫 타이틀 소유자! 우승자라 그런지 발걸음부터가 우리랑 다르게 위풍당당한데요?”

    “둘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냥 재혁이 너가 부럽다는 말이었지. 너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가 아직 무관이잖아?”

    “하아, 나도 얼른 우승 메달 목에 걸어 보고 싶다. 재혁아, 그거 걸 때 느낌이 어땠어?”

    “글쎄요. 전 시상식 당시엔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실려갔던 터라 무슨 느낌이었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메달보다 제 걱정부터 좀 해주시죠?”

    “그렇게 화내는 걸 보니 멀쩡하네!”

    “그러게요. 특별히 걱정해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요?”

    “···.”

    훈련장 내부에 위치한 락커룸에 들어서자 재혁을 발견한 사네와 케빈이 장난기가 가득 실린 목소리로 소리쳤고, 그런 둘을 향해 재혁은 짧게 웃어 보이며 대화를 나누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락커로 향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제법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미켈 코치에게 전해들었기에, 재혁은 그저 모른 척 자연스럽게 둘을 지나친 것이다.

    그러다 먼저 준비를 끝낸 케빈과 사네는 훈련장으로 빠져나갔고, 필드에서 보자는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재혁은 자신도 준비를 하기 위해 잠겨 있던 락커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 살펴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렇게 티나는 물건을 넣어놓을 거면 대체 왜 저런 어색한 연기를 한거야?”

    건강기원 꽃.

    그것도 방금 넣어 놓은 것인지 어색하게 포개져있는 꽃송이들을 보니 누가 이걸 안에 놓아두었는지 바로 예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마 락커를 닫다가 내가 들어오려 하니 놀라 황급히 내려놓은 게 분명했으리라.

    “그리고···.”

    꽃송이들을 락커 한켠에 모아놓은 재혁은 휴대폰을 꺼낸 뒤 몇 분전, 케이트에게서 도착한 문자를 눈으로 읽으면서 웃었다.

    [괜히 무리했다가 또 병원에 실려가지 말고 훈련할 땐 적당히 뛰어. 어차피 너 체력도 약하잖아? 시즌을 소화할 체력 관리 해야지.]

    “케이트, 너도 걱정이 되면 그냥 걱정된다고 말하지. 프로 선수한테 ‘적당히 뛰어’가 뭐냐?”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참 솔직하지 못 하네.

    덕분에 아침부터 웃을 수 있었다며 중얼거리면서 상의를 벗던 재혁은 빠져나온 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솔직하지 못 한 건 나도 마찬가지지.”

    복잡, 혹은 혼란함이 그대로 담긴 눈빛으로 문자를 내려보던 재혁은 이내 휴대폰을 끄고 락커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지금은 거기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당장 내일이면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이 있었고, 그 뒤에 이어질 리그 경기와 FA컵까지.

    쉬었던 만큼 잔뜩 밀린 경기 일정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짝, 훈련용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정신을 차리자는 의미에서 가볍게 뺨을 친 재혁은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훈련장으로 향했고, 간만에 보게 된 얼굴들을 향해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다들 잘 지냈죠?”

    “오늘 복귀한 거야? 이제 몸은 괜찮아?”

    “네. 덕분에요. 그리고 특별히 선물까지 준비해서 걱정해주신 분들 덕에 완쾌했네요.”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선물까지 받았어? 인기 좋은데?”

    “어느 분들 말씀처럼 컵 챔피언이잖아요. 그정돈 받아야죠. 그렇죠? 케빈? 사네?”

    재혁의 복귀를 반기며 밝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선수들.

    그 사이에서 재혁은 괜히 어깨를 움찔거리고 있는 케빈과 사네를 발견하곤 다른 사람들처럼 미소를 보이면서 이어질 훈련을 준비하면서 몸을 풀었다.

    그렇게 머지 않아 과르디올라 감독이 코치들과 함께 등장했고, 몸을 풀고 있는 재혁을 발견하곤 웃으며 말했다.

    “런던에 좀 더 있다 오지 그랬어? 그 친구랑 분위기 좋아 보이던데.”

    “농담이시죠?”

    “당연히 농담이지. 앞으로 치러야 할 경기들이 몇 개인데. 그대로 런던에 눌러 앉아 있었다면 내가 직접 가서 잡아왔을 거야. 여전히 우린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거든.”

    “제가 고양이 손이라는 의미인가요?”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농담에는 농담으로.

    그동안 다른 선수들에게 당한 장난을 조금이나마 감독을 대상으로 풀 수 있었기에 재혁은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스트레칭에 임했고, 곧 훈련 준비를 모두 끝마친 선수들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앞으로 치르게 될 경기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중요한 경기들이다. 리그는 우승이 가깝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거고, 챔피언스 리그야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 FA컵 또한 트로피가 목표인 만큼, 겨우 16강에서 무너질 수 없다.”

    무겁고, 진지하지만, 또 한 편으로 희망적인 목소리.

    다양한 감정이 묻어난 목소리로 과르디올라 감독은 말했고, 선수들은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모여 있는 선수들의 시선과 한 명씩 모두 눈을 맞추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마지막으로 재혁과 시선을 교환한 뒤 닫고 있던 입술을 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치지 마라. 폼이 좋지 않은 건 내가 어떻게든 수정해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아예 내 손이 닿지 않는 경기장 밖으로 떠나버린다면···. 그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예!”

    “좋다. 그럼 먼저 기초 훈련부터 시작한다! 선수들은 짝을 맞춰서···.”

    말을 끝마치며 박수를 친 과르디올라 감독은 준비한 훈련 세션을 진행하기 위해 진두지휘를 시작했고, 오랜 만에 훈련에 합류한 재혁도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 사이에 섞여 진지한 얼굴로 땀을 흘렸다.

    리그 컵 타이틀이라는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건 겨우 시작에 불과한 성과였으니까.

    쿼드러플이라는 완성을 위한 첫 번째 목표 말이다.

    ‘내 1년을 위한 성과는 지금부터야!’

    뻐엉!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훈련에 임하는 재혁의 발을 떠난 공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고, 그 공이 정확히 골대 안 그물망에 걸리는 것을 확인하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고개를 자연히 끄덕여지는 턱을 괴고서 웃었다.

    ‘역시 본인의 힘으로 타이틀을 하나 따내니, 공에 실리는 힘부터가 다르군.’

    결승이 끝난지 이제 겨우 며칠이 지났을 뿐이었으니.

    그 사이 기술적으로 발전했을 리는 없었고, 아마 마음 가짐이 전과 달라진 것이리라. 그리고 그게 공에 바로 나타나는 것일 것이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축구공이란 다른 무엇보다 선수의 감정을 왜곡없이 그대로 표현해주는 매개체였으니까.

    우승이라는 경험이 재혁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준 게 공을 통해 분명하게 느껴진 것이다.

    ‘물론 그걸 노리고 그동안 재혁의 어깨에 짐을 지워둔 거지만, 대회 중에는 티내지 않아도 제법 힘겨워하더니. 확실히 벗으면서 한 단계 더 발전했군. 저런 상태라면···.’

    머릿속으로 생각을 이어가며 살며시 눈썹을 모은 과르디올라 감독.

    그는 지금까지 빠져있던 퍼즐 조각을 하나둘 다시 맞춰가면서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확인하곤 미소를 떠올렸다.

    이거라면···.

    꿀꺽,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침을 삼킨 과르디올라 감독은 여전한 미소를 띤 채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거라면 진짜 가능할 지도 모르겠군. 쿼드러플. 신의 왕관을 머리에 올리는 게 말이지.”

    큭큭, 즐거운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웃어보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얼른 메모지를 꺼냈고, 복잡한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 메모지 위에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해당 전술의 타이틀을 적었다.

    왕좌 탈취.

    아주 간단하고, 의미가 확실한 타이틀을 말이다.

    ***

    “우···, 우와아···. 여기가 에티하드 경기장이구나. 멋지다! 최고다!”

    “인턴. 언제까지 감탄만 하고 있을 거야? 미디어 입장 시작했다고. 늦으면 일반 입장에 섞여서 들어가야 돼. 시큐리티 체크에 발이 묶이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

    “네, 넵! 지금 갑니다!”

    에티하드 경기장을 앞에 두고 서있던 두 명의 동양인.

    그 중에서 맨체스터가 익숙했던 이상민 기자가 최동호 인턴을 향해 소리쳤고, 최동호 인턴은 그런 이상민 기자의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려놓았던 가방들을 어깨에 걸치고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이상민 기자는 인턴을 데리고 게이트를 통과했고, 따로 준비되어 있는 미디어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가방을 풀었다.

    최동호 인턴 또한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 꺼내 손에 쥐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이상민 기자에게 말했다.

    “정말 이 직업이 최고인 거 같아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맘대로 보러 다닐 수 있다니. 기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순수한 의미로 질문을 던진 최동호 인턴의 말에 이상민 기자는 잠시간 입술을 끌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흠. 이따금 기차 역에 발이 묶여서 반나절을 서있거나, 스케쥴을 맞추기 위해 기차나 버스에서 몇날 며칠을 자고, 또 기사 초안을 작성해서 스테이션에 보내야 한다는 점을 빼면 최고긴 하지.”

    “그, 그렇죠? 하하···.”

    “뭐, 그래도 최동호 인턴처럼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오늘 같은 경기의 티켓 값을 회사 경비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말야.”

    “그렇죠! 역시···.”

    “물론 그 외에 사용되는 경비는 자기 부담이지만. 물 한 병에 얼마인지 인턴도 잘 알고 있지? 가능하면 밖에서 미리 마셔. 맥주 땡겨도 참고. 애초에 일하면서 맥주라니. 사치지, 사치야.”

    “···네.”

    10여년 이상을 기자로 일해온 이상민 기자의 현실적인 답변에 할 말을 잃었던 최동호 인턴.

    하지만 그런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지라도 밤낮으로 타오르는 그의 열정을 완전히 식힐 수 없었고, 최동호 인턴은 다시 한 번 이상민 기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면서 물었다.

    “그래도 오늘 같은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특권이긴 해요. 다른 경기도 아니고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최재혁 선수가 선발로 뛰게 될 경기잖아요? 아마 이곳에 오고 싶어하는 한국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걸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던 최동호 인턴은 옆이 조용하자 침을 꿀꺽 삼킨 뒤 고개를 살며시 돌려 이상민 기자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이번에 또 혼나려나?

    그런 생각에 어색하게 끌어올린 입꼬리를 씰룩이고 있었는데, 이번 만큼은 이상민 기자도 별 말 없이 넘어가더니···.

    “그건 그렇지.”

    처음으로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준 것이다.

    이에 놀람과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최동호 인턴은 신이 난 얼굴로 계속해서 떠들었다.

    “역시 그렇죠?! 확실히 한국인이라면 최재혁 선수를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 나이에 벌써 맨체스터 시티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고 있으니 말예요. 게다가 데뷔 시즌에 리그 컵이지만 우승 기록까지 추가하고! 이대로 몇 년만 더 성장하면 정상급 선수가 되지 않을까요?”

    “너는 지금까지 재혁의 플레이를 영상으로만 봐왔겠지?”

    “네? 아, 예. 한국에서 뛰었던 경기도 보고 싶었지만, 그때 하필이면 일정이 꼬여서 보질 못 했거든요.”

    “그래서 네가 틀린 거야.”

    “···네?”

    최동호 인턴이 당황해 말끝을 떨었다.

    갑자기 자신이 틀렸다니.

    재혁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틀렸다는 의미인 것인가? 아니면 정상급 선수가 될 것 같다는 성급한 단언 때문에? 혹시 이거 때문에 또 혼나려나?

    여러 생각들이 동시에 머릿속에 스며든 탓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최동호 인턴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방황을 시작했고, 그런 인턴을 옆에 두고서 카메라를 손에 쥔 이상민 기자는 렌즈를 확인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냥 정상급이 아니야. '최'정상급이 될 거다. 단어 하나차이지만, 그 하나의 차이가 다른 선수들과 수십 개의 벽을 세울 단어니까, 앞으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라고.”

    “!”

    “사비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지. 축구 선수는 크게 재능이 뛰어난 선수와 신체 능력이 뛰어난 선수, 두 가지 종류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보통 어린 선수들은 신체 능력에 기반한 성장을 거듭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했지만, 재혁은 아니야.”

    찰칵!

    가볍게 셔터를 눌러 카메라의 상태 점검을 끝낸 이상민 기자.

    그는 실험 삼아 찍은 사진에 담겨 있는 재혁을 내려보며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은 자신이 품고 있는 재능이 어디까지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거든. 월드 클래스. 재혁은 분명 세계적인 선수가 될 거다. 제 2의 지단, 혹은 제 2의 피를로, 모드리치. 이런 선수들이 아닌, 제 1의 최재혁 말이지. 아니, 꼭 그래 줘야 돼.”

    그래야 내가 녀석을 따라 여기까지 온 이유가 결실을 맺을 테니까.

    뒷말은 속으로 삼킨 이상민 기자는 다시 한 번 카메라를 들어 필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재혁을 찾았다.

    10년 전엔 중앙 초등학교 운동장에 홀로 서있던 선수, 하지만 이젠 맨체스터 시티의 에티하드 경기장에 서서 모두와 섞여 있는 선수를 말이다.

    그렇게 몸을 풀던 재혁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이상민 기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고, 이상민 기자 또한 재혁에게 맞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과연 오늘은 어떤 마법을 보여줄까?

    그런 기대를 마음 속에 함께 품고서, 아주 천천히···.

    ***

    “내가 누구게?”

    갑작스레 다가온 인물이 큼직한 손을 뻗어 자신의 두눈을 가리고 묻는 것에 재혁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 142. '최'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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